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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담은 그림 -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놓다
채운 지음 / 청림출판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철학을 담은 그림 - 채운 지음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놓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짐작했던 내용은 학부의 전선 혹은 전필 과목이었다. 제목을 넘어 표지를 찬찬히 훑어보고 푸른 색 물감이 종이에 물드는 바탕을 보고서야 학술적인 의미의 철학이라기 보다 사람의 살아가는 방향, 삶의 지혜라는 의미의 교양과목 같겠구나 깨달았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프롤로그를 읽는데 저자의 느린 호흡덕분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다. 프롤로그 첨언에 적힌 글을 쓰게 된 목적은 '시'자를 가진 가족이 있는 여성들이라면 더욱 이 책을 반기겠거니 싶었다. 흔히 하는 말로 '많이 배운'저자인데도 그런 내색 없이 상처받은 영혼을 이끌어가려는 모습이 시작부터 맘이 놓였다.
목차를 찬찬히 훑어보는데 낯익은 화가들이 많이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 얼마전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윌리엄 터너, 두 말하면 잔소리인 반 고흐 등 낯설은 화가들 속에 반가운 이들이 보여 안심한다. 1장 첫 작품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인데 저자의 설명 없이도 보자마자 한숨이 나온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담긴 작품을 볼 때 느낌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뒷모습까지 매력적인 사람이거나 뒷모습을 통해 느껴지는 좌절과 안타까움. 이 작품은 안타까움이다. 그림의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흑인 인권 운동가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오버랩시키더니 다시 그림 속 크리스티나에게로 돌아온다. 책의 구성은 크게 4부로 나뉘었지만 그림을 대하는 방식과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말들이 이런식으로 이어진다.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와 대상에 얽힌 이야기, 자신이 하고싶었던 내용을 강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한번 더 언급하며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걸어주어야 할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 이끌어주었다. 저자가 소개 해준 작품 중에 와닿았던 몇 가지를 고르면, 움베르트 보초니의 마음의 상태들-걷는 자들 이다. 그림을 보자마자 어지롭고 혼란스러웠다. 강한 붓향에 사라지는 집들의 창문과 문은 절규하는 사람의 표정을 닮아 있었다. 아마 책을 중구난방으로 먹어치우듯 읽는 사람들이라면 이 그림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으리라.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불명증과 소화불량을 달고 살지요.-중략-5분만 눈을 감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번 지켜보세요.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무수한 생각들에 끌려 다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겁니다. - 37쪽-
기도할 때 조차 무수한 잡념들로 피곤 했던 터라 저자의 말에 시도하지 않아도 그게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마음 상태를 이 그림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어지러운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저자는 달마대사 일화를 소개해준다. 생각을 잡지 못해 괴로운 혜가에게 마음을 가져오라는 달마대사. 실체화된 것이 아니기에 가져올 수 없는 마음, 즉 스스로가 키워낸 그 불안한 마음은 자신 밖에 없애지 못한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그림과 달마대사 일화를 얹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저자의 능력이 부러우면서도 정말 고마웠다. 이번에 기억에 남는 그림과 이야기는 르네 마그리트의 자연의 은총 그리고 에드거 루빈의 루빈의 잔, 이렇게 두 작품,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였다. 루빈의 잔은 두 장의 그림이 한 작품으로 왼쪽에는 노란 잔, 반대쪽에는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의 옆얼굴이 보인다. 같은 그림을 시선을 어디에 두고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마그리트의 그림 또한 잎과 새가 이어진 모습에 새인지 식물인지 헷갈린다. 그냥 단순하게 새나무, 잎새 하면 되는 것을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작품 하나는 그저 익숙한, 자신의 편의대로 보는 닫힌 시선을 말해주고 새와 잎의 경우는 우리가 본 적없는 사실, 믿고 싶지 않으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보고들은게 많아질 수록 이런 실수가 줄어들어야 하는 데 무엇을 보았는지에 따라 중심을 잃고마는 나를 발견 한 것 같아 씁쓸했다.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고, 다른 존재가 되면 다르게 보인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세계에 자신의 앎을 그대로 투영해버립니다. - 91쪽-
책을 읽다보면 마음에 남는 작품과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반대로 대면대면 하게 되는 페이지도 있었다. 책이 부족하거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지금 내 마음 상태가 앞으로의 불안과 현재에 불만족하기 보다는 그저 피로하고 방향을 알면서도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떤 때에 노력해도 무언가 이뤄지거나 해놓은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때는 3장이나 4장이 깊게 와닿을 수도 있다고 느낀다. 지금 내 마음상태가 어떤지 궁금하거나 상태는 알겠는데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를 때 이 책을 펼치면, 그림에 그림 하나만 걸어도 분위기가 달라지듯 마음이 정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