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 - 의사 오인동의 북한 방문기
오인동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전에 캐나다 출신의 원어민 교사와 함께 수업을 한 적이 있다. J라고 부르는 그는 늘 수업에 충실했을 뿐아니라 낡은 틀에 안주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항상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중학생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내게는 신선한 수업이라 기대를 갖고 수업에 임하곤 했다. 

수업을 하기 전에는 늘 지도안을 먼저 작성해서 어떤 수업을 할지를 예고하곤 했다, 그런 어느날, 북한에서 운영되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수업을 할 계획이라는 거였다.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내용까지 한번 훑어본다는 거였는데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시교육청 서버로 통제되고 있는 학교 컴퓨터로는 북한 사이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컴퓨터에도 휴전선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이 지칠줄 모르는 J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끝내는 북한 사이트에 접속해서 그가 하고자 하는 수업 내용을 확인시켜주었는데, 사실 그 내용은 보잘것 없었다. 김일성 사진과 찬양조의 글이 전부라고나할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조악해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철저한 반공/승공/멸공 교육을 받은 우리 한국인 교사들은 나를 포함하여 하나같이 질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색을 표함은 물론 쌍수를 들고 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교사로서의 자리를 보존해야한다는 절박함도 없지 않아 있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자유자재로 세상을 넘나들 수 었는 캐나다인 J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수업도 있었다. 세 가지 소원을 영어로 표현하는 시간이었는데 예로 들어준 소원이 무엇이었냐하면, "국경 없는 세상"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국경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할까. 감동이라고 할까. 생각의 지평이 넓어진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 J를 생각했다. 이 책을 쓴 저자가 섬에 갇혀있는 우리와는 처지와 입장이 사뭇 다른 재미교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의사이다. '더군다나'라고 말하는 것은 의사라는 직업은, 하기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기에 더없이 부럽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의사로서 북한의 의술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감동적이면서 눈물겹다. 자신이 갖고있는 의술을 이렇게 보람있게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갈라진 우리 민족이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는 열망으로 헌신적으로 뛰고 있다. 남으로 북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그래서 국내의 한정된 정보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는 우리네와는 우선 시야부터가 다르다. 그렇다고 친북 일변도는 더욱 아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남과 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려는 저자의 여러 생각들을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땅의 통일을 위해 그가 '고난의 행군'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에 읽은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가 떠오른다. 그 책이 80년대의 통일교과서라면 나는 이 책을 이 시대의 통일 교과서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을 못 읽을 분들을 위해 인상적인 부분을 적어본다.

(325쪽)북한이 내일모레 망한다고 떠들어대는 지도자나 내외 언론인들은 내가 못 보는 무슨 다른 것을 보고 그런 얘기들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북한에 몇번이나 와봤을까? 아니, 와본 적은 있을까? 김일성 주석 생전에 그가 죽으면 북한체제는 끝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는 또, '김정일만 죽으면 통일이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무엇을 보고 그렇게 얘기하는 걸까? 반면 오랜 세월에 걸쳐 북한을 연구하고 방문한 사람들이 북한은 곧 망할 거라고 말하는 것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다....북한의 체제와 특성, 북녘인민들의 민족성과 자부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허망한 얘기를 하는 것이다....망하기는커녕 앞으로 더 발전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는 더 강하게. 

(336) 그래, 세상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를 이해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평의대 의사선생들과의 인연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결실은 바로 이 신뢰였다. 이 신뢰야말로 통일로 가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57) 남북관계가 어려워지면 재미동포들은 모국의 분단극복과 통일을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하려 백방으로 뛰어다니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참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왜 우리 문제를 우리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남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초라해져야 하는가? 그럼에도 우리끼리는 풀지 못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캐나다인 J가 북한사이트 수업을 하자고 했을 때 기겁을 했던 일이 어떤 상징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정말 초라하다, 초라해.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RINY 2011-02-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초라해'란 말에 말문이 막힙니다.
 
차폰 잔폰 짬뽕 -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음식에 대한 역사, 문화적인 탐색..다소 전문적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화의 사진가 - 사진과 그림으로 기록한 인간의 땅 아프가니스탄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디디에 르페브르 사진.글, 에마뉘엘 기베르 그림.글, 권지현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디디에라는 프랑스 사진작가가 '국경없는 의사회'의 아프가니스탄 의료봉사를 따라가서 겪은 내용을 사진과 만화로 엮은 책이다. 

책은 무거운데 반해 사진은 작아서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하는 것도 있으나, 전쟁으로 인한 아프가니스탄사람들의 처참함이나 실상등을 접할 수 있다. 사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사진으로 이어지지 않는 부분들은 만화를 곁들여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어나갔다. 한 편의 여행기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목숨을 담보로 했다는 의미에서는 여행기 그 이상이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하는 일을 구체적인 사진으로 접할 수가 있는데 사진이다보니 그 참상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이없는 부상이나 죽음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 아프가니스탄. 같은 하늘 아래에 이런 곳이 병존한다는 게, 지금도 그 지옥같은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그리고 그 사실을 곧잘 망각하고 산다는 게 어이없는 일이다. 그걸 이 책이 일깨워준다. 

이 책의 주인공인 디디에가 겪은 황당한 사기 사건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실감나게 드러나있어서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한마디로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종합 세트 같은 다큐멘터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책 값이 좀 비싸서 쉽게 장만할 수 없다는 게 무척 아쉽다. 나 역시 직장에서 전직원에게 개인별로 돌아간 얼마간의 포상금이 없었다면 감히 구입하지 못할 책이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
최갑수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때론 리뷰보다 책 속에 있는 한 페이지를 그대로 옮기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당신은 여행을 잘하고 있다> 

당신 이마 위에 떠 있는 별자리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잊고 있던 사람이 문득 떠오르고 그에게 엽서가 쓰고 싶어졌다면,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얼마 남지 않은 통장의 잔고가 전혀 걱정이 안 된다면, 

그보다 집에 두고 온 화분이 더 걱정이 된다면, 

더러워진 손을 바지에 슥슥 문지르고 과일을 껍질째 깨물어 먹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일요일인 줄 알았는데 오늘이 월요일이라면, 

낯선 언어로 씌어진 표지판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인다면, 

황홀한 풍경 앞에서 카메라 꺼내는 걸 잊어버린다면, 

버스를 잘못 탔는데 '끝까지 가보지 뭐'하는 생각이 든다면, 

어느 시끄러운 TV Bar에서 한 무리의 술 취한 미국 여행자들과 함께<프리즌 브레이크>를 보면서도 그들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냥 바나나 한 다발이 옆에 놓여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지구에 완벽한 곳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나도 살면서 아름다운 것 하나쯤 남겨두고 가야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그래서 돌아가기 싫다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면,  

당신은 여행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매일 이런 심정이라면 나는 늘 여행하며 살고 있는 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사 1일 투어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태국의 고대도시 아유타야를 가게 되었다. 운전수와 가이드 포함 16명이 미니밴에 타게 되었는데 앞좌석의 보조석에 남편을 앉히면서 vip석 운운하며 가이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1시간쯤 달렸을까.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어린이용 보조석에 앉아온 남편이 약간의 불만을 호소했다. 운전수 바로 뒷좌석에서 유유자적하던 나는 순간 그 자리가 내 자리임을 간파, 불편을 감수하며 계속 그 자리에 앉아가겠노라는 남편을 설득, 드디어 보조석에 내가 앉게 되었다. 평소 미래형 인간이라며 작은 키 인간의 여러 장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던 터라 이런 기회에 내 신체적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다른 키 큰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리라는 야무진 꿈까지 꿔가며...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경우라면 이런 보조석도 고맙기 그지없는 자리가 될 것이다. 앞 유리에 머리가 닿을 듯 가깝고 목받침대가 없어서 긴장을 풀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그래도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의자임에는 틀림없으니 말이다. 내 옆자리인 조수석에 앉은 태국인 가이드 아저씨가 안전벨트를 매면서 나 한테도 안전벨트를 매라고 권했다면, 혹은 이런 불편한 자리에 앉아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아니 나를 가운데 두고 운전수와 가이드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아니 내가 무슨 투명인간이냐고) 나는 내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며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면서 타인을 배려한 나 자신을 신통해했을 거다.

“ 내 좌석이 아주 불편하고 위험하다. 당신은 이 좌석에 앉은 내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한마디 쏘아주니 순간 가이드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서 한마디 귀엽게(?) 덧붙였다. “그냥 농담이다.” 잠시 후 아유타야에 도착한 순간, 내 눈에는 이 고대도시의 유적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이동하기위해 승차가 시작되자 나는 보조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이번엔 최대한 웃는 얼굴로 가이드에게 한마디 던졌다. “이번엔 내가 이 자리에 앉지만 다음에는 당신이 이 자리에 앉아라.”, “ok."

그렇게 내가 조수석에 앉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보조석에 앉게 된 가이드 왈, “ 그 자리는 가이드 자리다. 문도 열어드려야 하고 설명도 해야 되기 때문이다.”,“그래? 그 일 내가 하면 된다. 내가 하지 뭐.” 하니까 목에 건 가이드 신분증을 빼는 척한다. 그래 그것도 내게 줘, 하는 눈빛을 보냈다. 완승이다.

조수석에 앉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전망 시원하지 에어컨 빵빵 나오지.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vip석이지. 하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방콕으로 돌아가기 위해 승차하게 되었을 때는 씩씩거리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이로 우열을 가리기로 마음먹고 나이를 물었다. 어라. 나 보다 나이가 많은 57살이란다. 우리 큰오빠가 생각나서 그냥 져주기로 마음먹고 보조석에 앉아서 가는데, 잠은 솔솔 쏟아지는데 머리는 기댈 곳이 없어 사방으로 떨어지고, 전방에서 햇볕은 정면으로 쏘아대고...아, 이 좌석은 아니다! 나는 손님이란 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지네들 위험하다고 전세버스의 보조석에는 절대로 앉지 않는단 말이다!

주유를 위해 다시 차가 정차를 하게 되었다. 하늘의 뜻이다. 마지막은 조수석이 내 차례다!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다른 사람들이 차에 모두 오르기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가이드가 앞문 쪽으로 왔다. “ This time, your turn!"

카오산 거리로 돌아왔다. 숙소로 걸어가면서 딸아이가 말한다.

“앞으로 절대로 엄마한테 대들지 않을게.” 내가 좀 독하긴 독했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