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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ㅣ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책 읽기는 사람을 멀리 데려간다. 거기에 어떤 감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불현듯 다다르게 되는 그곳은 내 경험, 내 생각에 빗대어 시작된 공간이자 시점이며 순간이다. 때로는 깨달음으로, 기쁨으로, 분노로, 우울로, 각양각색의 감정 집합소인 그곳들.
비비언 고닉의 책을 관통하는 몇 가지 화두 중 나를 끌어당긴 건 '우정'이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그렇고, 두 단어로 말하자면 '좋은 대화'다. 뉴욕의 거리, 사람들, 공중을 떠도는 말들과 관계들 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듯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배어 나오는 통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대화, 좋은 대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우연'이 매 순간 겹쳐지는 관계, 나는 그것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슬펐다. 단순히 슬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뭐든 그렇지 않겠는가. 언어에서 명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글 곳곳에서 나와 겹쳐지는 무언가가 보였고 지극히 사적인 감정으로 그 문장들에 나를 대입했다. 그러면서...
뒤늦게야 깨닫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묻지 않는, 그런 말 없이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관계. 그런 관계를 찾고 싶어 하는 것, 그게 나이고, 인간이구나. 그게 안 돼서 매번 실망하고 자책하고 돌아서는구나.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열린' 마음, 그걸 갖추기가 그렇게 어렵다. 자기 비하 성향은 이미 존재하는 것마저 가려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다.
" 원하는 일을 하면 기대에 못 미칠 게 분명했고,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들을 따라가봤자 거절당할 게 뻔했으며, 암만 매력적으로 보이게 꾸며봤자 그저 평범해 보일 것이었다. 계속 움츠러들던 영혼은 그렇게 손상된 자아를 둘러싼 모습으로 굳어져 버렸다. 나는 일에 몰두했지만 마지못해 그럴 뿐이었고,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은 있어도 두 걸음을 옮긴 적은 없었으며, 화장은 했지만 옷은 되는대로 입었다. 그 모든 일 중 무엇 하나라도 잘 해낸다는 건 별생각 없이 삶과 관계 맺는 일, 다시 말해 내 두려움을 사랑했던 것 이상으로 삶을 사랑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줄 모르는 일이었다." (142/195)
손상된 자아, 두 걸음 옮기지 못하는 것, 두려움을 사랑하는 일... 저기, 혹시 내 얘긴가요? 좋고 많은 이야기들 다 놔두고 이런 구절이 눈에 훅 들어온다. 그리고 이젠 나도 좀 달라져야지 생각한다. 이 생각은 뻔한 전개로 이어진다. 나는 비비언 고닉이 아니고, 깨닫는다고 변화하는 건 아니니까.
" 좋은 대화란 공통된 이해관계나 계급의식이나 공유된 이상 따위보다는 기질에 달린 문제다. "그게 대체 뭔 소린데?"라고 따지기보다는 "뭔 말인지 딱 알지" 하며 자기도 모르게 반색하게 되는 기질. 그런 공통의 기질이 있으면 대화는 자유로우면서도 거침없는 흐름을 어지간해선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기 마련이다. " (110/195)
저자의 다른 책에도 언급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맞는 말이고 당연해 보이는데, 일상에서도 그렇다고 느끼는데, 유독 이 구절이 뇌리에 오래 남아있다. 친구들이 떠올랐고 '공통의 기질'을 가졌을, 그래서 대화가 좋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 내게도 있다, 그런 '우연의 순간'들이. 그러나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인 동거인과 나에게는 대화에서 필요한 '공통의 기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걸 깨닫고 표현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를 자주 내뱉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었고, 나중에는 알고 싶은 마음을 버렸는데, 귀를 열어도, 되물어서 답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게 무슨 말이야?'는 아직 서로 자주 쓰는 말이다. 몸으로 막연히 느끼던 것을 책의 언어로 마주하는 일이 기쁨이면서 슬픔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과의 관계이고 세상 가장 따스한 것이 또 인간과의 관계이다.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아주 절실하게. 인생에서 말이 통하는 친구만큼 필요한 게 또 있을까? 우정은 곧 사랑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심리적 거리다. 고닉도 '절친' 레너드와 한번 만나면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와의 대화가 그리워진다고. 너무 찰싹 붙어있지 않기.
다른 의미에서 또 슬펐던 부분이 있다. 노작가 앨리스의 요양원. 그가 요양원에서 보낸 7년이라는 시간. '좋은 대화'를 할 수 없어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생활. 어떤 모양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노년에는, 앨리스에게 어떤 식으로든 가닿은 여러 명처럼 그렇게 나와 연결된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나는 좋은 대화를 계속 갈망할 수밖에 없겠다. 노년을 생각하기 전에 지금, 여기에서. 읽고 쓰고 말하면서. "뭔 말인지 딱 알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위해서. 지금 그런 관계인 친구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새 친구와, 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낯선 이와도 우연의 순간을 나눌 수 있기를, 매일 보는 이와도 그런 순간을 맞을 수 있기를, 책을 읽으면서도 자주 그럴 수 있기를. <짝 없는 여자와 도시>가 내게 그런 순간들을 주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