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에세이
허은실 글.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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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 허은실 지음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에세이.

비단 빨간책방 뿐 아니라 수많은 방송의 오프닝은 전체적인 방송 분위기를 결정지을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 때문에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들이라면 한번 쯤 '오프닝 멘트'를 끄적여봤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책의 구절부터 훈훈한 뉴스거리나 재밌게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등을 가져와 자신만의 느낌을 적어 공감을 끌어내는 그런 이야기들.  그렇게 기대를 부풀리고서 읽었는데도 이 책은 참 좋았다. 마음이 열렸다고나 할까.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사이'가 존재해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책에서 읽었던 건지 기억은 안나는데 인간관계라는 게 늘 벅차게 느껴지는 내게 '사이'라는 건 큰 위로가 된다. 너무 급하게, 버겁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나는 두렵다. 뒤에 나오는 것처럼 나를 번역도 하지 않고 마치 나를 다 안다는 것처럼, 나의 눈물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다가오는 그들이 늘 부담스러워 요즘 말로 '철벽'이 되어버린 내게 사이가 필요하다는 말은 위로다. 완전한 타인 뿐 아니라 가족구성원끼리도 분명 사이는 필요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가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혼자있고 싶을 때,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있도록 이끌어줄 때 바로 그런 둘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비틀즈의 노래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한 동사가 '사랑'이라는데 비단 비틀즈 뿐이 아닐 것이다. 사랑을 빼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사랑없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찌 열 수 있을까. 당신과 나라는 단어도 많이 등장한다는데 그와 그녀가 아닌 '우리'이야기를 하려면 당연한 것 같다. 기타를 처음 배울 때 손가락에 생기는 상처. 그 상처를 이겨내야 굳은 살이 오르고 계속 기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되는데 몇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 이런 내용을 다뤘었다. 늘 무언가를 배울 때 초반에 생기는 적잖은 상처에 그만두길 반복하는 남자가 어느 날 기타마저 그만두려 할 때 굳은살이 생기고 나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포기하지말고 이겨내보라는 여자의 응원을 받고 사랑에 빠진다. 여자는 자신이 그런말을 했다는 것 조차 잊고 살지만 남자에게는, 모든 일을 쉽게 그만두었던 그에게 그녀의 조언은 사랑을 느끼게 할 정도의 큰 힘이 되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상처받는다면

어떤 일에서 자꾸 실수하고 실패한다면

그 관계도, 일도,

아직은 2월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또는 지금이 인생의 'F코드'를 익히는 시기라고요.

 

- part 1 44쪽-

 

우리말에는 정해진 길보다 앞질러가는 지름길 보다 돌아서 가거나, 다소 험난하고 좁은 길이란 의미의 단어가 더 많다고 한다. 에움길, 엔겔, 돌길...그리고 뒤안길, 오솔길, 고샅길.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을 좀 둘러가면, 시간이 더 걸려 가게 되면 그에게 들려주고 픈 풍경이 많고 가는 길 내내 그 사람을 더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는 말에 미소가 번졌다. 굳이 몇 시간씩 일찍 나가지는 않더라도 천천히 약속장소 주변을 맴돌며 그에게 작은 선물을 줄것이 없는지 고민해봤던 때가 떠올랐다. 연인이 아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늘 고마운 지인들과의 만남에 난 늘 그랬던 것 같다. 값이 비싼 무언가가 아닌 작은 초콜릿, 머리삔 혹은 귀여운 장난감. 둘러가는 그 길 동무가 나뿐이 아닌 것 같아 기운난다.  오프닝 뿐 아니라 에세이나 자기개발서에 자주 등장하는 영화, 일 포스티노. 영화를 봤다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줄거리나 몇몇 장면 등 영화를 안다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게 바로 이런 책에서 그 영화를 자주 언급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 책에서는 마리오가 사랑하는 이에게 들려주고픈 일상의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자신만의 사운드 트랙을 가져보라고. 내용보다 옆에 함께 실린 사진속 바다소라를 보고 메모를 적었다. 

 

 

 

 

어릴 적 방학숙제로 바다소라를 학교에 가져오면 친구들끼리 바꿔가며 소라를 귀에 대고 소리를 듣곤 했어.

쉬이~쉬이~ 들려오는 파도소리. 비릿한 바다내음 그리고 꺼끌거리는 모래 알갱이. 다 비슷한 그 소리들이 왜 다 다르게만 느껴졌을까.

 

창조라는 단어의 '창'자를 유심히 본 적이 없는데 '다치다, 상처입다,슬프다'라는 의미도 가진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일이 산고의 고통을 견뎌야 하고 화가들이 작업을 하다가 슬럼프를 견뎌내지 못하고 자멸하는 경우가 떠오른다. 무언가 창조하기 위해 수없이 다치고, 상처입고 슬픔에 잠겨야 하는 것을 이겨내야 하는 것. 앞서 읽었던 기타를 배울 때 생기는 상처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결국 상처없이는 그 무엇도 이룰 수가 없는가보다.

 

누군가는 새벽에 이불을 끌어당기면서

누군가는 여름내 신었던 샌들에 발을 넣다가 느끼겠지요.

하나의 계절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

한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part2 100쪽-

 

책의 내용 중 위의 문단에 애착이 많이 간다. 새벽이란 단어도 좋고 이불이란 단어도 좋지만 무엇보다 계절이 오고감을 느끼는 순간은 어쩌면 하늘을 보거나 길가에 핀 꽃들, 산의 색변화가 아니라 일상 그자체에서 체감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가을의 문턱에서 쓰여진 듯 보이는데 만약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두터운 이불을 발로 걷어차는 순간? 외출해서 들어오자마자 보일러 전원을 키지 않게 되는 것? 등이 되려나. 계절이 변할 때를 직감할 때마다 메모해두면 해마다 어떤 때인지 비교해보는 재미, 그런 소소한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밀. 반드시 필요한 것, 간직해야 하는 것. 반드시 필자가 들어간다는 비밀. 저자는 한자를 볼 때 한자 한자 유심히 들여다 보는 것 같다. 아님 내가 너무 무감각하게 활자를 보았던건가. 부수의 획만 따져가면서. 읽다보니 나를 되돌아 볼 기회를 계속 주는게 고맙다.

 

 

 

좋았던 문장, 글귀 그리고 감상을 나열하다보니 글이 지나치게 길어진다. 이보다 더 좋은 문장도 참 많지만 아직 읽지않은 독자들을 위해 책의 문을 슬며시 닫아야겠다. 이만큼 나를 흔들어 놓은 책, 흔들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읽는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행위가 된 것 같습니다.

-중략-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세심하게 읽히기를 기다리는

한 권의 책입니다.

 

- part4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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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담은 그림 -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놓다
채운 지음 / 청림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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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담은 그림 - 채운 지음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놓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짐작했던 내용은 학부의 전선 혹은 전필 과목이었다. 제목을 넘어 표지를 찬찬히 훑어보고 푸른 색 물감이 종이에 물드는 바탕을 보고서야 학술적인 의미의 철학이라기 보다 사람의 살아가는 방향, 삶의 지혜라는 의미의 교양과목 같겠구나 깨달았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프롤로그를 읽는데 저자의 느린 호흡덕분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다. 프롤로그 첨언에 적힌 글을 쓰게 된 목적은 '시'자를 가진 가족이 있는 여성들이라면 더욱 이 책을 반기겠거니 싶었다. 흔히 하는 말로 '많이 배운'저자인데도 그런 내색 없이 상처받은 영혼을 이끌어가려는 모습이 시작부터 맘이 놓였다.

 

목차를 찬찬히 훑어보는데 낯익은 화가들이 많이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 얼마전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윌리엄 터너, 두 말하면 잔소리인 반 고흐 등 낯설은 화가들 속에 반가운 이들이 보여 안심한다. 1장 첫 작품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인데 저자의 설명 없이도 보자마자 한숨이 나온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담긴 작품을 볼 때 느낌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뒷모습까지 매력적인 사람이거나 뒷모습을 통해 느껴지는 좌절과 안타까움. 이 작품은 안타까움이다. 그림의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흑인 인권 운동가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오버랩시키더니 다시 그림 속 크리스티나에게로 돌아온다. 책의 구성은 크게 4부로 나뉘었지만 그림을 대하는 방식과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말들이 이런식으로 이어진다.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와 대상에 얽힌 이야기, 자신이 하고싶었던 내용을 강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한번 더 언급하며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걸어주어야 할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 이끌어주었다. 저자가 소개 해준 작품 중에 와닿았던 몇 가지를 고르면, 움베르트 보초니의 마음의 상태들-걷는 자들 이다. 그림을 보자마자 어지롭고 혼란스러웠다.  강한 붓향에 사라지는 집들의 창문과 문은 절규하는 사람의 표정을 닮아 있었다. 아마 책을 중구난방으로 먹어치우듯 읽는 사람들이라면 이 그림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으리라.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불명증과 소화불량을 달고 살지요.-중략-5분만 눈을 감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번 지켜보세요.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무수한 생각들에 끌려 다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겁니다. - 37쪽-

 

기도할 때 조차 무수한 잡념들로 피곤 했던 터라 저자의 말에 시도하지 않아도 그게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마음 상태를 이 그림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어지러운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저자는 달마대사 일화를 소개해준다. 생각을 잡지 못해 괴로운 혜가에게 마음을 가져오라는 달마대사. 실체화된 것이 아니기에 가져올 수 없는 마음, 즉 스스로가 키워낸 그 불안한 마음은 자신 밖에 없애지 못한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그림과 달마대사 일화를 얹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저자의 능력이 부러우면서도 정말 고마웠다. 이번에 기억에 남는 그림과 이야기는 르네 마그리트의 자연의 은총 그리고 에드거 루빈의 루빈의 잔, 이렇게 두 작품,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였다. 루빈의 잔은 두 장의 그림이 한 작품으로 왼쪽에는 노란 잔, 반대쪽에는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의 옆얼굴이 보인다. 같은 그림을 시선을 어디에 두고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마그리트의 그림 또한 잎과 새가 이어진 모습에 새인지 식물인지 헷갈린다. 그냥 단순하게 새나무, 잎새 하면 되는 것을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작품 하나는 그저 익숙한, 자신의 편의대로 보는 닫힌 시선을 말해주고 새와 잎의 경우는 우리가 본 적없는 사실, 믿고 싶지 않으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보고들은게 많아질 수록 이런 실수가 줄어들어야 하는 데 무엇을 보았는지에 따라 중심을 잃고마는 나를 발견 한 것 같아 씁쓸했다.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고, 다른 존재가 되면 다르게 보인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세계에 자신의 앎을 그대로 투영해버립니다. - 91쪽-

 

책을 읽다보면 마음에 남는 작품과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반대로 대면대면 하게 되는 페이지도 있었다. 책이 부족하거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지금 내 마음 상태가 앞으로의 불안과 현재에 불만족하기 보다는 그저 피로하고 방향을 알면서도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떤 때에 노력해도 무언가 이뤄지거나 해놓은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때는 3장이나 4장이 깊게 와닿을 수도 있다고 느낀다. 지금 내 마음상태가 어떤지 궁금하거나 상태는 알겠는데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를 때 이 책을 펼치면, 그림에 그림 하나만 걸어도 분위기가 달라지듯 마음이 정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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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게 살기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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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게 살기 -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책을 읽기 전 표지와 소개글이 땀흘리는 삶, 최소한의 노동의 의무를 실천 하는 삶을 살려고 했던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상냥하게'보다는 '성실하게'에 가까운 내용처럼 보였다. 1부까지는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2부에 접어들면서 편집자가 원제목 '섬으로 가다', '섬에 살다'를 한권으로 묶으면서 책 제목을 '상냥하게 살기'로 바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섬으로가게 된 취지와 그곳에서 적응하는 정도로 이 책을 귀향 혹은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전부 포괄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낭만적이다. 혹시라도 정치이야기나 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 혹은 고발 등의 내용이 버겁다면 1부까지만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각각 소제목을 달긴 했지만 1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2,3,4부는 자기반성과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시에 살면서 편리한 삶에 물들지 말고 자급자족 하고 생명을 중시하며 먹거리에 신경쓰자고 떠들어봐야 똑같이 혜택을 누리는 까닭에 별 소용이 없다. 글과 아이들에게 전하는 교육을 통해 정신만큼은 다르다는 것을 보이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떠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통수단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불편할 게 뻔한 섬으로 들어간 그는 농사를 시작했다. 섬으로 간다길래 고기와 조개를 캐러가는구나 했는데 의외로 밭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내용이었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콩, 딸기, 아욱, 배추, 당근, 파, 양파 등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데다 닭도 치고 오리도 기른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첫 수박농사에 맛도 빛깔도 좋은 수확물을 거둔 장면에서는 농사에 소질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원하는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전쟁이 나도 1년 정도 걱정없겠다 하는 내용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었는데 그 바로 아래 문장에 나처럼 피식 웃는 사람들에게 경고아닌 경고를 남겨 반성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감히 전쟁을 경험 한, 전쟁을 경험했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손한데 웃음이 난 것은 설마 그럴일이 있겠냐 하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분단국에 살면서, 휴전상태인 나라에 살면서 경솔한 웃음이었다. 저자의 글은 곳곳에 그런 웃음을 밖으로 내보이며 안으로는 반성과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글이었다. 손과 머리위로 오르내릴 만큼 정을 붙인 닭을 잡아먹은 일도 다른 독자들처럼 다른 닭을 먹지 굳이 그 닭을 잡았어야 했을까 못마땅했는데 그 닭 아닌 어떤 닭이든 생명으로 보자면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있겠는가.

 

48쪽

수많은 생명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수많은 이별도 맛보아야 한다.

 

1부는 웃다가도 이내 심각해지는 묘한 풍경을 자아내며 읽었다. 그래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땀흘리는 저자의 모습을 응원하고 내심 부러워하며 읽었다. 바로 2부 부터 시작인데 1부에서도 잠시 그가 교과서 편찬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고 그의 작품 하나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현 일본사회의 부조리와 잘못된 관습 등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시작된다. 초반에 얼마전 읽었던 '나의 조선미술 순례'저자 서경식님의 형제 이야기도 나오는데 누구의 탓이라기 보다는 행동하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내 탓이려니 싶었다. 저자도 어쩌면 그 점이 가장 못마땅한 것일지도 모른다. 잘못되었다고 불평만 할 뿐 나서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심지어 섬까지는 못가더라도 편의를 떠나 진정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교과서문제는 밖에서 볼 때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몰아서 비난했는데 그 안에서도 저자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서글펐다. 교과서 문제가 왜 이권다툼으로 변질되고 있는지 답답하다. 3부에서는 2부에서 강조한 아이들이 미래다라는 점을 제대로 부각시켜준다. 중간 중간 어린이들이 직접 지은 시 작품을 보여주는데 내용이 기가막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아이들만큼 솔직하게 그리고 거리낌없는 문학을 창작할 수 있는 존재는 없어 보인다. 저자의 대표작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 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아이들의 의견이 현 사회에서는 환영받을 수 없다는 점을 애석해한다. 이 책에서 거듭강조하는 자립적인 삶,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삶을 모토로 하기에 아이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소망대로, 만들어놓은 제도아래 쫓아오기에도 버거운 세대들이 지금의 아이들이다. 교과서문제에서도 잠시 나왔던 내용으로 아이들은 그저 부모에게 효도하고 단체생활에서 튀지 않으며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는 그야말로 하나의 부품이나 도구로 성장한다는 내용이 현실이었다.

 

226쪽

가족 붕괴의 원인과 양상은 저마다 다르므로 방관자적인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만 하는 일은 삼가야겠지만, A의 가정처럼 사소한 일상속에서도 아이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있다면 아이들의 불행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마지막 4부는 문학가로서의 저자세계를 보여주며 앞에서 추천하거나 언급했던 작가, 삽화가, 출판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현실과 작품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냈는지 자신의 작품이 쓰여지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말해주는데 마지막 글, 태양의 아이를 집필 한 후에 마사유키와 구니히로에게 쓴 편지는 이 책의 전체를 축소한 느낌이었다. 메멘토모리. 지난 해 읽었던 강상중 교수의 '마음'이라는 책에서의 핵심주제가 메멘토모리였다. 하이타니 겐지로 역시 마지막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 하지만 그 절대적인 죽음에 그저 순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형의 죽음을 통해 사회에게 말하고 싶었던 부분,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가 담겨 있었다.

 

313쪽

마사유키, 그리고 구니히로.

나는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열아홉 살 때 오키나와의 '오'자도 몰랐단다. 젊은이들의 감수성이 언젠가 죄인의 나라 '일본'을 단죄하고, 그리고 부활시키리라고 나는 믿어.

 너희는 태양의 아이니까...... 

 

일본, 그리고 유사한 나라의 문제와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간파했던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이미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가남겨준 보물같은 책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이제 겨우 그의 책 2권(이 책은 한권으로 묶은 것)을 읽었을 뿐이니 참 다행이란 생각한다. 잠깐 잠깐 지나치게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는 듯한 작가로서의 고집도 엿보이지만 바로 그런 고집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며 타인을 설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냥하게 살기. 단순하게 친절한 삶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정도로는 한없이 부족한 상냥함, 그런 삶을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할지 어깨가 은근히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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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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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지음

 

멸치로 다시를 낸 물을 끓였다. 불린 미역을 볶다 조선간장을 약간 넣고 멸치다시물을 부어 미역국을 끓였다. 시금치나물과 도라지나물을 접시에 담고 어제 새로 담근 김치도 담았다. 선경이 좋아하던 갈치 한 토막을 물에 씻고는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올렸다. 간장에 졸여서 볶은 멸치와 마늘종볶음도 접시에 담았다. 처음으로 선경을 위해 차린 밥상이었다. - 367쪽-


식당사장 장만호. 만호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컨닝으로 고등학교에 입학, 등록금을 달라고 엄마를 졸랐으나 뺨을 맞고 그에 대한 분풀이로 학교도 때려치고 나염공장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이십년 가까이 자신의 꿈이자 희망이 된 황동하를 만나 노동운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식당사장과 노동운동가. 평생 노동운동만 하고 살 줄 알았던 만호도 레미콘에 깔려 1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지면서 과연 노동운동은 커녕 다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함께 활동하던 포카형이 자신이 운영하던 갈비집을 넘기겠다고 제안하면서 식당사장이 될 수 있었다. 집을 뛰쳐나온 뒤 공장가 노동판만 전전하다보니 식당일은 엄두도 못냈는데 막상 따져보니 어린시절 꿩도 잡아다 팔고, 종아리보다 더 두꺼운 칡도 팔아봤고 심지어 중학교 3학년 때는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돈을 받을 정도였으니 아에 장사수완이 없지는 않았다고 자신한다. 그의 호기처럼 공단솣불갈비는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아내이자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선경의 박리다매식 경영전환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마침 늘 자신의 우상이자 꿈이었던 황동하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급기야 아내에 만류에도 동업을 제안해 만동이갈비라는 큰 체인사업까지 벌이며 승승장구 하는 듯 했다. 하지만 황동하는 더이상 그가 생각하는 노동운동을 하고 부조리에 맞서 싸우던 지지않는 별이 아니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아내와 재결합을 하고 무시받던 처가에서 인정받으면서 점점 그는 돈의 노예가 되어간다. 황동하를 본부에 앉혀두고 밖으로 영업을 돌던 만호가 당뇨로 병원에 입원 한 2달 동안 그들의 동업은 산산조각 나고 애써 일군 갈비사업을 홀라당 동하에게 빼앗겨 버린다. 동하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에 불탄 만호는 어머니의 간호로 지쳐버린 선경도, 더이상 아빠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딸 현진을 애써 모른척 하며 오리고기로 새사업을 시작하고 불안했던 주변사람들의 우려대로 사업은 크게 망한다. 그리고 가장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시점, 자살을 하기 위해 대교위를 걷다가 경찰손에 붙들려 식당에 앉아있다. 죽으려는 그에게 경찰은 아무렇지 않게 밥은 점심은 먹었느냐고 묻는다. 어이없어 하면서도 끌려가듯 따라간 식당 풍경을 보며 잊고 있었던 밥, 그 따뜻한 밥 냄새에 다시금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다.


접시에는 큼지막한 무 깍두기가 수북하고 갓 지은 듯한 새하얀 쌀밥 위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중략- 고깃결대로 잘게 찟어서 넣은 양지머리, 큼직하게 잘라 넣은 대파, 토란대, 숙주나물, 고사리가 들어간 육개장 한 그릇. -12쪽-


식당사장 장만호 라는 타이틀만 보면 음식의 맛에 대한 평가나 묘사가 자주 등장할 것 처럼 느껴지겠지만 도드라지게 표현되는 부분은 보통의 작품들보다 적은 편이다. 선경이 다시 그에게로 마음을 열 때, 그가 다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열릴 때 읽는 순간 머릿속에 글자 그대로 떠올릴 수 있게 그런 표현들을 많이 아낀 듯 싶었다. 만호가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때, 초심을 되찾으려 할 때 만나게 되는 도원스님, 경우형의 등장은 밥의 의미와 고마움을 잊고 사는 독자들에게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 밥이란 하늘같아서 혼자만 먹지 말고 나눠먹어야 한다는 부분도 맘에 와닿았다. 불교의 경구가 몇 차례 등장하지만 공단숯불갈비와 이웃하는 자전거 대리점에서 늘상 들리는 찬송가처럼 작가는 종교마저 따뜻한 한 끼의 밥상 처럼 포용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온도, 밥을 먹기에 좋은 온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작가는 말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역시나 김이 나는 밥을 함께 앉아 먹는 것,  가족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모습은 선경이 만호에게 바라던 그 한 가지였다고 느껴졌다. 날이 추워서일까? 느티나무 식당 메뉴판의 적힌 따스한 밥 한 그릇, 따스한 비빔밥 한 그릇, 따스한 국수 한 그릇, 따스한 국밥 한 그릇 이 전부인 그곳에서 한 끼 제대로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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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1 - 영국 감성 매거진 시리얼 CEREAL 1
시리얼 매거진 엮음, 김미란 옮김 / 시공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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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EAL. vol.1

 

한글판 8호를 먼저 만나고 드디어 1호를 만났다. 1호에서 다룬 키워드는 코펜하겐, 당근, 웨스턴버트, 치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마차, 라벨로 그리고 시.리.얼.

 

여행지로서의 코펜하겐은 어떤 느낌일까? 신비함? 자연? 혹은 낯설지만 익숙함이라고 생각했다. 코펜하겐에서 맨 처음 소개한 장소는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이다. 덴마크 해안에 설립된 이곳은 덴마크 사람들이 코펜하겐에서 주말을 보낸다고 가정했을 때 빼놓지 않고 추천하는 곳이라고 한다. 해안가에 지어진 것 만도 놀라운데 미술관 주변으로 숲길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고 분위기 자체가 숲속 정원에 나와있는 기분이라는데 읽고 있으면서도 가고 싶다라는 말만 연발하게 된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백미는 자코메티의 전시실인데 작품을 따라 걷게되는 동선까지를 세심하게 신경 써, 미술관 안팎의 경계가 모호 할 정도로 통유리를 통해 밖의 전경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이 다음으로 소개 된 곳은 요즘 한창 유행하는  S 체인 커피숍의 맞춤커피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트럴 호텔&카페 였다.


바리스타가 일하는 바 앞에 마련된 2개의 스툴이나 양쪽 벽면을 따라 붙여놓은 긴 벤치 중 마음에 드는 곳에 앉으면 된다. 메뉴로는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커피 그리고 패스트리, 컵케이크와 달콤한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다. -23쪽-


호텔의 경우 무료 인터넷은 물론 자전거까지 이용할 수 있어 주변을 산책하기에 편리하다는데 화려하고 넓직한 방을 원하는 분들은 별로 반기진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호텔은 침대, 샤워기, 세면대, 변기 등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세상에서 가장 작은 호텔이기 때문이다. 혼자 혹은 절친과 단둘이 여행을 한다면 분위기와 낭만보다 이런 호텔이 훨씬 맘에 들 것 같다. 기호에 맞는 커피를 주문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테이크아웃해서 주변을 거니는 상상만 해도 들뜬다. 실제로 이곳에 장기투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하니 시간많고 돈도 여유있는 로맨티스트라면 서두르는게 좋을 것 같다. 미술관, 호텔 그리고 카페를 지나 눈에 확 띄는 기사는 단연 '당근' 캐롯이다. 2년 전 당근케이크를 생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는 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도 좋아 매 생일마다 당근 케이크를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생일케이크는 본인이 사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현실이 되진 못했지만 타인에게 케이크를 선물해야 한다면 무조건 당근 케이크를 선호한다. 건강에 좋아서가 아니라 진짜 맛이 좋기 때문인데 시리얼에서 그 이유를 속시원하게 알려주었다.

장담하건대 당근은 케이크로 만들면 정말 좋은 채소 중 하나다.  -중략-  그도 그럴 것이 당근은 사탕무를 제외하면 채소 가운데 당분 함유량이 가장 높다. - 51쪽-


실제 영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1970년대 5대 유행 음식에서 5위를 했다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역사적으로 당근은 저렴한 식재료치고 달콤한 맛을 낼 수 있어서 대체된 재료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재료로써 당근은 저렴할 지 몰라도 완성된 케이크로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오히려 일반 생크림이나 치즈 케이크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돈주고 사먹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시리얼에 공개된 당근케이크 레시피를 참조 해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당근 케이크와 함께 마셔도 좋은 마차 이야기를 하자면, 언니가 일본에 거주 할 때 데리고 간 초밥집에서 처음 진짜 마차를 마셔봤다. 간장과 고추냉이와 함께 마차가루가 비치되어 있어 식사 전 후는 물론 중간 중간 국물 대신 마셨는데  시리얼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품질에 따라 가격차가 크고 마차 만드는 방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삼킬 수 조차 없을 만큼 쓴맛이 날 수 있어 집에서라도 제대로 도구를 갖춰야 한다. 귀국한 언니가 종종 밥에 마차 우린 물을 부어서 먹는 모습을 봤는데 일본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비슷한 장면이 간혹 나온다. 밥을 차에 말아 먹는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담백하고 향이 적당해 국물대신으로도 참 좋았다. 

 

 

마지막으로 시리얼에 대한 역사 등 시리얼을 떠올렸을 때 식사대용, 다이어트 식품 그리고 우유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페이지가 알차게 실려있다. 우유에 시리얼을 부어놓은 볼 사진들은 언제봐도 역시 아침이란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진다. 물론 바쁜 현대인의 아침으로 대표되기도 하지만 신선한 우유와 바삭바삭한 소리만큼은 건강하고 기분 좋은 아침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시리얼 창간호에는 그 느낌이 제대로 담겨있고 미처 리뷰하지 못한 멋진 기사들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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