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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나는 전작주의자에 속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거의 모든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어느 음악가에 꽂히면 그의 모든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는 편이다. 예전에는 드라마에도 이런 경향이 있어서 좋아하는 드라마는 몇번씩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았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런 일이 드물었다. 그만큼 맘에 드는 배우도, 드라마도, 작가도 찾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최근 내가 어떤 감독의 영화를 모조리 찾아서 보게 된 일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런 그가 쓴 에세이집이라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책에는 글 뿐만 아니라 어린시절 쿄짱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있어서 좋았다.
주로 이동중 전철에서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으며 웃다가, 울다가 계속 표정이 바뀌어서 아마 누군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가능하면 다른 작품을 찍을 때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도 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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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어느날 쿄짱이 바닷가를 산책하는데 왠 게가 도망을 가지않고 집게발로 위협을 한다. 무슨 일이지? 하고 보니 뒤에 다른 게의 사채(라기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가 있다. 일단 자리를 피한 뒤, 다음날 궁금하여 그 자리에 가보니, 결국 두 마리가 함께 죽어있다.
그 모습을 보고 짠했다는 에세이. 그러나 말미는 이렇게 끝난다.
그런 일을 겪은 후 게를 먹을 수 없게 됐다고 쓰면 좋은 마무리겠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게는 매우 좋아하는 음식이다. 양해해주시길. (p.80~81)
다른 에세이 집에서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이란 시를 읽은 뒤, 게장을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읽었었다. 그리고는 간장게장을 몹시 좋아하는 나는 조금은 고민했었다. '아, 나도 이제 게장은 먹지 말아야 하나' 그런데 쿄짱이 위와 같이 말해주어서 내심 기뻤다. 왠지 나에게 계속해서 간장게장을 먹어도 된다고 말해준 것 같아서. (아무리 핑계를 대도 게에게는 참 미안한 노릇이지만)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