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이번 소설집의 제목에 대해 말해야만 하겠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고백」에서 미주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는 친구 진희에 대해 안도하며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되짚던 말이다.
상대에 대한 견고한 신뢰가 실려 있는 이 말에는 꿈결을 걷는 듯한 나른한 달큰함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이 달큰함이 진희가 품고 있던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무지로 인해 가능했던 것임을 곧 드러낸다. 자신이 느끼는 안도와 행복의 풍경이 언제나 상대의 외로움과 아픔을 철저히 밀봉했을 때에야 가능한 것임을 선연하게 의식하는예민한 윤리, 이 서늘한 거리 감각이란 최은영 소설의 요체이자 매력이다. 이것에 대해 알고 나면 왜 인물들이 쉽게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끝내 울음을 참아내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눈물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날 선 경계가 여기에 있다. - P318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수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있는 나.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났다.
나쁜 어른, 나쁜 작가가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허공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뜬눈으로 누워 잠들지 못했던 밤에도 나는 늘 이 글들에 붙들려 있었다. 그럴 때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누군가로 인해 슬퍼하게 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마음이 내 곁에 함께 누워주었다. 그 마음을 바라보며 왔다. 내 의지와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살아 있는 한 끝까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그리고 나의 삶을 사랑하는 몇 안 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내게 알려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 가까이, 멀리 있는 그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