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 고통은 익숙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가 고작 감기 따위로 죽는 것은.
"친구들 있는 곳에 가자."
열세 살의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데려간 곳은 꽃동네였다. 
...
엄마가 금방데리러 올 줄 알았다. 무섭고 서러운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이 지나 ‘면회‘를 온 ‘이모‘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나를 포기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만 없어지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 P77

탈시설 장애인들의 모임인 우리들의이름은 ‘벗바리‘. 누구도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람들은 강자가 사라져야 약자가 사라질 거라고 말한다. 나는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다. 이 사회가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이유, 그것은 혹시 우리를 버려서가 아닌가. 장애인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병든 노인들을 버려서가 아닌가. 그들은 가장 먼저 위험을감지한 사람들,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이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상처 난 곳으로 온갖 악한 것들이 꿀처럼 스며드는 법이다. 약자가 없어야강자가 없다. 가장 아픈 곳으로부터 연결된 근육들의 연쇄적인 강화만이 우리를 함께 강하게 만들 것이다. 생명을포기하는 곳, 연대가 끊어지는 그 모든 곳이 시설이다. 그러니 모두들, 탈시설에 연대하라.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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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의 ‘나는 현실의 나보다 더 섬세하고 더 진지하고 더치열하다. 처음엔 그것이 가식적으로 느껴져 괴롭고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그것이 이 힘든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쓸 때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더 자세히 보려고 애쓰고 작은 것이라도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글을 쓸 때처럼 열심히 감동하고 반성할 때가 없고, 타인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를 고심할 때가 없다. 글쓰기는 언제나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쓴 글이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계속 쓸 수 있었다. - P25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 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저항을 시작한다. 그는 김수영의시에서처럼 "바람보다 늦게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는" 풀처럼 초자연적인 존재, 그러니까 기적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 하나를 지켜내고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울 수 있게 만드는 일은, 말하자면 온 우주와 맞서는 일이다. 나는 그런 경이로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 P26

나는 두 사람이 ‘자동차가 아이보다 더 많이태어나는 사회‘의 운명을 끝내 피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생각했다. 촘촘하게 과속하는 사회에서 촘촘하게 고통이전가된다. 제 속도를 고집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일은욕먹기 십상이므로 사람들은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몰아붙인다. 더 이상 고통을 전가할 곳 없는 이들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이스스로 몸을 던진다. 죽음이 일상이 되었으나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부질없다. 위로나 용서는 돈이 합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최저가로 남의 인생을 망치고도 지체 없이시동을 건다. 산 사람은 달려야 한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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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번 소설집의 제목에 대해 말해야만 하겠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고백」에서 미주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는 친구 진희에 대해 안도하며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되짚던 말이다.
상대에 대한 견고한 신뢰가 실려 있는 이 말에는 꿈결을 걷는 듯한 나른한 달큰함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이 달큰함이 진희가 품고 있던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무지로 인해 가능했던 것임을 곧 드러낸다. 자신이 느끼는 안도와 행복의 풍경이 언제나 상대의 외로움과 아픔을 철저히 밀봉했을 때에야 가능한 것임을 선연하게 의식하는예민한 윤리, 이 서늘한 거리 감각이란 최은영 소설의 요체이자 매력이다. 이것에 대해 알고 나면 왜 인물들이 쉽게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끝내 울음을 참아내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눈물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날 선 경계가 여기에 있다. - P318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수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있는 나.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났다.
나쁜 어른, 나쁜 작가가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허공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뜬눈으로 누워 잠들지 못했던 밤에도 나는 늘 이 글들에 붙들려 있었다. 그럴 때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누군가로 인해 슬퍼하게 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마음이 내 곁에 함께 누워주었다. 그 마음을 바라보며 왔다. 내 의지와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살아 있는 한 끝까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그리고 나의 삶을 사랑하는 몇 안 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내게 알려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 가까이, 멀리 있는 그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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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 P274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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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덜 아플 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했었던것 같다. 나중에 조용히 말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마음이라는 게그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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