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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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겪어본 적이 없고 새벽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면, 어둠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새로운 날의 신비와 색채가 어떻게 찾아오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것이다."

106쪽

 

책을 읽다가 밤을 보내고 새벽을 맞이할 때면 그 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내게 얼마만큼의 감명을 주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벅찬 뿌듯함이 느껴졌다. 지금은 추억속에 사라진 새벽에 아빠와 경쟁하듯 조간신문를 먼저 손에 넣을 때에 기쁨처럼 무언가를 이루지 않은 상태로 새벽을 맞이하는 것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밤을 이겨내고 새로운 날을 맞이했다는 작은 승리감으로 가득했다. 새벽의 인문학은 나처럼 새벽을 뜻을 둔 고대에서 현재까지, 전세계를 아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덕분에 새벽을 의미하는 다양한 언어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전기로 불을 밝히기 전에 어둠은 공포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였을까. 사물을 알아보고 나와 타인을 인지할 수 있는 동이터오르는 시간은 감사와 환희가 충만한 때이다. 짐작에는 새벽에 기도를 올리고 몸을 청결하게 하는 풍습이나 종교적 관습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이 부분은 중간 즘 되서야 등장한다. 이슬람 문화부터 가까운 나라 일본, 멀리갈 것 없이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새벽 기도' 모두 새벽에 이루어진다. 물론 새벽이 긍정적이고 호감을 갖는 시간만을 뜻하진 않는다. 새벽은 엄연히 따져보면 아침과는 다르다. 해를 우상시하고 그 영향력 아래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해가 떠오르기 직전 미명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저자는 밤을 견디고 일어나는 과정을 죽음을 견뎌내는 과정이라고 묘사했다.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매일 밤 죽음과 싸우고 그 죽음을 이겨내는 것이다.

 

'우리들 중에도 자면서 죽음을 맞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하루가 열리는 대신 모든 날이 닫히는 것이다. 왜 새벽은 이토록 위험할까?' 134쪽

 

의학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잠자는 동안 혈관의 탄력성이 낮아지고 아침에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는 잠자던 감각을 일으킬 만한 강한 충격이 필요한 데 몸이 허약하거나 당뇨병 환자에게는 어려운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먹는다는 말의 근거를 알려준다. 새벽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잠자는 과정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과정이라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잠에서 덜깬 벌레가 잡아먹히기 쉽다는 것이다. 전시중에 새벽에 급습하는 것도 이와 같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이렇게 사계속에 녹여진 새벽을 묘사한다. 그 계절 사이사이 모네의 그림과 화풍이 등장하고 저자 개인적인 이야기도 떠다닌다. 그 중 새벽과 가장 닮아있는 계절이 내게 있어선 '겨울'이다.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 음습한 향과 주변은 겨울의 숲의 정경과 유사하다. 마치 해가 떠오르는 때가 봄과 같다. 역자는 이 책을 처음 옮겼을 때 보다 출판 직전 검토하기 위해 읽었을 때 훨씬 더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었을 때 나또한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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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 어느 영화 소년의 80년대 중국영화 회고론 아시아 총서 14
류원빙 지음, 홍지영 옮김 / 산지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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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를 통해 이 책을 접했을 때 부제 '어느 영화 소년의 80년대 중국영화 회고론'를 보고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홍콩영화 배우와 작품 감상평이 실렸겠구나 싶어 신났었다. 막상 책을 펼쳐두고 저자와 역자 그리고 추천서를 읽으면서 가벼운 책이 아님을 직감했다.

영화 작품을 영화관 안에서의 일시적인 소비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정치, 사회와 폭넓은 결합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자 하는 구상이다. -서장 35쪽-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학문으로 영화를 접하고 교직에 이른 곳이 일본인 만큼 이 책은 일본어로 출판되었다. 학부시절 만남이 있었던건지 확실치는 않지만 역자 또한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공부했다고 할 만큼 원저자와 역자는 묘한 공통점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내용과 구성도 알차지만 국내 독자가 편하게 읽고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각주를 곳곳에 달아놓은 것은 꼭 칭찬하고 싶었다. 본문으로 돌아가 이 책은 영화를 통해 본 중국 현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문에도 나와있듯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톈안먼(천안문)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 영화의 황금기였다. 비슷한 시기의 일본도, 한국도 어느정도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긴 했으나 분명 이전 시대와 비교했을 때 자유로운 시대였다. 저자는 80년대 전후의 중국 영화의 배경과 당시 상황 그리고 우리나라 독자 뿐 아니라 중국의 인민들조차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검열 등의 이야기를 총 6기로 나뉘어 분석해놓았다. 저자와 추천인이 백미라 했던 4장, 여배우 류샤오칭과 조안 첸을 중심으로 서평을 적는다. 류샤오칭의 연기를 접한 작품은 아쉽게도 영화는 아니고 드라마 '측천무후'였다. 왕위를 위해 자식마저 버렸던 독하고 무서운 여왕 측천무후. 류샤오칭 자체가 그녀의 삶과 비슷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51년생으로 환갑을 넘은 나이지만 재기 당시 전신성형을 한 것처럼 주름하나 안보였던 그녀의 데뷔는 보통의 중국 여배우와 다르지 않았다. 강인한 여성상을 대변하기 위해 피부를 태우고 등장했을 만큼 선전물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고 지금처럼 언론을 좌지우지 하는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 문화혁명이 종료되고 사유재산이 허가되자 엄청난 부를 쌓았고 결국 탈세혐의로 투옥되기 까지 한다. 류샤오칭의 인생은 중국 경제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모습을 가졌다. 반면 조안 첸은 서구 사회를 동경했던 당시 인민들의 모습을 닮았다. 도미한 후 중국에서의 풍족했던 생활과는 달리 돈이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본주의의 실상을 뼈저리게 느끼고 헐리웃이 원하는 여성상으로 재탄생 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혹평을 받았지만 마지막 황제로 수상소감을 통해 유창한 영어실력을 뽐내자 호평으로 바뀌는 등 외부에서 활동하는 여배우의 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80년대의 중국 사회가 위의 언급한 두 여배우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화잡지가 활성화 될 초기에는 표지에 그저 얼굴만 실렸던 것이 영화에서조차 더이상 검열이 무색해질 정도로 노출이 심해지고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얼굴에서 바디로, 수영복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톈안먼 사태로 잠시 주춤하게 되면서 만개했던 두 여배우는 진로를 달리하게 된다. 현재 류샤오칭은 중국 드라마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배우가 되었고, 조안 첸은 중국의 역사드라마보다는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나 중국 사회의 모순과 객관적 입장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류샤오칭 편에서 궁리와 비교하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그녀가 국제적인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제대로 본 것이었다. 현재 그녀 또한 조안 첸 처럼 중국인들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과감하게 일본 게이샤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갖춰가면서 최근에는 다시 장이머우의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책의 내용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영화를 통해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이해가 쉽고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 뿐 아니라 중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 모두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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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2 - 영국 감성 매거진 시리얼 CEREAL 2
시리얼 매거진 엮음, 김미란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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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EAL 시리얼 vol.2 후추, 베를린 그리고 한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읽는 책, 시리얼 그 두번째 이야기.

여행지는 베를린, 음식문화는 후추와 소금 등 염화나트륨 성분과 이를 이용한 '절임'음식을 소개했고 한국 독자들이 반길만한 한글과 한국 음식 정보가 실려있다. 독일의 국민 간식 커리부르스트. 감자스넥을 좋아하는 편이라 붉은 케첩이 올려진 감자와 소시지튀김을 보고 침이 고였다. 독일하면 역시나 소시지를 빼놓을 수 없는데 커리부르스트는 과거 손에 들고 편하게 먹는 저렴한 간식에서 현재는 레스토랑 및 모스크바 리츠칼튼 호텔의 정식 메뉴가 될 정도로 인기있다. 심지어 베를린에 커리부르스트 박물관까지 있다하니 나중에 베를린에 가면 겸사겸사 맛도 보고 박물관도 들려 식도랑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리얼을 통해 처음 본 R.S.V.P. 문구 애호가들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서촌이나 가로수길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갤러리 분위기의 문구점이다. 아날로그 감성과 직접 꾸미기르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방문시 빈손으로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 디자이너 스스로 어릴 적 뮌헨의 문구점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성을 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하는 베를린 바우하우스 역사와 미래가 간결하게 실려있다. 두번째 파트는 소금과 후추 이야기. 후추를 좋아해서 거의 모든 요리에 곁들이는 데 스프나 국물요리는 물론 탕과 조림요리는 물론 면요리에도 꼭 후추향을 첨가한다.  시리얼에서는 후추와 소금이 정말 잘 맞는 짝꿍이라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먹방 그리고 요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쉐프들도 후추와 소금을 많이는 아니지만 소량으로 풍미를 더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소금은 나트륨 성분으로 많이 섭취하면 좋지 않아 나트륨을 거의 먹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둘의 역사를 귓뜸해준다. 


소금은 어디에나 있다. 땅 속, 바다 속 그리고 우리의 눈물 속에도 있다. 구름이 만들어지려면 소금이 필요하고, 소금이 있어야 우리의 뇌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37쪽


인체에 그리고 지구에 꼭 필요한 소금을 과하게 섭취하는 것을 자제하고 '간'이 안맞을 경우에는 간장을 이용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된다고 시리얼은 말한다. 이번 호 포토에세이는 앞서 언급한 소금을 이용한 '절임'이다. 절임하면 한국이나 일본 독자들은 장아찌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데 유럽은 육류와 어패류를 먼저 떠올리는지 관련된 사진이 가장 맨 앞에 놓였다. 라임, 레몬 그리고 바나나위에 소금을 뿌려놓은 사진도 있는 데 실제 이렇게 먹는지는 알길이 없다. 소금하면 떠오르는 '죽염'에 관한 기사도 나오는데 맨 첫페이지에 아무리 좋은 죽염이라도 판다에게는 먹여선 안된다고 나온다. 이런 예상 못한 위트라니 시리얼 답다.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저서 [세계의 문자체계]에서 한글을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지적 산물 중 하나"라고 했다. 86쪽


이번호가 어느 때 보다 더 소장가치가 있는 이유는 서울과 한글 관련 컨텐츠가 많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바라보는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어떤 이미지 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한글을 해외 잡지에서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서체가 곱고 예쁘다. 레터링 할 때 영어 필기체가 아름다워 보이는 듯 싶지만 이렇게 바라본 한글은 그자체로 브랜드 로고가 되어도 충분하다. 맛깔나는 고추장 사진도 맘에 들고 고추장이 얹혀진 비빔밥 한그릇도 보는 순간 허기가 일 정도로 생생하다. 시리얼의 강점은 눈으로 본 이미지가 그대로 감성으로 전달된다는 점일 것이다. 제호를 거듭할 수록 자기색깔을 유지하며 설레임까지 끌어안은 시리얼,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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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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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가장 사소한 구원.

얼마전 읽었던 책에서 프랑스 여인들은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자신의 단점 혹은 힘겨웠던 과거이야기를 남에게 털어놓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외에 타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정확하게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30여년을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누가 더 힘들었는지, 난관을 극복했는지 자랑하듯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몇년 전 인기있던 모 프로는 연예인들이 나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일이나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가족사 등을 고백해서 가장 처절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준 사람을 승자로 꼽아 시상했을 정도니 나의 판단이 아에 무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서로 잘났다고 우기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서로 경쟁하듯 자신의 과거사가 더 비참하고 힘겨웠다고 말하는 것도 가히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의 군대 축구 얘기를 그닥 반기지 않는 여자들의 심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산다는 것은 힘든 고행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나뉘는데 가장 사소한 구원에서 라종일 교수가 현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맥락이 바로 그것이었다.

 

무슨일이 있었고, 어떤 고통으로 30대 청춘이 노교수에게 신세한탄을 하며 '구원'을 요청했는지 본인의 의사를 떠나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글을 써서 푼돈이라도 벌고 싶은 이들에게는 잘안팔리고, 보잘것 없는 비정규직원 이라 한탄하는 현진씨가 그저 부러울 수 밖에 없는 입장이며 그녀가 체감하는 것처럼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서른이 되기 전 결혼해서 아이와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괜찮은 상황은 아니니 말이다. 그렇기에 현진의 말처럼 내가 그 사람이 되어 노교수에게 편지를 받는다고 상상하며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고 나역시 그런 생각을 유지하고 읽었다. 그리고 나름의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정치나 사회제도만 봐도 내가 현재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 좋은 제도나 혜택보다 불합리한 상황과 모순된 모습만 보인다. 직접적으로 상처를 받는일도 있고 살다보니 도저히 용서안되고 그로인해 내 자신이 너무 밉고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서른 넘은 이나이에 없다면 복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용서해야지 하면서도 안되고, 현진 처럼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었다. 노교수의 말처럼 언제나 피해자는 나고, 가해자는 상대방이라는 공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해자가 피해자로 보일 수 있고, 그 반대의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말이 쉽지 결코 네 이웃을 내몸 처럼 생각할 수 없기에 스스로 감옥을 만든다. 다행히 더이상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그 안에 갇혀 피눈물 흘리는 시기는 벗어났지만 아직 그 안에서 허덕이는 사람이라면, 진짜 사소한 구원이라도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이 큰힘이 되어줄 것 같다. 도움 받았던 구절을 소개하는 게 이 책의 내용을 파헤치고 요약하는 편보다 나을 것 같다.

 

한마디로 저는 환경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79쪽

특히 세 가지 문제에 관해 자기를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기억나요. 스스로 건강하다는 자랑, 자기 머리가 좋고 박식하다는 자랑, 자신이 도덕적이라는 자랑. 115쪽

문제는 세상의 거의 모든 일에도 그러하겠지만 상처 자체가 아니라 그 상처에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171쪽

 

산다는 게 어렵고 힘들며 종종 큰 상처도 받는다. 그게 당연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무너져서는 안된다고 노교수는 말한다. 설사 그런 고통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겨내고 마음을 고쳐먹으면 된다. 힘든 삶이라고 떠벌리고 그것을 무기삼아 사는 것은 '안타까운'인생일 뿐이다. 노교수가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세가지 말이 있는데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혹은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리고 당장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와닿지 않을 거라는 염려였다. 들리지 않는게 아니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책을 찾은 들 다 의미 없다. 현진 처럼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싶다고 믿을 때, 그래서 한 자 한 자 연애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내려가는 노력을 할 수 있을 때 이런 책들이 좋은 책으로 다가올것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전혀 도움이 안되었다면 책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니라 직접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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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서재 -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
장샤오위안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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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쁨을 주는 책. 고양이의 서재.


인터넷 필명은 제다 고양이로 하면서 정작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저자 장샤오위안.

마흔이 되면 고양이를 꼭 길러보겠다며 진즉에 이름까지 지어놓고도 이젠 그 소망마저 사그라들었다는 글의 첫 시작부터 맘에 와닿는다.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자신들이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묻혀져있던 작품을 알려주는 서평집도 좋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책바라기의 글도 참 좋았다. 위에 적은 것처럼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가 아쉬웠을 정도.


글자크기도 크고 판형자체도 크지 않아 완독이 목적이라면 2시간 이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지만 그 어떤 책보다 오랜시간 붙들고 있었다. 더 읽고 싶지만 참아낸 적도 있고 도록을 모은다거나 취향이 같은 동료를 두었다는 내용을 볼 때면 부러움에 책장 넘기는 손이 떨려왔다. 얼마전 읽었던 책 독학에서 책 살돈이 아까울 정도로 빚을 지거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면 잘못된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했을 때 반신반의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유럽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도록 한권 사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국내에서 전시중인 전시회에 방문했을 때도 기념품에 목메곤 했는데 작품 하나하나 코멘트가 달린 도록을 사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문화혁명 당시 청소년기를 맞아 외적인 단절로 오히려 책 읽는 것에 대한 절절함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을 양가에서 반대하는 커플일 수록 애정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연유는 맞벌이 하는 부모님께 좋은 성적은 못보여 드려도 적어도 생각 할 줄 아는 아이, 밖에서 겉돌지 않고 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책임감 있는 아이로 보여지는 게 좋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골라서 사놓은 책을 읽었고 그 책을 다 읽은 후에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는 몇 안되는 아이 중에 하나가 되었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되면서 가장 기뻤던 것도 읽고 싶은 책을 망설임없이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였다. 그런 면면이 저자와 혹은 이 책을 만족스럽게 읽을 독자들과 비슷할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까지 떠올리며 기뻐하게 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자들이 옷을 쇼핑하는 게 내가 책을 사러 서점을 다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81쪽


또래의 여자들에 비해, 멀리 갈 것 없이 두살 위 언니의 옷장만 열어도 나보다 족히 서너배는 넘는 옷이 있는 걸 봐도 확실히 옷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게 맞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거나 예뻐 보이고 싶은 애인이 없었더라면 단벌이어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이런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역시나 부러운 게 많은 저자다. 과학전문서적을 출간 할 만큼 문과 이과를 가리지 않는 그의 영역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다수가 부러워 하는 부분이다. 장하석 교수의 신간을 접할 때 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과학서를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다. 에세이 쓰기가 일반화된 미국이나 유럽사회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런 경향이 많아 그쪽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이점 덕분일 것이다.


서평을 쓸 때 서평가가 자기 돈을 주고 해당 책을 사야 그 서평이 독립적이고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출판사에서 증정하는 책으로 추천의 글을 쓰거나 평론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도 한다. 이 생각은 유치하다. 136쪽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출판사나 이벤트로 도서를 받는 사람들은 무조건 호평을 남긴다거나 제대로 읽지 않고 서평을 쓸 것이다, 받기만 하고 정작 책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내 경우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애당초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받지 않는다. 앞서 예로 들었던 옷으로 보자면 아무리 옷을 좋아한다고 자기 스타일이 아닌 옷을 넙죽 받아오는 여자는 거의 없다. 선물받은 옷이 맘에 안들면 그만큼 피곤하고 안타까운 일이 없는 것처럼 책도 그렇다. 아무리 공짜라도 애초에 읽고 싶었던 책이 아니라면 욕심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읽고서 정말 맘에 들면 책을 보내준 출판사에 대한 고마움과 좋은 책을 다른 사람들도 사볼 수 있도록 서평쓸 때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맘에 든 책이라면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지난 달 새집으로 이사오면서 그토록 그리던 작지만 알찬 나만의 서재가 생겼다. 그 기쁨을 블로그에도 남겼을 만큼 그 기쁨이 새록새록 돋아나 이 책을 읽는 시간 내내 행복했던 것 같다. 서재가 없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꿈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서재를 원하는가?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읽고 또 읽고 싶은 책들로 가득한 서재에 이 책 만큼은 꽂아두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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