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42  한국의 백자 달항아리가 있다. 이 항아리는 쓸모 있는 도구였다는 점 외에도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항아리는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가마 속으로 뜻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에 얼룩이 무작위로 퍼졌다. 이 항아리가 겸손한 이유는 그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여서다. 그 결함들은 항아리가 신분 상승을 향한 경주에 무관심하다고 시인할 뿐이다. 거기엔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지혜가 담겨 있다.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세속의 지위 때문에 오만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또는 이런저런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사람에게,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의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겸손함의 이상을 확실히 목격함으로써 자신이 그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바탕은 진실하고 착하지만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방어하려고 되레 오만이 습관처럼 쌓인 사람이 이 달항아리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어쩔까.

 

 

 

손가락이 아파서 되도록 안 쓰려고 했는데 하도 답답해서 베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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