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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 동안의 남미 - 열정에 중독된 427일 동안의 남미 방랑기 시즌 one
박민우 지음 / 플럼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지하철을 타러갔다가 간발의 차로 전철을 한 대 놓치고 말았다. 아쉬운 맘을 달래고자 지하철 매점에 들러 초코우유를 고르는데, 웬 처자가 들어와서 따뜻한 커피를 고른다. 뒷모습이 익숙해서 슬쩍 얼굴을 훔쳐보니, 웬걸 친구였다. 날잡고 1년에 한번 보기도 힘든 얼굴을 그렇게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무척 신기하고 반가웠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오며 가며 한번 마주치기가 그렇게 힘들더니만..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다면 못 만났을 터였다. 그렇게 해서 그날 전철을 놓친 일은 아쉬운 일에서 행운으로 바뀌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철을 탔고, 운좋게 두 자리가 비어서 함께 앉았다. 내가 먼저 친구에게 "난 요즘 이 책 읽어." 하면서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를 꺼내 보여주었다. 나로써는 좋은 책을 친구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맘이었는데 표지를 보자마자 친구는 내게 "응 나도 이 책 알아. 요즘에 이 책 정말 많이들 읽더라." 하는 거였다. 어라? 이 책은 작년에 나온 책이고, (내 주관으로는) 그닥 베스트셀러도 아니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요사이 새로 나온 2권을 말하는 모양이라고 둘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선뜻 내놓고 자랑할 만치 이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다. 다른 어떤 요소를 배재하고 이 책은 그저 재미있다! 정말 읽으면서 내내 유쾌한 기분이 드는 책을 읽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꽤 두꺼운 분량인데도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못내 아쉬웠을 만큼 난 이책을 그토록 재미나게 보았다. 국문과를 졸업한 뒤, 오랜기간 잡지사에서 일한 저자는 어느날 문득 통장을 탈탈 털어서 남미로 여행을 떠난다. 돈이 넉넉치 않았기에 숙소는 항상 가장 저렴한 곳이 되었고, 교통비를 아끼고자 위험하다는 히치하이킹도 서슴치 않았다.
얼마전 읽은 책 속 주인공은 남미에서 한번 소매치기를 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만치 우울했다고 했는데, 이 책속 저자는 카메라를 잃어버려도, 돈을 잃어버려도 그닥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속상해하다가 까짓꺼 그럴수도 있지 하고 훌훌 털어버린다. 게다가 숙소에 벌레가 우글거려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무서운 운전사가 밤길에 반대편 차선에서 차를 세워줘도 일단은 춥고 길가는 더 무서우니까 란 이유로 차에 냉큼 올라탄다.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인지 그의 여행길은 내내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는 듯 하다. 우연히 만난 현지 한인의 집에 한달가량 무료로 함께 살면서 숙식을 제공받는가 하면, 밤길에 위험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으면 꼭 반대편 차선에서 친절한 사람들이 그를 태워준다. 그런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반대편 차선이면 반대방향으로 가던 사람일텐데 어떻게 그를 태워주었을까 하는 점이다. 아리송 ;;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금 느낀 점은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현지언어를 익혀야 한다는 점이다. 그 나라 언어를 모르면 관광은 할 수 있지만 여행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물론 만국공통어인 영어가 있고, 바디랭귀지도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정작 시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는 영어를 모르듯이 정말 그 나라 소시민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그 나라 말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꼭 스페인어를 배워서 남미에 가봐야 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몇해전 중국에 갔을 때, 그나마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기에 기차에서도 금세 같은 칸 사람들과 친해져서 그들에게 짐을 맡기고 촐랑거리면서 돌아다닐 수 있었고, 창밖의 풍경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으며, 시골 어느 기차역에 내려서는 친절한 현지인 아주머니에게 이틀치 여행스케줄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난 여행가이드북에도 안 나온 코스로 시내버스를 열심히 바꿔타면서 신나는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푸하하!
이 책을 덮는 순간 그의 다음 여행담이 못견디게 궁금해졌는데, 정말 다행인 것은 얼마전에 2권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곧, 2권을 읽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