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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지난 몇 년간 책을 읽고, 기록을 등한시했더니,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에 대한 리뷰는 아쉽게도 남아있지를 않았다. 책 속, 첫 장 귀퉁이에 적어둔 메모로 그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을 유추해볼 뿐.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2012,9,13. ‘쨍’하고 살아갈 이유를 알려준 고마운 책”
강세형 작가의 두 번째 책인 <나는 다만, 조금 느릴뿐이다>를 읽고 쓴 리뷰를 찾아보니, 거짓말처럼 내가 이렇게 적어두었다. “강세형 작가의 다음 책은 에세이 대신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노트북, <이야기>폴더에 담긴 이야기들이 궁금해졌으니까.”
나의 바람이 이뤄진 것일까. 세 번째 책 <나를, 의심한다>는 내가 판단하기엔 분명 소설집이다. 여러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단편집. 그리고 나는 이 단편집이 아주, 매우, 너무나도 맘에 든다.
처음엔 나도 알쏭달쏭 헷갈렸다. 과연 이건 진짜일까? 그런데 어느 순간 만일 이 이야기가 진짜라면, 그녀에게 실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친구의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책으로 낼 정도라면 그녀에게 정말 실망이라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이건 지어낸 이야기구나. 그녀는 소중한 친구의 이야기를 이야깃거리로 삼는 그런 사람이 아니구나. 다행이다.’
내 짐작이 맞다면, 검정글씨는 에세이인 듯 하고, 파랑글씨는 소설인 듯하다.
그리고 아마도 내 짐작이 맞다면, 다음번 책은 장편소설집이 되지 않을까?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 사이의 간격이 3년이었고. 두 번째 책과 세 번째 책 사이의 간격이 2년이었으니, 감히 바라건대, 이번에는 내년에 네 번째 책이 나오길 바래본다.
좋아하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몹시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 그녀의 책이 나의 남은 생애 소중한 길동무가 되어주기를 바래마지않는다.
나는 늘 그랬으니까. 무언가가 가장 간절해지는 순간은 언제나 그 때, 사람이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 또한 언제나 그때. 이제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때였으니까. (p.29)
언젠가 아직도 만나고 있는 오랜 친구가 불쑥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마워."
며칠 전 잠을 자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직도 나랑 놀아주고 있는 몇 안 되는 내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 그렇잖아.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기적이고 모난 데도 많은데, 그런 나를 참아 주고 아직도 놀아 주는 친구들이 고맙잖아. 그때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아마도 오글거리는 건 못 견뎌 하는 나는 농담처럼 그 말을 받았을 것이다. 나만 하겠니, 너도 알잖아. 나 친구 몇 명 없는 거. 너까지 나랑 안 놀아 주면 나 외로워서 큰일 나. 그래서 너한테 잘하는 거야. 나도 이기적이라서.
(p.133)
농담 같았던 나의 그 말들은, 진심이기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비밀과 거짓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각자의 다른 삶과 다른 사정이 생겼고, 그사이 우리에겐 각자의 비밀과 자격지심과 허세와 거짓말이 생겼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해도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생겼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경계선이 아닌, 보일 듯 말 듯 어렴풋한 경계선 위의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우리는 종종 미끄러져 떨어지기도 했다. 우리 또한 선명하지 않은, 어렴풋하고 어설픈 어른이라서, 어쩌면 우리가 아직 만나고 있다는 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번번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때, 네가 나의 손을 잡아 줬다는 것,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줬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 나의 손을 놓아버리지 않은 너에게, 너의 손을 놓아버리지 않은 나에게. (p.13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