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 쯤 우리집에는 소니에서 만든 7인치 흑백텔레비전이 하나 있었다.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작은아버지가 사다 주신 것인데 읍사무소가 있던 우리 동네에서는 아마도 우리집 TV가 동네 최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녁마다 그 조그마한 흑백 TV를 보기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는데 앞줄에는 보통 내 또래의 아이들로 꽉 들어차곤 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지붕 아래 툇마루에 놓였던 TV 덕에 나는 알게모르게 권력의 맛을 알게되었으니...TV앞에서 시끄럽게 구는 또래 아이들을 혼내거나 주의를 주고 그랬다. 손에는 기다란 회초리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보다 어린 애들은 물론 우리집 뒤에 살았던 한두 살 많은 오빠에게도 뭐라고 소리지르고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참으로 기세등등하게 살아본 적이 있다면 바로 그 시절이었으리라.

 

그런데 왜 우리 부모님은 나의 그런 방자한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셨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기야 나도 그 못된 짓을 계속하지는 않았다. 몇 번인가 완장을 차보기는 했으나 그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행동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어린 나이에도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80년대 중반 무렵, 칼라TV를 구입하면서 이 흑백소형TV는 동네 재래시장의 어느 가게집으로 팔려갔다. 그후로도 한참동안 이 TV는 생명을 유지했는데, 지금도 가끔 이 TV가 그리워진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 권력의 맛을 알게 해주었던 잊지못할 물건이다

 

 

'항공기 되돌린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기사를 보고 옛시절이 떠올라서 적어봤다. 이 분도 지금쯤 쑥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로 권력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하니까. 이럴 땐 조용히 윤흥길의 <완장>이라도 읽고 반성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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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daum.net/issue/866/?newsId=20141208213309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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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4-12-1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체질적으로 저는 어떤 타이틀의 완장이건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아니. 완장 찰 그릇이 아닌걸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랄까. 초등학교 5학년땐가 6학년땐가 친구 하나가 저를 반장으로 추천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친구를 얼마나 원망했던지,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 싶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습성은 오래도록 남아 있어서 대학때 과대표를 하라고 떠밀려 졌을 때도 사정하다, 화를 냈다 하여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답니다.
어찌보면 저는 완장, 권력의 맛을 모르는 거죠. 별로 맛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봐야지요. 그래서 완장을 차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권력을 부리는 사람의 심리를 다는 공감하지 못합니다.
본질적으로, 저는 소시민이네요.^^ 소시민이 보는 부사장의 부적절한 처신은 그저 어리석어 보일 뿐 입니다. 완장 찰 그릇이 이닌거 같네요.

nama 2014-12-17 19:45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예요. 중학교 때 전교회장에 출마해보라는 담임샘의 말씀에 하루종일 엎드려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못났다 싶기도 하고... 완장 한 번 차보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