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질 수 없어] 리뷰

떨어질 수 없어 ㅣ 철학하는 아이 11
마르 파봉 지음, 마리아 지롱 그림, 고양이수염 옮김, 유지현 해설 / 이마주 / 2018년 11월

(스포일러 있음) 


이 짧지만 멋진 동화 <떨어질 수 없어>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물건에서 시작해 우리의 사유를 더 넓고 추상적인 것으로 옮겨가게 한다.  

한 아이의 신발 두 짝은 한 쌍으로 태어났다. 그 두 짝의 신발은 둘이 모여서야 비로소 한 켤레가 되며, 완전해지고 쓸모가 생긴다. 신발을 선물받은 아이 또한 그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신발을 좋아하고 즐겨 신고 다닌다.  

그러다 아이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게 된다. 잃어버린 신발은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한 짝의 신발은 쓸모가 없어진다. 신발이란 본디 한 쌍이어야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신발은 버려진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소녀 또한 살고 있다. 그 소녀에게는 한 짝의 신발만으로도 온전한 신발이 될 수 있다. 버려진 신발은 그 소녀에게로 가고, 한 짝만으로도 가치를 가지게 된다. 생각의 전환이다. 



아름답고 멋진 그림체로 이러한 우화를 쓴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멋졌다. 그리고 그러한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통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 것 또한 좋았다. 아이들이 읽기에도, 어른이 읽기에도 충분히 훌륭한 동화였다.

[리뷰]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정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무엇인가? 

길에서 싸움을 목격했다. 한 사람이 두드려 맞고 있는 것을 봤는데, 맞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정의일까? 일차원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맞는 사람이 때리는 사람의 전 재산을 훔쳐서 달아나다 걸린 것이라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보자. 그들은 각자가 믿는 이념을 정의라고 생각한다. 둘 중 누구도 자신이 틀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사람들이 의심없이 믿고 있는 정의가 진짜 올바른 정의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묻는 책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정의라고 믿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사람의 행동은 당위성을 갖는다. 믿음이 확고할수록 그 당위성은 더욱 명백해지며, 그는 자신의 행동을 더욱 정의라고 생각하게 된다. 악순환인 거다. 이렇게 (자신의)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이 위험한 이유에 대해 이 책은 분석적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너무도 명백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일수록 우리는 한번 더 의심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당위성을 갖는지, 아니면 나 스스로가 그것에 당위성이 있다고 믿는지를.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믿고 있는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지를 던지는 책이다.

[100세 수업] 리뷰

100세 수업 - EBS 다큐프라임 특별기획, 우리 미래가 여기에 있다
EBS <100세 쇼크> 제작팀 지음, 김지승 글, EBS 미디어 / 윌북 / 2018년 11월

<100세 수업>은 1년 전쯤 방영되었던 EBS의 다큐멘터리 [100세 쇼크]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다큐 [100세 쇼크]를 보지는 못했지만 방영 시 나름대로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이 다큐는 100세에 가까운 초고령 노인과 그들을 케어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사실 그러한 것들은 일반 시민들의 관심사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사실 우리도 자연스레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게 될 텐데, 어쩐지 나이듦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마 다큐를 본 사람들은 책의 내용이 아주 익숙할 것이다. 다큐에서 다루는 것들 중 주요할만한 것들을 꼽아서 글로 재구성했기 때문에 책은 다큐보다는 볼륨이 작다. 분량도 200여 페이지 정도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다큐를 봤다면 굳이 책까지는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물론 책으로 봐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없진 않다. 매체가 갖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책'의 질감을 좋아한다면 책으로 보는 것이 좋다. 더불어 작가의 말도 정말 감명 깊고.) 

이 책은 실제 초고령 노인의 삶(최소 80이상, 보통 90~100세)들 들여다본 후, 그 노인의 삶에서 보여지는 우리 사회의 노인들의 모습 전반을 훑어본다. 실제 삶을 통해 들여다보기 때문에 정말 깊이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이 다루는 것들은 노인을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 부족일 수도 있고,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일수도 있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란 무엇인가 알아보는 태도일 수도 있다. 나이를 들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많았다.  


사실 나도 33살로 아직 한창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나이듦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왜냐면 당연하겠지만... 젊을 때는 늙을 것을 모르고 살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노후 자금 준비를 해야지, 정도는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그런 수준의 문제만은 아니다.  

실제 나이를 먹고 몸이 불편해진다면, 퇴직을 해서 먹고 살 만은 한데 할 일이 없어 적적하다면, 평생 동반자인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면, 등등 실제 나이듦은 막연한 생각만으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 문제를 실제 노인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니 신뢰가 가고 사유도 진지해진다. 이 책의 백미격인 '작가의 말'을 통해 들어보면, 그런 노인들을 섭외하는 것 부터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담기까지가(카메라 앞에서는 아무래도 부담되니) 정말 인내심 싸움이었다고 한다. 이 다큐는 오직 제작진의 인내심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실제 책을 보면 그런 생생한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박수를 받을 만한 작업이다.

더불어 나이듦, 그리고 죽음 따위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니 한동안 둔탁한 우울감이 들었다. 책 자체가 무겁거나 어려운 것은 아닌데, 다루는 소재 그리고 풀어가는 방식이 무척 생생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 그리고 중년의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며, 책을 읽을 시간이 마땅치 않다면 다큐라도 꼭 봤음 좋겠다.

[비행기, 하마터면 그냥 탈 뻔했어] 리뷰

비행기, 하마터면 그냥 탈 뻔했어 - 기내식에 만족하지 않는 지적 여행자를 위한 비행기와 공항 메커니즘 해설 교과서 ㅣ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아라완 위파 지음, 전종훈 옮김, 최성수 감수 / 보누스 / 2018년 11월

<비행기, 하마터면 그냥 탈 뻔했어>는 출판사 '보누스'의 '교과서' 시리즈이다. 전형적인 보누스의 교과서 시리즈대로 작명하자면 <비행기 구조 교과서>정도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제목대로라면 이 책이 담고 있는 요소들은 뻔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비행기가 가진 여러 구조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식을 주는 책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일을 겪은 뒤로, 비행기 공포증이 생겼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가진 두려움의 정체는, 무겁디 무거운 쇳덩이가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를 못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행기가 어떠한 원리로 뜨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되면 그 공포를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비행기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조종사와 승무원이 하는 일부터, 실제 비행기를 탔을 때 꿀팁이 되는 얘기들(화장실을 언제 가는 것이 좋은지, 특별한 기내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까지 말이다. 물론 비행기가 어떠한 과학적인 원리로 뜨고 내리는지, 비행기 사고는 어떤 원인으로 생기게 되는지 등등 말이다.  

비행기라는 것이 개발되고, 또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 발전하고 보편화되면서 우리는 조금 더 쉽게 외국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는 그 자체가 무척 비싸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운행되어야 한다. 그 동시에 한 번의 사고가 모든 승객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해야만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비행기 운항 분야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책 자체도 좋지만, 해외 저자의(항공기 장비 전문가) 책이라는 것에 다소 불안함(우리 사정과 다르면 어쩌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독자들을 위해 항공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다는 점도 이 책이 가진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감수를 한 최성수 님의 엄청난 약력에 책에 대한 신뢰가 한 번 더 올라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행기라는 분야에 대해 짧지만 빠르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멋진 책이었다.

[어떤 범생이가] 리뷰

어떤 범생이가 ㅣ 시공 청소년 문학
이상권 지음 / 시공사 / 2018년 11월

청소년 문학을 주로 써 왔다는 이상권 작가의 <어떤 범생이가>는 무척 짧은 소설이다. 대략 100페이지가 약간 넘는 분량인데, 그만큼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내용이 적은 것은 아니다. 

어떤 소설은 분량은 많으나 그 대부분을 묘사에 할애하여 읽고 나면 읽은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이 책은 반대로 분량은 적은데 그 안에 여러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다 읽고 나면 무언가 내 안이 여러 감정들로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


주인공 도선비는 중학생이며, 제목처럼 '범생이'다. 가난하고 사연 많은 가정 환경 상 선비는 남들보다 빠르게 철이 들어야만 했다. 선비는 엄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하며,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떼쓴 적이 없다. 머리가 좋고 여러 일들에 재능은 많지만 가난 때문에 그것들을 본격적으로 배울 수는 없었다. 선비는 무언가에 대해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만 했다.

선비에겐 두 명의 형제, 용비(형)와 솔비(누나)가 있지만 그 두 사람도 선비의 인생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아니, 도움보다는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용비는 늘 선비가 몰래 모아둔 돈을 훔쳐가고, 솔비는 피해를 주진 않지만 어쩐지 외계인보다 더 멀게만 느껴진다. 

선비는 친구도 하나 없으며, 그나마 친구라고 처음 느낄 만한 존재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다. 선비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사실 다소 작위적인 부분(요즘 애들이 쓰는 말을 쓰려고 한다는 점 등)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긴 했지만, 이 소설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은 '정말 좋다'는 것이었다. 분량은 적지만 읽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두근 거리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어려움을 겪었던 청소년기 ~ 성인 초기의 마음도 많이 생각났고. 

정확한 감정이나 상황의 서술보다는 여러 상황을 간단히 보여주며 그 행간 사이에 작가가 생략한 말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여운이 꽤 오래 가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