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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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 10분은 화장실에 다녀오고 옆 반 교실에서 교과서를 빌리러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이다. ‘just ten minute~’ 노랫말에 담긴 10분은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 시간이며, “10분만~” 꿀잠에서 깨어야 하는 아침 시간 10분은 아이가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다. 나만 쓸 수 있는 10분이라니. 시간 가게를 통해 주인공에게 주어진 10분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심적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은 이렇게 달콤했다.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을 둘러본다. 주인공이 사용했던 10분의 용도를 곱씹어본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10분을 사용하는 행동이 온전히 아이 탓일까.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p77)을 하며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으로 최상의 제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나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p77)을 받는 아이들,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학원건물을 보며 양계장에 갇혀 있는 닭들’(p78)을 연상하는 아이들, ‘엄마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치 내가 주인의 취향대로 조립되는 DIY가구 같다는 생각’(p107)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주말마다 학원을 오가는 둘째 아이가 떠오른다. 강요를 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아이가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대학 입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부모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문학 작품 속에서의 시간이란 가공되지 않은 지점토와 같다.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전해주는 소재가 있을까. 타임리프와 로맨스가 결합된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수명시계와 삶의 의미가 결합된 드라마 <어바웃 타임>, 타임머신과 SF가 결합된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이르기까지. 판타지적 요소가 포함되면서도 현실을 슬그머니 끌어당기는 작품들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 평범해 보이는 시간은 담고 있는 의미에 따라 제각기 특별해진다.

이런 점에서 이나영 작가의 의도는 특별하다. 작품을 통해 시간과 결합된 의미는 두 가지이다. 아이들의 삶을 조명하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묻는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시간과 얽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분명한 건,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내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써야 할 것이다.’(p197) 작가의 결론에 공감한다.

 

사진처럼 담겨지는 시간이 있다. 멈추고 싶은 마음이 셔터가 되어 찍히는 시간들이다. 심장에 차곡차곡 접혀있다 어느 순간 꺼내어보면 두근거림으로 되살아나는 행복한 기억이다. 10분을 거래한 대가로 주인공이 빼앗기는 기억들을 따라가며, 행복했던 나의 기억을 좇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푸른 염화코발트 종이 같던 심장이 투명한 물방울처럼 다가오는 기억에 닿자마자 불그스름하게 변한다.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걷던 길에 찍히던 설렘, 나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오던 떨림이 재생되는 순간, 행복한 과거의 사진들은 생생한 현재로 타임리프 된다. 시간과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 서로를 향해 마주 선 마음이 맞닿던 순간. 멈추고 싶은 순간들은 언제나 가슴 뛰는 기억이다. 드라이플라워처럼 말라간다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되는 중년의 나는 어느새 20대의 소녀가 된다. 그래, 그렇게 빛나던 순간도 있었지. 오롯이 두 사람만 공유하던 선명한 느낌이 찻잔에 띄운 꽃차의 잎처럼 되살아난다. 행복이 우러나는 향긋한 맛이다.

 

커피숍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하지를 이틀 지난 하늘에 낮의 온기가 설핏 남아있다. 음력 10, 상현을 지나온 달은 왼쪽을 향해 살짝 부풀어 빛난다. 조금 떨어진 왼편에서 목성이 빛을 낸다. 오른쪽으로 성큼 고개를 돌리니 조금 더 빛나는 금성도 보인다. 가슴이 살짝 뛴다. 이들이 빛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지평선 아래로 지나버린 태양이다. 태양을 중심에 놓고 금성, 지구, , 목성의 커다란 궤도를 그려본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시간부터 있었을, 미래의 어느 시간 내가 사라진다 해도 여전히 돌게 될 존재들의 현재를. 일상을 지나오면서 마음에 묻게 되는 서글픔, 슬픔, 외로움, 고민의 부스러기들이 별 것 아닌 듯 여겨진다. 행복한 기억이란 이런 의미일까. 밤하늘에 가끔 나타나서 마음을 토닥여주는 천체들처럼 닿을 수는 없지만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다시 태양과 함께 할 내일의 시간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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