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 P196

피조물에게 위안을 찾지 마십시오. ... 그런데도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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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체 해부도를 연구하고 시체를 해부했던 것처럼, 나도 영혼을 해부하고자 했다." 뭉크는 한 친구에게 "미술에서는 아직까지 (도스토옙스키처럼) 세계의 외적 현실을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의 기호나 상징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형이상학적이고 잠재의식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영혼의 신비한 영역을 통찰한 사람은없었다" 고 말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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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가 정치적 행위의 특성을 새로운 시작으로 파악했다면, 혁명은 바로 정치적 행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은우리에게 ‘시작‘의 문제를 불가피하게 직접 대면케 하는 유일한 사건이기 때문이다."(한나 아렌트 <혁명론>85. - P203

프랑스혁명은 자유의 이념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수밖에 없는 세계사적 사건이었을까? 게오르크 헤겔은 그렇게 본다.
그러나 아렌트의 관점은 여기서 크게 달라진다. 아렌트는 세계 역사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구체적 행위라고 주장한다. "세계 역사라는 이념 자체는 기원상 분명히 정치적이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은 그 이념보다 앞선 것이었으며, 모든 인류를위해 새로운 시대를 이끈 것을 자랑스러워했다."(한나 아렌트 <혁명론> 128) 혁명은 결코 세계역사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정치 행위로 시작되는 것이다.
- P205

이 낱말이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사용된17~18세기만 해도 혁명은 복구와 복고를 의미했다. 혁명을 했던 사람들은 본래 프랑스에서처럼 절대군주정에 의해 왜곡되거나 미국에서처럼 식민 정부의 권력 남용으로 교란된 옛 질서를 복원하여 고대적 자유를 되찾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은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복고로는 자유를 확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 P204

이처럼 혁명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자유를 목표로 하고, 새로운정치 질서를 확립하려는 정치적 행위이다. - P209

한나 아렌트는 근본적으로 필연성의 영역이 끝나는 곳에서 자유가 시작한다는 마르크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필연성에 묶이면 묶일수록 정치적 행위를 덜 하게되고, 거꾸로 행위를 적게 하면 할수록 생존의 생물학적 필연성은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 P211

프랑스혁명은 본래 자유의 확립을 목표로 삼았지만해방과 자유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는 절대 권력에게서 해방되길 바라는 반란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시민적 자유를 헌법적 보장을 통해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독재도 헌법적으로 시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있다. 이러한 정치는 언제든지 전제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 - P217

첫째, 공화정의 토대는 ‘공적 자유‘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유를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자유로운 선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은 모두 개인의 주관적 권리이다. 이에 반해 아렌트는 "자유란 공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혁명론> 216) 고 거듭 강조한다. 간단히 말해 공적 자유는 공적 업무에 참여하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고귀한 사람이든미천한 사람이든, 현명한 사람이든 우매한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배우지 못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누군가 보이는 공적 장소이면 어디서든지 자신의 말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고, 자신의 말이 경청되고 인정받는 공적 공간이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 P218

아렌트는 우리가 직접보고 느끼면서 기쁜 것은 단지 만족스러운 것일 뿐이며, 상상을 통해 재현된 대상에 대해 기쁨을 느낄 때 비로소 아름답다고 판단한다.
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상상만 해도 좋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아름다운 것은 우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 단계에서 취미는 이제 판단이 된다. 우리는 이제 상상을 통해 타인의 관점에서바라봄으로써 우리의 호불호가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이러한 취미판단을 통해 우리의 자아중심주의는 극복된다. 우리의 감각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취미는 비객관적이지만,
취미 속에는 동시에 상상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비주관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판단은 스스로 다른 모든 사람의 입장에 서봄으로써만 수행되는 것이다. - P248

미적 취향과 정치적 성향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아렌트가 공통 감각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칸트의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Anthropologie inpragmatischer Hinsicht)》의 한 구절은 정치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정신 이상의 유일한 일반적 징후는 공통 감각(scensus communis)의상실과 그것을 대체하는 논리적 자기 고집(sensuus privatus)이다."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명청한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판단력이 없는사람이다. 그는 물론 자신의 욕구와 이해관계를 표현할 줄 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고려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적 감각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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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기다리는 결국 엄마는 왔다. "집에서 자라고 했는데 왜 나와 있는 거야. 위험하게 이게 뭐하는 거야. 다시 이러면 진짜 혼낸다.
다그치다가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딸들에게 볼을 비비대던 엄마,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 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기다림을 윤희는 아프게 기억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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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치를 강렬하게 요청할 때는 사실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있는 길이 막혀 있을 때이다. 정치적으로 모든 것이 억압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체주의 상태가 아니라도 우리는 때때로 이런 상황을 경험한다.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현실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기는 소설가인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가 《두 도시 이야기 (A Take of Two Cities)》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희망이 곧 절망인 상태가 그런상황이다. "그때는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하는 동시에 반대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 P136

"그러나 역사에서 모든 종말은 반드시 새로운 시작을포함하고 있다는 진리는 그대로 유효하다. 이 시작은끝이 줄 수 있는 약속이며 유일한 ‘메시지‘이다. 시작은,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 되기 전에 인간이 가진 최상의 능력이다. 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와 동일한 것이다. ‘시작이 있기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고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새로운 탄생이 이 시작을보장한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284 - P134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시작할 미래가 없다면, 무엇인가 시작할 수조차 없다면, 우리는 인간성을 완전히 빼앗긴다.
- P135

정치가 역사로 변형되는 순간, 즉 다수의 사람이 하나의 역사 주체인 인류로 용해되는 순간 오히려 다수의 자발성을 파괴하는 야만이 시작된다. "이것은 역사의 야수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의 원천으로, 이러한 역사는 처음으로 정치 안에서 그 완전하고도잔인한 목적을 완수한다."(한나 아렌트 <정치의 약속> 135) 역사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복수성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야만과 비인간성의 원천이다.
- P145

새로운 것을 해석하고 시작하는 능력, 즉 인간이 반드시 죽는다 할지라도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행위의 내재적 능력이 없다면, 죽음을 향해달려가는 인간의 생애는 반드시 인간적인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고 파괴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344 - P154

"권력과 폭력이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권력과 폭력은 반대의 것이다. 하나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에다른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은 권력이 위험에 빠질 때 등장하지만, 제멋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는 권력의 소멸을 불러온다."
한나 아렌트 <폭력론>, 207

아렌트에 의하면 권력의 반대는 폭력이고, 폭력의 반대는 권력이다. 권력과 폭력은 인간 사회에서 필연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권력이 커지면 폭력이 줄어들고, 폭력이 늘어나면 권력이 작아진다. 여기서 우리는 아렌트의 놀라운 주장과 맞닥뜨리게 된다. 많은 사람이폭력의 반대를 비폭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폭력의 반대는 권력이라는 것이다. 비폭력은 새로운 정치적 행위와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권력이기 때문에 비폭력적 권력이란 말은 사실 중복적인 말이력이라는 것이다.권력은 곧 비폭력이기 때문이다. - P168

권력은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으며, 정치 공동체의 존재 자체에 내재해 있다. 권력에게 필요한 것은 정당성 (legitimacy)이다. 일반적으로 이 두 낱말을 동의어로 취급하는 것은 복종과 지지를 동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해이며 혼동이다. 권력은 사람들이 모여 협력 행위 (act in concert)를 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생겨난다. 그렇지만 권력의 정당성은 최초의 모임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후의 어떤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당성이 도전받을 때는 과거에 호소함으로써 정당성의 기초를 삼는 반면, 정당화(justification)는 미래에 놓인 목적과 관계한다.
한나 아렌트 <폭력론> 202. - P170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 <폭력론> 202 - P171

사람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종종 폭력을 사용하지만, 폭력은 결국 권력을 파괴한다. 폭력은 결코 권력을 창조하지 못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에 빗대어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총구에서 가장 효과적인 명령이 나와서 가장 즉각적이고 완전한 복종으로 귀결될 수 있다. 총구에서 결코 나올 수없는 것은 권력이다."(한나 아렌트 <폭력론> 202) - P172

베버는 권력을 "특정한 사회관계에서 반대가 있는데도 자신의의지를 주장할 수 있는 기회"로 간단하게 규정한다. 베버의 권력개념은 의지를 갖고 있는 행위자를 전제한다. 행위자는 스스로 설정한 목적을 실현하는 데 적합한 수단을 선택한다. 목적의 달성 및 성공은 다른 행위자로 하여금, 강요에 의해서든 아니면 설득에 의해서든, 원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능력에 달려 있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능력을 권력이라고 부른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능력을 오직 폭력과 강제력에만 부과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폭력일 뿐이지 결코 권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렌트는 전혀 다른 권력 개념을 제시한다.

"권력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협력 행위(to act in concert)를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상응한다. 권력은 결코 한 개인의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에 속하며 그 집단이 협조할 때만 존재한다."
한나 아렌트 <폭력론> 193 - P173

어떤 정권이 권력을 폭력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을 보일 때 우리는 더욱 정치적으로 행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의 감소는 폭력에 대한 공개적인 초대이기"(한나 아렌트 <폭력론> 242)때문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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