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김예지 지음 / 성안당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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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코피루왁) 작가의 독립출판물 <저 청소일 하는데요> 를 재미있게 읽은 뒤, 메이저 출판에서 출간된 동명의 도서도 구매해 읽게 되었다. (작년) 하지만 아쉬움이 있었는데, 독립출판물 시절에 있던 재기발랄한 감성은 없어졌고 어설픈 힐링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청소일을 하며 낮아진 자존감이 책이 듬뿍 묻어 났다는 점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으로 예를 들자면, 스케치에서 선을 따다보면 스케치 특유의 러프한 맛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쉽게 잊었다.

그러다 이번에 출간된 김예지 작가의 신작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를 읽게 됐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 청소일 하는데요> 의 독립출판과 메이저 출판 사이에 생긴 간극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김예지 작가는 그 책을 쓰는 동안, 아니 그의 삶의 대부분의 순간에 불안 장애를 겪어 오고 있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도 김예지 작가의 삶의 일부였고, 그랬기에 그 안에 불안 장애의 편린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책은 시리즈도 아니고, 이어지는 책도 아니고, 심지어 출판사도 다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는 제목처럼 밝지 않은 내용의 책이다. 작가는 일생의 대부분을 '사회 불안 장애'라는 병을 가지고 살아 갔음에도, 그 자신이 그러한 병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왜 자신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려워하고, 힘들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함에도 증상과 고통은 지속되었고,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작가를 더욱 힘들게 했다.

여러 차례 정신과 진료 및 상담 치료를 병행하였는데, 효과를 볼 때도 있었지만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작가는 '다행히도 죽지 않았'고 그 과정속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한다. 그 안에 <저 청소일 하는데요>로 받은 주목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전작에서 느꼈던 아쉬운 감정들의 정체는 결국 '작가의 진솔함의 부재' 였던 것 같다.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회 불안 장애를 빼놓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반면 이번 작품은 전작과 달리 자기 자신에게 아주 솔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분명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 텐데, 만화라는 매체를 활용하여 독자들에게도 받아들이기 편하게 전달하는 솜씨가 아주 좋았다.

전작을 읽은 사람에게는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고 (사실상 전작에서 비어 있던 구멍을 메우는 퍼즐 같은 책이라고 생각), 전작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이 자체로도 훌륭한 완결성이 있기에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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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다스슝 지음, 오하나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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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계의 도서 출간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주로 출간되는 도서들이 깊이 있고, 무겁고, 진지하고, 보편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면, 최근에는 읽기 편하고, 가볍고, 특수성 있는 내용들이 주류로 변하고 있다. 독립출판이야말로 이러한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최근 기성 출판도 독립출판의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는 저자가 외국인(대만)이지만, 그 내용을 따져보면 최근 트렌드와 딱 부합한다. 글은 가볍고 에피소드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 편하다. 더불어 저자가 전문 작가도 아니며, 담고 있는 소재도 '장례식장에서 일을 하는 개인' 이다. 독립서점에서 만나게 된다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대만에서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오른 책이라고 하는데, 아마 책에서 담고 있는 내용들이 일반인들도 충분히 쉽게 공감을 할 만한 내용이라 그런 듯 싶다. 장례식장이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장소, 호기심이 있으나 호기심을 표하면 안되는 장소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일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들을 가볍게 전달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든 충분히 어필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은 떼어놓을 수 없는 친숙한 사이니만큼 이러한 소재의 책은 누구에게나 충분히 어필할 만한 재미있는 소재였으며, 깊이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사실만큼은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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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사람 친구 - 레즈비언 생애기록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2
박김수진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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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동성애자인 친구가 있다. 소수자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는 편이었기 때문에 SNS로 커밍아웃을 한 친구를 보면서도 딱히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총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것 자체에 터부가 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힌" 동성애자를 만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친구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힌 순간 내게 든 감정은 '호기심' 이었다. 다른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특성 하나 때문에 타인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행동은 분명 저열한 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호기심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한 저열한 호기심이지지만, 그 감정을 충족하기 위한 좋은 책이 나왔다고 하여 읽어보았다. 제목은 <여자사람친구>이다. 저자 박김수진은 2003년부터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라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해왔다고 한다. 이 블로그의 주요 목적은 동성애자(레즈비언)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글로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 중 10명을 추려 이 책 <여자사람친구>를 만들었다.

이 책에서 인터뷰를 한 10명의 레즈비언들은 1950년대생부터 1990년대생까지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다. 나이뿐아니라 하는 일과 겪은 환경 등 까지도 말이다. 물론 단 10명의 사람이 레즈비언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객관적 (으로 보이는) 연구 결과의 데이터는 결국 주관적인 사례들의 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10명의 사례를 통해 각각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 책은 나와 같은 단순하고 당당할 것 없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부터, 실제 성소수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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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선비와 팥쇠 - 서울빵집들
나인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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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및 독립매체의 발달로 개인적인 기록이 갖는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사실 대형 블로거의 글 하나가 마이너 언론사의 기사 하나보다 낫지 않은 면이 하나도 없는 시대다. 단순히 확산력뿐만 아니라 정보의 질 자체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인터넷 속 수많은 바이럴이 갖는 힘도 점점 커진다. "꼭 가봐야 하는 어떤 곳"에 대한 콘텐츠는 차고 넘치며, 그 콘텐츠의 소스가 되는 곳들은 위치와 상관 없이 널리 퍼진다. 오히려 멀고 숨겨져 있을수록 그것들이 갖는 가치는 더 빛나는 듯하니, 현상 자체가 무척 재미있다.

<빵선비와 팥쇠: 서울빵집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서울의 유명하며, 잘 알려진 빵집을 소개하는 책이다. 하지만 그 형식이 단순 나열이 아닌, 만화를 통한 소소한 재미를 추가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단순히 서울의 유명한 빵집을 소개하고, 그 맛에 대한 리뷰를 했다면 이 책은 특별하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수많은 사진을 가진 블로거들의 정보력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빵에 '이야기'를 첨가한다. 조선시대에 빵을 처음으로 맛본 선비가 현대로 타임워프하여 '빵선비'가 된다는 설정은, 글로 써놓고 보면 뭔가 이상하지만 만화로 보면 즐거운 명랑만화가 된다. 소소한 유머가 곁들어진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크루아상부터 수플레까지 다양한 형태의 빵 그리고 그 빵을 파는 서울의 맛집들을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빵을 무척 좋아해 이 책에서 소개한 곳들 중 몇몇을 가보았다. 특히 스콘을 파는 스코프는 개인적으로도 몇 년째 정기적으로 방문할 정도로 좋아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들을 귀엽고 재미난 캐릭터들이 소개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엽고 매력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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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색다른 42일간의 미국 횡단기 - 아메리칸인디언을 찾아서
이재호 지음 / 책과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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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을쯤 미국 여행을 준비 중이었다. 동에서 서, 혹은 서에서 동으로의 횡단 여행을 계획 중이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그 계획은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그래서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이 책, <조금 색다른 42일간의 미국 횡단기>를 읽게 되었다. 처음 정보 없이 제목만으로 이 책을 봤을 때는 단순한 미국 횡단 여행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가지 못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서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이 그렇게 단순한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재호 작가는 42일간 미국을 "2번"이나 횡단을 한다. 서에서 동으로 한 번 갔다가 다시 동에서 서로. 더불어 그의 여행의 테마는 단순히 미국이라는 나라를 감상하기 위함이 아닌, "아메리카 원주민(속칭 인디언)"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작가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식했던 것은 어려서 봤던 TV 명화 속 '인디언'의 모습부터다. 다들 잘 알다시피 우리의 인식 속 "인디언" 이라 함은 백인들과 싸우는 악의 세력, 머리에 깃털을 달고 맨몸에 가죽 조끼를 입은 모습 등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이미지이며, 실제 그들은 유럽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피해자라는 게 맞을 것이다. 작가가 이것을 깨달은 것은 뉴멕시코주에 여행을 하면서였다고 한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역사와 생활 방식을 보면서 새삼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들의 현재의 모습을 따라가는 여행을 꿈꾼다. 그리고 이렇게 42일간이나 여행을 하며 기록을 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산출해냈다. (여행기라는 것은 개인적 기록이지만, 이쯤되면 그 개인적 기록은 위대함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는 듯하다.)

하루마다 1개의 챕터로 총 42일간의 일정을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가진 역사적 지식과 직접 겪은 일들을 재미있게 간접경험할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딱 어울리는 "종이 여행" 이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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