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남편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뼈해장국과 소주. 평소 먹던 김치뼈해장국을 시켰는데 뭔가 맛이 달라져 있었다. 뼈해장국에 들어갔던 시골풍의 짜고 시큼한 묵은지 김치맛이 도시풍의 새초름하고 얕은 맛으로 변해 있었다. 새로운 건 좋지만 변심한 친구처럼 서운하고 아쉬웠다. 소주는 기념으로 딱 한 잔. 여전히 소주맛은 쓰다.


남편은 이발하러 가고, 혼자서 터덜터덜 돌아와서 공동현관문 비번을 누르는데 자꾸 오류가 난다. 급기야 경비실 호출로 넘어가는 순간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엉? 문앞에 택배상자가 쌓여있다. 택배 올 일이 없는데... 이런 낭패감이라니...부끄러워 얼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옆동이었다. 아파트 세 동이 나란히 어깨를 겨루고 있어서 평소에도 헷갈렸는데 아니나다를까 때가 왔구나 싶었다. 여행은 끝났건만 내 몸은 아직도 여행 중인가.


30일간의 여정.

방문 국가: 파키스탄, 중국,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일행: 총 30명+ 길잡이 1명

총이동거리: 육로 4,519 km / 항공 1,746 km

북플에 기록 남기는데 걸린 시간: 30여 시간(공들인 시간에 비해 결과물은 아주 초라하다.)


타슈겐트. 여행 마지막 날. 오후 12시 호텔 체크아웃, 오후 4시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일행과 택시를 타고 시내 관광을 한 후 호텔로 돌아와 쇼파에 앉아서 쉬는데 모두들 눈을 감고 졸고 있다. 호텔 근처에 있는 동상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혼자서 조용히 호텔 밖으러 나갔다.


압둘라 코디리.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작가. 전날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갈 때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이 동상이었는데, 이 작가의 소설을 최근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상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유명인이겠거니 했다. 나중에 검색을 하고서야 아차 싶었다. 소설까지 재밌게 읽어놓고선 알아보지도 못하다니...아둔함이라니...















작가 이름도 낯설지만 이 소설 제목도 좀처럼 내 머리속에 각인되지 않는다. 자꾸 '잊혀진 날들', '지나간 날들'로 떠올린다. 영어 제목은 Bygone Days.


하여튼 밖으로 나와 동상을 다시 찾아갔다. 바로 호텔 옆이었다.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중얼거리며 각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어제는 스치며 지나가면서 무심하게 찍었다면 오늘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중한 마음으로 사진에 담았다. 보이지 않던 기념비도 눈에 들어와 읽어보니, 2019년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지시로 압둘라 카디리 탄생 1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복합단지가 조성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문학관이었다. 주변에는 압둘라 코디리 공원도 있고 거리이름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사진의 왼편에 보이는 건물은 도서관 겸 박물관으로 압둘라 코디리의 일생에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었다. 들어갔더니 무슨 행사가 있는지 여러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데, 낯선 외국인인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맞아주면서 젊은 여성에게 나를 안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상황. 서로 당황하면서 한바퀴 둘러봤다. 말도 통하지 않지, 글도 읽을 수 없지, 시간은 별로 없지, 대충 보고 나오는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수십명의 여성들이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합류하라는 손짓을 하기에 얼떨결에 앞자리에 끼어들었다. 휴대폰으로 찍고 정식 카메라로 찍고, 아무래도 어딘가 화보에 실릴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어본다.




우간다대파파미르행그리. 48살의 길잡이는 골수 인도파 여행자 출신. 

1999년에 출간된 인도가이드북,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 인도 여행자에게는 '우간다'로 통하던 책. '우간다'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반가워하면서 나를 여행 선배라고 추켜세웠다. 그런데 이 길잡이 분, 파미르 고원의 파미르를 자꾸 '화미르'로 발음하여 내 귀를 고문하기에 살짝 발음을 지적해주었더니 그때부터 나를 이렇게 불렀다. "우간다대파파미르". 


여행하다보면 끼니를 놓치면서 이동할 때가 있는데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배가 고파서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서, 길잡이는, 배가 고파서 헝그리하면 화가 나서 앵그리하니까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라고 일러준다. 또 살짝 알려주었다. 헝그리와 앵그리를 합친 단어로 행그리hangry 가 있노라고. 나는 왜 이럴 때 참지 못하는지.....원.....쯧쯧. 독특한 의상과 뛰어난 통솔력으로 삼십여 명의 여행 길을 안내하던 우리의 길잡이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게 했다. 여행자의 삶을 놓치 않기를, 찌질한 지적질을 용서하기를 바라며....
















단언컨대 정수일의 이 책은 실크로드의 교과서이다. 내용은 말할 수 없이 충실하지만 재미로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책. 그러나 여행 후에 읽으면 눈에 쏙쏙 들어오는 책. 과연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싶은 책. 이번 여행 후 겨우 몇 챕터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알라딘 중고매장에 갔다. 첫눈에 들어온 이 책. 이제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숙제를 안기는 여행이 아직은 좋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인도가 그립다. 삼십대 중반의 첫 인도여행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여행은 이제 경험할 수 없다. 객창감도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바랬다. 이제는 인물 사진도 잘 나오지 않는다. 모자, 선글라스, 스카프, 예쁜 옷 등으로 몸을 최대한 가려야 그나마 봐줄만한 사진 한장이 나온다. 가릴수록 아름다운 노년이 된 것이다. 여행은 미루는 게 아니다.



*객창감: 나그네가 느끼는 쓸쓸한 정서. 또는 여행하면서 느끼는 낯선 감정이나 집에 대한 그리움.(Daum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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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6-10-0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장정 건강히 잘 마치시고 귀국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집에 오면 참 낯설지요. ^^
nama 님 사진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풍경들을 잘 구경했습니다. 피곤한 몸 잘 챙기시고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ama 2026-10-09 13: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하루 일정이 끝나면 잠들기 전에 조금씩 북플에 기록했으나 지나고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이젠 정신차리고 책에 집중해야지요. 당장 밥 해먹는 것도 낯설지만요.

잉크냄새 2026-10-09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하나의 여행을 마치신 것 축하드려요.

nama 2026-10-09 20: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영화세트장 느낌이지만 히바는 아름답다. 사진 한장 남기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대접이 아니다.

사진1. 미완성 미나렛: 1852년 히바 칸국의 무함마드 아민 칸에 의해 70 m이상의 가장 크고 높은 미나렛을 만들고자 했으나 1855년 그의 사망으로 공사가 중단되어 29 m높이의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미완이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더 인상적인.
천원짜리 카푸치노를 담은 플라스틱 컵은 아랫부분의 돌기 덕분에 맨손으로 잡아도 뜨겁지 않다. 버리기 아깝지만 가져오기는 애매해서 사진에 함께 담았다. 너도 명물이구나.
사진2,3. 제사보다 젯밥이라던가. 가격도 저렴해서 구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4. 유명한 맛집에서 보는 풍경. 예약이 어려워서 앉아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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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질쿰 사막에 있는 호라즘 고대 유적지인 토프락 칼라, 키질 칼라, 아이아즈 칼라를 다녀왔다. 모두 발음하기도 어려운 낯선 이름들이다. 한번 다녀왔다고 해서 기억에 남을 것도 아니니 이렇게라도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며칠간 머문 장소들을 크기별로 정리하면 이렇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 히바 > 호라즘 유적지.
이건 내 생각인데, 사마르칸트는 최소 삼일 정도 머물면서 천천히 보면 좋을 것 같고, 부하라나 히바는 이틀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부하라와 히바는 뭐랄까.. 영화세트장 같다. 부하라는 전주 한옥마을 같고, 히바는 용인 민속촌 혹은 낙안 읍성 비슷한 분위기라고 할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어떤 곳인들 다를까. 예를 들어 경복궁도 계속 다듬고 가꾸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모두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니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더욱 예쁘게 치장하려고 애쓴다. 그래야 사람이 모이고 돈이 되니까.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늘 다녀온 호라즘 문명 유적지는 좀 다르다. 거칠게 말하면 그냥 흙더미 같다. 그것도 계산된 유적 보호의 일환일 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고대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는 거, 골치아프지 않을까, 게으른 나의 짐작. 흔적을 남겨서 뭐하나.

흙더미가 주는 뭉쿨함을 사진에 담아보려고는 했다. 별볼일 없지만. 이젠 사진도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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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10-0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집트 피라미드 유적지 느낌이 나요.
네분이 여행하시나요? 석양에 그림자 찍은 사진, 멋있는데요!

nama 2026-10-05 13: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전체 일행은 삼십 명이고, 뭉쳐 다니는 일행은 넷이어요. 자유여행이 만만치 않은 곳이네요.

카스피 2026-10-0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한국도 여행 장유화가 된지 오래되시 그런지이제는 여행사도 유럽이나 미주,동남아,일본 중국외에 그간 없었던 중앙 아시아 여행 투어도 기획하고 있나 보네요^^

nama 2026-10-06 02:42   좋아요 0 | URL
특수지역을 기획하는 여행사는 예전부터 있었어요. 매니아층도 두터워요. 아는 사람만 안다고 할까요.
 

키르기스탄 오쉬에서 테마파크 같은 동네 공원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요란한 새소리가 울려퍼졌다. 떠들썩하고 왁자한 새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어서 새소리가 나는 스피커를 찾아보았으나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비로소 조용해졌다. 한바퀴 돌고 다시 공원 입출구로 나왔을 때도 어김없이 요란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흠.. 스피커는 이쪽에만 설치했군.

오늘은 히바에 도착. 짐을 대충 풀고, 장을 보고와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정원에 있는 정자로 향하는데 요란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도 분위기 내려고 스피커를 설치했구나 싶은 생각에 눈으로 스피커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한 남자가 손뼉을 탁탁 쳤다. 순간 보이지 않던 새들이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비로소 깨닫고 보니 머쓱해졌다. 새소리를 새소리로 듣지 못한채 지레 인공적인 것으로 판단해버리는 어리석음이라니. 나는 의심 덩어리구나 하는 자각. 첩첩이 껴입은 옷처럼 의심으로 똘똘 뭉쳐있구나.

장염(게실염)으로 과식을 하면 금방 탈이 나는 걸 잘 알면서도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도 부끄럽다. 여행 내내 절제한다고 하면서도 과식 끝에 배탈, 약을 먹는 일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여행을 하면 사람이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감?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자, 퀴즈 나갑니다.

사진1. 우즈베키스탄 들녘에 쌓아놓은 이것은 무엇일까요?
사진2. 아무다리야 강을 가로지르는 이 철교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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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04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 다리 사진을 보니 위의 전선과 밑의 홈을 보니 혹시 트롤레 버스라고 전기로 다니는 버스를 위한 용도의 다리가 아닌가 싶네요.

nama 2026-10-05 01:50   좋아요 0 | URL
다목적 철교인데요. 기차도 다니고 자둥차도 다니는 교량입니다. 기차가 지나갈 땐 양방향에서 자동차가 대기하기 때문에 교통체증이 생기는 곳이라고 하네요. 일방향이라서 번갈아 통과해야 하고요. 고육지책이었겠죠.

2026-10-04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05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하라의 옛 성터와 박물관을 둘러보고 한때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었음을 갑자기 깨달았다. 멀고도 먼 곳을 찾아온 많은 관광객들을 보고 다시 깨달았다. 여전히 세상의 중심임을.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험이다.

중국집에서 거나하게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한국인 노부부를 만났다. 원숭이띠(71세)와 양띠(72세) 부부로 전라도 광주에 살며, 나주에 주말 농장이 있어서 유기농 채소를 먹으며, 부부 모두 공무원으로 퇴직한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롯하여 중남미 등 세계 각지를 다녀왔으며, 지금은 자유여행 중이라면서, 자식한테 재산 물려주는 거 소용없는 일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아주머니. 옆에 멀뚱히 있는 남편분은 세번이나 그만 가자고 재촉하는데 아주머니는 삼십년 지기라도 만난듯 수다삼매경에 몰입. 광주에 오면 무등산을 안내해 주겠노라는 약속 아닌 약속까지 했다. 나는 서너 문장 정도 답변만 했을 뿐인데 어름어름하다가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엥...이건 뭐지?

박물관에선 스페인 발렌시아에 사는 할아버지가 말을 걸더오더니, 오늘은 말에 굶주린 사람들을 만나는 날인가보다.

사진1. 부하라 성의 성벽
사진2. 이스마일 사마일 묘. 벽돌로 뜨개질한 듯한 느낌. 10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중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
사진3. 동영상으로 보면 좋았을 거리 공연. 한참동안 넋을 잃고 보았다.
사진4.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현자, 나스레딘 호자 동상.
사진5. 누룽지계의 신라면, 김치 누룽지.
사진6. 쪼그라든 아랄해 변천사. 내 일생과 딱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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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03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하늘이 넘 아름답네요.그런데 성벽 사진이 누어진 느낌인데 핸드폰이 아니라 카메라 광각렌즈를 쓰시는지 궁금해 지네요.

nama 2026-10-03 19:31   좋아요 0 | URL
그냥 핸드폰으로 찍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