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 -하 - 달을 쫓다
장은혜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도미 설화에서 이토록 방대한 이야기들이 가지치기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삼국유사에 몇 줄 나오는 이 가슴 아픈 이야기에서 도미와 은려, 개로왕 이외에 윤월과 윤, 서홍, 보리화, 무령, 아사반, 아사관휘 등이 각자의 삶을 토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래서 작가가 더 대단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건대, 미실보다 훨씬 낫다.

 

이야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득이 되는 쪽과 화친하며 해가 되는 쪽을 견제하던 시절, 고구려의 생간에게 넘어가 바둑으로 나라를 망친 개로왕이 백제를 다스리던 때부터 시작한다. 바닷사람이었던 도미는 백제제일미라 칭송받는 은려와 혼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역 때문에 한성으로 간다. 그곳에서 만난 개로왕은 은려의 정절을 걸고 도미와 내기를 하게 되고, 내기에서 진 왕은 홧김에 도미의 눈을 뽑고 바다에 던져 버린다. 작은 나룻배에 내던져진 도미는 오열하는 은려의 품에 안겨 바다로 돌아갈 것을 원한다. 같이 죽자는 도미의 말에, 은애하고 연모하는 지아비의 말에 은려는 그를 꼭 끌어안고 바다로 스며든다.

 

은려 대신 개로왕과 밤을 보냈던 윤월은 은려와 도미의 딸 서홍을 지키기 위해 모악산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살게 된다. 어느 날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유산을 시도하다 결국 윤을 낳게 된다. 윤월의 한을 품고 태어난 윤은 단 한번도 따스한 어머니의 정을 느껴보지 못한 채 자라게 된다. 원하는 게 없다던 그는,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못했던 그는 마지막까지 윤월에게 버림받는다. 누가 나의 씨냐는 개로의 물음에 윤월은 애증이 담긴, 깊은 시선을 윤에게 던진 후 말한다.

 

"딸아이다."

 

어디서 부터였을까. 그들의 운명이 가슴 시린 고독으로 점철된 것이. 살아난 은려와 그녀를 구한 아사반. 보리화 곁에 머물던 도미.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모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아사반의 순정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전장에 나가는 아사반에게 은려는 언제나 한결같은 부탁을 했다.

 

"바닷사람 도미에 대해 알아봐 주십시오."

 

그 말에 그녀의 진심과 밝히지 못했던 작은 은애의 감정이 묻어났다는 것을 죽는 순간까지 아사반은 알지 못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사관휘 역시 가슴 아픈 사랑을 대물림했다. 은려의 딸 서홍을 가슴에 품고 그 사랑이 아스라한 상처로 남게 될 때까지 그가 겪었던 상사와 외로움은 실로 처절함이었다. 그에 반해 윤은 가진 것이 없어 가질 것 또한 없었다. 거침없는 보리화를 만나 그녀에게 위로받지만, 보리화는 무령을 선택했다. 정말로 보리화가 무령을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에게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니, 바람같은 여인에게 바람이 쉬는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 잡을 수 없기에 더 사랑스러운지도 모르겠다.

 

관휘와 윤은 극명하게 대조되는 인물이면서 서로 맞닿아 있었다. 끝없는 고독 속에 침잠해 있던 윤과 밝은 세상에서 울고 웃던 관휘는 사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삼국유사의 몇 줄에서 시작하여 그 줄의 구두점으로 끝난다. 그 안에 이렇게나 긴 사연이 깃들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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