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옹호하다
이제인
내가 끌고 다닌 시간의 대칭축, 구두 뒷축은
언제나 안쪽부터 닳는다, 마음이 기울어진 흔적이다
자라다 만 것 같은 발을 내려다본다
가뭄 때 갈라진 발바닥의 틈들이 조금 더 넓어져 있다
세상의 틈은 날이 갈수록 넓어진다 나는 얼마나
먼 길을 떠나왔나, 돌아갈 길 챙겨놓지 못한
흉년의 시간들이 쓸쓸하다
우편물 실은 화물열차는 목적지가 분명하고
이름표를 바꿔 단 사람들은 오지 않을 열차를 기다리며
철로변에서 날잠을 잔다
늘 반송되고 싶은 나는 언제쯤 나에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건널목 차단기는 올라가고 사람들은 자동차 페달을 힘껏
밟는다
내 젊은 날 꿈들은 아직도 신호 대기중인가
(시와 시학 2003 신춘문예 당선작)
신호대기
사거리 건널목 갓길에 멈춰섰다.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달려나가는 자동차들
배설하는 매연이 가슴을 짖누른다.
저 끝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갈라진 손뺨으로 쓰라리게 재보기만
동행의 침묵과 암전
더더욱 숨통을 조여오고
다시 파란불은 깜박이며 재촉하고
다시 빨간불은 절망케 하고
행운의 네 잎 클로버에 가려진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었던가?
굳게 닿힌 차창 밖으로
푸른 나무는 짙은 매연 바람에도 춤추고
엔진의 떨림에 몸서리치는 차 밑으로
개똥벌레는 똥을 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