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이라고 차린 상은 민망할 정도였다. 동생놈이 혼자 살아서이기도 했지만 제사에 모인 사람이 모두 남자들뿐이라 변변한 음식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제사 음식은 이미 죽은, 그래서 한동안 음식이라곤 입에 못 대본 망자라 하더라도 별로 식욕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상 위에 차려놓은 음식들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상도 제대로 닦지 않은 듯 먼지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 상 한가운데에 통째로 삶긴 닭이 커다란 접시에 담겨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망자가 아닌, 닭을 숭배하는 어떤 이상한 습속을 가진 원시 종족들이 지내는, 닭을 모시는 제사 같았다. 자세히 보자 뽑지 않은 털이 몇 개 남아 있었다.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그 털이 신경이 쓰였고, 그래서 그것을 뽑아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살이 모두 익은 닭은 이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엎드려 있었다.

[달에 홀린 광대] '숲에서 길을 잃다' 중 p.113

 
   

정영문작가의 소설은 처음 대한 것인데, 쓰잘데기 없는 글들을 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정영문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름 흥미롭다. 어떤 것도 '심각하지 않은 것이 심각한' 문제인 '나'. 흥미로운 캐릭터가 될 수도 있겠다.

인용한 대목도 대목이지만 이후 나오는 제사 풍경이 더 배꼽잡게 한다.

책 제목이 된 [달에 홀린 광대]와 [숲에서 길을 잃다], [양떼 목장]이 재미있었다.

보니, '딱한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얼거리다 결심하는 게 '떠나야겠다'는 등속이니 ...

그 길밖에 없으려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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