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1일 투어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태국의 고대도시 아유타야를 가게 되었다. 운전수와 가이드 포함 16명이 미니밴에 타게 되었는데 앞좌석의 보조석에 남편을 앉히면서 vip석 운운하며 가이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1시간쯤 달렸을까.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어린이용 보조석에 앉아온 남편이 약간의 불만을 호소했다. 운전수 바로 뒷좌석에서 유유자적하던 나는 순간 그 자리가 내 자리임을 간파, 불편을 감수하며 계속 그 자리에 앉아가겠노라는 남편을 설득, 드디어 보조석에 내가 앉게 되었다. 평소 미래형 인간이라며 작은 키 인간의 여러 장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던 터라 이런 기회에 내 신체적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다른 키 큰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리라는 야무진 꿈까지 꿔가며...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경우라면 이런 보조석도 고맙기 그지없는 자리가 될 것이다. 앞 유리에 머리가 닿을 듯 가깝고 목받침대가 없어서 긴장을 풀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그래도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의자임에는 틀림없으니 말이다. 내 옆자리인 조수석에 앉은 태국인 가이드 아저씨가 안전벨트를 매면서 나 한테도 안전벨트를 매라고 권했다면, 혹은 이런 불편한 자리에 앉아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아니 나를 가운데 두고 운전수와 가이드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아니 내가 무슨 투명인간이냐고) 나는 내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며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면서 타인을 배려한 나 자신을 신통해했을 거다.
“ 내 좌석이 아주 불편하고 위험하다. 당신은 이 좌석에 앉은 내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한마디 쏘아주니 순간 가이드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서 한마디 귀엽게(?) 덧붙였다. “그냥 농담이다.” 잠시 후 아유타야에 도착한 순간, 내 눈에는 이 고대도시의 유적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이동하기위해 승차가 시작되자 나는 보조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이번엔 최대한 웃는 얼굴로 가이드에게 한마디 던졌다. “이번엔 내가 이 자리에 앉지만 다음에는 당신이 이 자리에 앉아라.”, “ok."
그렇게 내가 조수석에 앉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보조석에 앉게 된 가이드 왈, “ 그 자리는 가이드 자리다. 문도 열어드려야 하고 설명도 해야 되기 때문이다.”,“그래? 그 일 내가 하면 된다. 내가 하지 뭐.” 하니까 목에 건 가이드 신분증을 빼는 척한다. 그래 그것도 내게 줘, 하는 눈빛을 보냈다. 완승이다.
조수석에 앉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전망 시원하지 에어컨 빵빵 나오지.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vip석이지. 하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방콕으로 돌아가기 위해 승차하게 되었을 때는 씩씩거리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이로 우열을 가리기로 마음먹고 나이를 물었다. 어라. 나 보다 나이가 많은 57살이란다. 우리 큰오빠가 생각나서 그냥 져주기로 마음먹고 보조석에 앉아서 가는데, 잠은 솔솔 쏟아지는데 머리는 기댈 곳이 없어 사방으로 떨어지고, 전방에서 햇볕은 정면으로 쏘아대고...아, 이 좌석은 아니다! 나는 손님이란 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지네들 위험하다고 전세버스의 보조석에는 절대로 앉지 않는단 말이다!
주유를 위해 다시 차가 정차를 하게 되었다. 하늘의 뜻이다. 마지막은 조수석이 내 차례다!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다른 사람들이 차에 모두 오르기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가이드가 앞문 쪽으로 왔다. “ This time, your turn!"
카오산 거리로 돌아왔다. 숙소로 걸어가면서 딸아이가 말한다.
“앞으로 절대로 엄마한테 대들지 않을게.” 내가 좀 독하긴 독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