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경의 살아 계신 하느님,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 예언자들의 하느님은 구름 속이나 고독한 철학적 사유 속에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인간의 길 위에, 역사의 여정 속에 당신을 드러내신다. 인간을 구원하고, 종살이에서 해방하는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사람들 뒤에서 당신 몸을 일으키신다. 하느님은 그들의 가장 처절한 부르짖음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p.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뜻밖의 친밀함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에 파수꾼

 

아무날도 아닌 어느 날이었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어떤 날, 이 책이 도착했다. 그 책에서 맛 본 그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머금고 왔다. 소포 발신인에 적힌 어릴 적 친구의 이름이 어릴 적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날도 아닌 그날은 특별한 날이 되고 말았다. 그 고마움과 호기심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몇 년 만에 펼쳐 읽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 알고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낯선 숲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들어서듯 읽어나갔다. 직전에 읽은 도스트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서머싯 몸의 면도날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두 소설도 스타일이 다르다. 그러나 둘 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호밀밭에 파수꾼에는 특별한 사건의 전개도, 유혹도 없다. 읽고 싶으면 읽고 아니면 말라는 식의 독백이 주를 이룬다.

 

16세 소년인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또다시 퇴학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는 이틀간의 이야기다. 기숙사에서 호텔로, 호텔에서 영화관, 술집 등을 헤매며 쏟아내는 불평, 불만의 주된 내용이다. 콜필드의 눈에 세상은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한 역겨운 대상이다. 무엇에 구역질이 나는지 투덜대는 십대 소년의 독백이 이어지고 이어진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왜 그렇게도 냉소적이고 삐딱한 성격인 것인지 따위는 설명하지 않는다.

 

홀든은 행운을 비네!”라는 인사말을 생각만 해도 끔찍해 한다. 전혀 반갑지 않은 사람에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라고 하는 인사말도 환장할 노릇으로 느낀다. 인사말조차 진심이 담기지 않은 빈말이면 역겹다. 그 만큼 예민하게 순수에 집착하는 소년의 냉소적 독백이 가득하다. 홀든은 피아노 연주를 듣고 박수치는 청중의 반응에 역겨워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만약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배우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바보 같은 사람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더 끔찍한 일일 것 같다. 저들이 내게 박수 갈채를 보내오는 것조차 싫을 것이다. 사람들이란 늘 별것도 아닌 일에 박수를 치곤 하니 말이다. 내가 피아노 연주자라면, 난 옷장 속에 들어가 연주할 것이다.” p.116.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포크너가 현대문학의 최고봉이라고 극찬한 작품, 출간 50주년, 아직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정신을 뒤흔들고 있는 문제작, 출간 직후 청소년 금지 도서였으나 지금은 최우수 권장 도서가 된 소설. 붉은 띠지에 자랑스럽게 두른 이 내용이 쉬 와 닿지 않았다. 사실 주인공 콜필드가 이렇게 치켜세우는 내용을 봤다면, 구역질을 하지 않았을지.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그 목소리에서도 위선과 허영을 찾아내고 말았을 듯싶다.

 

콜필드는 자신을 진정 황홀하게 만드는 책을 제시한다.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p.32) 100페이지 가까이 읽었을 때 콜필드도, 저자도 편한 친구로 다가오긴 어렵겠다 싶었다. 위선과 가식에 강박적으로 역겨워하는 삐딱한 시선에 나 역시 구토의 대상이지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목사들에 대해서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내가 다녔던 학교마다 목사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틀에 박힌 거룩한 목소리를 만들어 설교를 하곤 하는 것이다. 난 그게 싫었다. 왜 좀 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목사들의 이야기가 순 거짓말처럼 들리는데도 말이다.” p. 137.

 

어디 가서 처음 본 사람이 목사 아니냐고 말하면, 편치 않다. 이 시대 목사가 보여준 전형적인 이미지가 배버렸나 싶어서다. 가수나 목사가 틀에 박힌 상투적인 태도를 보일 때, 진심이기보다 닳고 닳은 습관의 껍질처럼 보이기 쉽다. 신앙인, 목사로 얼마나 진실한 말, 마음 담긴 태도를 살아왔을까? 오랜 습관으로 경건하고 거룩해 보이는 껍질만 두꺼워진 건 아닐까? 피하기 어렵겠지만, 내 눈에도 그런 모습이 그리 좋지 않았던가 보다. 그런 모습일까봐 신경 쓰이는 것을 보니.

 

책을 읽는 과정이 등산 같이 느껴지곤 한다. 어떤 산은 초입부터 풍경이 마음에 끌린다. 그러나 어떤 산은 자갈 투성이에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나 불편했던 산도 한참을 걷다보면 그만의 멋과 맛이 드러난다. 결국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면 다정한 이별이 되고 만다. 이 책도 100페이지를 넘기고 어느 순간, 주인공의 투털거림이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가 없어도 그 나름의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내 마음이 되고 말았다.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p.279.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냉소하고 불평했던 친구까지도 보고 싶다는 콜필드의 마지막 고백이다. 빈 말을 그리도 역겨워 하는 그이기에 진심 가득한 말로 다가온다. 소설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콜필드가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강박적으로 순수함과 진실함에 집착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마지막 줄을 읽고 난 순간, 콜필드를, 저자를 친구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문명 속에서 예의 바르고 세련된 문화를 영위한다는 사람들이 세계대전에서 보여준 폭력성, 그것을 목도한 전후세대는 콜필드의 모습에 더욱 깊이 공감했으리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기쁨과 감동을 준 책이라는 친구의 메모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통과한 십대시절 우리의 모습을 닮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랬다. 콜필드는 나였다. 자신을 너무 닮은 이는 괜히 싫어지기도 한다. 불편했던 주인공의 태도, 책장이 넘어가면서 그 모습이 언젠가 잃어버린 자신의 일부임을 발견한다. 세상과 자신에게 진실하고 진정하려 했던 마음이 분명 있었다. 너무도 여리고 아팠던 그 마음이 어디쯤에서 잘려나갔는지 기억조차 없다. 그 마음 그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아팠던가. 오랜만에 만난 나였던 그를 만나 인사를 나눈다, 말하지 못한 미안함으로. 너무 오래 잊고 지낸 미안함으로.

 

Hazy Black Watercolor Paintings of Children with Animal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코의 미소 (리커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율랴가 어릴 적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것도 자기 아버지에게. 율랴가 주인공 소은에게 그 말에 묶여 살아온 속내를 보여준다.

“소은, 어린애들은요. 어른이 한 말을 다 진짜로 믿고 받아들여요. 평생 동안 그 말과 함께 살아가는 거지요.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버지가 내게 말했어요. 너는 쓸모없는 계집애야. 덩치만 큰 계집애. 눈에 띄고 싶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몸이 커졌습니다. 웅크리면 조금이라도 작게 보일까 해서 구부정하게 다녔지만 소용없었어요. 사라지고만 싶었습니다. 「먼 곳에서 온 노래」(소설집 『쇼코의 미소』 중) p.192.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 묶인 삶은 특별하게 바라봐주는 듯한 존재에게 묶이기 쉽다. 러시아로 유학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미진을 도와주면서 율랴는 자기존재를 확인한다. 자기 도움 없이는 무력하기만 한 존재가 필요했고, 그런 존재로만 있기를 바라게 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도와주는 내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말로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내가 미진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는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해, 라고. 미진이 점점 더 러시아 말을 잘하게 될수록, 저의 도움이 필요 없어질수록, 매력적인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미진에게 화가 났습니다. 미진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게 날 견딜 수 없게 하더군요. 이타심인 줄 알았던 마음이 결국은 이기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미진이 떠난 이후였습니다.” p. 193.

최은영의 단편소설 「먼 곳에서 온 노래」(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결국 다른 말을 건넨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더 잘해야지, 넌 틀렸어 같은 날카로운 말들 사이로, 그 소나기 같은 말들을 피해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다른 말을 건넨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당신이 고치려고, 감추려고 애써온 약점을 사랑합니다. 그것 때문에 웃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특별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고 있어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율랴 당신이 특별하다고 했어요. 당신이 미진을 도와줘서도 아니고,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라, 그냥 특별했대요. 당신 같은 사람 본 적없대요. 그녀는 그리고… 그리고 율랴는 그 사실을 모른다고. 그게 마음 아프다고 했어요.”p.207.

빛이 있으라, 말씀으로 창조가 시작되듯, 어떤 말은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삶을 지배한다. 언제였는지, 왜인지 기억하지 못해도, 그 말만은 삶의 배경음악이 되고 리듬이 된다. 창밖에 어떤 하늘이 펼쳐지던, 어떤 경이로운 일을 만나던 상관이 없다. 그 모든 장면의 분위기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지휘한다.

그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그 무엇 때문에 특별하게 보는 시선은 잔인한 유혹의 덫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약점까지도 특별하게 보이는 시선만이 구원의 길이다. 빛이 있으라, 창조의 말은 다른 언어로 끊임없이 번역되어 메아리치고 있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당신이 감추려 하는 그 모습까지도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수줍어 건네지 못한 그 말이 바로 흑암과 공허 속에 빛나는 신의 언어다. 이 땅덩어리가 거대한 어둠 속을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듯, 너무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가끔 곁에 있는 한 영혼을 통해 수줍게 속삭이고 사라질 뿐이다.

그 영혼이 돌아가고 세월이 흘러 목소리마저 희미해질 때, 길은 하나다. 그 목소리를 되살리는 길은 하나뿐이다. 내 목소리로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길 하나뿐이다. 그 음성이 계시와 부르심의 변주가 아닐까.

“미진, 네가 보고 싶어.” 율랴는 선배 사진을 가슴에 품고 조용히 말했다. “너를 자꾸만 잊어가. 이제 네 모습, 잘 기억나지 않아. 미진.” 나는 선배의 이름을 부르는 율랴를 안았다. 율랴의 몸은 크고 따뜻했다. 그 품에서 나는 율랴를 안아주는 선배를 느꼈다. 율랴, 율랴.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해, 라고 내 몸속에서 율랴를 위로하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p.208.

최은영, 「먼 곳에서 온 노래」(소설집 『쇼코의 미소』 중)를 읽고

Hazy Black Watercolor Paintings of Children with Animal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수님은 당신을 메시아로 드러냈다. 그러나 누구나 기다리는 메시아는 아니었다. 그분은 작은 이들, 모욕받은 이들의 메시아였다. 온갖 비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메시아, 사람이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주는 메시아였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인간 해방의 복음이다. 인간 해방 없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수 없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인간에게 새로운 미래, 자유와 존엄의 미래를 열어 준다. 하느님 나라는 어떠한 형태로 든 종살이나 억압, 인간의 타락을 용납하지 않는다.
p.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