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의 도시락

 

알라딘이 조금씩 싫어지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상단에 있는 알라진 메인에 마우스를 갖다대면 국내도서, 외국도서, 전자책....등등이 보이면서 '영화'도 다소곳이 끼여 있었다. 그런데 어제 이 영화를 보고와서 몇 줄 끄적거릴까하여 밤 늦은 시간에 컴퓨터를 켜고 낯익은 친구같은 알라딘에 들어왔더니 '영화'라는 글자가 깜쪽같이 사라져버린 거다. 결국 이 곳에서 영화리뷰를 못쓰게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하여튼 리뷰대신 페이퍼를 쓰자니 갑자기 공간이 옹색해진 기분이다.

 

잘 나온 영화 포스터 구하기가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간 알라딘에 들어와서 영화제목만 검색하면 포스터가 단번에 나왔었는데, 아, 그건 이미 끝나버린 마술 같은 것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을까. 연말에 책을 많이 구입하면 공짜로 주던 머그컵과 달력을 언젠가부터는 약간의 댓가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어느날 문득 블로그를 살펴보니 원하지도 않는 북스토어 글자가 떡하니 들어와있질 않나, 드디어는 영화라는 메뉴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하기야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아니고 판매하는 것도 아닌데 공간만 차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겠지. 저간의 사정이야 없지 않겠지만, 그러면 얼마전까지 유지해온 건 뭔가. 혹 미끼 같은 건가?

 

인심이 점점 야박해져가는 알라딘이 그래서 조금식 싫어지고 있다.

 

 

어제 시내출장을 끝내고 귀가하다가 혹시나 아직도 상영중인가 싶어 cgv에 들렀다가 시간이 맞아서 인도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을 보았다. 평일 오후 2시대와 5시대에 상영하는 영화라서 보는 사람이 적을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나 포함해서 관람객은 전부 3명이었다. 영화의 흥미, 작품성 등등을 떠나서 이런 영화를 내가 계속 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확실해졌다. 나같은 사람이라도 봐줘야지 그렇지않으면 이런 인도영화는 수입조차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는 소박함 그 자체다. 내용이나 형식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아마 몇 푼 들이지 않고 찍었음에 분명하다. 마치 대학의 졸업작품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더 귀한 작품이지 싶다. 꼭 비싼 돈을 들여야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지 않은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점점 외면당하는 세태에, 그 단면을 서서히 보여주는 알라딘을 보면서, 이 영화의 의미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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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여행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말 많은 남자, 빌 브라이슨의 호주 여행기다. 그러나  여행기라기 보다는 호주 박물지 같은 인상이 짙다. 박물지란, '동물, 식물, 광물, 지질 따위의 자연계의 사물이나 현상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책'인데 이 책이 이 단어 풀이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모든 대륙 가운데 가장 습도가 낮고, 가장 평탄하고, 가장 온도가 높고, 가장 건조하고, 가장 척박하고, 가장 기후가 호전적인 곳'(16쪽)인 호주는 '흥미로운 것들, 오래된 것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 그럼에도 눈에 띄는 것들'(18쪽) 등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나라다.

 

이 책은 이 흥미진진한 대륙에 대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여행기로 읽는 내내 감탄과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게다가 짖굿은 농담 같은 유머는 감칠 맛을 더한다. 가히 빌 브라이슨은 이 쪽 방면의 대가답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빌 브라이슨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는 이유를 말이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영어가 아닐까 싶다. 우선 영어로 된 참고 서적을 접하거나 읽는데 유리하다. 미국이면 미국, 영국이면 영국, 호주면 호주, 마음만 먹는다면 관련 서적을 얼마든지 접하고 쉽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인용하거나 언급하고 있는 수 많은 책들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그리고 영어권 나라에서의 여행 또한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두고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리한 고지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뜩이나 다양한 내용에 그런저런 생각을 곁들여 읽자니 책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을 마치 수험서처럼 읽게 되었다고나 할까. 밑줄 긋는 대신 붙여두는 포스트잇은 왜 이리 더덕더덕 붙이게 되는지, 나중에 다시 읽을 일도 없으면서 말이다. 다시 읽더라도 다른 시각과 느낌으로 읽게 될 터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읽을 때는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짜릿함으로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몇 개 인용하려고 다시 살펴보니 낯설게 다가오는 이 느낌, 을 뭐라고 해야할까. 도저히 몇 개의 인용 가지고는 이 책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온통 인용하고 싶은 것들 투성이다. 직접 읽는 수 밖에.

 

작은 나라에 살다보니 호주는 이야기 만으로도 벅차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온갖 동식물 얘기는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372)..과연 무엇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물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장소다.....내가 과학계에 몸담고 있다면 어디에서 일해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이자 중요성은 이런 동식물 보다는 그곳의 원주민인 애버리저니에 관한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이나 유럽에 현생 인류가 등장하기 전인 4만 오천 년이나 6만 년 전 쯤에 등장한 애버리저니는 인종이나 언어학적인 면에서 그 지역의 이웃 종족과 뚜렷한 유사성이 없다고 한다.

'애버리저니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문화를 보존해왔으며, 애버리저니 예술의 역사가 지구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간다'(136)고 한다.

 

이런 애버리저니에 대한 백인들의 몰이해와 박멸 수준의 대응은 참으로 끔찍하고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심지어 애버리저니의 자식들을 아무런 양해도 없이 - 어미개에게서 새끼강아지를 빼앗는 것처럼- 데려다가 따로 양육한 결과 가정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하니(우리나라도 한때는 소록도의 한센병환자들의 자녀를 부모에게서 떼어놓는 짓을 서슴치 않았으니 우리라고 그리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발전한 오스트레일리아를 무조건 선망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 될 일이다. 빌 브라이슨의 냉정하리만치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애버리저니에 관한 글은 그래서 이 책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호주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애버리저니에 관한 부분이 빠져있거나 아주 미미하게 다루고 있다면 그 책은 호주에 대한 바른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툭하면 농담과 한담으로 책 분량을  늘려놓거나 농담과 진담사이에서 길을 헤매게 만드는 빌 브라이슨이지만 애버리저니에 관한 부분은 매우 진지하고 공정하게 다루고 있으며, 애버리저니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고자 애쓰고 있어, 빌 브라이슨은 역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읽었건만, 역시 리뷰는 별 볼일 없는 이런 글이 되었지만, 감히 빌 브라이슨의 이 대단한 여행기를 두고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오. 그의 마지막 문장을 살짝 빌리면,

 

빌 브라이슨: '오스트레일리아는 흥미로운 곳이다. 참으로 흥미롭다. 내가 할 말은 이것뿐이다.'

 

나: 이 책은 참으로 흥미롭다. 내가 할 말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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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몸 담은 사람의 이야기라면 일단은 귀담아 들을 일이다. 더군다나 치열한 삶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라면. 20년 넘게 한 분야에 종사하고도 할 이야기가 별로 신통치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자극이 되리라고 본다.

 

 

 

 

 

 

 

 

2. 알래스카 하면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 하면 알래스카다. 이미 익숙한 그의 사진과 글이 되겠지만 진짜 야생의 삶을 살았던 분이라 그의 글은 늘 가슴으로 다가온다.

 

 

 

 

 

 

 

 

 

3. 그루지아, 아르메니아...에 시선이 멈춘다. 이 두 나라 이름만 보고도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분쟁 지역 사람들-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이야기다. 그쪽 지역 관련 뉴스를 들어보면 늘 몇 명이 죽었고 몇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내용 뿐이다. 이 책은 그런 뉴스 이면의 현실을 좀 더 생생하게 보여주리라고 본다. 다행이다. 제목이 '사람이, 죽는다'가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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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0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변종모의 책은 참 좋아요. 한 알라디너님의 글을 보고 엄청나게 끌렸던 책인데 운좋게도 선물받아서! 사진도 이쁘고 종이 재질도 좋아서 책 읽는 맛이 난달까요. 작가님이 책 제목을 < 아 그 거 >라고 부르면서 킥킥대셨다고 하는군요.
 
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TV 드라마에 빠지듯 읽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죽기 전에 소설 한 편은 꼭 쓰고 싶다고.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떠오른 생각이었다.

 

자전적 요소가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픽션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실화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그런 추측이 더해지다보니 책 읽기의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3월에 접어들 때마다 어찔어찔하고 경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데 이 책 덕분에 그런 우중충한 감정들을 가볍게 잊어버리거나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드라마 같은 내용도 재밌지만 언뜻언뜻 던져넣는 작가의 다양한 생각들이 가끔씩 호흡을 멈추게 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글에서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719쪽으로 끝나는 책에서 441쪽에 나오는 글인데 이미 결론을 암시하고 있었고 이 책 말미에 어울리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다시 산다고 해도 똑같은 인생을 살기 바란다. 무지에서 오는 혼란과 무의미에서 오는 불안이 젊은 나를 이리저리 휘둘렀고, 나이 든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게 남은 유형의 것은 없다. 모두가 사라졌다. 이루고자 하는 꿈도 남아 있지 않다.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품기 위한 것이었지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꿈을 위한 꿈이란 젊은이의 것이다.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은 아니다. 많은 부질없는 꿈들이 나를 물들였었다. 이제 나는 꿈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기쁨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억은 남아 있다. 나란 무엇인가?....

 

'기쁨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한마디를 말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여운이 남는 문장이었다.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들- 낚시, 우정, 캐나다 생활, 조기유학, 음악과 미술에 대한 것들-을 읽는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 . 그 중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듯한 다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법륜 스님의 <엄마수업>에 나옴직한 글이다.

 

아이들의 권리는 보호받고 자라는 데보다 모범을 보고 자라나는 데 있다. 엄마들은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보다 스스로가 지혜롭고 자애롭고 의연한 사람이 되는 것에 의해 아이들을 훨씬 잘 키울 수 있다. 아이의 문제는 결국 엄마 스스로에게 수렴된다. 아이에게 잘해주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스스로의 수양은 남을 수양시키는 것보다 어렵다. 엄마들은 어려운 길보다 안일한 길을 택한다. 마땅히 자기 자신에게 쏟아야 할 노력을 아이에게 퍼붓는다. 그 노력은 진정으로 아이의 삶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 욕구와 허영의 충족을 위한 것이다. 베시는 지금 그런 엄마의 길을 밟고 있다. 베시는 착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542쪽)

 

이 책은 소설이지만 소설 그 이상으로 읽힌다. 인생을 저만큼 멀리 살아본 사람의 추억담 혹은 회한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누군가의 말처럼 일생을 통해 단 한 편의 소설을 쓴다면 이런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이 작가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글쎄 이런 소설이 또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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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마카오 기행문에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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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셋-길을 찾는 사나이, 프란시스 자비에르>
프란시스 자비에르. 16세기 초 스페인 태생의 Jesuit 파 수행자. 아시아 지역 포교활동을 위해 1542년 인도의 고아에 도착. 10여 년 간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포교활동을 하다 1552년 중국의 Sancian에서 사망. 그의 유골이 고아로 옮겨질 것에 대비하여 살을 빨리 썩게 하기위해 석회를 4포대나 뿌렸는데도 살이 썩지 않았다는 것. 2개월 후에 말라카에서도 그대로였고 1554년 고아로 이전되기 위해 무덤에서 나왔을 때도 전혀 썩지 않았다는 것. 1614년 선교의 목적으로 오른팔을 잘라 일본과 로마로 분배되었고 1636년에는 내장의 기관이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나누어졌단다. 이런 연유로 생전 보다 생후에 더 주목 받게 된 자비에르. 지금은 유리관에 시신을 보관하여 고아의 한 성당에 안치되어있다. 나는 바로 그 유리관에 안치된 시신을 보았었다. 2005년 1월이었다.


마카오의 남단에 있는 콜로안 섬의 콜로안 마을에서 한가로이 동네를 둘러보다 마주친 예쁜 예배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너무나 예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고 그곳을 벗어나기도 못내 아쉬웠다. 이 마을은 드라마 <궁>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이지만 정작 나는 이 드라마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예쁜 성당이 그 드라마에 나온 지도 몰랐고 알았다 해도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여행 3일째라 긴장이 풀렸던지 그동안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자료들을 호텔에 두고나와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나오는 바람에 그 이름을 보고도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성당이 바로 <프란시스 자비에르 예배당>이라는 것이다.


나의 아둔함이란. 처음엔 동명이인쯤으로 여겼다. 고아의 자비에르가 이곳에서도 이렇게 되살아나고 있음을 한참 추리 끝에 파악하였다. 1928년에 자비에르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이 예배당은 특히 일본의 순례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자비에르가 일본에 처음으로 카톨릭을 전파해서일까.

 

보물찾기 같았던 프란시스 자비에르. 400여 년 전 태어나서 새 길을 개척하고자했던 사나이. 썩지 않는 시체 덕에 지금도 기억되고 추앙 받고 있는 사나이. 포르투갈의 마카오 지배와 세월을 함께 달린 자비에르는 지금도 길을 개척하고 있는지, 죽어서도 잠들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런 엽기적이기까지 한 일들에 열광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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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못배기거나 알고싶어서 안달이 났던건 아니지만 내내 프란시스 자비에르라는 신부님을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위의 글에 나오는 말라카라는 지역이 몹시 궁금했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는 관심이 없으나 가보지 못한 곳은 가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니 어떻게보면 나에게도 끈질긴 구석이 하나 있긴 하다.

 

말라카. 말라카가 그렇게 유명한 곳인 줄은 몰랐다. 혼합된 분위기의 도시는 흡사 우리나라의 경주와 인천의 소래포구를 합쳐놓은 것 같다. 수백 년 동안 아시아 일대의 무역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만큼 유물이나 유적이 지천에 널려있으며, 이 역사 도시를 보러온 사랄들이 마치 주말의 소래포구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3박 4일 동안은 특히나 춘절과 겹쳐 나날이 축제의 연속이었다.

 

박물관은 왜 그리 많은지, 구시가 일대는 한 집 건너 박물관으로 둥근 원을 이루며 언덕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 학구적이지 않은 우리 가족은 겨우 두세 곳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그리고 볼 것 먹을 것이 많아 굳이 박물관에 갈 필요를 못 느꼈으나, 박물관 관람 좋아하는 사람은 필히 이 곳에 꼭 가보기를 권한다. 내가 가 본 곳 중에서 기억나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은 스위스의 바젤 만큼이나 박물관이 많은 도시가 말라카이다. 역사의 한 시기를 주름 잡는다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말라카의 유명한 유적지 중에 역시 프란시스 자비에르 성당이 있었다. 가이드북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곳은 동방의 사도 자비에르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1849년에 지은 고딕 양식의 가톨릭 성당이다.'라고. 경내에는 소박하고 겸손해 보이는 자비에르 동상이 서있고 그 옆에는 일본에서 그를 모셨던 일본 신부의 동상이 나란히 있었다. 마카오의 자비에르 성당에는 일본 순례자들이 많다고 하더니 이곳도 아마 그럴 것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2005년 인도 고아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던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시신 관람후, 마카오의 유적지를 거쳐 말라카의 유적지까지, 나는 뜻하지 않게 프란시스 자비에르 순례를 하게된 셈이다. 마카오기행문에서 '엽기적'이라고 썼던 표현을 수정해야겠다. 나의 순례행위를 엽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

 

뭐 좀 더 공부해보겠다고 얼마전 돈(48,170원)과 시간(열하루)을 들여 구입한 (1918)라는 책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활자본이 아닌, 책을 복사해서 편집한 오래된 책을 얕은 지식과 어학 실력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을 구입한 자체가 엽기적인 만용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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