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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젠더 모자이크 - 뇌는 남녀로 나눌 수 없다
다프나 조엘.루바 비칸스키 지음, 김혜림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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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이 오면 하라고 해야 겠다, 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몇 달 전에는 화장실 변기 물이 계속 쿠앙콸 하고 새서, (쫄쫄 새는 정도가 아닌 심하게 새는 수준) 급히 뒤쪽 물탱크 뚜껑을 열려고 시도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뚜껑을 못 열고 옆지기 오면 해결하라고 해야지 해버렸다. 지금껏 단 한번도 그 뚜껑을 내가 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설상가상, 물흐름을 끊는 밸브조차 오래 쓰지 않아 뻑뻑해져서 돌아가지 않았다. 물탱크 뚜껑을 여는 법은 무척 쉬웠고 아마도 몇 분 정도 끙끙거렸다면 나도 쉽사리 열 수 있었을 것이다. 늘 옆지기가 해왔으니까, 무언가를 고치는 건 옆지기의 몫이니까, 라고 생각해왔다. 거기에 더해, 어떤 일이 됐든 간에 뭐라도 하나 더 그가 했으면 하는 불만에서 나온 욕구의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요인이었을 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불만에 차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가 좀 겸허해져야 하는 일 아닐까 싶었다. 옆지기가 살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나는 옆지기가 처리하는 일들에 관심을 두지 않고 별 생각이 없었다. 물론 큰 차이는 있다. 옆지기는 살림을 거의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그가 하는 또는 해야 하는 일들의 일정을 줄줄이 머릿속에 꿰고 있기는 하다는 사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내(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편견, 그(남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편견, 플러스 내가 아니라도 할 사람 있다는 방관, 또 플러스 귀찮음까지, 지금껏 내가 행했을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작은 사건이었다. 이 책의 첫부분을 보았을 때 바로 그 기억이 떠올랐다.
"남성과 여성은 성에 따른 차이가 없다고 항상 믿어왔고, 내 생활도 그 믿음을 따르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 순간 나는 기계와 관련된 위급 상황을 '남자'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1장)
성별 차이를 과학적 연구 결과로 밀어붙이는 주장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리한 쪽으로 말만 바꾸는 기회주의자들 같다. 과학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현실이 경악스럽다. 하긴, 지금 이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몰리에르Molière는 1672년에 희극 <학식을 뽐내는 여인들Les femmes savantes>에서 이 두려움을 풍자했다. 여기서 남편은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아내와 다른 과학도 여성들에 대해 불만을 쏟아낸다. "그들은 글을 쓰고 작가가 되고 싶어 해. 아무리 심오한 과학도 문제없다고 하지. 달의 운동, 북극성, 금성, 토성, 화성... 그리고 나한테 줄 식사는 챙기지 않는다니까." (2장)
아니, 잠깐만. 원서 제목이 Les femmes savantes 이다. 영문판 제목은 The learned women 이다. 그런데 한글판 제목은 왜 '학식을 뽐내는 여인들'인 것인가? 여성 학자들, 아는 여자들, 배운 여자들, 이 학식을 '뽐내는' 여인들,이 되었네. 여성, 여자는 남성, 남자라는 반댓말이 존재하는데 여인의 반댓말인 남인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해변의 여인~ 이라고는 하지만 해변의 남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말이다, 식사를 챙기는 사람은 꼭 여성이어야 한다고, 엄마나 할머니여야 한다고, 이제 그만 말하자. 옛날옛적 고리적 때부터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면 이제는 그러지 말자, 좀.
"인간의 두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단지 여자에게 흔하거나 남자에게 흔한 특징들이 모인 고유한 모자이크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모자이크는 만화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색 조각의 형태처럼 일생을 통해 변화한다." (7장)
넘쳐나는 편견과 고정관념들은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를 젠더에 가둔다. 그렇게 자란 내가 불쌍하고 역시 그렇게 자란 나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편견은 깨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 커버린 아이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형태가 아닌 투쟁의 형태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오랫동안 여성은 기초연구 전체에서뿐만 아니라 임상 실험에서 배제되었다.
동물 연구에서 암컷의 배제는 부분적으로 암컷의 호르몬 주기가 결과를 헷갈리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그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컷의 호르몬 수준도, 다른 다양한 생리학적·행동적 수치와 마찬가지로, 암컷만큼 변동이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특정 성별의 동물을 사용하는 관행이 수립되고 나니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신경과학을 비롯하여 수컷 실험실 동물을 오랫동안 사용했던 과학자들은 암컷을 포함시키면 결과가 바뀌지 않을지 두려워했다. 그 결과로, 연구 분야에 원래 있던 성 편향이 몇십 년간 지속되었다." (12장)
이 내용은 다른 책에서도 읽었다. 과학에서의 젠더 공백. 그 결과 약물과 병원 처치의 피해를 더 많이 보는 여성들. 3년 동안 식구들 모두 똑같은 독감 백신을 맞고 나만 겨울 내내 시름시름 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나. 4살 터울의 10대 아이들과 많이 큰 체구의 옆지기와 왜소한 내가 모두 같은 양의 백신을 맞는 것에 대해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성인 기준으로 복용하는 약의 양도 마찬가지. 이런 것들이 바로 잡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물론 이분법적인 구분이 더 심각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전통 사회에서 여성은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없고,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운전을 하지 못하며, 남성 가족과 함께 하지 않으면 집을 나오지 못한다. 이떤 사회에서는 그 규제가 살인에까지 이른다. 여성이 가족에게 불명예를 가져왔다고 판단되면 남성 가족원이 그녀를 죽일 수도 있다. 서구 사회에서도 '#미투' 운동에서 목격된 바와 같이 여성은 너무나 자주 성적 희롱과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남성도 마찬가지로 젠더 이분법 때문에 강요되는 큰 위험에 마주친다. 여자아이나 여성에게 미치는 이분법의 영향은 쉽게 인식되지만, 남자아이나 남성은 그들이 젠더 시스템에서 지베 집단이 된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상처를 받을 수 있다. " (16장)
'여성이 남성에게 불명예를 가져왔다고 판단되면 남성 가족원이 그녀를 죽일 수도 있다.' 기원전 2천여년 전부터 만들어진 이런 악습이 아직도 현대사회에서 반복된다. 거다 러너의 책 <가부장제의 창조>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만일 그녀가 정숙하지 않았으며, (집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경향이 있고, 집을 황폐하게 하고 남편을 얕잡아보았다면, 그 여성은 물에 던져질 것이다. (함무라비법 CH§143)
강간이 도시 내에서 범해졌건, 트인 벌판에서 일어났건, (공공의) 거리에서 밤에 일어났건, 혹은 도시의 축제에서 일어났건, 처녀의 아버지는 처녀를 범한 남자의 부인을 취해서 그녀를 불명예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부인을 남편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자기가 취할 것이다. 아버지는 능욕당한 딸을 그녀를 능욕한 남자에게 배우자로 줄 것이다. (MAL§55) "
당시의 법문이다. 말도 안 돼, 그런 법이 어딨어, 라고 반응하겠지만 위의 인용구에도 나오듯이 현대에도 그런 사회가 존재한다.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아 정말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는가. 한 남자가 선배와 싸우다 '화'가 나서 선배의 여자친구를 찾아가 강간하고 죽인 사건이 얼마 전 한국에서도 일어났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단성 교육single-sex education에 대해서도 몇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학생 혹은 남학생만으로 구성된 집단을 가르치는 단성 교육은 종종 종교와 전통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전 세계에서 시행되어왔다. 그러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여학생과 남학생의 두뇌는 다르므로 교육도 달라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단성 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단성 교육의 일부 지지자들은 진심 어린 우려를 나타내는데, 예를 들면 혼성 교육을 하는 교실을 소란스러운 남학생 몇몇이 장악하여 여학생들의 능력 개발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배적인 집단이 교실을 장악하면, 놀림이나 폭력의 표적이 되지 않고 마음대로 자신을 표현하기 힘든 것은 여학생이나 남학생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교실을 압도하는 이 남학생들도 자신들의 집단이 요구하는 행동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스스로 매여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소수의 남학생이 '장악'하지 않는 관용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남학생 없는 여학생의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이다." (19장)
교육 제도가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거기에 더해 젠더 인지와 감수성은 반드시 유아 때부터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더 많은 교육인들이 필요하다.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고 교육인을 길러내야 한다. 정책이 필요한 지점이다. 젠더 교육을 위해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지점이다. 도통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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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 자료나 통계 자료 같은 것들은 신빙성 있는 정확한 숫자로 많이 제공되면 될수록 좋다. 그 주장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러나 숫자와 통계에 약한(그렇게 키워진 ㅠㅠ) 나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실험 결과와 통계 자료들에 조금은 질렸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 읽고 바로 글을 쓰지 못했고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았다. 작가의 글 쓰는 방식 때문인지 번역 문체 때문인지 단순하게 내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전자책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듯) 알 수는 없다. 밑줄 그은 부분들을 중심으로 책 전체를 다시 훑어보았다. 처음의 느낌은 어디 가지 않았다. 시간차가 적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자나 남자나 다를 건 없다고, 지금까지의 과학이 100%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누는 사고방식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런 책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를 바란다. 너무 많이 쏟아져서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는가 궁금증을 못 이겨 책을 집어드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