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수없이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책.
밑줄로 인해 책 페이지가 죄다 새까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네카는 절제 없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 절약과 박애주의의 신념을 지니고있다는 이유로 조롱받았다. 생각하는 것과 실제 살아가는 방식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은행가이자 철학자인 그 양가적 인물로부터 뭘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토록 조롱받던 그의 글은 오늘날에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가 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서구평화주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이렇게 쓴다. 

"우리는 개인의자살을 단죄한다. 그런데 사람들을 몰살하는 영광스러운 범죄인 전쟁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우리는 사형에 처해야 할 행위를 찬양한다. 장군의 휘장을 두른 자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이유에서 말이다. 공권력은 개인에겐 금지된 것을 명령하고, 의회의 결정과 서민에 대한 법령을 수단으로 폭력이 행사된다. 인간은, 동물 중에 가장 사랑스럽지만,
전쟁을 하고 자식에게 그 전쟁을 물려주는 걸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이 텍스트들은 수 세기가 지났음에도 놀라운 진실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재창조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가 그리스와로마 이래로 우리의 상징과 사유와 혁명을 끊임없이 재활용해왔기 때문이다. - P469

사실 19세기가 되어야 제목을 통해 독서를 유인했다. 신문, 시장,
경쟁이 강화되면서 독자의 관심을 끌 필요성이 생겼고, 작가는 책 표지를 통해 유혹을 시작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아름답고 대담한 제목이 나타났다. 여기에 그 목록을 간략히 제시해본다.

고밀도의 시적 제목들:
카슨 매컬러스(Carson McCullers)의 「마음은외로운 사냥꾼」,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ias)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 P455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é)의 <죽은 군대의 장군>

아이러니한 제목들: 
아우구스토 몬테로소(Augusto Monterroso)의 <전집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 (Obras completas (Y otres cuentos)>
존 케네디툴(John Kennedy Toole)의 <바보들의 결탁>,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
앙헬리카 고로디스체르(Angelica Gorodischer)의 <나쁜 밤과 암컷넣기(Mala noche y parir hembra)>
레이먼드 카버의 <제발 조용히 좀 해>

불안을 낳는 제목들: 
오에 겐자부로의 <짓밟히는 싹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처녀들, 자살하다>, 
체사레 파베세(Cesare Pavese)의 <죽음이 다가와 네 눈을 가져가리 (Verra la morte e avrà i tuoi occh)>, 
하퍼 리의「앵무새 죽이기」, 
레일라 게리에로(Leila Guerriero)의 <세상 끝의 자살(Los suicidas del fin del Mundo)>, 
마르타 산스(Marta Sanz)의 <거짓말쟁이(Perra mentirosa)>

뜻밖의 수수께끼 같은 제목들: 
엘리자베스 스마트(Elizabeth Smart)의 <중앙역에 앉아서 울다 (By Grand Central Station I Sat Down andWept)>,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우리들의 어제(Tutti i nostriieri),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Juan Gabriel Vásquez)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비밀이 감지되는 제목들: 
후안 헬만(Juan Gelman)의 「나는 당신을사랑한다고 말해야 했다(Debí decir te amo)」, 
아나 마리아 마투테(AnaMaria Matute)의 <사람이 살지 않는 낙원(Paraiso inhabitado)>, 
이시도로블라이스텐(Isidoro Blaisten)의 <우울함에 갇힌(Cerrado por melancolia)>, - P456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시대>, 
루이스 란데로(Luis Landero)의 <뒤늦은 나이의 장난(Juegos de la edad tardia)>, 
로사몬테로(Rosa Montero)의 <너를 다시 보지 않겠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Lavideal and nevereraverte)>.

좋은 제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미스터리다. 때로는 "태초에말씀이 있었다."라는 표현처럼 제목이 먼저 떠오르고, 이후에 책 전체가 언어의 빅뱅처럼 확장되기도 한다. 또 때로는 작가의 우유부단함 속에서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하기도 하고, 어쩌다 들은 구절에서예상치 못한 제목을 발견하기도 하고, 영감을 받은 제삼자가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제목을 둘러싼 여러 가지 유명한 일화가 있기도 하고,
친구나 편집자 등의 도움으로 제목을 찾는 경우도 있다. 톨스토이는<전쟁과 평화> 대신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어했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레즈비언"으로 부르고자 했다. 오네티(Juan Carlos Onetti)는 <더 이상 상관없을 때(Cuando ya no importe)> 대신에 "대저택"을 고려했다. 볼라뇨(Roberto Bolaio)는 "개떡 같은 폭풍" 대신에 다른 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칠레의 밤」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드물긴 하지만, 자유로운 번역을 통해 작가도 생각지 못한 제목이나타나기도 한다. 존 포드는 영화와 소설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쓰인 <수색자>라는 작품을 고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익명의 스페인 배급사는 새로운 영감을 얻어 <사막의 켄타우로스>라는 기막힌 제목으로 작품을 개봉했다. 
레일라 게리에로는 책 제목은 기발한 단어의체가 아니라 "이야기의 심장에서 뗄 수 없게 접합"되어 있기에 적확한 제목을 찾아낼 때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 P45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3-11-06 1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우 위험한 책이겠군요...

책읽는나무 2023-11-07 15:39   좋아요 0 | URL
매우..ㅋㅋ
위험할 수도 안 위험할 수도..
하지만 재밌는 책이었어요.^^

그레이스 2023-11-15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입니다.
밑줄 긋다 보면 새까매지는 ...ㅎㅎ

책읽는나무 2023-11-15 16:25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근데 시간 지났다고...기억이 많이 사라지고 있네요.ㅜ
책을 왜 읽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