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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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가 현실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슬프면서도, 그래도 희망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책. 남성 페미니스트를 응원한다. 더 깊은 사유를 바라며 별 하나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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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5번 레인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2
은소홀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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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성장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주위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보다, 그들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말없이 옆에 있어줄 줄 알고 적당한 거리도 두며 늘 믿음을 주는, 그런 사람인가. 자괴감 몰려오지만 반성&다짐하게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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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 -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때문에 억울하고 화가 나는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실제로 바꾼 놀라운 실험
이브 로드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 / 메이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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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 보관함에 담아두긴 했으나, 내용에 크게 끌리지는 않았었다. 집안일을 100장의 카드로 정리해 게임을 하듯 그것을 나누라니. 시작부터 못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었거나 아예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거나. 

한동안 나도 내가 하는 집안일을 모조리 종이에 써보자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엇을, 어디까지 적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서 시작도 못했다. 그 대신 반대의 방법을 택해 다른 식구들에게 자기가 알아서 하는 집안일을 적어보라고 했다. 결과는 대실패. 나의 의도는 빗나가버렸다. 내가 수시로 불평하며 이야기를 해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끊임없이 반복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보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면 자극 요법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테이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때서야 이 책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어떤 방법이든, 그것이 집안일의 공정한 분배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어떤 책이라도 읽겠다는 마음이. 그동안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늘 고팠던 가르침 중 하나가 집안일 분배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기에. 방법에 관한 이런 책도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많이 나와야 하는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 요즘 자주 하는 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어서인지 나쁘지 않아, 해봐야 겠어, 생각했다. 술술 읽히기도 한다. 단순한 일의 분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주어 좋았고. 집안일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을 찾으라는 격려도 좋았다. 이 프로젝트가 남편들에게 어떤 점이 좋은지를 적은 부분은 그대로 보여주어도 효과가 있을 듯 하다. 협상 테이블에 앉힐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게임을 통해 진정한 삶을 되찾고 관계 변화의 경험을 누리고 싶다면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규칙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시간에 가치를 매기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각자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균형 있고 재조정한다는 목표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다. 파트너에게 시간을 인식하는 틀을 바꾸라고 요구하기 전에 당신 스스로도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남편이 화상 회의를 하는 2시간은 내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2시간보다 더 값진가? 즉, 무대 뒤에서 집안일을 하는 데 드는 시간은 무대 위에서 유급 활동을 하는 데 드는 시간과 같은 가치를 갖는가?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파트너의 대답은 어떤가? 당신과 파트너 모두 서로의 시간을 한정된 자원으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집안일 대부분이 여성에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다. 두 사람의 시간 모두 다이아몬드다. 둘 다 똑같이 하루 24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당신의 시간이 파트너의 시간과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스스로 확신해야만 육아와 가사 노동 분담이 동등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은 이것이 아닐까. 내 시간이 파트너의 시간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 더 나아가 확신하는 일. "남편은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해요. 그런 사람한테 집안일을 해 달라고 할 순 없잖아요." 같은 말들을 내뱉지 않기 위하여 내 시간과 노동력이 가치 있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일. 집안일을 나누자고 제안하기 전에 나의 확신을 먼저 세우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파트너가 조목조목 어쩌구저쩌구 그럴싸한 언어로 공격한다면 받아칠 여유 없이 금세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 지금껏 내가 집안일 분배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일단 엎드려 자세인 것은 이것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이 남성보다 멀티태스킹에 더 뛰어나다는 가설을 뒷받침해 줄 연구는 없습니다. 사실, 멀티태스킹은 남녀 누구에게나 좋지 않아요. 우리 뇌는 한 번에 하나 이상의 복잡한 일을 처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여성이 멀티태스킹에 더 강하다는 걸 입증하려고 설계한 연구에서도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짐작에, 여성들이 가정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건 그 일을 더 잘하는 쪽으로 생물학적 변이가 일어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문화적인 영향이라고 봅니다. 여성이 그걸 더 잘한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믿는 거죠." 


실제 생활에서 다른 식구들(모두 남자)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못한다. 그 하지 못하는 일을 나는 한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런 거란 말이지. 그리고 어쩌면 멀티태스킹을 남자들이 잘 못하는 건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 그러니까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집 안의 누군가가 늘 그런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 옆지기는 자기 가족의 생일을 정확히 모른다. 어떻게 엄마 아빠 생일도 모르냐고 했더니 늘 (여)동생이나 형수가 챙겨 미리 알려줘서 외울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오마이갓.




"당신은 장보기 카드를 갖고 있다. 당신의 아들은 머스터드 소스를 뿌린 핫도그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런데 냉장고와 식료품 창고에 머스터드 소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것이 바로 인지(Conceive)다. 이제 당신은 매주 새로 짜는 장 볼 목록에 머스터드 소스를 추가한다. 가게에 언제 갈지 일정을 잡고 파트너와 다른 식구들에게 추가할 게 없는지 확인한다. 이렇게 계획(Plan)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상점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와 아들이 핫도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기 전에, 냉장고에 머스터드 소스를 넣는다. 이것이 실행(Execute)이다. 

공정한 게임에서 CPE를 한다는 것은 특정 카드를 가진 사람이 혼자 알아서 - 누가 상기시켜 주거나, 적당히 하거나, 핑계를 대거나, 아니면 완수한 일에 대해 '잘했다'는 칭찬을 바라지 않고 - 인지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그건 비현실적이야. 우리 방식도 아니고, 해 본 적도 없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렇지 않다. 나는 다양한 커플들을 대상으로 시범 테스트를 한 결과, CPE를 잘 따른 부부들이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소극적으로 드러내는 적대감을 멈추고 공정하고 능률적으로 집안일을 분담함으로써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걸 수없이 봐 왔다." 


확실히 저자의 카드를 이용한 방법은 말보다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 같다. 조금씩 집안일을 분배하려고 아이들에게 맡긴 일은 언제나 내가 그것을 '인지'시켜야 겨우 행해진다. 결국 나만 피곤한 건 매한가지인 상태. 

며칠 전 저녁의 일이다. 저녁식사 후 씽크대의 그릇 정리와 뒷마무리를 맡은(내가 맡긴) 큰넘이 세척기에 들어가지 못한 그릇들을 씻고 있었다. 옆지기가 가득 찬 주방 쓰레기통을 비우려 해서 내가 말렸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음식찌꺼기 등이 나오는데 씽크대 정리가 끝나야 쓰레기봉지를 묶을 수 있으니까. 한참 후 (옆지기에 의해) 묶인 쓰레기봉지를 작은넘이 들고 나갔다. 쓰레기와 재활용 용기 등을 현관 밖 쓰레기통에 가져다 넣는 것은 작은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옆지기에게 이 간단하고도 복잡한 일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주방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모아 바깥에 내다놓는 일을 세 사람이 했을 뿐 아니라, 앞서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식의 집안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내가 식구들에게 바라는 것도 저자의 말처럼 인지, 계획, 실행에 이르는, 알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을 하는 모습이다. 

나는 카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협상 테이블에 세 남자가 기꺼이 앉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로 문장을 바꾼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라. 단, 신중하게. 




"당신의 삶에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할 때, 아니면 그것을 꿈꾸거나 상상하기 시작할 때 그때가 바로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는, 죄책감과 미안함이라는 강풍에 떠밀려 머릿속을 시커멓게 뒤덮는 온갖 허드렛일의 짙은 먹구름에 가장 취약할 때다. 있는 힘껏 저항하라. 삶의 열정과 목적을 되찾는 것에 대해 나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시간에 대한 잘못된 메시지들은 무시해 버려라. 그런 메시지는 당신이 유니콘 스페이스에서 결실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결국 그 공간까지 삼켜버릴 테니까 말이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 저편에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게 있다. 그것을 절대 잊지 마라." 


죄책감과 미안함. 이걸 떨쳐버리려고 무진장 애쓴다. 미안한 감정이 생기면 내가 왜 미안해야 하지, 생각하면서도 찜찜한 느낌이 남는 건 아직 어쩔 수 없다. '머릿속을 시커멓게 뒤덮는 온갖 허드렛일'도 되도록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물론 잘 안 된다. 최소한의 일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어떻게 하면 계속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한다. 식구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앞으로 내가 제안할 생활규칙과 집안일분배의 기준&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 역시 쉽지는 않다. 반발도 예상된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 '두려움 저편에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게 있다'를 잊지 말아야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협상 테이블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집안일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날을 되도록 앞당기고 싶다. 




"혹시 아내가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는 걸 보고, 당신과 전혀 상관없는 자기 계발서라고 넘겨짚었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하겠다. 나는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될 수 있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 사실 둘 다 직접적인 이익을 보지 못하면 이 게임은 실패작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당신이 공정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면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가정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당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새로운 언어(마침내 당신과 배우자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게 된다

- 역할과 기대치의 명확한 정의(더 이상 누가 무슨 일을 맡아야 할지 헤매지 않아도 된다)

-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파트너와 함께 집안일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자율성 

- 당신이 할 일에 대한 확실한 소유권

- 파트너/남편/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넘어 개인의 관심사를 쫓고 우정을 나눌 여분의 시간

- 행복한 파트너십 

- 더 만족스럽고 뿌듯한 육아 경험 

- 외가소성 향상과 수명 연장 


이 정도면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 아닌가? 이게 다가 아니다. 공정한 게임에 참여했을 때 잃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지긋지긋한 잔소리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때 느껴지는 나쁜 기분 

- 애써서 한다고 했는데 지적당하고 비판받는 기분 

- 가정생활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에 관한 입씨름 

- 누가 더 많이 하고, 누가 더 잘했나를 따지는 일상 

- 시간에 쫓기는 기분 

- 배우자가 '이제 난 할 만큼 했어!'라고 선언하는 것에 대한 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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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30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멀티 못해요. 😭 남자가 더 멀티 못한다는 식으로 퉁쳐주는 거 ㅋㅋㅋ 싫으네요 진짜 ㅋㅋㅋ 그리구 이 글에서 느껴지는 지난한 난티님의 노동력(사랑없이는 맘먹어지지않는..)!!! 제가 다 속상하네요.. 인류 역사와의 투쟁 승리하시길! 지더라도 잘지는 싸움 하시길!! 전 사보타주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ㅋㅋ

난티나무 2021-06-30 15:23   좋아요 1 | URL
사실 여자들이 멀티태스킹을 잘 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라 익숙해져서 잘 한다고 착각하고 사는 거겠죠. 한번에 하나만 할 수 있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과학적으로도 그렇다고 하고요.
인류 역사와의 투쟁! 우와 듣고 보니 그렇네요. 요즘 저의 모습을 보면 사보타주 은근히 하고 있는 거 같으네요. (단어 뜻 정확히 떠오르지 않아 찾아보고 왔어요.ㅠㅠ) 계획적이지는 않았으나 부분적으로 하고 있... 아하하... 좀더 적극성이 필요하겠어요. 아자!

공쟝쟝 2021-06-30 15:37   좋아요 1 | URL
최대한 웅장하게 싸움과 실천에 의미 부여하기 ㅋㅋㅋ 근데 사실이 그래요 ㅋㅋ 그쵸? ㅋㅋ 가부장제 흥!
 
[eBook] 젠더 모자이크 - 뇌는 남녀로 나눌 수 없다
다프나 조엘.루바 비칸스키 지음, 김혜림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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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이 오면 하라고 해야 겠다, 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몇 달 전에는 화장실 변기 물이 계속 쿠앙콸 하고 새서, (쫄쫄 새는 정도가 아닌 심하게 새는 수준) 급히 뒤쪽 물탱크 뚜껑을 열려고 시도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뚜껑을 못 열고 옆지기 오면 해결하라고 해야지 해버렸다. 지금껏 단 한번도 그 뚜껑을 내가 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설상가상, 물흐름을 끊는 밸브조차 오래 쓰지 않아 뻑뻑해져서 돌아가지 않았다. 물탱크 뚜껑을 여는 법은 무척 쉬웠고 아마도 몇 분 정도 끙끙거렸다면 나도 쉽사리 열 수 있었을 것이다. 늘 옆지기가 해왔으니까, 무언가를 고치는 건 옆지기의 몫이니까, 라고 생각해왔다. 거기에 더해, 어떤 일이 됐든 간에 뭐라도 하나 더 그가 했으면 하는 불만에서 나온 욕구의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요인이었을 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불만에 차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가 좀 겸허해져야 하는 일 아닐까 싶었다. 옆지기가 살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나는 옆지기가 처리하는 일들에 관심을 두지 않고 별 생각이 없었다. 물론 큰 차이는 있다. 옆지기는 살림을 거의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그가 하는 또는 해야 하는 일들의 일정을 줄줄이 머릿속에 꿰고 있기는 하다는 사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내(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편견, 그(남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편견, 플러스 내가 아니라도 할 사람 있다는 방관, 또 플러스 귀찮음까지, 지금껏 내가 행했을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작은 사건이었다. 이 책의 첫부분을 보았을 때 바로 그 기억이 떠올랐다. 


"남성과 여성은 성에 따른 차이가 없다고 항상 믿어왔고, 내 생활도 그 믿음을 따르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 순간 나는 기계와 관련된 위급 상황을 '남자'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1장)




성별 차이를 과학적 연구 결과로 밀어붙이는 주장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리한 쪽으로 말만 바꾸는 기회주의자들 같다. 과학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현실이 경악스럽다. 하긴, 지금 이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몰리에르Molière는 1672년에 희극 <학식을 뽐내는 여인들Les femmes savantes>에서 이 두려움을 풍자했다. 여기서 남편은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아내와 다른 과학도 여성들에 대해 불만을 쏟아낸다. "그들은 글을 쓰고 작가가 되고 싶어 해. 아무리 심오한 과학도 문제없다고 하지. 달의 운동, 북극성, 금성, 토성, 화성... 그리고 나한테 줄 식사는 챙기지 않는다니까." (2장)


아니, 잠깐만. 원서 제목이 Les femmes savantes 이다. 영문판 제목은 The learned women 이다. 그런데 한글판 제목은 왜 '학식을 뽐내는 여인들'인 것인가? 여성 학자들, 아는 여자들, 배운 여자들, 이 학식을 '뽐내는' 여인들,이 되었네. 여성, 여자는 남성, 남자라는 반댓말이 존재하는데 여인의 반댓말인 남인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해변의 여인~ 이라고는 하지만 해변의 남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말이다, 식사를 챙기는 사람은 꼭 여성이어야 한다고, 엄마나 할머니여야 한다고, 이제 그만 말하자. 옛날옛적 고리적 때부터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면 이제는 그러지 말자, 좀. 




"인간의 두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단지 여자에게 흔하거나 남자에게 흔한 특징들이 모인 고유한 모자이크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모자이크는 만화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색 조각의 형태처럼 일생을 통해 변화한다." (7장)


넘쳐나는 편견과 고정관념들은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를 젠더에 가둔다. 그렇게 자란 내가 불쌍하고 역시 그렇게 자란 나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편견은 깨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 커버린 아이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형태가 아닌 투쟁의 형태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오랫동안 여성은 기초연구 전체에서뿐만 아니라 임상 실험에서 배제되었다. 

동물 연구에서 암컷의 배제는 부분적으로 암컷의 호르몬 주기가 결과를 헷갈리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그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컷의 호르몬 수준도, 다른 다양한 생리학적·행동적 수치와 마찬가지로, 암컷만큼 변동이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특정 성별의 동물을 사용하는 관행이 수립되고 나니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신경과학을 비롯하여 수컷 실험실 동물을 오랫동안 사용했던 과학자들은 암컷을 포함시키면 결과가 바뀌지 않을지 두려워했다. 그 결과로, 연구 분야에 원래 있던 성 편향이 몇십 년간 지속되었다." (12장) 


이 내용은 다른 책에서도 읽었다. 과학에서의 젠더 공백. 그 결과 약물과 병원 처치의 피해를 더 많이 보는 여성들. 3년 동안 식구들 모두 똑같은 독감 백신을 맞고 나만 겨울 내내 시름시름 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나. 4살 터울의 10대 아이들과 많이 큰 체구의 옆지기와 왜소한 내가 모두 같은 양의 백신을 맞는 것에 대해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성인 기준으로 복용하는 약의 양도 마찬가지. 이런 것들이 바로 잡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물론 이분법적인 구분이 더 심각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전통 사회에서 여성은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없고,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운전을 하지 못하며, 남성 가족과 함께 하지 않으면 집을 나오지 못한다. 이떤 사회에서는 그 규제가 살인에까지 이른다. 여성이 가족에게 불명예를 가져왔다고 판단되면 남성 가족원이 그녀를 죽일 수도 있다. 서구 사회에서도 '#미투' 운동에서 목격된 바와 같이 여성은 너무나 자주 성적 희롱과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남성도 마찬가지로 젠더 이분법 때문에 강요되는 큰 위험에 마주친다. 여자아이나 여성에게 미치는 이분법의 영향은 쉽게 인식되지만, 남자아이나 남성은 그들이 젠더 시스템에서 지베 집단이 된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상처를 받을 수 있다. " (16장) 


'여성이 남성에게 불명예를 가져왔다고 판단되면 남성 가족원이 그녀를 죽일 수도 있다.' 기원전 2천여년 전부터 만들어진 이런 악습이 아직도 현대사회에서 반복된다. 거다 러너의 책 <가부장제의 창조>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만일 그녀가 정숙하지 않았으며, (집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경향이 있고, 집을 황폐하게 하고 남편을 얕잡아보았다면, 그 여성은 물에 던져질 것이다. (함무라비법 CH§143) 

강간이 도시 내에서 범해졌건, 트인 벌판에서 일어났건, (공공의) 거리에서 밤에 일어났건, 혹은 도시의 축제에서 일어났건, 처녀의 아버지는 처녀를 범한 남자의 부인을 취해서 그녀를 불명예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부인을 남편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자기가 취할 것이다. 아버지는 능욕당한 딸을 그녀를 능욕한 남자에게 배우자로 줄 것이다. (MAL§55) " 


당시의 법문이다. 말도 안 돼, 그런 법이 어딨어, 라고 반응하겠지만 위의 인용구에도 나오듯이 현대에도 그런 사회가 존재한다.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아 정말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는가. 한 남자가 선배와 싸우다 '화'가 나서 선배의 여자친구를 찾아가 강간하고 죽인 사건이 얼마 전 한국에서도 일어났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단성 교육single-sex education에 대해서도 몇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학생 혹은 남학생만으로 구성된 집단을 가르치는 단성 교육은 종종 종교와 전통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전 세계에서 시행되어왔다. 그러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여학생과 남학생의 두뇌는 다르므로 교육도 달라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단성 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단성 교육의 일부 지지자들은 진심 어린 우려를 나타내는데, 예를 들면 혼성 교육을 하는 교실을 소란스러운 남학생 몇몇이 장악하여 여학생들의 능력 개발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배적인 집단이 교실을 장악하면, 놀림이나 폭력의 표적이 되지 않고 마음대로 자신을 표현하기 힘든 것은 여학생이나 남학생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교실을 압도하는 이 남학생들도 자신들의 집단이 요구하는 행동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스스로 매여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소수의 남학생이 '장악'하지 않는 관용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남학생 없는 여학생의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이다." (19장) 


교육 제도가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거기에 더해 젠더 인지와 감수성은 반드시 유아 때부터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더 많은 교육인들이 필요하다.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고 교육인을 길러내야 한다. 정책이 필요한 지점이다. 젠더 교육을 위해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지점이다. 도통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지점이기도 하다. 


*** 


어떤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 자료나 통계 자료 같은 것들은 신빙성 있는 정확한 숫자로 많이 제공되면 될수록 좋다. 그 주장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러나 숫자와 통계에 약한(그렇게 키워진 ㅠㅠ) 나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실험 결과와 통계 자료들에 조금은 질렸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 읽고 바로 글을 쓰지 못했고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았다. 작가의 글 쓰는 방식 때문인지 번역 문체 때문인지 단순하게 내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전자책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듯) 알 수는 없다. 밑줄 그은 부분들을 중심으로 책 전체를 다시 훑어보았다. 처음의 느낌은 어디 가지 않았다. 시간차가 적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자나 남자나 다를 건 없다고, 지금까지의 과학이 100%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누는 사고방식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런 책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를 바란다. 너무 많이 쏟아져서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는가 궁금증을 못 이겨 책을 집어드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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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6-25 0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고 있어요 ^^ 천천히 읽고 있는 와중에 흥미로운 논문을 읽었는데요, covid-19 바이러스감염에 여자가 남자보다 생물학적으로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고요. gender-specific behavior (예를 들어,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병원을 늦게 찾아서 병의 severity가 더심해질 가능성)을 감안하더라고, 생물학적 구조자체가 여자들이 면역체계에 강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생물학적 부분을 잘 이해를 못해서 그쪽 연구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실제로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월등이 뛰어난 점이 많다고 밝혀졌데요. (이 내용를 포함한 논문 좀 찾아봐야할 것 같아요..)

포인트는 누가 월등하냐, 열등하냐보다는, 생물학적 차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인것 같더라고요. 차이를 사회적으로는 차별로 귀결되는 반면에, 난티나무님이 언급하셨듯이 임상시험에서는 차이를 배제시키고 차이를 묵살하는 셈이겠죠. 변화가 일어나고 있긴 한것 같아요. 요즘은 쥐실험하는 연구에서는 반드시 여자 쥐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규정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다 남자쥐만 가지고 실험했다는 말인데...ㅠㅠ

더 많은 근거도 필요하지만,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고 그리고 지속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티나무 2021-06-25 14:37   좋아요 1 | URL
오오 그렇군요!!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더 낫다니 이런 내용의 책도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을 가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정말 몸은 신비로운 거 같아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게 얼마나 더 많을까요? @@
마지막 문장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리고 책 다 읽으시면 엄청 멋진 리뷰 쓰실 것 같은 예감이….^^

난티나무 2021-06-25 14:48   좋아요 1 | URL
댓글 계속 반복해서 읽었어요. 여러 가지 면에서 제게 위로?가 된달까, 이걸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 아아 뭐라 똑 부러지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급 시무룩해졌어요. 😞

han22598 2021-06-29 12:23   좋아요 1 | URL
우리는 일단 더 많은 위로를 받아야만합니다. 더욱 치열하게 파헤쳐보고, 집요하게 달라붙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 제가..이런걸 제일 못하지만, 그래도 위로라는 전리품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일단 시도는 해보고싶어집니다. ㅎ

수이 2021-06-26 1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에 한님 말씀 듣고 보니 아니 내가 생물학적으로 더 낫다니...... 이런 자부심이 드는 건 어찌할 수가 없네요. 더 많은 근거와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고 지속되어야 한다는 한님 말씀도 좋고_ 한편 숫자와 통계에 약해서 주식의 ㅈ도 모르는 저 역시 우리는 결국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래요. 논조에 딱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ㅎㅎㅎ 난티나무 언니 마지막 문장도 좋아요.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이 더 넓게 읽는 것도 좋고_ 미친듯이 쏟아져나오고 연구되고 읽히고 그러면 좋겠어요.

난티나무 2021-06-26 19:08   좋아요 1 | URL
저도 비슷한 고민 합니다. 특히 돈,과 관련된....^^;;;;;
왜 우리는 숫자와 통계에 약할까요? 알면서 또 묻는다...ㅎㅎㅎㅎㅎ
진짜 막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면 좋겠다는.

공쟝쟝 2021-06-27 01:25   좋아요 1 | URL
안약해요 젠더화된 사회가 그렇게 만든거지. 뇌단련ㅅㅣ키십시다 ㅋㅋㅋ 뇌는 변하니까요.

난티나무 2021-06-27 01:49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안 약하다!!!

공쟝쟝 2021-06-27 01:52   좋아요 1 | URL
약하진 않지만 관심이 없을 순 있으니 ㅋㅋㅋㅋㅋ 원하면 관심 가져보시는 걸루 ㅋㅋㅋㅋ 안약해 ㅋㅋㅋ 그냥 안쓴 것일 뿐이야 ㅋㅋ

han22598 2021-06-29 12:28   좋아요 2 | URL
약하지 않은 훈련이 부족해서 약했졌다면 이제부터 채워넣으면 되는데, 사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함으로도 이미 충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 그까이 숫자 통계 별거 아니니껭 ㅋㅋㅋㅋ 난티나무님, 비타님,공쟝쟝님이 보유하신 필력!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힘!!!!!!

난티나무 2021-06-29 21:51   좋아요 1 | URL
han22598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함‘ 이 말 너무 좋으네요.^^
 
[eBook]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 꿈이 너무 많은, 꿈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1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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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번역서 제목이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이다. 원제목은 "Plus tard je serai moi : 나중에 나는 내가 될 거야"다. 나는 내가 된다. 얼마나 좋은 표현인가.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라니, 정말 구리다. 고민하는 주인공 아이(중학생)의 모습을 제목 문장 하나로 깔아뭉갠다. 철저한 어른의 시각. 이렇게밖에 안 됩니까? 


다음은 책소개의 줄거리이다. 

"셀레나는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도, 진로를 선택하고 싶지도 않은, 아니 진로를 선택할 수도 없는 평범한 10대다. 그저 친구 베란과 나누는 수다가 행복하고, 입맛을 돋우는 로크포르 치즈가 좋고 온종일 시험으로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 교육부를 욕하고 겨우 한 곡 쳐낼 수 있는 자신의 기타 실력에 만족하는 그런 소녀 말이다.


그러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부모님의 한 마디는 셀레나의 인생을 꼬아 놓기 시작한다. “네가 예술가가 되면 좋겠구나.” 미처 이루지 못한 자신들의 꿈을 딸에게 투사하기 시작한 부모님은 점점 극단적인 방법으로 셀레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한겨울의 집은 난방이 꺼지고, 용돈도 끊기고, 먹을 거라곤 감자 몇 톨이 전부인 삶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예술가는 원래 힘겹게 살아야 된다나 뭐라나. 이런 광기 어린 부모님은 어느새 스스로를 망치면서까지 셀레나를 자극하고, 셀레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하는데…." 

셀레나 부모가 사용하는 방법들은 극단적이기는 하다. 그리고 돈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그들이 조금은 부러웠다.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고 어렵고 두려운 건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잘 못해 늘 휘청거리고 휘둘리는 게 나다. 어리버리하다 정신을 차리니 벌써 아이들은 이만큼 커버렸고. 그렇지만 인생에 대한 고민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 아니던가. 나이와 상관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그러니 계속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할 것. 식상한 말과 눈빛을 던지지 말 것. 하찮고 보잘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이의 의지를 꺾지 말 것. 하. 이렇게 적으며 마음을 다잡지만 컴퓨터 게임에 매진하는 아이들의 등짝은 얼마나 스매싱하기 적당해 보이는지. 


Martin Page의 글은, 읽은 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 얼마 안 되는 걸로 약간의 선입견을 만들어본다면, 여지가 많은 글? 뭔가... 엄청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다 쏟아낼 수가 없어서 자제하고 자제하다 그만 모자란 느낌? 아니면, 좀더 팍팍 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웅크린 느낌? 동화도 쓰고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쓰는 작가, 달랑 동화 하나 소설 하나 읽은 게 다지만^^;; 나는 그냥 당신의 에세이를 읽겠습니다. 사서 읽다 만 책이 보이네요. <Les annimaux ne sont pas comestibles : 왜 고기를 안 먹기로 한 거야?> 


열린 결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그렇다. 셀레나의 부모는 그냥 그런 모양새를 유지하면서 극단의 조치에 대한 설명도 없고 이후의 설명도 없다. 셀레나 캐릭터에 비중을 실었기 때문이겠지만 아쉽다. 조금 더 이야기를 진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다른 식의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친구 베란과 교장선생님, 그 특별한 캐릭터도 더 잘 살려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될 거라는 그 멋진 말은 왜 이야기 속에는 없나? 희뿌옇고 아무것도 선명하지 않은 중학생의 생각, 무엇이 (꼭)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 그건 잘 알겠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나 하는 고민은 중학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하는, 해야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장래 희망이 있어야 하나? 되고 싶은 게 있어야 하나? 이런 질문을 작가는 던지고 싶었던 거겠지. 어쩌면 일반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부모의 모습 속에서도 어른이, 사회가, 강요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정말이지 나는, 꼭 내가 되고 싶다. 절실하게 내가 되고 싶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온전히 네가 되라고, 너는 너만 될 수 있다고,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었다면, 지금쯤 나는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대신 너는 네가 되어라, 해야 겠다. 내가 듣지 못한 말, 이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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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11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 너무 귀여워요! 이런 결론을 얻으셨음 별5개 아닌가요?ㅋㅋㅋ저 찜~♡

난티나무 2021-06-12 16:56   좋아요 1 | URL
음 책은 별 셋, 셋인 책을 읽고 별 다섯인 생각을 했으니 나는 별 다섯! ㅋㅋㅋㅋㅋㅋ
간만에 잘난 척 해봅니다. 크크크.
첨에 네 개는 주려고 했는데 말이죠, 글 쓰면서 생각하니 읽을 때보다 별로인 거예요. 그래서 하나를 깎았죠.ㅎㅎㅎ
사지 말고 빌려 읽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