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구매한 이 책. 여행기치고 꽤나 재미없는 책이어서 읽으면서도 은근 짜증이 났던 책이었는데, 이 책을 다시 읽었다. 한번 흘러간 사랑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법, 처럼 나는 한번 읽은 책은 여간해서 다시 읽지 않는다.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는데 마치 새 책을 읽는 것처럼 아주 낯설게 다가올 때, 그럴 때 나 자신에게 화가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미를 당기는 책들이 내 간택을 열망하고 있기에.

 

내 분명 미얀마에 관한 책을 두어 권 읽고 '서재 태그'에 이름을 남겼는데 'more'속에 얌전히 숨어 있을 줄이야. 서재 태그에 다시 얼굴을 내밀게 할 겸 당분간은 미얀마에 관한 책을 읽으리라. 실은 미얀마 여행을 계획중이다. 내 삶의 희망이 무엇이던가. 힘들게 돈 버는 이유는 무엇이던가. 우선 놀고봐야지. 딸내미 재수에 들어가기 전 일단 좀 놀려줘야지. 모두 먹자고 하는 일. 푸념처럼 던지는 말에 진실이 들어있는 법. 나는 먹는 데는 별 관심이 없으니 이렇게 바꿔본다. 모두 놀자고 하는 일. 

 

이런 목적으로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처음 읽었을 때 지루했던 내용들이 좀 덜 지루하게 다가온다. 미얀마는 불심 가득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 책의 주제는 이거였다.

 

독서도 역시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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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쯤 우리집에는 소니에서 만든 7인치 흑백텔레비전이 하나 있었다.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작은아버지가 사다 주신 것인데 읍사무소가 있던 우리 동네에서는 아마도 우리집 TV가 동네 최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녁마다 그 조그마한 흑백 TV를 보기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는데 앞줄에는 보통 내 또래의 아이들로 꽉 들어차곤 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지붕 아래 툇마루에 놓였던 TV 덕에 나는 알게모르게 권력의 맛을 알게되었으니...TV앞에서 시끄럽게 구는 또래 아이들을 혼내거나 주의를 주고 그랬다. 손에는 기다란 회초리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보다 어린 애들은 물론 우리집 뒤에 살았던 한두 살 많은 오빠에게도 뭐라고 소리지르고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참으로 기세등등하게 살아본 적이 있다면 바로 그 시절이었으리라.

 

그런데 왜 우리 부모님은 나의 그런 방자한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셨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기야 나도 그 못된 짓을 계속하지는 않았다. 몇 번인가 완장을 차보기는 했으나 그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행동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어린 나이에도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80년대 중반 무렵, 칼라TV를 구입하면서 이 흑백소형TV는 동네 재래시장의 어느 가게집으로 팔려갔다. 그후로도 한참동안 이 TV는 생명을 유지했는데, 지금도 가끔 이 TV가 그리워진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 권력의 맛을 알게 해주었던 잊지못할 물건이다

 

 

'항공기 되돌린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기사를 보고 옛시절이 떠올라서 적어봤다. 이 분도 지금쯤 쑥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로 권력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하니까. 이럴 땐 조용히 윤흥길의 <완장>이라도 읽고 반성하시길...

 

관련기사

http://media.daum.net/issue/866/?newsId=20141208213309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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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4-12-1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체질적으로 저는 어떤 타이틀의 완장이건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아니. 완장 찰 그릇이 아닌걸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랄까. 초등학교 5학년땐가 6학년땐가 친구 하나가 저를 반장으로 추천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친구를 얼마나 원망했던지,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 싶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습성은 오래도록 남아 있어서 대학때 과대표를 하라고 떠밀려 졌을 때도 사정하다, 화를 냈다 하여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답니다.
어찌보면 저는 완장, 권력의 맛을 모르는 거죠. 별로 맛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봐야지요. 그래서 완장을 차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권력을 부리는 사람의 심리를 다는 공감하지 못합니다.
본질적으로, 저는 소시민이네요.^^ 소시민이 보는 부사장의 부적절한 처신은 그저 어리석어 보일 뿐 입니다. 완장 찰 그릇이 이닌거 같네요.

nama 2014-12-17 19:45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예요. 중학교 때 전교회장에 출마해보라는 담임샘의 말씀에 하루종일 엎드려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못났다 싶기도 하고... 완장 한 번 차보는 건데....
 

 

 

 

 

 

 

 

 

 

 

 

 

 

 

 "귀만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세계여행, 여행교의 간증집회 '탁PD의 여행수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의 멘트로 시작되는 대화체 여행담을 귀가 아닌 눈으로 읽고 있다. 재밌다. 키득키득 웃다가 '남미에 가야 할 이유'같은 게 떠올랐다. 다음 부분에서.

 

그런데 팟캐스트가 뭐지? 대강 알겠다. 그러나 책이 더 좋다.

 

김한민: 그래서 그날 신고식을 치른 이후론 피하지 않게 됐어요. 특히 뭐가 바뀌었냐면, '나는 춤을 못춘다'는 생각을 이젠 안 해요. 근데 만약 한국에서 다시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한국은 뭘 하더라도 내가 못하나 잘하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페루는 전혀 그런 게 없어요.

 

탁재형: 한국에선 자꾸 자기검열을 하게 되잖아요.

 

 

김한민: ...그것도 남미가 준 지혜인데, 춤도 그렇고 뭐든 다 헐렁해지는 것 같아요. 근데 이건 '인생 뭐 있어?'랑은 달라요. '뭐 그리 잘할 필요 있나? 재밌게 하면 되지' 이런 걸 많이 가르쳐준 것 같아요.

 

참 재밌고 유쾌한 이 책을 이렇게 재미없게 쓰고 있자니 저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자기검열'이라는 단어에 꽂혀서리...이 딱딱한 마음도 자기검열의 과정인가, 부작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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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건 딸아이 수능이 끝나니 좀 살 것 같다. 모처럼 아이 데리고 바람을 쐬고 왔다.

영흥도라고...집에서 약 42Km거리로 시화방조제-선재도-영흥도로 이어지는데 '도'자가 붙으니 섬은 섬이되 모두 다리로 연결된다. 해마다 늦여름이면 선재도로 포도를 사러 가기도 했는데 바로 윗동네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발길을 끊었다. 넘쳐나는 게 도처에 골프장이건만 바닷바람마저 쐬고 싶다 이건가...

 

 

12.7km 에 이르는 시화방조제(안산시 단원구 소재) 중간쯤에 있는 T-light 휴게소 뒷편으로 멀리 우리집이 보일 듯~~

 

 

 새로 생긴 전망대. 25층까지 승강기가 올라가는데 43초가 걸린다. 무료라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화방조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개미처럼 보인다.

 

 

 전망대 유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 멀리 보이는 게 송도신도시이니까 여기서 우리집이 보이진 않겠다.

 

 

 우리 엄마 고향이 황해도 옹진인데, 여기는 경기도 옹진. 선재도 가는 다리.

 

 

선재도 지나기가 무섭게 영흥도로 이어지는 다리가 나온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서해대교 혹은 인천공항으로 가는 인천대교를 떠올리게 하는 영흥대교

 

 

드디어 영흥도. 십리포해수욕장 가는 길에 있는 음식점(칼국수와 만두가 유명함) 앞에서 한 컷. 만두 2인분, 칼국수 2인분을 배불리 먹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24,000원.

 

 

이번에는 거꾸로 영흥도-선재도-대부도로 나오는데 대부도에 있는 유유유유명한 옥수수빵집. 번호표를 받고 15분을 기다린다. 저기 쌓여 있는 박스가 금방 동이 난다.

 

 

유기농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맛있다. 실제 색깔보다 흐리게 나왔다. 노오란색인데...

 

 

 

새벽 3시 쯤 눈이 떠졌다. 평일이라면 억지로라도 다시 잠을 청하겠지만 휴일이라서 책을 집어들고 화장실 변기뚜껑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식구들을 깨우면 안 되니까.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부제처럼 이 세계는 아무래도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전 인류의 노예화'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들이 설득력이 있다.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괴로움을 자초하는 일이기도 하다. 막연한 행복감에 찬물을 끼얹고 모호한 불안감을 조장한다. 세상 돌아가는 내막을 제대로 알고 싶기도 하고 모른 채 넘어가고 싶기도 하다.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한다.

 

이래저래 세상이 온통 회색으로 보이는 11월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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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30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3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1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먼저 한겨레신문에 실린 다음 칼럼을 읽기 바란다.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가 쓴 글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6663.html

 

딸아이가 드디어 수능시험을 보고나니 세상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요즈음이다. 부모로서 속앓이를 하지 않았다거나 우리 아이가 소위 명문대에 꼭 진학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만, 하는 말은 이제 하기도 싫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고3이라는 모진 세월을 견뎌내는 동안 우리 부부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고 이렇게 변한 세상을 받아들이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는 것을 먼저 털어 놓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나(79학번)나, 전학년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대학을 다녔던 남편(77학번)에게는, 적어도 우리 자식도 최소한 우리만큼은 되리라 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특별한 뒷바라지 없이도 웬만큼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우리 세대와는 완연하게 다른 지금 세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때,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정규과정외의 경제적인 도움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대학입학이란, '합격하면 보내주마.'하는 정도의 미미한 지지와 격려 뿐이었다. 그러나.

 

목동에 사는 친구는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낼 때 까지 10여 년간을 거의 매일, 집으로 선생이 오는 과외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나는? 겨우 4개월 간을 영어 과외선생을 집으로 모셨지만 두 분 모두 2개월만에 그만두게 했다. 젊은 분은 아이를 리드하지 못했고, 경험 많은 분은 가르치는 내용에 비해 말이 너무 번지르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랑 담 쌓고 사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수학은 그래도 3년 내내 딸아이가 원하는 만큼 사교육을 받게 했다.(나중에 이것에 대해 몇 줄 써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이는 나름대로 노력을 해서 3년 내내 면학실에서 공부하는 특권을 놓치지 않았다. 상위 10%안에는 들어가 있으니 아주 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면학실에도 차별이 있는데 상위 1%는 학교에서 특별관리를 받는다. 면학실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이 학급반장이 되려면 어느 정도 멸시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도 가끔 벌어진다. 스펙을 쌓을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상위 1%에 우리 아이가 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면학실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텨주는 게 고맙고 기특하기만 했다. 되지도 않는 이과수학을 붙잡고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버텨준 것이 무엇보다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상위권 10%에게 주어진 이 면학실이라는 특권이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것이었음을 드디어 깨닫게 된다. 수능이 다가올 무렵쯤. 그리고 일반고의 현실과 실상을 말 그대로 절절하게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특목고나 자사고를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려는 무리들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을 좀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기 보다 우선 제자식 먼저 챙기기에 급급해 하는 소위 '있는 사람들' 모습을 지켜보자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렇다.

 

내가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을 읽고 얼굴에 확 열기가 올라온 것은 그 칼럼의 다음 글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도 내 자식이 장차 명문대에 가길 바란다. 외국 대학으로 직행하는 코스는 잘 모르겠지만 국내에서 모모한 대학 정도는 쑥 들어가 줬으면 싶다. “이번에 ○○대학 ○○학과에 입학했어요. 뭘요….” 뿌듯한 마음으로 이런 대사를 소화해 보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외 다른 대학을 졸업한다는 건 자격이라기보다 결격 사유에 가까우니까. 4년 후는 4년 후, 어쨌거나 명문대라는 타이틀은 당장의 루저 대열에서 내 자식을 구제해 줄 테니까 말이다.'

 

이게 소위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뱉을 수 있는 말인가.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항상 위에서 노는 사람 눈에 아랫동네가 보이겠는가. 내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지금 학급에서 1~3등을 해도 서울소재 대학에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 4등 이하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이 아이들에게 무슨 희망을 이야기하며 무슨 꿈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외 다른 대학을 졸업한다는 건 자격이라기보다 결격 사유에 가까우니까.' 너희들은 결국 뛰어봤자 '결격 사유' 인간 밖에 못 된다고 일찍감치 인생을 포기하게 해야 하나? 이 보다 먼저 나 자신 먼저 결격 사유 인간에 걸려버리고 만다. 스카이가 아니니까.

 

제발 그러지 마시길 바란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방관하고 협조한 당신이라면 제발 그런 말씀은 삼가주길 바란다. 그냥 입 꾹 다물고 함께 아파해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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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아니위너 2014-11-29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년에 고3이었던 내 아이는 면학실에 한번도 들어가본 적 없었습니다. 지금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 않는 지방대학에 다닙니다. 그 대학교수나 이 서재주인장의 눈으로 보면 루저겠군요. 하지만 저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 대학교수가 하는 말에 상처받지도 않습니다.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 다니는 게 그렇게 대단한 삶인가요. 그 대학교수의 칼럼에 분노하는 건 마음 속 깊이 그 대학교수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nama 2014-11-29 14:27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지요. `루저`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순간 루저가 되는 기분이 들어서 이 단어도 안 쓰고 살았는데...모순덩어리군요, 제가. 이런 글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불유쾌하게 하는군요. 대기업 다니는 것...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일류대학이 아니라 제 길을 잘 찾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가 보잘 것 없는 이과수학 공부하느라고 고생한 딸을 루저라고 부르는 건 용서 못할 일입니다. 그저 대견할 뿐입니다.
제 글을 읽고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yamoo 2014-11-29 15:36   좋아요 0 | URL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 다니는 거 대단한 삶.....전혀 아닙니다. 근데, 안정적인 월급을 받고, 꽤 좋은 복지가 있습니다. 대기업 아닌 곳이요? 언제 짤릴 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고.. 월급이 턱없이 적고 복지도 거의 없습니다. 그냥 인턴 사원이나 시간제 근로자로 전전하다가 늙어가겠지요.
현재 우리나라는 대기업 다니며 사는 그 기본적인 삶이 대기업 이외에는 별로 충족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삶이 아니라 극히 평범하고 기본적인 삶이지만...그보다 못한 삶은 거의 쓰레기가 되는 삶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에휴~

nama 2014-11-29 16:1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제 주위에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드물고, 제가 몸 담고 있는 세계도 그쪽이 아니어서요. `에휴~`입니다.

hnine 2014-11-29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글을 쓴 대학교수분도 한탄하는 심정으로 쓴게 아닐까해요. 하지만 한탄하는 방법이 좀 잘못되었네요.
명문대가 언제까지 명문대일까, 저는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의미없다...그런 생각과 함께 저는 지금의 학교라는 제도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까 하는, 더한 상상까지 종종해봅니다. 지금처럼 가면 앞으로 아이들은 학교에 안가고도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때가 오지않을까, 그런 상상이요.
따님이 바로 직면한 상황에서, 신문의 글을 읽으며 많이 답답하셨지요.

nama 2014-11-30 11:37   좋아요 0 | URL
명문대가 의미 없다...저도 동감이에요. 명문대 출신의 미취업자나 비정규직이 주변에 참 많아요. 명문대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제 딸아이에게도 그걸 강조하지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제대로 찾는 게 더욱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그게 참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학교에서도 진로교육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저 초기단계에 불과하지요. 결국은 개인적인 문제로 남을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시스템에 대한 저항조차 없이 제 자식만 잘되기를 바란다는 위 교수분의 글에 화가 났었지요. 독자투고도 생각해보고...

sabina 2014-12-0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능을 본 당신을 둔 입장이라 더 화가 나셨었겠네요.
권교수는 수능을 본 당신에게 부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이란 단서를 달고서 까지 왜그런 글을 쓴 걸까요. 아마, 들어가기도 어렵고 나와서도 또 어려운 대학의 현실을 한탄하다가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자식에 눈 먼 어미가, 그만 눈 먼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나 봅니다.

nama 2014-12-04 07:18   좋아요 0 | URL
`눈 먼 속내`.....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엄마이겠지요. 솔직한 모습을 인정해야하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적어도 고민하는 모습이 그런 식이어서는 곤란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