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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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일주일 이상 지나고 보니, 처음에 느꼈던 감상이 다 날라가 버려서 줄거리 요약처럼 되어버렸다. 아쉽다. 다음에 한번 더 읽고, 그 감상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기록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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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진을 찍는 일을 하던 마일스 헬러는 어느날 공원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가, 똑같은 책을 읽고 있던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소녀는 세 언니들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 마일스는 그 소녀를 경제적으로 돕기로 하고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형과 다투다 형이 차에 치여 사망하게 되자,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여 학교를 중퇴하고, 부모님과도 연락을 끊은 채 여기저기 떠돌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그는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러나 소녀의 언니는 자꾸 버려진 집에서 물건을 훔쳐다 줄 것을 요구하고, 이에 그가 반항하자 미성년자와 사귀고 있다고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그를 협박한다.

 

이에 그는 소녀와 헤어져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가, 버려진 집을 무단 점거하여 살고 있는 친구빙 네이선을 찾아간다. 그 집에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앨리스 버그스트롬과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앨런 브라이스가 살고 있다.

 

앨리스는 뚱뚱한 자신의 몸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도 자신의 체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그녀는 끝까지 깨닫지 못하지만, 남자친구는 실은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알게 되어 여자 친구를 멀리한 것이었다.)

 

앨런은 과거 여름방학을 맞아 자신의 담당교수님 댁 자녀들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직 고등학생인 교수님 아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임신까지 했었다. 그 아이를 낙태한 후, 앨런은 계속해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삶.

그러나 마일스는 부모님과 화해하게 되고, 앨리스는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게 되며, 앨런은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과거 그 고등학생을 다시 만나 새롭게 사랑을 시작한다. 물론, 그 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마일스가 그 소녀와 헤어졌을지도 모르고, 앨리스는 원하는 교수직을 못 얻었을지도 모른다. 앨런은 또 다시 그 소년과 헤어져 실의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갔을 것이다. 아니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형편없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인거야? 라고 손가락질하기에는 우리네 모습도 너무나 불완전하다. 오히려 작중 등장인물들의 조금은 모자란 모습에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다.

 

그들 모두 나름의 행복을 반드시 찾았기를. 그리고 나도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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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범우문고 1
피천득 지음 / 범우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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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띄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중략) 그러나 무엇보다 젊음을 다시 가져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p.56)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오는 봄!(p.57)

 

우연히 어딘가에서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의 한 구절을 읽고는 나머지 구절들이 궁금해서 못 견디겠던 찰나,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가격이 매우 착한 범우사 문고판 <수필>을 발견했다. 설레는 마음에 실로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여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한권을 금새 다 읽고 말았다.

 

처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감상은 조금은 엉뚱하게도 다시 태어나면 피천득 선생님의 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책 속에서 딸에 대한 선생님의 지극한 사랑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딸은 실제로 아빠의 그런 사랑이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란 글은 앞으로 내가 언젠가 결혼하게 되면, 결혼하기 전날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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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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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사시간을 떠올려보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삼국시대부터 시작해서 공부하다보면, 항상 근대사는 후다닥. 수박겉핥기 식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아마 수능에서 근대사 문제는 몇 문제 안 되니까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과연 5.18에 대해 6월 항쟁에 대해 제대로 잘 알고 있는 걸까,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통해 빨치산을 배웠고,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통해 군부독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김연수의 이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란 작품 속 주인공 는 어쩌면 아주 조금은 작가 황석영을 닮은 것도 같다. 나중에 작중 인물 가 쓴 글도 <오래된 정원>같은 작품이 아니었을까.

 

와 여자친구 정민은 대학 학생회에서 만난다. 이야기를 좋아하던 둘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끝에 사랑에 빠진다. ‘정민은 어릴 적 유독 따랐던 삼촌의 자살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삼촌은 고교시절 서울에 갔다가 중앙전신국 수류탄 투척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놀라서 뛰어가다가 (사건 현장에서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붙잡혀 몽둥이찜질을 당한다.

 

 

 

 

 

 

참고: 196851일 경향신문 보도

 

그 시절의 신문을 찾아서 읽어보니, 사건의 주범은 남침한 간첩으로 소개 되어 있다. 간첩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시대였는지. 간첩이라는 단어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어서 권력을 흔들었고, 또 그 단어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지금의 나는 그저 짐작할 뿐.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기엔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참 슬프고 안타깝다.

의 할아버지는 또 어떠한가. 그 옛날 간척사업을 꿈꿀 정도로 진보적이고 똑똑했던 할아버지는 사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런 할아버지와 삼촌을 둔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에 들어가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 는 북한에 들어가게 될 <준 특사(?)>-실제 북한에 들어가기로 되어있는 학생들이 실패할 경우, 북한에 가기 위해 선발된 사람. 선발대가 성공할 경우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로 선발되어 독일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떤 비디오를 보게 된다. ‘이길용이라는 사람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영상에는 한 남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시절의 고문이란 참 지독한 것이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내게 만들었는데, 인간이 어떻게 매 순간을 다 기억하면서 살 수 있겠는가. 그러니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창작해낼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그는 점점 무엇이 진짜 자신인지 모르게 되고 만다. 그렇게 송두리째 발가벗겨진 후, 그는 자신의 기억에 새로운 인물의 삶을 덧입혀, 완전히 다른 인물 강시우로 다시 태어난다.

 

훗날 주인공 는 어떻게 되었는지, 여자친구 정민이나 강시우는 어떻게 되었는지 소설은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이 소설이 명확한 끝을 그릴 수 없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직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엔 불의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토론하고, 대화하는 젊은이들마저 없으니까.

 

만약 , ‘강시우가 지금 이 순간 어딘가 살아있다면, 그들이 지금 한국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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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의 여행, 여행 - 풍경, 사람, 기억에 관한 오키나와 여행 이야기
고현정 지음 / 꿈의지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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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연예인이 쓴 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장수를 메우기 위해 글은 되도록 적고, 사진만 가득이라는 것이 그간 보아온 연예인이 쓴 책의 공통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글은 운문처럼 문장마다 엔터키를 친 경우가 대부분. 한권을 다 읽는데 보통 한두 시간이면 족하는.

 

이 책도 다 읽는데 서너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나, 글이 적어서 빨리 읽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글이 술술 읽힐 만큼 재미나게 쓰여서 평소보다 읽는데 가속이 붙었다는 표현이 아마 더 맞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누군가 대필자가 있지 않나 의심했다. 연예인이 이렇게 글까지 잘 쓰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으니까. 나 같은 독자가 있을 걸 미리 예상이라도 한 걸까.

 

연기에 임하는 동안 사람이나 작품을 의심을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의심이 들면 감독에게 직접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나를 의심한다.”(p.213)

 

그래, 더 이상 의심하지 말자.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는 편이 내 속도 편하고, 무엇보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가 진심으로 좋아지고 있었으니까.

 

여느 여행관련 서적과는 달리 이 책은, 소개된 장소를 찾아가는 방법이 상세히 나와 있지도 않고, 묘사한 풍경에 대한 사진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작가 본인을 찍은 사진은 매우 많지만) 대부분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아야 했지만 그편이 오히려 좋았다. 설령 사진이 실렸다 해도 실제로 직접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겠지만, 그저 상상해본 풍경을 눈앞에 마주하면 과연 어떤 기분일지……. 이런 마음을 남겨준 작가에게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중간 중간 챕터를 나누는 장이나 빈 공간에, 편집자가 채워 넣었음직한 시와 노랫말 등이 있다. 처음에는 백퍼센트 편집자가 메웠으리라 여기고, 이 책의 편집자는 안목이 참 탁월하군, 감탄했는데 읽다보니 점점 어쩌면, 작가가 직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평소 정말 많은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듯하다. 맘에 드는 구절을 옮겨 적느라 몇 번이나 읽기를 잠시 멈춰야 했을 정도이니.

 

보고 싶어도 참는 것

손 내밀고 싶어도

그저 손으로 손가락들을 만지작이고 있는 것

그런게 바위도 되고

바위 밑의 꽃도 되고 난도 되고 하는 걸까?

아니면 웅덩이가 되어서

지나는 구름 같은 걸 둘둘 말아

가슴에 넣어두는 걸까?

 

빠져나갈 자리 마땅찮은 구름떼 바쁜

새로 생긴 저녁

 

-장석남 <새로 생긴 저녁>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고현정이란 배우에 대해 잘 몰랐다. 그녀가 출연한 작품 중 전편을 모두 시청한 작품은 <모래시계>-아주 어릴 때라 전편을 다 보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시청률로 보아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본다-<봄날> 정도. 그러면서 나는 가장 최근 작품인 <여왕의 교실>속 그녀를 몇 번 보고는 여배우가 저리 관리를 안 해도 되나멋대로 생각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또 하나 있다. ‘그녀를 기다리는 소나무.’ 그 나무 그늘에 나의 팬들이 모여 있다. 지난 번 인성이 팬미팅을 구경 갔다가 무작정 울컥. 그 시간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들이 떠올라 미안했다. 팬이라는 사람들이 본래 좋아하는 별을 무한정 바라봐주는 법이라지만 자주 내비치지도 않는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이들은 대체 뭔 손해인가, 싶어 조용히 물어봤다. 마음을 좀 갚고 싶은데,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그랬더니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만 있으면 괜찮다는 답이 왔다. 연기로 박살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심지어 뚱뚱해지는 것도 상관없다고 했다. 너무 미안해서 그날 많이 울었다.”(p.36)

 

나는 물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녀의 팬은 아니었지만, 위 구절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나도 그녀의 팬이 되기로 했다. 아니, 이미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팬이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녀의 다음 작품보다 다음 책이 더 기다려지지만.

 

책을 보고 이들을 만나러 오면서 반가웠지만 울렁증이 또 스멀스멀 올라왔다. 혹시 또 헤어지기 싫고 짧은 만남이 아쉬워 슬퍼지면 어떡할까. 그러나 다무라 공방 부부가 좋다고 그곳에서만 있었다면 이페 코페 식빵 부부는 못 만났을 거다. (중략) 삶이 순환하고 흐르지 않으면 썩고 염증이 생기고 부패가 된다는 것을 나는 지금껏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길은 잠시 다른 길과 만나도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맞다. 서로 스치는 듯 만나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해야 하는데 난 좋은 길과 만나면 헤어지기가 싫었다. 반갑고 헤어지고 해야 다음에 또 만나고 다른 사람도 만나볼 수 있는 법인데 그걸 잘 알면서도 그동안 그렇게 살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 정체하다보면 나 때문에 또 불필요한 정체가 시작된다. 사람에 대한 체기가 다른 무엇보다도 제일 크다. 헤어질 생각만 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무르고만 싶고. 그러나 음식이 속을 타고 내려가면서 소화가 되듯 사람도 지나가며 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p.226)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올수록 벌써 끝인 건가 싶어 몹시 아쉬웠다. 부러 뒷부분은 천천히 음미하듯 읽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페이지가 오고 말았다. 작품도 많이 하지 않는 그녀가 다음번 책은 과연 언제쯤 내줄지……. 아쉬운 마음과 함께 위 구절이 생각났다. 그래,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다시 반갑게 그녀의 신간을 마주할 날이 오겠지. 우선은 이 책을 들고 오키나와 여행부터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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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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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형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다보면, 김애란 작가에 대한 내용이 있다. 김애란 작가의 필력을 몹시 부러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로서는 강세형 작가의 필력 또한 부럽기만 하지만.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김애란 작가. 처음에는 그녀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두근두근 내인생> 이후로 나도 꽤나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감성의 글이었으니까. 그래서 영화를 보고는 엄청 속이 상했다. 역시 김애란 작가의 글은 영상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구나, 라고도 생각했고. 살아 꿈틀거리는 그 글의 느낌을 어찌 영상으로 담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한글이 정말 매력적인 언어구나, 감탄을 연발했고 나는 절대 이민 따위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에 가서 살게 되면, 국내 도서를 구입하기도 번거롭고 가격도 비싸다고 들었는데, 나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으니까.

 

문학은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데, 요즈음의 책들은 참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김애란의 이 소설집은 우리 시대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슬프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아픔, 어려움, 고민들이 미래로 전달될 테니까.

 

너의 여름은 어떠니

대학시절 첫사랑 선배의 연락에 반가운 맘으로 친구 장례식장 가는 길에 어렵게 약속장소에 나간 미영이는, 졸지에 내키지 않는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아무리 자신도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한 부탁이었다 해도, 그 선배는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기에는 너무 비겁한 사람이다.

 

벌레들

그래. 주변보다 시세가 낮은 집은 일단 의심을 해봐야 한다. 너무 순진하게 덜컥 집을 계약한 나는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들리는 소음과,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수많은 벌레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벌레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생생하여 나는 얼굴을 여러 번 잔뜩 찡그려야 했다.

 

물속 골리앗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1주년이 되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이토록 무심해도 되는 건지. 어느새 국민들은 아직도 바다 속에 가라앉아있는 세월호 인양보다는, 그들이 보상금을 얼마나 받았는지를 더 궁금해 한다. 슬프다. 잊지 말아야 하는데. 홍수 난 마을에서 크레인 위에 올라가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주인공 '나'도 누군가 꼭 발견해줘야 하는데.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우리나라에서 택시기사와 식당주방보조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도, 경제적으로 일어서기도 참 힘들다. 하물며 식당주방보조를 하는 조선족이라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명화는 바로 그 위치에 있었다. 조선족 식당주방보조.

 

하루의 축

인천공항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기옥 씨. 비록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었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들이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난다. 앞으로는 인천공항에 가서 청소하는 분들을 만나면 꼭 먼저 인사해야지. "수고하십니다." 하고.

 

큐티클

나도 네일아트를 받아본 적이 있다. 두 번인가 세 번. 모두 기분이 꽤나 좋았다. 큐티클이 제거될 때 산뜻하고 개운한 기분이란. 기본 케어만 받고도 손이 매우 예뻐져서 내 손이 이렇게 예뻤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호텔 니약 따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여행을 가서 내내 사이좋게 지내기란 정말 어렵다.

은지와 서윤. 두 친구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단편과는 다르게 뒷내용이 궁금해 못 견딜 지경이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서두로 한 장편이 나와 주길 기대한다.

 

서른

아, 읽는 내내 마음이 참 먹먹해졌다. 최근 나도 다단계에 빠졌다가 겨우 헤어 나온 대학생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께 말도 못 꺼내고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틈틈이 500만 원 가량 되는 빚을 갚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들으면서 아니 요즘에도 그런 일이 다 있나, 생각했는데 웬걸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마음이 아프다. 경찰은 뭐하는 건가. 그런 사람들을 벌주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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