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겨레신문에 실린 다음 칼럼을 읽기 바란다.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가 쓴 글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6663.html
딸아이가 드디어 수능시험을 보고나니 세상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요즈음이다. 부모로서 속앓이를 하지 않았다거나 우리 아이가 소위 명문대에 꼭 진학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만, 하는 말은 이제 하기도 싫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고3이라는 모진 세월을 견뎌내는 동안 우리 부부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고 이렇게 변한 세상을 받아들이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는 것을 먼저 털어 놓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나(79학번)나, 전학년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대학을 다녔던 남편(77학번)에게는, 적어도 우리 자식도 최소한 우리만큼은 되리라 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특별한 뒷바라지 없이도 웬만큼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우리 세대와는 완연하게 다른 지금 세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때,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정규과정외의 경제적인 도움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대학입학이란, '합격하면 보내주마.'하는 정도의 미미한 지지와 격려 뿐이었다. 그러나.
목동에 사는 친구는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낼 때 까지 10여 년간을 거의 매일, 집으로 선생이 오는 과외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나는? 겨우 4개월 간을 영어 과외선생을 집으로 모셨지만 두 분 모두 2개월만에 그만두게 했다. 젊은 분은 아이를 리드하지 못했고, 경험 많은 분은 가르치는 내용에 비해 말이 너무 번지르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랑 담 쌓고 사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수학은 그래도 3년 내내 딸아이가 원하는 만큼 사교육을 받게 했다.(나중에 이것에 대해 몇 줄 써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이는 나름대로 노력을 해서 3년 내내 면학실에서 공부하는 특권을 놓치지 않았다. 상위 10%안에는 들어가 있으니 아주 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면학실에도 차별이 있는데 상위 1%는 학교에서 특별관리를 받는다. 면학실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이 학급반장이 되려면 어느 정도 멸시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도 가끔 벌어진다. 스펙을 쌓을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상위 1%에 우리 아이가 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면학실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텨주는 게 고맙고 기특하기만 했다. 되지도 않는 이과수학을 붙잡고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버텨준 것이 무엇보다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상위권 10%에게 주어진 이 면학실이라는 특권이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것이었음을 드디어 깨닫게 된다. 수능이 다가올 무렵쯤. 그리고 일반고의 현실과 실상을 말 그대로 절절하게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특목고나 자사고를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려는 무리들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을 좀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기 보다 우선 제자식 먼저 챙기기에 급급해 하는 소위 '있는 사람들' 모습을 지켜보자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렇다.
내가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을 읽고 얼굴에 확 열기가 올라온 것은 그 칼럼의 다음 글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도 내 자식이 장차 명문대에 가길 바란다. 외국 대학으로 직행하는 코스는 잘 모르겠지만 국내에서 모모한 대학 정도는 쑥 들어가 줬으면 싶다. “이번에 ○○대학 ○○학과에 입학했어요. 뭘요….” 뿌듯한 마음으로 이런 대사를 소화해 보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외 다른 대학을 졸업한다는 건 자격이라기보다 결격 사유에 가까우니까. 4년 후는 4년 후, 어쨌거나 명문대라는 타이틀은 당장의 루저 대열에서 내 자식을 구제해 줄 테니까 말이다.'
이게 소위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뱉을 수 있는 말인가.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항상 위에서 노는 사람 눈에 아랫동네가 보이겠는가. 내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지금 학급에서 1~3등을 해도 서울소재 대학에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 4등 이하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이 아이들에게 무슨 희망을 이야기하며 무슨 꿈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외 다른 대학을 졸업한다는 건 자격이라기보다 결격 사유에 가까우니까.' 너희들은 결국 뛰어봤자 '결격 사유' 인간 밖에 못 된다고 일찍감치 인생을 포기하게 해야 하나? 이 보다 먼저 나 자신 먼저 결격 사유 인간에 걸려버리고 만다. 스카이가 아니니까.
제발 그러지 마시길 바란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방관하고 협조한 당신이라면 제발 그런 말씀은 삼가주길 바란다. 그냥 입 꾹 다물고 함께 아파해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