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하게 살기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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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게 살기 -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책을 읽기 전 표지와 소개글이 땀흘리는 삶, 최소한의 노동의 의무를 실천 하는 삶을 살려고 했던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상냥하게'보다는 '성실하게'에 가까운 내용처럼 보였다. 1부까지는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2부에 접어들면서 편집자가 원제목 '섬으로 가다', '섬에 살다'를 한권으로 묶으면서 책 제목을 '상냥하게 살기'로 바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섬으로가게 된 취지와 그곳에서 적응하는 정도로 이 책을 귀향 혹은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전부 포괄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낭만적이다. 혹시라도 정치이야기나 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 혹은 고발 등의 내용이 버겁다면 1부까지만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각각 소제목을 달긴 했지만 1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2,3,4부는 자기반성과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시에 살면서 편리한 삶에 물들지 말고 자급자족 하고 생명을 중시하며 먹거리에 신경쓰자고 떠들어봐야 똑같이 혜택을 누리는 까닭에 별 소용이 없다. 글과 아이들에게 전하는 교육을 통해 정신만큼은 다르다는 것을 보이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떠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통수단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불편할 게 뻔한 섬으로 들어간 그는 농사를 시작했다. 섬으로 간다길래 고기와 조개를 캐러가는구나 했는데 의외로 밭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내용이었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콩, 딸기, 아욱, 배추, 당근, 파, 양파 등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데다 닭도 치고 오리도 기른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첫 수박농사에 맛도 빛깔도 좋은 수확물을 거둔 장면에서는 농사에 소질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원하는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전쟁이 나도 1년 정도 걱정없겠다 하는 내용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었는데 그 바로 아래 문장에 나처럼 피식 웃는 사람들에게 경고아닌 경고를 남겨 반성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감히 전쟁을 경험 한, 전쟁을 경험했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손한데 웃음이 난 것은 설마 그럴일이 있겠냐 하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분단국에 살면서, 휴전상태인 나라에 살면서 경솔한 웃음이었다. 저자의 글은 곳곳에 그런 웃음을 밖으로 내보이며 안으로는 반성과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글이었다. 손과 머리위로 오르내릴 만큼 정을 붙인 닭을 잡아먹은 일도 다른 독자들처럼 다른 닭을 먹지 굳이 그 닭을 잡았어야 했을까 못마땅했는데 그 닭 아닌 어떤 닭이든 생명으로 보자면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있겠는가.

 

48쪽

수많은 생명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수많은 이별도 맛보아야 한다.

 

1부는 웃다가도 이내 심각해지는 묘한 풍경을 자아내며 읽었다. 그래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땀흘리는 저자의 모습을 응원하고 내심 부러워하며 읽었다. 바로 2부 부터 시작인데 1부에서도 잠시 그가 교과서 편찬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고 그의 작품 하나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현 일본사회의 부조리와 잘못된 관습 등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시작된다. 초반에 얼마전 읽었던 '나의 조선미술 순례'저자 서경식님의 형제 이야기도 나오는데 누구의 탓이라기 보다는 행동하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내 탓이려니 싶었다. 저자도 어쩌면 그 점이 가장 못마땅한 것일지도 모른다. 잘못되었다고 불평만 할 뿐 나서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심지어 섬까지는 못가더라도 편의를 떠나 진정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교과서문제는 밖에서 볼 때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몰아서 비난했는데 그 안에서도 저자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서글펐다. 교과서 문제가 왜 이권다툼으로 변질되고 있는지 답답하다. 3부에서는 2부에서 강조한 아이들이 미래다라는 점을 제대로 부각시켜준다. 중간 중간 어린이들이 직접 지은 시 작품을 보여주는데 내용이 기가막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아이들만큼 솔직하게 그리고 거리낌없는 문학을 창작할 수 있는 존재는 없어 보인다. 저자의 대표작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 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아이들의 의견이 현 사회에서는 환영받을 수 없다는 점을 애석해한다. 이 책에서 거듭강조하는 자립적인 삶,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삶을 모토로 하기에 아이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소망대로, 만들어놓은 제도아래 쫓아오기에도 버거운 세대들이 지금의 아이들이다. 교과서문제에서도 잠시 나왔던 내용으로 아이들은 그저 부모에게 효도하고 단체생활에서 튀지 않으며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는 그야말로 하나의 부품이나 도구로 성장한다는 내용이 현실이었다.

 

226쪽

가족 붕괴의 원인과 양상은 저마다 다르므로 방관자적인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만 하는 일은 삼가야겠지만, A의 가정처럼 사소한 일상속에서도 아이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있다면 아이들의 불행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마지막 4부는 문학가로서의 저자세계를 보여주며 앞에서 추천하거나 언급했던 작가, 삽화가, 출판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현실과 작품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냈는지 자신의 작품이 쓰여지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말해주는데 마지막 글, 태양의 아이를 집필 한 후에 마사유키와 구니히로에게 쓴 편지는 이 책의 전체를 축소한 느낌이었다. 메멘토모리. 지난 해 읽었던 강상중 교수의 '마음'이라는 책에서의 핵심주제가 메멘토모리였다. 하이타니 겐지로 역시 마지막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 하지만 그 절대적인 죽음에 그저 순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형의 죽음을 통해 사회에게 말하고 싶었던 부분,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가 담겨 있었다.

 

313쪽

마사유키, 그리고 구니히로.

나는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열아홉 살 때 오키나와의 '오'자도 몰랐단다. 젊은이들의 감수성이 언젠가 죄인의 나라 '일본'을 단죄하고, 그리고 부활시키리라고 나는 믿어.

 너희는 태양의 아이니까...... 

 

일본, 그리고 유사한 나라의 문제와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간파했던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이미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가남겨준 보물같은 책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이제 겨우 그의 책 2권(이 책은 한권으로 묶은 것)을 읽었을 뿐이니 참 다행이란 생각한다. 잠깐 잠깐 지나치게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는 듯한 작가로서의 고집도 엿보이지만 바로 그런 고집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며 타인을 설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냥하게 살기. 단순하게 친절한 삶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정도로는 한없이 부족한 상냥함, 그런 삶을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할지 어깨가 은근히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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