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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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기는 사람을 멀리 데려간다. 거기에 어떤 감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불현듯 다다르게 되는 그곳은 내 경험, 내 생각에 빗대어 시작된 공간이자 시점이며 순간이다. 때로는 깨달음으로, 기쁨으로, 분노로, 우울로, 각양각색의 감정 집합소인 그곳들. 


 비비언 고닉의 책을 관통하는 몇 가지 화두 중 나를 끌어당긴 건 '우정'이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그렇고, 두 단어로 말하자면 '좋은 대화'다. 뉴욕의 거리, 사람들, 공중을 떠도는 말들과 관계들 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듯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배어 나오는 통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대화, 좋은 대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우연'이 매 순간 겹쳐지는 관계, 나는 그것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슬펐다. 단순히 슬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뭐든 그렇지 않겠는가. 언어에서 명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글 곳곳에서 나와 겹쳐지는 무언가가 보였고 지극히 사적인 감정으로 그 문장들에 나를 대입했다. 그러면서... 


 뒤늦게야 깨닫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묻지 않는, 그런 말 없이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관계. 그런 관계를 찾고 싶어 하는 것, 그게 나이고, 인간이구나. 그게 안 돼서 매번 실망하고 자책하고 돌아서는구나.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열린' 마음, 그걸 갖추기가 그렇게 어렵다. 자기 비하 성향은 이미 존재하는 것마저 가려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다. 



" 원하는 일을 하면 기대에 못 미칠 게 분명했고,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들을 따라가봤자 거절당할 게 뻔했으며, 암만 매력적으로 보이게 꾸며봤자 그저 평범해 보일 것이었다. 계속 움츠러들던 영혼은 그렇게 손상된 자아를 둘러싼 모습으로 굳어져 버렸다. 나는 일에 몰두했지만 마지못해 그럴 뿐이었고,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은 있어도 두 걸음을 옮긴 적은 없었으며, 화장은 했지만 옷은 되는대로 입었다. 그 모든 일 중 무엇 하나라도 잘 해낸다는 건 별생각 없이 삶과 관계 맺는 일, 다시 말해 내 두려움을 사랑했던 것 이상으로 삶을 사랑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줄 모르는 일이었다." (142/195)


 손상된 자아, 두 걸음 옮기지 못하는 것, 두려움을 사랑하는 일... 저기, 혹시 내 얘긴가요? 좋고 많은 이야기들 다 놔두고 이런 구절이 눈에 훅 들어온다. 그리고 이젠 나도 좀 달라져야지 생각한다. 이 생각은 뻔한 전개로 이어진다. 나는 비비언 고닉이 아니고, 깨닫는다고 변화하는 건 아니니까. 



" 좋은 대화란 공통된 이해관계나 계급의식이나 공유된 이상 따위보다는 기질에 달린 문제다. "그게 대체 뭔 소린데?"라고 따지기보다는 "뭔 말인지 딱 알지" 하며 자기도 모르게 반색하게 되는 기질. 그런 공통의 기질이 있으면 대화는 자유로우면서도 거침없는 흐름을 어지간해선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기 마련이다. " (110/195)


 저자의 다른 책에도 언급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맞는 말이고 당연해 보이는데, 일상에서도 그렇다고 느끼는데, 유독 이 구절이 뇌리에 오래 남아있다. 친구들이 떠올랐고 '공통의 기질'을 가졌을, 그래서 대화가 좋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 내게도 있다, 그런 '우연의 순간'들이. 그러나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인 동거인과 나에게는 대화에서 필요한 '공통의 기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걸 깨닫고 표현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를 자주 내뱉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었고, 나중에는 알고 싶은 마음을 버렸는데, 귀를 열어도, 되물어서 답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게 무슨 말이야?'는 아직 서로 자주 쓰는 말이다. 몸으로 막연히 느끼던 것을 책의 언어로 마주하는 일이 기쁨이면서 슬픔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과의 관계이고 세상 가장 따스한 것이 또 인간과의 관계이다.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아주 절실하게. 인생에서 말이 통하는 친구만큼 필요한 게 또 있을까? 우정은 곧 사랑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심리적 거리다. 고닉도 '절친' 레너드와 한번 만나면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와의 대화가 그리워진다고. 너무 찰싹 붙어있지 않기. 


 다른 의미에서 또 슬펐던 부분이 있다. 노작가 앨리스의 요양원. 그가 요양원에서 보낸 7년이라는 시간. '좋은 대화'를 할 수 없어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생활. 어떤 모양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노년에는, 앨리스에게 어떤 식으로든 가닿은 여러 명처럼 그렇게 나와 연결된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나는 좋은 대화를 계속 갈망할 수밖에 없겠다. 노년을 생각하기 전에 지금, 여기에서. 읽고 쓰고 말하면서. "뭔 말인지 딱 알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위해서. 지금 그런 관계인 친구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새 친구와, 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낯선 이와도 우연의 순간을 나눌 수 있기를, 매일 보는 이와도 그런 순간을 맞을 수 있기를, 책을 읽으면서도 자주 그럴 수 있기를. <짝 없는 여자와 도시>가 내게 그런 순간들을 주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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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6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6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3-17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럴 수 있을 거예요☺️

2023-03-17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7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에나 2023-03-1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에서 제가 별표 막 해둔 문장이랑 똑같아요. 저도 동거인과는 대화가 아예 안 되는데 (좋은 대화만이 아니라)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남성에겐 그런 기대도 안 했고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생각도 안했다는 걸 깨닫고...아악.ㅋㅋㅋㅋ
내가 한 마디 하면 그 뒤에 숨어있는 열 마디를 캐치해주는 대화가 있죠. 쾌락 폭발!그리고 좋은 대화를 나누려면 (고닉과 레너드처럼) 적절한 거리감과 은은한 그리움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고로 동거하면서는 힘들닼ㅋ)

난티나무 2023-03-17 20:24   좋아요 1 | URL
오홍 처음부터 기대를 안 하셨다니 역시! 저는 기대를 했더랍니다...ㅠㅠ 배우자 선택 기준도 그거였는데... 하... 안 되더라고요. ㅎㅎㅎ
동거하면서 그게 되려면 진짜 거리 필요하고요, 은은한 그리움, 음 이건 어째야 하나... 주말부부 정도면 딱 좋을 거 같은뎅, 아니 한 달에 한 번 보는 사이 ㅋㅋㅋㅋㅋ

baboya333 2023-05-0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난티나무가 떠오르네요.

난티나무 2023-05-05 13:1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ㅋㅋㅋㅋㅋ
 

 지난 겨울 나는 


 어땠나. 


 이젠 잊었다고 생각할 때쯤 찾아오는 무기력 상태, 온몸에 힘이 빠지고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몸, 몇 년에 한번씩 그랬는데도 매번 새로운. 얼마간 아프고 나서 이건 갱년기 증세다,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지금, 그건 과연 갱년기 증세였을까, 묻는다. 비슷한 증상, 특히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자주, 그랬다. 예전 한번은 초기공황이라고 생각했다. 더 폭넓게 불안장애라고 하자. 그렇게 혼자 명명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불안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 불안해서 몸이 아픈 모든 증상들이 딱 들어맞게 설명되는 단어였다. 확실히 지난 겨울에는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었다. 시기도 딱 맞다. 들쑥날쑥하던 월경을 한 달 내내 했다. 이렇게 명료한 증거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장애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내내 불안했기에. 불안이 아픔을 가져왔는지, 호르몬이 불안을 가져왔는지가, 중요할까. 


 잠깐,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떻게 사람을 형성하는가, 생각한다. 담대하지 못해서, 용기가 없어서,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갈 만한 꿈과 포부가 없어서, 나는 나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그것 역시 어린 시절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불안은 나와 함께 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학교를 다니는 것도, 집에 돌아가는 것도, 밤에 잠드는 것도, 꿈 속에서도, 항상. 내가 그렇지, 성격 어디 가나, 이런 식으로 나를 외면했던 시절이 길었다. 언젠가부터 내 감정, 내 생각, 내 몸을 이루고 있는 팔할이 불안이라는 생각이 들자, 많은 부분들이 이해되었다. 이해한다는 말은 그저 말 뿐이라 그것이 행동을 바꾸거나 생각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정확히 무엇을 이해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아무도, 그것이 내 자신이라 하더라도 한 치 오차 없이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주관적 판단일 뿐. 그래도 이해되었다고 쓴다. 어쨌거나 납득은 되니까. 바깥에서 이유를 찾고 원망하다가 드디어 안으로, 안으로. 


 불안은 상상을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어난 상황을 가정한다. 상상은 불안을 낳는다. 무한 반복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온갖 증거를 가지고 상황을 증폭시킨다. 눈빛 하나, 동작 하나, 말 한 마디에 엄청난 무게를 부여한다. 그것들은 모두 나를 구덩이에 파묻는다. 정확하게 보이는 것들은 정확하게 보여서,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렇지 않아서, 괴롭다. 그러나 정확하게 보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얼마나 정확할 수 있는가? 


 지난 겨울, 나는 불안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 혹은 드러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하면. 지금 이렇게 불안을 쓰는 이유는 어느 쪽일까. 어느 쪽이든 불안은 말과 행동과 생각을 잠식한다.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꺼내지 못하고 엉뚱해진다. 불안하다는 건 대상이 누구건 무엇이건 나를 대상 아래에 위치시키는 일이다. 나는 그 대상 앞에서 잃을 것이 있다. 그 대상이 두렵다. 그러므로 불안하다는 건 대상이 누구건 무엇이건 대상 아래에 위치시킨 나를 대상과 동등한 위치로 혹은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욕심이다. 잃고 싶지 않아서, 두려워하지 않기 위하여. 그래서, 불안은 자주 실패한다. 실패함으로 일상을 지배한다. 불안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면서 흘려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다시 불안이 된다. 깨닫는 것으로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올 봄은 좀 환해질 지. 


 마당의 수선화 한 줄기를 꺾어다 갈색 맥주병에 꽂아 책상에 두었다. 봉오리는 하룻밤 사이에 만개한 꽃이 되었다. 집안 온도가 너무 높은가, 좀 천천히 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노란 꽃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아름다운 대칭. 중심의 정확함. 나무랄 데 없이 선명한 색. 코를 스치는 향. 경이롭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엔 불안하지 않다. 애석하게도 너무 짧은 순간. 때를 안다는 건 직관적 능력이다. 식물처럼,이라는 생각이 도움이 될까. 파묻힌 구덩이에서 새로운 싹을 올려보내고 그렇게 내린 뿌리로 구덩이가 가득 차는 날이 올까. 봄은 매번 오고 있는데. 매번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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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3-16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동적주절거림, 좋아합니다.^^

난티나무 2023-03-16 14:05   좋아요 0 | URL
좀 부끄러워요.^^;;;
 

<남성 특권>에서 케이트 만이 언급하는 책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록산 게이 <헝거> 

- 앤절라 가브스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다> 

-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보이지 않는 여성들> : <보이지 않는 여자들>

- 지아 톨렌티노 <트릭 미러> (이름만 언급됨) 

-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 다시 로크먼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 제마 하틀리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패트릭 해밀턴 <천사의 거리> : <가스등>(연극, 영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인용이 많이 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언급' 정도인 책들이다. 읽은 책이 많아 반가웠다. 이 목록에 포함할 수 없는 책이 한 권 있는데 잰시 던의 <아기를 낳은 후에 남편을 미워하지 않는 법>이라는 책이다. 저자 케이트 만은 이 책을 꽤 인용하면서 '가사노동의 문법'을 이야기한다(6장). 길게 인용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많은 책들에서 비슷한 말을 듣는다. 그게 몇 퍼센트이든, 어떤 식이든,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훌륭하다고. 왜 남자들이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지 원인을 외면한 채 쳇바퀴 돌듯 이래라저래라 해결책의 모양을 한 조언들. 이 장 뒷부분에 인용된 던이라는 저자의 말은 충분히 '빡'칠 만하다. 뭐라고 하느냐면. 


" 나는 우리가 가사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다. 나는 대개 상징적인 톰의 제스처가 쌓이고 쌓여 내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깨닫고는 놀란다(그리고 떄로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낀다). 그가 꼭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가사노동을 두고 씨름할 필요는 없다." (198) 


그 정도면 많이 '도와'주는 거지, 뭘 더 바라냐는 말. 그래도 네 남편은 집에서 잘 하지 않냐는 말.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는 말. 잰시 던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들에 다시 파묻혔다. 자신의 위치를 다시 세우지 못했다. 결국 '도움을 받는다는 인식'을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다는 말인가. 안 되니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이 책이 그에게 어떤 과정 중의 하나일 수 있고 그의 경험과 생각을 써서 책으로 낼 수도 있지만, '가사노동 분담'과 관련해 이 책의 내용과 일화들에 공감하며 맞아맞아 할 여성들이 많기는 하겠지만, 그렇지만, 이건 아니잖아.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케이트 만은 이 책을 인용했다. 문제는 이런 책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 책이 아니라도 일상에 넘쳐흐른다는 것, '나는 밖에서 일 하잖아'에 적절하게 받아치는 사람도 적다는 것. '남성 특권'에 대해 남성들은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 


이 장은 이렇게 끝난다. 


" 던의 기록에 따르면 톰은 여전히 자기 몫의 집안일을 완수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던은 톰에 대한 깊은 고마움을 내비치며 책의 결론을 맺는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나의 남편 톰에게 영원히 감사를 표한다. 당신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 (198~199)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하... 남편에게 바치는 책이란 말인가???(뭐 제목부터가 그런 느낌...) 예... 잘 사세요... 


저 책 저자(잰시 던)도 자기 검열한 건 아닌가 싶다. 남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를 남편 아래에 두고  알아서 기는 방식 : 오,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저는 당신을 완전 사랑한답니다??? (그러니 계속 이뻐해 주세요???) 


아내들아, 그대가 옳은 말을 하는데 상대방이 기분 나빠 한다면 그건 그 사람 몫이다. 상대방 몫까지 내가 신경쓰고 알아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 남편들아, 상처를 받는다면 그 상처 견뎌라. 기분이 나쁘다면 이유를 고민해라. 옳은 말에 상처를 받고 기분이 나쁜 건 특권의식이 침해당해서일 확률이 백퍼다. 


모든 일은 잘 하기 위해서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 옳은 말을 끝까지 하는 것도, 잘못을 깨우치는 것도, 습관을 바로잡는 것도, 절대로 한번에 되지 않는다. 실패도 좌절도 잦다. 중요한 건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물러서지 않는 태도다. 버티고 서서 할 말을 한다. '내알바아님모드'를 켠다. 이게 안 되면 진다. 우리는 대체로 그래서 너무 자주 져 왔지 않나? 























+++ 그냥 넘어가면 아쉬우니까 목록의 책들 상품넣기. 그러나 던의 저 책은 빼겠다. 넣는 게 낫나 잠시 생각했다...




















































남성들이 더 일하지 않는 것은 건망증 때문이다. 고의적인, 상대적으로 행복한 무지의 상태 말이다.
......
이런 조건에서도 남성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여성들로서는 그들에게 좀 더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노동이 되기 때문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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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13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아 증맬루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이게뭐예요 ㅠㅠ 제가 읽게 된다면 엄청 딥빡와서 던져버릴 책이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티나무 2023-03-13 15:5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저도요. 절대 안 읽을 책 목록에 올라가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3-03-13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또 언급되는 책들이 많네요?
저는 시녀 이야기 한 권만 읽은...ㅜㅜ
헝거는 사다 놓기만ㅋㅋㅋ
그나저나 3 월책은 아직도 안 산?
빨리 주문하러 가야겠습니다.
벌써 13 일...ㅜㅜ

난티나무 2023-03-13 15:55   좋아요 1 | URL
네 책읽는나무님, 잠깐씩 언급되기만 해요. 그래도 좋은 책 많죠?
아직 많이 남았으니 화이팅! 입니다~~^^

시에나 2023-03-14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댓글 달려고 로그인했슴다..

<아기를 낳은 후에 남편을 미워하지 않는 법> >>> 이 책, 역시나 저런 빡치는 내용이 담겨있었군요?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들었.... 좀 미워하면 안 되나요??) 저게 딱 ‘힘퍼시‘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 맞아요. 저런 식으로 여자들이 정신승리하면서 ‘그래도 내 남편 정도는 낫다. 고맙다‘라고 .심지어..‘페미니즘‘을 슬쩍 빌려와서 하는 이야기가 진짜진짜진짜 엄청 많져...그러면서 결론은 우리는 서로를 고마워하고 연민하면서 살아야 한다. 뭐 이따위.. 으아아악. 그리고 그게 사랑이라고도 하더라고요. 왜? 그걸 사랑이라고 믿고 부르게 하는 그건 무엇인가!! 정말 알고 싶고요..

˝물러서지 않는 태도다. 버티고 서서 할 말을 한다. ‘내알바아님모드‘를 켠다. 이게 안 되면 진다.˝ >>>그리고 이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제 말이요! 저는 이게 많은 여자들에게 어려울까 꽤 고민을 해보았는데, 불안과 외로움 때문인 거 같아요. 이렇게 하면 사랑받지 못하고 외로워질까 하는 것. (그런데 좀 외로워지면 안됩니까!)

저는 저 책을 읽고 서평을 써봐야겠습니다. 여자들을 더욱 더 가부장제 속으로 안온하게 안착시키는 저런 책들 가려봐야하니까... (정희진 샘이 읽지 말아야할 책들이야말로 비평을 써야 한다고 했...)

난티나무 2023-03-14 21:05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남편을 미워하는 법>이라는 제목을 만들어보았습니다.ㅋㅋㅋㅋㅋㅋ
시에나님 읽고 자근자근 밟아주세요. 기대할게요.
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읽지 말아야 할 책들이...ㅎ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저도 읽어야???^^;;;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 남자에게 사랑받아야만 여성이다,라는 명제. 이성애 감옥이죠, 뭐. 거기서 벗어날 수 없으니. 존재의 이유가 그것이면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거니까. 여성 동료를 만듭시다. 우리의 살 길은 거기에 있다!
 

















6장 통제되는 몸: 낙태 금지법의 진짜 욕망 




" "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데 참여했다는 이유로 남성들을 기소하는 신선한 전략(그러나 그 고발에는 확고한 법적 근거가 있다)은 지금껏 우리가 이 논쟁을 부각해온 방식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남성이 평생 어린애로 사는 것과 달리 임신한 여성은 책임감 있게 행동해왔다. 우리는 여성들의 성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당연시하면서도, 동일한 통제를 남성에게 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남성과 임신중단을 함께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 둘을 엮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여성이 남성 없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 오버먼&볼 (162 인용구) 


"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을 통제하고, 여성이 지정된 남성에게 아이를 "제공"해줄 거라는 이미 만연해 있는 기대를 여성에게 더욱더 강요하려는 것이 낙태 반대 운동가들의 진짜 욕망이다. " (163) 


" 그러므로 우리는 낙태 반대 운동을 여성혐오적인 수많은 강제 메커니즘의 한 가지 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매커니즘은 여성에게 돌봄노동을 강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64) 


" 또한 한 번 엄마가 되면 영원히 엄마여야 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로 혹사당하는 차원을 넘어 주변 사람들의 감정적, 물질적, 도덕적 필요를 책임지는 존재 말이다. 말하자면 여성은 [아이 외에] 다른 이들에게까지 엄마가 되어 원조와 위로, 양육과 사랑과 관심을 제공해야 한다. 앞 장에서 살폈듯 여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그런 도덕적 재화를 요청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리고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여성이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가질 경우 남성은 육아 의무를 공동으로, 평등하게 져야 한다는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 (165~166) 


" 임신한 신체를 통제하는 것은 여성들의 신체를 규제하고, 감시하고, 점차 기각해버리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이와 유사한 흥미로운(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사례는 트랜스젠더 반대 운동으로, 그 운동이 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트랜스여성의 신체를 감시하는 데 집착한다는 사실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 (169) 


" 그렇다면 왜 우리는 트랜스여성의 (혹은 다시 말하지만, 트랜스여성을 가장하려는 시스젠더 남성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는 걸까? 그리고 왜 시스젠더 남성들이 모든 여성들에게 가하는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 없는 걸까? 트랜스포비아transphobia, 특히 여성혐오와 트랜스포비아가 위험천만하고 유해하게 교차하는 장인 트랜스여성에 대한 혐오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이 될 것이다. " (171) 


" "트랜스여성의 신체는 본질적으로 남성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트랜스여성의 질은 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질이 트랜스여성 신체의 도덕적 구조를 완성시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트랜스여성은 자신의 신체 구조는 물론 자신이 권리를 갖는 그 성기(신체 구조를 도덕적으로 완성시켜주는 것) 또한 '잘못 재현'한 것이 된다." 

 배처가 지적한 이러한 역학은 필연적으로 특권의식이라는 중요한 귀결에 도달한다. 누군가 성별이 여성으로 인식될 때 그 사람의 성기 형태를 (심지어 옷을 다 갖춰 입고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한눈에 틀림없이 알아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이런 논리는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한눈에 바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특권의식으로 확장되며, 시스젠더 남성에게 이성애 규범에 기초한 섹스와 생물학적 아동을 제공할 수 없는 트랜스여성일 경우 스스로를 여성으로 제시해선 안 된다는 의무를 함축한다.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트랜스여성에게는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야 할 의무가 결코 없다. " (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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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이 단편에는 전반적으로 로버트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거리들이 많다. 그는 마고와 데이트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적어도 내 판단에는 그렇다. 그리고 그는 마고를 유혹하기 위해 사소한 속임수를 쓴다. 자신이 더 부드러운 사람으로 보이도록 없는 고양이 두 마리를 있다고 말한다. 또 마고가 그에게 이별을 고하자 그녀에게 전형적인 여성혐오적 발언을 퍼붓는다. ..." (91) 


자, 우리 여성들은 '조심'해야 할 목록에 또 한 가지를 추가해야 했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남자를 다 믿지 말지어다. (그냥 세상의 모든 남자를 믿지 말라고 하는 건 어때???) 예전에 본 드라마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었다. 여자를 납치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로 애완동물을 이용하는 남자. 실제로 동물과 함께 생활한다고 하면 경계심을 늦추는(푸는)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조심해! '척' 하는 인간남자들을! 


그러나 언제까지 여성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할 것인가? 언제쯤, 거절했다는 이유로 보복당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인가? 




" 성적 행위에 따르는 단 하나의 명백한 윤리적 의무가 있다면, 그건 상대가 그 행위를 원하거나 진심으로 동참하고자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파악해야 할 의무다. 실제로 모호한 면이 남아 있다면, 극도의 신중을 기하는 것이 낫다. 신속하게 그 행위를 멈추고 단념하면 된다. " (93) 



 우리가 접하는 (종류를 막론한) 거의 모든 미디어는 이성애 남녀의 성적 행위를 판에 박은 듯 똑같이 묘사한다. 그렇다, 아직도 그러고 있다. 손목을 잡아채고 함부로 끌어안으며 눈만 마주치면 키스를 하고 사귀자는 말은 키스 행위로 받고... 우리가 마땅히 보고 접해야 할 '성적 행위에 따르는 윤리적 의무'는 어디로 갔나? 하긴, 이 세상은, 여자 몸의 모든 부분이 조각조각 상품화되고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이런 망할 세상에서 윤리적 의무 운운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을 정도로 더럽다. 이성 간의 사랑 따위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묘사(재현) 제대로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언제까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폭력적 환타지물을 접해야 하나? 


(20년도 전에 있었던 일을 드라마를 보면서 끄집어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래 너랑 나랑 오늘부터 1일 하자, 했던 그 날, 키스를 '당'했다. 내가 하자고 한 것 아님. 와, 빡친다. 그때 그 남자가 마침 내 눈앞에 앉아있었으므로 사정없이 대거리를 했다. 이 나쁜 시키야!! 이느므 남자 시키야!!!!!!!!!!!!!!!!!!!!!!! ($%$##$험%^$%#한@#%^&^&*_*&말&^%$#)





"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또 다른 경우의 가능성에 대해 짐작케 한다. 즉 만약 의심할 여지없이 적극적 동의로 보였던 [마고의] 행동이 일종의 연기라면 어떨까? 

......

 이는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편히 다루기 어려운 화두다. 이 모든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원치 않는 섹스 혹은 강압에 의해 벌어지는 (그러나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섹스가 어떠한지 보여준다. 그런 압박은 가부장제적 사회가 짜놓은 대본과 만연해 있는 남성의 성적 특권에서 비롯되며, 마고가 로버트를 두고 나오는 일이 무례하다거나 심지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 (94) 


"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성적으로) 거절당한 남성의 상심을 그토록 중요하고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가? 왜 우리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다친 자존심을 보호하거나 소중히 다뤄줄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것인가?(이 질문은 바로 앞의 질문과 관련이 있다.) " (93~94) 


" 요약하자면 이렇다. 여성은 남성의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져줄 때 보상을 받는다. 남성의 마음을 보듬지 않으면 여성은 처벌받게 되어 있다. " (95) 



그러니 여성은 뻔뻔해져야 한다. 내가 나를 뻔뻔하다고 생각해봤자 다른 이들의 시선에는 그저 조금 당당한 정도로만 비춰질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시회적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므로. 자꾸 움츠러들도록 되어 있으므로. 거절은 무례하지 않다. 무례하고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그건 가스라이팅의 결과다. 그걸 깨달아야 한다. 일상에서 거절이 잦을 때 거기에서 오는 압박(처벌)을 이겨내야 한다. 모른 척 할 줄 알아야 한다.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생까는 기술이 필요하다. 남자 우쭈쭈는 그만하자. 



(4장 달갑지 않은 섹스: '동의'라는 함정)



















+ 성적 행위에 동의했다고 해서 그것이 100% 완벽하게 적극적 동의는 아닐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심 가능한 것이며 그 변심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동의'만을 강조하면 안 된다. 성적 동의 관련 성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 우리가 섹스에서든 다른 상황에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관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언제일까? 동의의 수사는 너무 자주 욕망이 언제나 대기하고 있으며, 우리 안에 완전히 형성되어 있고 언제든 우리가 꺼낼 수 있는 무언가라고 암시한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은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항상 아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했는지도 몰랐던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 무언가를 하는 중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알지는 못하며 항상 말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거추장스럽다며 옆으로 치워버리지 말고 섹스의 윤리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 (70,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1장 동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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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2023-03-1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다 읽었습니다. 요즘 느티나무님 읽으시는 책들..제가 부지런히 따라가는 중. ㅎㅎ (이성애 탐구는 계속....) 뒷부분에서 갑자기 너무 확 열어버리는 느낌이라 살짝 아쉬웠으나, 동의문화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는 거 같아 좋더라고요. 왠지 <남성 특권>이 저에겐 더 속시원할 책일 듯한... 이 책도 읽어볼래요!

난티나무 2023-03-14 21:08   좋아요 0 | URL
음 그렇죠. <내일의 섹스...>와 <남성 특권>은 비슷하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할까, 저는 <남성 특권>이 더 순한 맛으로 느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