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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희망이 간절한 시대, 간절한 만큼 정말스런 시대, 인문학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찾았다는 이야기들이 도처에서 들려온다. 몇몇 다큐에서 인문학 독서를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접했다. 우연히 티비에서 이지성씨의 강연을 접한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인문학 독서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가 가능하다니, 반가운 소식이고 호기심 나는 소식이었다. 그러다 대학도서관 e북으로 만나 빌리게 되었다. 인문학 독서가 어떻게 희망이 되었고 또 될 수 있는지 궁금했고 혹 내 주변에서 그 희망의 씨앗을 뿌려보고 싶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짜투리 시간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내용, 동양과 서양, 고대로부터 근, 현대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천재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인문학에 몰입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둔재였는데, 인문학 독서에 빠져든 후에 천재적 두뇌를 가지게 된 여러 예를 든다. 그랬구나 싶기도 하지만 수많은 인물들이 다 인문학 독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너무 갖다 붙이는건 아닌가 갸우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문학 독서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만은 읽어나갈수록 분명해졌다.
다만 저자가 인문학을 통해 천재적 두뇌를 갖게 된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스스로도 천재가 되기 위한 인문학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인문학이 천재가 되거나 성공의 도구이기 이전에 사람됨을 위한 것임을 저자도 분명히 알고 있다. 다만 그런 인문학이 현실적인 삶에도 충분한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천재가 되고 두뇌가 바뀌고 깨달음에 이르러 머리가 열리는 등의 절정에 대한 강조가 많아 보인다. 저자 스스로 그런 경지에 경탄하고 동경하고 그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는 듯 느껴진다.
물론 오해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면서 인문학 공부의 본질이 희미해지는 듯이 보였다. 인문학이 또다른 성공학, 자기계발의 도구로 비춰지는 느낌 때문이다. 인문학은 말그대로 사람의 사람됨을 추구하여 그것을 통해 행복을 함께 나누는데 그 본질이 있다. 그렇다면 천재가 되느냐 아니냐, 황홀한 깨달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부수적인 문제가 아닌가. 사람됨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깨닫고 그 눈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충분한 게 아닌가. 리드하기 위한 리딩이 리딩을 도구화하고, 사람됨을 도구화하려는 욕망의 덫에 걸리기 쉬워 보였다.
인문학 독서가 얼마나 중요하고, 그 가능성과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또 깨달을 때까지, 마음에, 삶에 새겨질 때까지 수백번 읽고 외우는 공부의 중요성도 보여주었다. 마음을 울리는 구절들만을 엮어서 보는 공부법도 기억에 남는다. 서양의 인문학공부보다 동양의, 특히 우리 선조들의 인문학 공부에서 깨달음과 섬김의 실천이 궁극적 목적이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측면에서는 리딩의 리드가 분명 우리 삶에 되살아나야할 것이다. 인문학이 보여주는 사람됨의 뜻을 따라 자신과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독서! 저자도 분명 이것을 의도했으리라. 특히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인문학, 사람된의 공부는 거세당하고 노예됨의 공부만 남은 현실에서는 더욱 간절하다. 사람됨을 추구하고 스스로 생각해서 깨닫는 공부는 거세당하고, 지시를 알아듣고 그것을 단순히 암기하며 따르는 노예적 공부만 남은 우리 현실에는 더 더욱 되살아나야 한다.
이 책을 다 읽고난 후 독서와 공부에 대한 바람이 깊어졌다. 책을 읽고 감동만으로 스쳐가는 공부보다 감동들을 모아두고 마음과 삶에 늘 새겨나가는 공부를 그리게 되었다. 이 책에서 예로 든 누군가는 마흔 살에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이후 큰 업적을 남겼단다. 큰 업적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읽고 되새기며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기쁨을 누리고 나누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