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우상숭배와 주술신앙은 언제나 신에게서 돌아선 죄의 결과인 탐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그것이 다산이든, 풍요든, 승리든, 안전이든, 언제나 자신의 현세적 욕망을 위해 어떤것을 주술적으로 믿고 숭배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제2계명의 서두에 형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할 때에도 "너를 위하여"라는 말이 앞에 전제되어 있는 것이 바로 그래서이지요. 그것은 ‘너의 현세적 욕망을 위하여‘ 그런 일들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현세적 욕망-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콘큐피스켄치아 concupiscentia‘라고 불렀습니다-이란 신을 떠남으로써 우상을 섬기게 된 죄인의 ‘징표stigma‘ 입니다. 물론 인간은 탐욕스러워지기 위해 신을 떠난 것이 아니라 신을 떠났기 때문에 탐욕스러워지며, 우상을 섬기기 위해 신을 떠난 것이 아니라 신을 떠났기 때문에 우상을섬기게 됩니다. 이 말은 탐욕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결과이자현상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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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S. Baumann은 《유동하는 공포》113-114에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우려를 남겼습니다.
아우슈비츠나 굴락, 히로시마의 도덕적 교훈 중 가장 충격격인 것은 우리가철조망 안에 갇히거나 가스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조건이라면 우리가 가스실의 경비를 서고, 그 굴뚝에 독극물을 넣는 역할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아니라, ‘적당한 조건‘ 이라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 그것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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