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
아녜스 르디그 지음, 장소미 옮김 / 푸른숲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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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를 했던 걸까. 솔직히 결말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해피엔딩이 나쁜 건 아니지만 다들 너무나도 기적적으로 행복해졌으니까. 너무나도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 가여운 여자가 부자에다가, 너그러운 남자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행복해 진다니. 그녀 스스로 행복해질 수는 없었던 걸까. 조금 많이 안타까웠던.

 

<스포일러 일지도>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는 줄리는 어느 날 상사에게 혼이 나고 울적한 맘으로 일하다가 눈물을 쏟고 만다. 그 순간 그녀는 마침 폴의 물건들을 계산하고 있었고 그녀의 눈물에 동정심을 느낀 폴은 함께 식사를 할 것을 권유한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녀가 폴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폴과 줄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폴의 제안으로 그녀는 폴의 아들 제롬과 폴과 셋이서 (정확히는 줄리의 세 살난 아들까지 넷이서) 휴가를 떠나게 된다. 그후 귀가하다가 음주운전자의 차량과 사고가 나고, 결국 이 사고로 줄리의 아들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런데 전화위복일까? 줄리의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만난 물리치료사 로맹와 줄리는 사랑에 빠지고, 이 휴가를 위해 고용한 초보의사와 제롬은 사랑에 빠지며, 줄리를 위로하러 병원에 찾아왔던 줄리의 친구 마농과 폴이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폴의 아들 제롬보다도 마농이 어린데 말이다.

 

물론 줄리에게 폴같은 남자가 나타난 게 기적의 시작이었지만, 줄리와 로맹이 그냥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줄리의 아들이 죽지 않은 채로 두 사람이 새롭게 가정을 꾸릴 수는 없었을까. 그랬다면 줄리는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없었을 테고, 어쩌면 계속해서 마트 계산원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랬다면 줄리는 불행했을까.

 

 

 

"절대 두 손 들지 마라,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일 수도 있다. 이 아랍 속담을 마음속에 새기고 산 지 벌써 몇 년째예요. 하지만 이제 더는 들고 말고 할 손도 없어요."

"있어, 지금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분명히 있어."

(p.198)

 

프루스트의 마들렌느

-각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주인공이 차에 마들렌느 과자를 곁들여 먹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생히 상기하는 대목이 있다. 이후 작품과 함께 이 대목이 유명해지면서 '프루스트의 마들렌느'는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는 매개체를 뜻하게 되었다.

(p.224)

 

 

 

천사가 지나가고 또 지나간 15분.

-각주: 프랑스에서는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 때, 대화 도중 갑자기 말이 뚝 끊겼을 때, '천사가 지나간다'라는 표현을 쓴다(p.237)

 

"모든 상처는 아물어요, 그럭저럭 빠르게 그럭저럭 크게 흉 지지 않게. 하지만 피부가 딱딱해지죠. 흔적은 남지만 삶은 더욱 강해지는 거예요."(p.256)

 

 

침묵은 영혼의 거울인 눈이 대화할 수 있게 한다. 침묵할 때 우리는 저 깊은 곳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다.(p.287)

 

 

"삶은 바다와 같아요. 파도가 해안에 밀려오면 물살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가 파도가 물러가면 다시 고요해지죠. 이 두 움직임이 끝없이 교차하고 반복해요. 하나는 빠르고 거칠며, 다른 하나는 느리고 부드럽죠. 물살이 조용한 곳으로 몰래 떠나버리고 싶다고요? 그래서 완전히 잊히고 싶다고요? 하지만 거기도 머잖아 다른 파도가 밀려올 거예요. 이후엔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올 거고요. 계속해서, 영원히. 삶이란 그런 거니까요. 두 가지 움직임이 교차하고 규칙적으로 변화해요. 때론 폭풍우가 몰아치면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가 어느새 잦아들고 잔잔하게 찰랑거리죠. 잔잔해도 어쨌든 찰랑거리긴 해요. 바닷가는 절대 고요할 수가 없어요. 절대. 삶도 마찬가지죠. 당신이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삶이. 이 모든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모래알들이 있고 좀 더 위쪽에 있어서 젖지 않고 멀쩡한 모래알들도 있지요. 무얼 부러워해야 할까요? 생각해봐요. 뽀송뽀송하고 반짝이는 위쪽 모래알로는 모래성을 지을 수 없어요. 파도에 시달린 모래로 지어야죠. 이 모래가 점성이 좋으니까요. 당신은 인생의 모래성을 다시 지을 수 있을 거예요. 폭풍우에 단련됐으니까요. 그 모래성은 당신을 닮은 모래, 인생의 풍량을 겪은 모래로 지어야겠죠. 그래야 단단할 테니까."

(p.361~362)

 

 

"선택의 여지 없이 강해져야 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강한지 절대 알 수 없다. 밥 말리의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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