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 솔빛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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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마의 한달이었다. 정말 진상 손님들이 한주에 한명 이상 나타났다. 그들은 나를 들었나 놨다 했고, 나는 그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양동이 한가득 눈물을 쏟아냈다. 속으로는 사표를 열두번도 더 던지는 상상을 했다. 내가 왜 무엇때문에 여기서 이런 모독을 들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건가 나의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지는 한달이었다. 아마 추석연휴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백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겨우 9월을 견디고 10월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아, 이 작가도 이렇게 힘들구나. 이 서점에도 이렇게 진상 손님들이 많구나. 나만 이렇게 힘든게 아니구나 싶어서 읽으면서 굉장히 많이 공감했고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서점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장님이 있고 이런 동료들이 있다면, 정말이지 이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라고.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주에는 어쨌든 매출이 500권에서 700권 사이였다. 내 말은, 60평방미터 크기의 서점에 사람이 700명이 왔으며, 그 700명 중에서 690명이 재미있고 상냥하고 다정했으며, 나머지 10명은 퇴근한 뒤 맥주 한 잔 하면서 좀 씹고 험담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님에 대해 험담한다는 게 부당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p.218)

 

ㅋㅋ 나도 손님들 험담하는 것에 대해 마음에 부담이 있었는데, 정말 이제는 마음껏 해주겠다. 그렇게 뒤에서 흉이라도 보지 않으면 정말 내가 견딜 수가 없으니깐.

 

유난히 상냥한 여자 손님도 있었다. 그분은 우리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주문하고는 그 책이 너무 좋았다며 사흘 뒤 내게 빌려주기도 했다. 또 멋진 요리책을 사 간 부부는 그 다음 주에 우리를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일 덕분에 우리는 기운을 내고 날마다 문을 열고 책을 권한다. 그리고 그 덕에 우리는 몇몇 무뚝뚝하고 진절머리 나는 콧대 높은 손님들을 견디는 것이다. 인사하지 않는 사람, 우리 선물 포장지보고 "정말 흉하다"고 하는 사람, 4년 전에 나온 함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책이 서점에 없어서 주문하려면 하루가 걸린다는 소리를 듣고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인사도 없이 들어와 다짜고짜 "그런 데 그거 있어요?" 하는 손님들. 그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자기가 사흘 전에 주문한 책이 와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외우고 있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1년에 책을 2권 이상 사지도 않으면서도 할인이 가능한지를 묻는 사람들이다. 또 내가 권하는 책이 다른 직원들이 권한 책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담당 분야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특진 환자"라고 부른다.

(p.225)

 

나도, 어쩌다 친절한 분이 간식거리를 나눠준다든지, 상냥하게 인사 한마디만 건네도 엄청 큰 위로를 받는다. 역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또 다른 사람이 풀어준다. 신기하게도.

 

(서점 직원에게) 비밀누설 금지 의무가 도입되어야 할 것도 같다. 책을 고르는 성향을 보면 인간의 됨됨이가 다 드러나는데 그게 온갖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p.232)

 

 

 

책을 다 읽고 나자, 오래전 사라진 동네 책방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참을 요리조리 망설이는 나에게 서점 주인 아저씨는 "어떤 책을 찾아요?"라고 물었었고, 내가 "선물하려고요. 그런데 친구 취향을 잘 모르겠어요" 라고 답하자 내게 친구에 대해 요리조리 묻더니 금새 책 한권을 권해주셨었다. 결국 그때 그 책을 친구에게 선물했었는데, (나도 인터넷서점을 주로 이용하니 할말은 없지만) 이제 그런 일은 다시 겪기 힘들겠지. 아쉽다. 그때 그 서점의 공기가 참 따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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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
아녜스 르디그 지음, 장소미 옮김 / 푸른숲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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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를 했던 걸까. 솔직히 결말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해피엔딩이 나쁜 건 아니지만 다들 너무나도 기적적으로 행복해졌으니까. 너무나도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 가여운 여자가 부자에다가, 너그러운 남자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행복해 진다니. 그녀 스스로 행복해질 수는 없었던 걸까. 조금 많이 안타까웠던.

 

<스포일러 일지도>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는 줄리는 어느 날 상사에게 혼이 나고 울적한 맘으로 일하다가 눈물을 쏟고 만다. 그 순간 그녀는 마침 폴의 물건들을 계산하고 있었고 그녀의 눈물에 동정심을 느낀 폴은 함께 식사를 할 것을 권유한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녀가 폴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폴과 줄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폴의 제안으로 그녀는 폴의 아들 제롬과 폴과 셋이서 (정확히는 줄리의 세 살난 아들까지 넷이서) 휴가를 떠나게 된다. 그후 귀가하다가 음주운전자의 차량과 사고가 나고, 결국 이 사고로 줄리의 아들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런데 전화위복일까? 줄리의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만난 물리치료사 로맹와 줄리는 사랑에 빠지고, 이 휴가를 위해 고용한 초보의사와 제롬은 사랑에 빠지며, 줄리를 위로하러 병원에 찾아왔던 줄리의 친구 마농과 폴이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폴의 아들 제롬보다도 마농이 어린데 말이다.

 

물론 줄리에게 폴같은 남자가 나타난 게 기적의 시작이었지만, 줄리와 로맹이 그냥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줄리의 아들이 죽지 않은 채로 두 사람이 새롭게 가정을 꾸릴 수는 없었을까. 그랬다면 줄리는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없었을 테고, 어쩌면 계속해서 마트 계산원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랬다면 줄리는 불행했을까.

 

 

 

"절대 두 손 들지 마라,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일 수도 있다. 이 아랍 속담을 마음속에 새기고 산 지 벌써 몇 년째예요. 하지만 이제 더는 들고 말고 할 손도 없어요."

"있어, 지금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분명히 있어."

(p.198)

 

프루스트의 마들렌느

-각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주인공이 차에 마들렌느 과자를 곁들여 먹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생히 상기하는 대목이 있다. 이후 작품과 함께 이 대목이 유명해지면서 '프루스트의 마들렌느'는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는 매개체를 뜻하게 되었다.

(p.224)

 

 

 

천사가 지나가고 또 지나간 15분.

-각주: 프랑스에서는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 때, 대화 도중 갑자기 말이 뚝 끊겼을 때, '천사가 지나간다'라는 표현을 쓴다(p.237)

 

"모든 상처는 아물어요, 그럭저럭 빠르게 그럭저럭 크게 흉 지지 않게. 하지만 피부가 딱딱해지죠. 흔적은 남지만 삶은 더욱 강해지는 거예요."(p.256)

 

 

침묵은 영혼의 거울인 눈이 대화할 수 있게 한다. 침묵할 때 우리는 저 깊은 곳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다.(p.287)

 

 

"삶은 바다와 같아요. 파도가 해안에 밀려오면 물살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가 파도가 물러가면 다시 고요해지죠. 이 두 움직임이 끝없이 교차하고 반복해요. 하나는 빠르고 거칠며, 다른 하나는 느리고 부드럽죠. 물살이 조용한 곳으로 몰래 떠나버리고 싶다고요? 그래서 완전히 잊히고 싶다고요? 하지만 거기도 머잖아 다른 파도가 밀려올 거예요. 이후엔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올 거고요. 계속해서, 영원히. 삶이란 그런 거니까요. 두 가지 움직임이 교차하고 규칙적으로 변화해요. 때론 폭풍우가 몰아치면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가 어느새 잦아들고 잔잔하게 찰랑거리죠. 잔잔해도 어쨌든 찰랑거리긴 해요. 바닷가는 절대 고요할 수가 없어요. 절대. 삶도 마찬가지죠. 당신이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삶이. 이 모든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모래알들이 있고 좀 더 위쪽에 있어서 젖지 않고 멀쩡한 모래알들도 있지요. 무얼 부러워해야 할까요? 생각해봐요. 뽀송뽀송하고 반짝이는 위쪽 모래알로는 모래성을 지을 수 없어요. 파도에 시달린 모래로 지어야죠. 이 모래가 점성이 좋으니까요. 당신은 인생의 모래성을 다시 지을 수 있을 거예요. 폭풍우에 단련됐으니까요. 그 모래성은 당신을 닮은 모래, 인생의 풍량을 겪은 모래로 지어야겠죠. 그래야 단단할 테니까."

(p.361~362)

 

 

"선택의 여지 없이 강해져야 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강한지 절대 알 수 없다. 밥 말리의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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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경심 세트 - 전3권
동화 지음, 전정은 옮김 / 파란썸(파란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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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를 앞두고, 이번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도서실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마침 오래전 친구가 무척 재밌다고 추천해준 기억도 있어서 연휴 기간 중 이틀동안 내내 방 안에 콕 박혀서 이 책만 읽었다. 그리고 그 시간 나는 중국 청나라에서 마이태약희가 되었다. 


주요 포맷은 최근 여기저기 소재로 많이 쓰이고 있는 시간여행이야기다. 여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깨어나보니, 몇 백년 전 과거 청나라 시대의 어린 여자아이가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 하필 그 시대는 14명이나 되는(어쩌면 더 많을 지도?) 왕자들이 차기 왕권을 놓고 다투던 복잡한 시기였다. 여주인공은 8번째 왕자의 두번째 부인인 언니 덕분에 8왕자 처소에 거하면서 다른 왕자들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과연 여주인공은 여러 왕자들 중 누구와 사랑을 이루게 될까?

<해를 품은 달>이나 <성균관 스캔들/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그 작품들이 남녀관계보다는 다른 문제(여주인공의 신분을 밝히려는 쪽-해를 품은 달-이나 숨기려는 쪽-성균관 스캔들)에 집중했다면,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누구와 맺어질지가 주요 관심사라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게다가 책에서는 여주인공이 현대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냥 끝나버린다. 캐스팅은 정말 안타깝고 눈물나지만 전체적인 구성은 드라마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다.  
우리 나라에서도 곧 리메이크 되어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할지,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지는 모르겠으나 좀더 구성을 잘 다듬어서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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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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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작주의자에 속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거의 모든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어느 음악가에 꽂히면 그의 모든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는 편이다. 예전에는 드라마에도 이런 경향이 있어서 좋아하는 드라마는 몇번씩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았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런 일이 드물었다. 그만큼 맘에 드는 배우도, 드라마도, 작가도 찾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최근 내가 어떤 감독의 영화를 모조리 찾아서 보게 된 일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런 그가 쓴 에세이집이라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책에는 글 뿐만 아니라 어린시절 쿄짱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있어서 좋았다.

 

주로 이동중 전철에서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으며 웃다가, 울다가 계속 표정이 바뀌어서 아마 누군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가능하면 다른 작품을 찍을 때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도 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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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어느날 쿄짱이 바닷가를 산책하는데 왠 게가 도망을 가지않고 집게발로 위협을 한다. 무슨 일이지? 하고 보니 뒤에 다른 게의 사채(라기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가 있다. 일단 자리를 피한 뒤, 다음날 궁금하여 그 자리에 가보니, 결국 두 마리가 함께 죽어있다.

 

그 모습을 보고 짠했다는 에세이. 그러나 말미는 이렇게 끝난다.

 

그런 일을 겪은 후 게를 먹을 수 없게 됐다고 쓰면 좋은 마무리겠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게는 매우 좋아하는 음식이다. 양해해주시길. (p.80~81)

 

다른 에세이 집에서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이란 시를 읽은 뒤, 게장을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읽었었다. 그리고는 간장게장을 몹시 좋아하는 나는 조금은 고민했었다. '아, 나도 이제 게장은 먹지 말아야 하나' 그런데 쿄짱이 위와 같이 말해주어서 내심 기뻤다. 왠지 나에게 계속해서 간장게장을 먹어도 된다고 말해준 것 같아서. (아무리 핑계를 대도 게에게는 참 미안한 노릇이지만)

 

스며드는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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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일요일들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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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팔월의 일요일이란 어떤 기분일지 팔월에 책을 읽으며 느껴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우물쭈물하다가 구월에야 비로소 책을 펼쳤다. 불과 한달전이지만 다시 맞으려면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하는 팔월을 벌써부터 그리워하는 맘으로.

 

첫단락에서는 '어라?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랑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면, 이 책은 '실비아'란 여인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진행이 제법 빠른 편이라, 책장이 예상보다 휙휙 넘어가서 퇴근길 전철에서 한시간 여만에 다 읽어버렸다.

 

과연 실비아는 그때 그 차 안에 있었을까? 실비아와 '남십자성'은 어디로 가 버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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