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이라고 차린 상은 민망할 정도였다. 동생놈이 혼자 살아서이기도 했지만 제사에 모인 사람이 모두 남자들뿐이라 변변한 음식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제사 음식은 이미 죽은, 그래서 한동안 음식이라곤 입에 못 대본 망자라 하더라도 별로 식욕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상 위에 차려놓은 음식들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상도 제대로 닦지 않은 듯 먼지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 상 한가운데에 통째로 삶긴 닭이 커다란 접시에 담겨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망자가 아닌, 닭을 숭배하는 어떤 이상한 습속을 가진 원시 종족들이 지내는, 닭을 모시는 제사 같았다. 자세히 보자 뽑지 않은 털이 몇 개 남아 있었다.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그 털이 신경이 쓰였고, 그래서 그것을 뽑아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살이 모두 익은 닭은 이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엎드려 있었다.

[달에 홀린 광대] '숲에서 길을 잃다' 중 p.113

 
   

정영문작가의 소설은 처음 대한 것인데, 쓰잘데기 없는 글들을 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정영문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름 흥미롭다. 어떤 것도 '심각하지 않은 것이 심각한' 문제인 '나'. 흥미로운 캐릭터가 될 수도 있겠다.

인용한 대목도 대목이지만 이후 나오는 제사 풍경이 더 배꼽잡게 한다.

책 제목이 된 [달에 홀린 광대]와 [숲에서 길을 잃다], [양떼 목장]이 재미있었다.

보니, '딱한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얼거리다 결심하는 게 '떠나야겠다'는 등속이니 ...

그 길밖에 없으려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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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경제학'이라 불릴만한 책이다. 심장 안좋은 사람, 앞으로도 별로 나아질 것 없을 것 같다고 우울해 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멀리 하는 게 좋을 듯 하다. 답답해지니까. ... 온통 우울한 얘기들 뿐이니.

미처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 책은 작년에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이다]의 개정판이었다. [샌드위치...]는 우석훈과 박권일 공동저자로 되어 있는데, 개정판은 우석훈만이 저자로 되어 있고, 2장과 3장에 각각 '보론'을 덧붙였지만 개정판 행세를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가격이 12,000원에서 13,000원으로 올랐다.

'개정판을 내며'에서, 저자는 [샌드위치 위기론...]이 당시 이건희회장과 박태준회장 등이 언급했고, 언론이 앞다투어 옮겨 퍼뜨렸던 주장과 정면으로 맞장뜨는 모양새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이 주장을 덮고도 넘칠 '위기' 상황이 전개되는 반면, 이 책은 [88만원 세대]에 묻혀 반응이 조금 약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샌드위치 위기론...]이 다소 반박성 주장에 머무는 것처럼 인식된 정보부족과 오류를 개정할 필요가 있었던 듯하다.

이상은 뭐든 일단은 '음모론'을 먼저 생각해보는 내가 넘겨 짚어본 것인데.... 이점을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않는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책임은 분명하다.  

3장 위기의 한국조직들은 여덟가지 한국조직의 사례분석을 통하여 현재 어떤 종류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는데, 앞으로 좀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각자가 속한 조직의 위치와 성격, 그 위험도와 대안을 생각해보는 것은 구체적 대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기조차 할 듯 하다.

 '빈곤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는 것. 대안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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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이다. 촛불집회 등에서 보여주다시피 현실이 훨씬 흥미롭고 풍부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개념어, 그리고 현상을 응축시켜 정리하는 소제목들이 지닌 명민함이라고 할까.

감탄하면서 봤다.

 

 

 

 

 

 

 

끌리고쏠리고들끓다 (클레이서키/갤리온/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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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첸바크의 [애널리스트]는 꽤나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53세의 정신분석의 프레더릭 스탁스가 과거 젊은 시절 어느 때 자신에게 상담을 받던 어떤 여인을 방기한 것 때문에 그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괴편지를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속절없이 자신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이 전개된다. 결국 그는 협박자가 요구한대로 자살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실 1부는 그럭저럭 볼만한 정도였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프레더릭(리키)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약했다. 그의 대화문은 거의 최악이었다. 다른 문장들은 좋은데 대화체에서는 힘이 쑥쑥빠질 뿐더러 실소가 나오는 대목도 있다.

그런데 존 카첸바크로 검색해보니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이 이 존 카첸바크를 언급한 대목이 있었다. 바로 대화문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실례로 존 카첸바크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이 작가의 대화문은 유명한 모양이다.

소설을 손에 들고 그럭저럭 넘기고 있던 나를 바짝 조이게 한 것은 2부부터였다.

2부는 자살을 가장한 채 스탁스로서의 존재를 마감하고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리키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카우치의자 뒤에서 듣고, 이해하려 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조용히 나이들어가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리키는 자신의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추궁치곤 너무나 값비싼 댓가를 요구했다고 결론을 내린뒤 스탁스의 삶을 파괴시킨 그 미지의 협박자를 향해 반격을 기획하고 행동한다.

2부의 주된 흥미는 리키가 새로운 신분을 얻어 새로운 삶을 운영하며 복수를 준비해가는 한편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스릴러 장르의 인물답게 리키는 복수를 위해 철저히 변화하는 인물상을 보여주지만, 그 변해가는 인물의 소소한 묘사와 설명을 읽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P.S. 53세라는 나이 설정이 다소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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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아니라 오늘이어서 다행이었다. 날씨가.

어제처럼 햇빛 쨍하고 더운 날이었다면 이다지 감상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른 시각에는 밝았던 날이 오전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어둑해지더니 이내 비가 내리고 있다.

오전 내내 꼬박, 다른 일 다 미뤄두고 두꺼운 이 소설을 마저 읽었다.

아마도 94년 또는 95년도 쯤에 한 번 읽었던 적이 있다. 동생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이었다.

그 때 이 책이 오늘처럼 나를 눈물짓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면 그 뒤로도 하루키라는 작가의 책들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봤을 테니까. 그러나 그러지 않았으니까.

동생이나 나나 [상실의 시대]를 읽은 후 10년도 넘은 지금, 동생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최근에 이 책을 구입해서 다시 읽은 것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동생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했고 자식 둘을 둔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회사에 매어 있고, 그건 그의 와이프도 마찬가지. 그들의 그런 생활의 댓가로 경제적 어려움은 겪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대학시절 동생은 나보다 훨씬 급진적이었고 활동도 그랬다.

왜 다른 책이 아니라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오늘 다시 읽으며 '시대'를 제목으로 삼은 것 때문에 아마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영원히 나이테의 일종으로 되새겨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분석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 할지라도 이제 그런 식의 과거 어느 시대의 지표로 쓰여지질 않길 바란다. 뭐, 모르지 바란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닐테니.

어쩔 수 없었다, 대학시절과 이 책을 처음 읽던 13, 4년전과 지금이 엎치락 뒤치락 떠오르면서 감정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을.  제자리 걸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변했어야, 지금 어디쯤 왔어야 그래, 내가 많이 나아왔구나, 대견하다 내지는 잘 살아왔다, 그런 뿌듯함을 느끼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 나를 돌아보면 나는 멀리 떠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너무나 한참 지났는데도 ... . 

소설 마지막에 미도리는 묻는다, 지금 어디냐고?  

이런 책 하나 갖는 것 나쁘지 않다. 비록 마음이 다시 한 번 송두리째 흔들린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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