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아니라 오늘이어서 다행이었다. 날씨가.

어제처럼 햇빛 쨍하고 더운 날이었다면 이다지 감상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른 시각에는 밝았던 날이 오전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어둑해지더니 이내 비가 내리고 있다.

오전 내내 꼬박, 다른 일 다 미뤄두고 두꺼운 이 소설을 마저 읽었다.

아마도 94년 또는 95년도 쯤에 한 번 읽었던 적이 있다. 동생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이었다.

그 때 이 책이 오늘처럼 나를 눈물짓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면 그 뒤로도 하루키라는 작가의 책들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봤을 테니까. 그러나 그러지 않았으니까.

동생이나 나나 [상실의 시대]를 읽은 후 10년도 넘은 지금, 동생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최근에 이 책을 구입해서 다시 읽은 것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동생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했고 자식 둘을 둔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회사에 매어 있고, 그건 그의 와이프도 마찬가지. 그들의 그런 생활의 댓가로 경제적 어려움은 겪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대학시절 동생은 나보다 훨씬 급진적이었고 활동도 그랬다.

왜 다른 책이 아니라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오늘 다시 읽으며 '시대'를 제목으로 삼은 것 때문에 아마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영원히 나이테의 일종으로 되새겨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분석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 할지라도 이제 그런 식의 과거 어느 시대의 지표로 쓰여지질 않길 바란다. 뭐, 모르지 바란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닐테니.

어쩔 수 없었다, 대학시절과 이 책을 처음 읽던 13, 4년전과 지금이 엎치락 뒤치락 떠오르면서 감정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을.  제자리 걸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변했어야, 지금 어디쯤 왔어야 그래, 내가 많이 나아왔구나, 대견하다 내지는 잘 살아왔다, 그런 뿌듯함을 느끼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 나를 돌아보면 나는 멀리 떠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너무나 한참 지났는데도 ... . 

소설 마지막에 미도리는 묻는다, 지금 어디냐고?  

이런 책 하나 갖는 것 나쁘지 않다. 비록 마음이 다시 한 번 송두리째 흔들린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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