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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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지음

 

멸치로 다시를 낸 물을 끓였다. 불린 미역을 볶다 조선간장을 약간 넣고 멸치다시물을 부어 미역국을 끓였다. 시금치나물과 도라지나물을 접시에 담고 어제 새로 담근 김치도 담았다. 선경이 좋아하던 갈치 한 토막을 물에 씻고는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올렸다. 간장에 졸여서 볶은 멸치와 마늘종볶음도 접시에 담았다. 처음으로 선경을 위해 차린 밥상이었다. - 367쪽-


식당사장 장만호. 만호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컨닝으로 고등학교에 입학, 등록금을 달라고 엄마를 졸랐으나 뺨을 맞고 그에 대한 분풀이로 학교도 때려치고 나염공장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이십년 가까이 자신의 꿈이자 희망이 된 황동하를 만나 노동운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식당사장과 노동운동가. 평생 노동운동만 하고 살 줄 알았던 만호도 레미콘에 깔려 1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지면서 과연 노동운동은 커녕 다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함께 활동하던 포카형이 자신이 운영하던 갈비집을 넘기겠다고 제안하면서 식당사장이 될 수 있었다. 집을 뛰쳐나온 뒤 공장가 노동판만 전전하다보니 식당일은 엄두도 못냈는데 막상 따져보니 어린시절 꿩도 잡아다 팔고, 종아리보다 더 두꺼운 칡도 팔아봤고 심지어 중학교 3학년 때는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돈을 받을 정도였으니 아에 장사수완이 없지는 않았다고 자신한다. 그의 호기처럼 공단솣불갈비는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아내이자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선경의 박리다매식 경영전환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마침 늘 자신의 우상이자 꿈이었던 황동하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급기야 아내에 만류에도 동업을 제안해 만동이갈비라는 큰 체인사업까지 벌이며 승승장구 하는 듯 했다. 하지만 황동하는 더이상 그가 생각하는 노동운동을 하고 부조리에 맞서 싸우던 지지않는 별이 아니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아내와 재결합을 하고 무시받던 처가에서 인정받으면서 점점 그는 돈의 노예가 되어간다. 황동하를 본부에 앉혀두고 밖으로 영업을 돌던 만호가 당뇨로 병원에 입원 한 2달 동안 그들의 동업은 산산조각 나고 애써 일군 갈비사업을 홀라당 동하에게 빼앗겨 버린다. 동하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에 불탄 만호는 어머니의 간호로 지쳐버린 선경도, 더이상 아빠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딸 현진을 애써 모른척 하며 오리고기로 새사업을 시작하고 불안했던 주변사람들의 우려대로 사업은 크게 망한다. 그리고 가장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시점, 자살을 하기 위해 대교위를 걷다가 경찰손에 붙들려 식당에 앉아있다. 죽으려는 그에게 경찰은 아무렇지 않게 밥은 점심은 먹었느냐고 묻는다. 어이없어 하면서도 끌려가듯 따라간 식당 풍경을 보며 잊고 있었던 밥, 그 따뜻한 밥 냄새에 다시금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다.


접시에는 큼지막한 무 깍두기가 수북하고 갓 지은 듯한 새하얀 쌀밥 위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중략- 고깃결대로 잘게 찟어서 넣은 양지머리, 큼직하게 잘라 넣은 대파, 토란대, 숙주나물, 고사리가 들어간 육개장 한 그릇. -12쪽-


식당사장 장만호 라는 타이틀만 보면 음식의 맛에 대한 평가나 묘사가 자주 등장할 것 처럼 느껴지겠지만 도드라지게 표현되는 부분은 보통의 작품들보다 적은 편이다. 선경이 다시 그에게로 마음을 열 때, 그가 다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열릴 때 읽는 순간 머릿속에 글자 그대로 떠올릴 수 있게 그런 표현들을 많이 아낀 듯 싶었다. 만호가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때, 초심을 되찾으려 할 때 만나게 되는 도원스님, 경우형의 등장은 밥의 의미와 고마움을 잊고 사는 독자들에게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 밥이란 하늘같아서 혼자만 먹지 말고 나눠먹어야 한다는 부분도 맘에 와닿았다. 불교의 경구가 몇 차례 등장하지만 공단숯불갈비와 이웃하는 자전거 대리점에서 늘상 들리는 찬송가처럼 작가는 종교마저 따뜻한 한 끼의 밥상 처럼 포용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온도, 밥을 먹기에 좋은 온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작가는 말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역시나 김이 나는 밥을 함께 앉아 먹는 것,  가족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모습은 선경이 만호에게 바라던 그 한 가지였다고 느껴졌다. 날이 추워서일까? 느티나무 식당 메뉴판의 적힌 따스한 밥 한 그릇, 따스한 비빔밥 한 그릇, 따스한 국수 한 그릇, 따스한 국밥 한 그릇 이 전부인 그곳에서 한 끼 제대로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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