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가 정치적 행위의 특성을 새로운 시작으로 파악했다면, 혁명은 바로 정치적 행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은우리에게 ‘시작‘의 문제를 불가피하게 직접 대면케 하는 유일한 사건이기 때문이다."(한나 아렌트 <혁명론>85. - P203
프랑스혁명은 자유의 이념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수밖에 없는 세계사적 사건이었을까? 게오르크 헤겔은 그렇게 본다. 그러나 아렌트의 관점은 여기서 크게 달라진다. 아렌트는 세계 역사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구체적 행위라고 주장한다. "세계 역사라는 이념 자체는 기원상 분명히 정치적이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은 그 이념보다 앞선 것이었으며, 모든 인류를위해 새로운 시대를 이끈 것을 자랑스러워했다."(한나 아렌트 <혁명론> 128) 혁명은 결코 세계역사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정치 행위로 시작되는 것이다. - P205
이 낱말이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사용된17~18세기만 해도 혁명은 복구와 복고를 의미했다. 혁명을 했던 사람들은 본래 프랑스에서처럼 절대군주정에 의해 왜곡되거나 미국에서처럼 식민 정부의 권력 남용으로 교란된 옛 질서를 복원하여 고대적 자유를 되찾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은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복고로는 자유를 확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 P204
이처럼 혁명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자유를 목표로 하고, 새로운정치 질서를 확립하려는 정치적 행위이다. - P209
한나 아렌트는 근본적으로 필연성의 영역이 끝나는 곳에서 자유가 시작한다는 마르크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필연성에 묶이면 묶일수록 정치적 행위를 덜 하게되고, 거꾸로 행위를 적게 하면 할수록 생존의 생물학적 필연성은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 P211
프랑스혁명은 본래 자유의 확립을 목표로 삼았지만해방과 자유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는 절대 권력에게서 해방되길 바라는 반란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시민적 자유를 헌법적 보장을 통해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독재도 헌법적으로 시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있다. 이러한 정치는 언제든지 전제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 - P217
첫째, 공화정의 토대는 ‘공적 자유‘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유를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자유로운 선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은 모두 개인의 주관적 권리이다. 이에 반해 아렌트는 "자유란 공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혁명론> 216) 고 거듭 강조한다. 간단히 말해 공적 자유는 공적 업무에 참여하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고귀한 사람이든미천한 사람이든, 현명한 사람이든 우매한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배우지 못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누군가 보이는 공적 장소이면 어디서든지 자신의 말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고, 자신의 말이 경청되고 인정받는 공적 공간이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 P218
아렌트는 우리가 직접보고 느끼면서 기쁜 것은 단지 만족스러운 것일 뿐이며, 상상을 통해 재현된 대상에 대해 기쁨을 느낄 때 비로소 아름답다고 판단한다. 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상상만 해도 좋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아름다운 것은 우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 단계에서 취미는 이제 판단이 된다. 우리는 이제 상상을 통해 타인의 관점에서바라봄으로써 우리의 호불호가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이러한 취미판단을 통해 우리의 자아중심주의는 극복된다. 우리의 감각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취미는 비객관적이지만, 취미 속에는 동시에 상상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비주관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판단은 스스로 다른 모든 사람의 입장에 서봄으로써만 수행되는 것이다. - P248
미적 취향과 정치적 성향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아렌트가 공통 감각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칸트의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Anthropologie inpragmatischer Hinsicht)》의 한 구절은 정치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정신 이상의 유일한 일반적 징후는 공통 감각(scensus communis)의상실과 그것을 대체하는 논리적 자기 고집(sensuus privatus)이다."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명청한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판단력이 없는사람이다. 그는 물론 자신의 욕구와 이해관계를 표현할 줄 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고려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적 감각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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