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42  한국의 백자 달항아리가 있다. 이 항아리는 쓸모 있는 도구였다는 점 외에도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항아리는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가마 속으로 뜻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에 얼룩이 무작위로 퍼졌다. 이 항아리가 겸손한 이유는 그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여서다. 그 결함들은 항아리가 신분 상승을 향한 경주에 무관심하다고 시인할 뿐이다. 거기엔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지혜가 담겨 있다.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세속의 지위 때문에 오만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또는 이런저런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사람에게,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의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겸손함의 이상을 확실히 목격함으로써 자신이 그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바탕은 진실하고 착하지만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방어하려고 되레 오만이 습관처럼 쌓인 사람이 이 달항아리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어쩔까.

 

 

 

손가락이 아파서 되도록 안 쓰려고 했는데 하도 답답해서 베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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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발견. 바쁜 와중에 그나마 눈에 들어온 책이다. 일기체의 단상을 엮은 책으로, 예전 같았으면 반갑게 읽었을텐데 요즘엔 이런 류의 책들이 별로 달갑지 않다. 굳이 다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만큼 심심하지도 않고 읽다보면 뭔가 멋적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나이 먹는다는 게 이런 걸까? 무관심, 무감동, 무책임...'無'자가 늘어난다는 것. 이러다가 완전  '무'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죽음이겠지.

 

그러나  이 책의 서문을 몇 줄 읽으면 도저히 이 책을 안 읽을 수가 없다. 길지만 그대로 옮긴다. 사실 이 책은 이 부분만 읽어도 된다. (무례한 독자...인정!)

 

 

"네가 스무 살이라는 게 꿈 같구나. 3킬로그램 몸무게로 네가 세상에 나올 때 나는 재직 중이던 여중학교에서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하며 <청산별곡>을 강의하고 있었어. 가난하던 시절이었지. 출근할 때마다 5백 원씩 네 엄마한테 하루 일당을 받곤 했던. 5백 원이면 담배 한 갑, 구내식당 점심값, 그리고 버스비를 제외하면 꼭 10원이 남는 돈이었구나. 네 엄마는 주면서 미안해 딴 데 보고 나는 받으면서 미안해 딴 데 보는 금쪽같은 5백 원. 하지만 엄마 배 속에 네 생명의 심지가 박혔을 때 나는 이미 하나, 하나라고 네 이름을 지어놓았어. 5백 원을 지갑에 넣어 안주머니에 간직하고 투명한 아침 햇빛 속으로 걸어 나올 때, 불광동 언덕배기, 너는 아마 기억조차 못할 그 작은 옛집을 걸어 나올 때, 매양 눈물이 날 것 같아지면서, 때가 오면 너와 함께, 청산에 살어리랏다, 어디로 어떻게 흐르든, 청산 하나 품고 살리라 꿈꾸었어, 아빠는. 가난했지만 비참하지도 황야를 품고 살지도 않았다. 저 아래, 내 가슴 깊은 곳, 맑은 우물이 넘치고, 햇빛도 만지고 바람도 만지면서. 그럼, 그렇고 말고, 청산 하나 드높이 세워 기대고 살았지. 나는 구내식당에서 백반 대신 라면을 먹었어. 네가 엄마의 자궁을 조금씩 채워갈 때 내 안주머니엔 백반 값 대신 라면 값의 차액이 역시 조금씩 조금씩 채워져 갔고. '예쁜 공주님을 얻으셨어요'. 전화통에 울리던 산호사의 목소리가 상기도 생생하다. 나는 안주머니에 차곡이 쌓인 백반 값 라면 값의 차액을 통틀어서, 세상의 모든 햇빛 같은, 장미꽃바구니를 샀다. 물 아래 옥돌, 순결하고 순결한 네게 바치려고. 너는 단번에 장미꽃바구니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았어. 악을 쓰고 울던 네가 장미꽃바구니를 신생아실 유리창에 들이 댔더니, 뚝 움을 그쳤거든. 너는 채어날 때부터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았던 거야. 그리고 지금 넌 바람 속 스무 살."

 

재수학원에 다니는 우리 딸아이도 스무 살. "폭풍우로 벚꽃이 다 떨어졌으면 좋겠어."라는 딸. 장미꽃바구니를 지금이라도 줘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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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계신 요양병원에 갔다가 오는 길에 용인 재래시장에 들렀는데 처음보는 나물이 눈에 들어와 한 바구니 사가지고 왔다. 이름은 홑잎나물. 낯선 이름이어서 나물 파는 아주머니께 여러 차례 물어보았는데 봄에 제일 먼저 나오는 나물로 원추리 보다 일찍 먹는다고 한다. 살짝 데쳐서 들기름에 무쳐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다름 아닌 화살나무순이었다. 에이....우리 아파트 담장에 심어져 있는 나무로 초봄에 할머니들이 새순을 채취하는 바람에 일시에 새순이 싹둑싹둑 잘려나간 모습을 해마다 보게 되는데 바로 그 화살나무순의 또 다른 이름이 홑잎나물이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다. 내가 아끼는 소장본이다.

 

 

 

 

 

 

 

 

 

 

 

 

 

할머니들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책이다. 살아있는 책이 이런 책일까? 정보가 많이 담긴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할머니들이 사라지면 산나물도 사라질 것 같은 안타까움이 묻어 있는 책이다.

 

이 책 맨 마지막 페이지에 화살나무순이 '훗잎'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반갑다.

 

할머니는 나물도 어려서 어렵게 살던 사람이나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귀하게 끼니 걱정없이 큰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도 나물을 모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려워야 만날 수 있는 세상의 진면목이란 게 반드시 있다.  (62쪽)

 

'어려워야 만날 수 있는 세상의 진면목'에 눈이 멈춘다.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는 이제 사람을 별로 반기지 않으신다. 치매 때문이리라고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예전의 엄마 모습이 아닌 딴사람이 된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엄마의 카랑카랑하고 반복적인 잔소리가 몹시 그리워진다. 귀에 쟁쟁한 엄마의 목소리가 그립다.

 

이럴 때 눈에 들어온 화살나무순. 정말 '어려워야 만날 수 있는 세상의 진면목'을 상징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건 그렇고, 나물맛이 궁금하다.

 

 

 

들기름향으로 먹는 맛이다, 라고 썼는데 한 접시 다 먹어가는 지금 그 말을 수정한다. 먹을수록 은근 고소한 맛이 난다. 동네 할머니들이 왜 화살나무순을 싹쓸이 훑어갔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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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 실려있는 많은 시 중에서 <그때 왜>라는 시가 오랜동안 머리에 남아 있다. 왜 일까?

 

그때 왜

                                     김 남 기

 

저 사람은 거짓말을 너무 좋아해.

저 사람과는 결별해야겠어,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나의 수많은 거짓말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저 사람은 남을 너무 미워해.

저 사람과는 헤어져야겠어,

그때 왜,

내가 수많은 사람을 미워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저 사람은 너무 교만해.

그러니까 저 사람과 그만 만나야지,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나의 교만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저 사람은 너무 이해심이 없어.

그러니까 저 사람과 작별해야지,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이 사람은 이래서,

저 사람은 저래서 하며

모두 내 마음에서 떠나보냈는데

이젠 이곳에 나 홀로 남았네.

 

'...했던 모습들...'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시를 쓴 '김남기'는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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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서는 며칠째 가방 속에 넣고 다니다가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학교는 2월이 연말이고 3월이 연시라서 좀 어수선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송별회가 있었다. 모든 작별은 감추어둔 외로움을 들춰내는지 외로움 실린 송별주 두어 잔에 위장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속이 쓰리다.

 

소설가 김탁환이 라디오에서 이야기했던 소설들을 글로 정리한 책이다. 그런 방송이 있는 지는 잘 모른다. 내게 라디오란 오전6시와 오후6시에, 아침밥 지을 때와 저녁밥 지을 때 잠깐씩 듣는 음악방송이 전부이다.

 

목차를 훑어보고 마음이 동하는 부분 먼저 읽는다. 놀란다. 이렇게나 좋은 소설들이 있었던거야? 하고. 늘 깨닫는 것이지만 내가 접하는 부분은 늘 한정되어 있다. 그래도 요즘은 책 꽤나 들춰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사실 별 게 없다. 한심한 건 아닌데 시원찮다. '분발'이라는 단어가 번뜩 떠오르지만 분발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이 한가운 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구미가 당긴 소설은 그냥 보관함에 넣어둔다. 그런데 난 왜 이런 '책에 관해 쓴 책'을 찾아 읽고 있는가? 마음 한편에선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달콤하다. 다이제스트격인 이 소설이야기에 빠져있다보면 나름 만족감이 생기나보다. 참을 수 없는 독서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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