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우리가 있었다
정현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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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참, 여전하구나!

요 몇년 새 라디오 작가들이 책을 참 많이 냈다. 처음에는 라디오 한 코너에 쓰였던 글들을 모아서 내다가, 나중에는 에세이를 내거나, 소설집을 내는 등 조금씩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시만 쓰는 시인도 있고, 소설만 쓰는 소설가도 있으니, 라디오 작가는 라디오 코너에 쓰인 글을 엮어서 책을 내는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에게 뭔가 새로운 글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은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처음 그녀의 책을 만났을 때처럼 큰 감격은 없었다. 참, 여전하구나, 라는 생각. 한편으로는 그런 그녀의 글의 익숙함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은 다른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또다른 이야기가.

 

다음번에 그녀의 책이 나올때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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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위로다 - 명화에서 찾은 삶의 가치, 그리고 살아갈 용기
이소영 지음 / 홍익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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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우연히 작가가 연재하는 그림 관련 글을 보고, '아, 이런 그림도 있었구나!'하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 책에서 표지로 쓰인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이었다. 학창시절 미술을 무척 좋아했고, 중학교때는 미술선생님이 집에 전화까지 걸어서 '이 아이는 꼭 미술공부를 시켜주세요!'라고 말하게 만들었던 나였지만, 그 후로 미술은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어린 마음에도 '미술은 돈이 많이 든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내심 관심없는 척 말했지만, 실은 내 안의 아주 깊은 곳에서는 미술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긴 했었다.

그후 고등학교 시절에는 말리려고 창가에 세워둔 유화 풍경화를 보고,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대체 저 그림은 누가 그린거니?'라고 물으시기도 했고, 내가 그린 정물화는 유일하게 미술반이 아닌 문과반 아이의 작품으로 교내 축제때 전시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점점 미술은 나에게 잊혀져갔다. 대학교때 교양으로 들은 현대 미술 관련 수업이 내가 접한 마지막 미술 관련 교육이었다.

그 후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보며 잠시 뭉클했던 마음이, 지금 작가의 <그림은 위로다>란 책을 읽으며 다시금 꿈틀, 움직인다. 얼마전 오래된 친구 셋이 모여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는데, 당시 직장내 어려움으로 힘들어 하는 내게 친구들은 각기 다른 조언을 해주었었다.

한 친구는 내게 '아무개야. 너는 꿈이 뭐니? 나는 네가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삶을 살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었고

또 다른 친구는 '아무개야. 우리 나이가 이제는 추상적인 꿈을 쫓을 때가 아니야. 어느 일이건 힘든일은 없어. 지금 직장 나쁘지 않으니 그냥 참고 다니면서, 퇴근 후에 이직할 준비나 하면서 공부를 하는 건 어떠니?'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각기 다른 조언을 해준 두 친구의 삶도 조언만큼이나 다르다. 두 친구 모두 '꿈'을 쫓아 살고 있지만, 그 꿈의 성격이 무척 다르니까. (만약 우리가 학창시절 만나지 않고, 요즘에 만났다면-아니, 과연 그랬다면 셋이 만날 수가 있었을까 - 우리는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나도 올해야말로, 더 늦기 전에 다시금 붓을 잡아보고자 한다. 40대에 증권거래소를 박차고 그림을 시작한 고갱과, 70대에 그림을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가 나의 꿈을 응원해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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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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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책을 읽고, 기록을 등한시했더니,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에 대한 리뷰는 아쉽게도 남아있지를 않았다. 책 속, 첫 장 귀퉁이에 적어둔 메모로 그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을 유추해볼 뿐.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2012,9,13. ‘하고 살아갈 이유를 알려준 고마운 책

강세형 작가의 두 번째 책인 <나는 다만, 조금 느릴뿐이다>를 읽고 쓴 리뷰를 찾아보니, 거짓말처럼 내가 이렇게 적어두었다. “강세형 작가의 다음 책은 에세이 대신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노트북, <이야기>폴더에 담긴 이야기들이 궁금해졌으니까.”

 

나의 바람이 이뤄진 것일까. 세 번째 책 <나를, 의심한다>는 내가 판단하기엔 분명 소설집이다. 여러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단편집. 그리고 나는 이 단편집이 아주, 매우, 너무나도 맘에 든다.

 

처음엔 나도 알쏭달쏭 헷갈렸다. 과연 이건 진짜일까? 그런데 어느 순간 만일 이 이야기가 진짜라면, 그녀에게 실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친구의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책으로 낼 정도라면 그녀에게 정말 실망이라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 이건 지어낸 이야기구나. 그녀는 소중한 친구의 이야기를 이야깃거리로 삼는 그런 사람이 아니구나. 다행이다.’

내 짐작이 맞다면, 검정글씨는 에세이인 듯 하고, 파랑글씨는 소설인 듯하다.

그리고 아마도 내 짐작이 맞다면, 다음번 책은 장편소설집이 되지 않을까?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 사이의 간격이 3년이었고. 두 번째 책과 세 번째 책 사이의 간격이 2년이었으니, 감히 바라건대, 이번에는 내년에 네 번째 책이 나오길 바래본다.

 

좋아하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몹시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 그녀의 책이 나의 남은 생애 소중한 길동무가 되어주기를 바래마지않는다.

 

나는 늘 그랬으니까. 무언가가 가장 간절해지는 순간은 언제나 그 때, 사람이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 또한 언제나 그때. 이제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때였으니까. (p.29)

 

언젠가 아직도 만나고 있는 오랜 친구가 불쑥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마워."

며칠 전 잠을 자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직도 나랑 놀아주고 있는 몇 안 되는 내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 그렇잖아.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기적이고 모난 데도 많은데, 그런 나를 참아 주고 아직도 놀아 주는 친구들이 고맙잖아. 그때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아마도 오글거리는 건 못 견뎌 하는 나는 농담처럼 그 말을 받았을 것이다. 나만 하겠니, 너도 알잖아. 나 친구 몇 명 없는 거. 너까지 나랑 안 놀아 주면 나 외로워서 큰일 나. 그래서 너한테 잘하는 거야. 나도 이기적이라서.

(p.133)

 

농담 같았던 나의 그 말들은, 진심이기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비밀과 거짓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각자의 다른 삶과 다른 사정이 생겼고, 그사이 우리에겐 각자의 비밀과 자격지심과 허세와 거짓말이 생겼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해도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생겼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경계선이 아닌, 보일 듯 말 듯 어렴풋한 경계선 위의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우리는 종종 미끄러져 떨어지기도 했다. 우리 또한 선명하지 않은, 어렴풋하고 어설픈 어른이라서, 어쩌면 우리가 아직 만나고 있다는 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번번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때, 네가 나의 손을 잡아 줬다는 것,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줬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 나의 손을 놓아버리지 않은 너에게, 너의 손을 놓아버리지 않은 나에게. (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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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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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들은 어떻게 10곡이 넘는 트랙의 곡 중에 메인곡을 정할까. 신기한건 메인곡이 첫번째 트랙곡은 아니라는 것. 매번 중간쯤 나오는 곡이 메인곡이 되고, 그 곡과 한두곡쯤 더 활동하다가 음반활동을 접는다. 콘서트에 가도 음반의 모든 곡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니, 어떤 곡들은 영영 앨범 속에 남아있기도 한다.

 

소설이야 제목이 그럭저럭 공감이 되지만, 시집의 제목만은 항상 참 알쏭달쏭하다. 어떻게 해서 이 제목을 붙이게 되었을까. 시인의 입김이 더 컸을지. 편집자의 입김이 더 강했을지.

 

역시나 이번 시집에도 제목으로 쓰인 시는 중간쯤에 살짝 나왔다. 마치 자신이 제목이 아니라는 듯. 무심히.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자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p.55)

 

간밤에도 역시나 나는 울다가 잠이 들었고, 오늘도 낮에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울다가 까무룩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내 인생은 똥이야. 똥'이라고 툴툴거리면서 걸어가도 될 길을 괜시리 마을버스를 타고 한바퀴 돌았다. 문득 고흐와 윤동주를 생각했다.

 

평생 그림을 그리며, 가난에 시달렸던 고흐. 자신의 작품이 훗날 전세계 인들의 사랑을 받고, 고가에 거래될 것을 그시절엔 꿈에도 몰랐겠지. 그저 그는 외롭고 배고프고 추웠을 것이다.

 

윤동주는 어떤가. 일제치하에 끌려간 감옥에서 생채실험 대상이 되어 각종 주사를 맞으면서 슬프게 아프게 어머니와 고국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죽어갔을 것이다. 그토록 꿈꾸던 고국의 독립은 보지도 못한채.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엄마랑 같이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었고, 그래서 배도 부르고, 슬프긴 하지만 이 슬픔이 언젠가는 끝날 것을 아니까.

 

힘을 내야겠다.

 

내가 맥이 영 빠져있으니까 엄마가 옆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릴 적 엄마 이야기. 한번도 들은 적 없는 엄마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맥이 빠져있지 않았음 아마도 엄마가 과연 내게 털어놓았을까 싶은 엄마의 아픔들.

밥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니까, 엄마가 말했다. "아 행복해. 엄마는 참 행복하다. 딸내미가 설거지도 해주고, 그래서 엄마는 이렇게 따뜻한 차 마시면서 앉아있을 수 있고"

 

그래. 우리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내 인생 똥은 아니다.

 

눈을 감고 앓다 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읽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같은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驛)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p.82~83)

 

박준 시인. 한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시를 읽는 내내 생각했다. 아픔이 있어야 슬픔이 있어야 시가 더 깊어지는 지도 모르겠으나, 다음번 시에는 아픔이나 슬픔대신에는 그의 행복이 조금 더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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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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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1년 간 사귄 남자친구에게 곧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다카코. 충격으로 다카코는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에 허우적거리다가 직장마저 사직하고 만다. 사내커플이었던 남자친구가 또다른 회사 여직원과 교제하고 있었던 것. 심지어 그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나라도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병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난다. 10여년 전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보고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던 외삼촌의 전화. 외삼촌은 가업을 이어 헌책방을 꾸려가고 있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는데, 바로 그 헌책방에 일손이 필요하니 와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헌책방 위에 있는 집에 살아도 된다고 한다. 숙식제공이라니 솔깃한 제안!

 

고민하던 다카코는 그렇게 모리사키 서점에 가게 된다.

 

처음에는 오전에 잠깐 서점을 봐주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겨울잠을 자는 북극곰마냥 내내 잠만 자던 다카코는 어느날 우연히 책의 재미에 빠져들면서 수많은 책을 읽고, 또 헌책방마을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서서히 상처를 치유받는다.

 

다카코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저 허당인줄 알았던 외삼촌과 외숙모 사이의 비밀(?)도 조금씩 밝혀진다. 퇴근길 전철에서 읽었는데 두어시간 만에 후딱 읽어치웠을 정도.

 

영화로도 나와있다고 하는데, 한번 찾아봐야겠다.

 

나에겐 왜 헌책방을 하는 외삼촌이 없을까. 다카코가 무척 부럽다고 생각했다. 20대중반이란 그녀의 나이도.

 

 

외삼촌은 먼저 "다카코야, 이곳을 떠나기 전 내게 약속해줄게 있어."하고 운을 뗐다.

"누굴 사랑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좋아해야 해. 설령 거기서부터 슬픔이 생겨나더라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사는 따위의 쓸쓸한 짓은 하면 안 돼. 나는 네가 이번 일로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을까 봐 무척 걱정이야. 사랑하는 건 멋진 일이란다. 그걸 부디 잊지 말아라. 누군가를 사랑한 추억은 마음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아. 언제까지나 기억 속에 남아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단다. 나처럼 나이를 먹으면 그걸 알 수 있어."

외삼촌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때? 약속할 수 있겠니?"하고 물었다.

"알았어요. 약속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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