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자 대표적인 전기(傳奇)소설. 그동안 일본 목판본에 의지해 번역되었던 것을 1999년 중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조선시대 초기 목판본을 바탕으로 새롭게 번역했다.

'만복사저포기'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등 <금오신화>에 실린 5편의 글들은 인간과 귀신의 만남, 저승세계와 용궁으로의 여행 등 비현실적인 소재를 택하고 있지만 그 속에 일상의 희노애락과 당시 지식인 및 민중들이 지녔던 심리적 고통 등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옮긴이는 <금오신화>의 번역글 뿐만 아니라 금오신화 한문 원문, 김시습의 논문과 서한, 이율곡·윤춘년 등 후세 사람들인 쓴 김시습의 일대기, 김시습의 한문시 등 그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함께 실어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다.
 
매월당 김시습은 풀과 나무와 강물과 기층민의 삶이 언제나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는 여행의 길에 나선 사람이었다. 그는 속죄와 순례의 여행자였다. 비록 경주 남산이나 서울 동쪽의 수락산에서, 혹은 관동의 한 산자락에서 일시 은둔자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의식은 정태적이지 않았다. 겉으로는 안온하게 보이는 생활을 하였던 그 시절에도 그의 의식은 여행자의 그것이었다. 더구나 <금오신화>에서 그는 삶의 현실공간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상상 세계의 여행도 그에게는 속죄의 행위였고 순례의 행위였다. 일체의 가치가 훼손된 결함세계를 응시하는 자만이 갖는 속죄의 태도와 순례의 정신이 <금오신화> 속에 담겨 있다.

<금오신화>를 읽는 나는 또 몇 걸음의 길을 닦아야 할 것인가. 길가의 돌을 몇 걸음이나 더 옮겨야 할 것인가. - 심경호(옮긴이)
1. 금오신화

1) 만복사의 저포놀이
2) 이생이 남너머를 엿보다
3) 부벽정에서 취하여 놀다
4) 남염부주 이야기
5) 용궁 잔치에 초대받은 이야기
6) 갑집의 뒤에 적다

2. 금오신화 한문 원문

3. 김시습의 논문

1) 귀신에 관하여
2) 민을 사랑하는 이치에 대하여
3) 생물을 사랑하는 이치에 대하여

4. 김시습의 서한

1) 김시습이 양양부사 유자한에게
2) 속내를 토로한 서한

5. 김시습의 일대기

1) 윤춘년이 지음 김시습 일대기
2) <매월당선생전>
3) 이이가 지은 김시습 일대기
4) <김시습전>
5) 이자가 지은 매월당집 서문, <매월당집서>

김시습의 시 해설
 
 <드라큘라>는 이제껏 수백 번 이상 영화화되고 무대에 올려진 환상 문학의 고전 명작 소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작품들 중에 원작에 충실했던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 작품을 단순한 공포 소설로만 읽을 수 없다는 움직임이 태동하면서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주로 프로이트 주의자들에 의해서 드라큘라를 성적인 갈망의 환영으로, 어떤 관능적인 열망의 징후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1981년에 미국에서 <드라큘라>가 재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품이 최초로 완역되었다.
 
영국의 젊은 변호사인 조너선 하커는, 영국에 저택을 알아봐 달라는, 드라큘라 백작의 의뢰를 받고 트란실바니아(지금의 루마니아)로 파견된다. 비스트리츠에서 백작의 성으로 떠나려는데, 마을 사람들은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드리면서 그에게 마늘과 장미꽃을 선물로 주며 그를 걱정해 준다.

또 그가 묵던 여관 여주인은 그날이 온갖 귀신들이 집합하는 성조지의 축일이라며 떠나지 말라고 하나 그가 극구 떠나려 하니 그에게 십자가를 쥐어 준다. 보르고 고개까지 역마차를 타고 가다 백작이 보낸 준 마차로 갈아타고서 성에 도착한 조너선은 마부가 바로 백작인 것과 백작의 성에는 백작과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하루는 백작이 들어가지 말라는 방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아름다운 세 여인의 키스를 받게 된다. 이때 백작이 나타나 아이가 든 꿈틀거리는 자루를 그녀들에게 던져 준다. 그 다음날 그 아이의 엄마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성문 밖에서 울부짖다가 이리떼의 먹이가 되는 것을 지켜본다.
또 지하의 음침한 방에 들어갔다가 백작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백작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수백 년간 죽지 않고 살아 온 불사귀, 흡혈귀임을 깨닫고는 탈출을 꾀한다.

한편, 조의 애인 미나 머레이는 가장 가까운 친구 루시 웨스텐라와 휘트비의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낸던 중 루시에게 몽유병 증세가 있고, 밤마다 그녀가 외출하는 것을 목격한다. 미나는, 루시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고 얼굴이 창백해 지는 것을 보고 걱정한다.

조너선이 백작의 성에 간 이후로 소식이 끊기자 무척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미나는 마침내 조너선이 부다페스트의 한 병원에서 격심한 뇌막염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달려가 그를 간호하고, 그곳에서 그와 결혼한다.

한때 루시를 사랑하고 구혼을 했었던 정신과 의사 존 수어드 박사는, 네덜란드의 의학박사이며 철학박사이자 문학박사인 아브라함 반 헬싱에게 루시의 병을 고쳐 달라고 의뢰한다. 반 헬싱 박사는 과거에 자신의 몸에서 독을 빨아 내 생명을 건져 준 존의 요청을 쾌히 승낙하고 루시의 병인을 알아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국 루시는 목숨을 잃게 되고, 그녀의 약혼자인 아서 홈우드와 존, 반 헬싱 박사는 루시를 장사지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런던 도처에서는 어린아이가 사라졌다가 목에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사건이 생겼는데, 반 헬싱 박사는 바로 루시가 흡혈귀가 되어 아이들을 해친다는 사실을 알아 낸다.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존과 아서를 설득한 반 헬싱은 그들과 함께 그녀의 납골당에 들어가 그녀의 심장에 말뚝을 박고 머리를 자르고는, 루시가 본래의 모습으로 평안히 잠든 것을 바라본다.

어느 날 조너선은 미나와 길을 걷다가 드라큘라 백작이 훨씬 젊어진 것을 목격하고는 놀란다. 드디어 반 헬싱과 존, 조너선, 아서 그리고 루시를 사랑했던 미국인 퀸시 모리스는 백작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백작이 성스러운 흙이 담긴 50개의 관을 가지고 영국에 진출한 것을 알아낸다.

50개의 관중에서 29개를, 바로 존 수어드 박사의 정신병원 옆에 있는 낡은 저택에서 발견한 그들은 성체의 빵으로 그 관들을 파괴한다. 나머지 21개 중 20개도 발견되어 관들이 파괴되자 안식처를 잃어버린 백작은 마지막 하나 남은 관을 가지고 자신의 본거지로 피신한다.

그러던 와중에 미나가 드라큘라의 손아귀에 들어가 그의 더러운 피를 강제로 빨고 있는 것을 목격한 반 헬싱과 그의 기사단은 미나를 드라큘라 백작의 주술로부터 구하기 위해 끝까지 백작의 뒤를 쫓는다.

마침내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있는 그의 관을 발견한 반 헬싱은 준비해 간 성체의 빵을 그 관 속에 뿌리고 백작의 머리를 자른다. 그러자 잠시 백작의 얼굴에 평화로운 표정이 스치더니 순식간에 온 몸뚱이가 먼지로 변해 버렸다. 한편 뒤쫓아오던 퀸시와 아서, 조너선과 존은 스가니 사람들의 습격을 받았는데, 그 접전에서 퀸시가 희생된다.

악몽에서 헤어난 미나는, 그로부터 7년 후, 조너선과 그의 아이와 함께 트란실바니아로 여행을 가서, 황무지같이 버려진 드라큘라의 옛 성을 둘러보며 끔찍한 과거를 생생히 떠올린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선구자 고골의 단편소설집. 잘 알려져있는 '코'와 '외투' 이외에 '광인 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까지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을 함께 담았다.

이 소설집의 배경이 되는 '뻬쩨르부르그'는 뾰뜨르 대제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도시이다. 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물질적 욕망과 계급적 질서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계급'에 의해 통제되고 확정된다.

이러한 계급의식은 곧 속물적 탐욕으로 이어진다. '코'에서 자신의 계급을 자랑하다 코를 잃어버리는 꼬발료프나,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급관리를 죽음으로 내모는 '외투'의 고위층 인사는, 모두 계급적 허위의식으로 가득차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고골의 진짜 장기는 이렇듯 냉혹한 현실을 묘사함에 있어,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소설에 그려진 차디찬 현실세계를 대하며 웃을 수 있는 까닭은, 그의 작품이 지닌 환상성 때문이다. 문학작품에서 '환상성'이란 기존의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작가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따라서 고골의 작품들이 지닌 환상성은, 현실 풍자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웃음의 배후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느낀다'라는 뿌쒸낀의 말처럼, 비정한 현실세계에서 비롯된 슬픔과 그 이면에 숨겨진 따뜻한 웃음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소설집이다.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 도스토예프스끼

그 웃음의 배후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느낀다. - 뿌쉬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근대 도시의 전형을 섬뜩하게 묘사한다. 짜르 지배하 러시아의 수도 뻬쩨르부르그는 모든 것이 카오스이며, 질식할 듯한 속물성과 타락한 관료들이 넘쳐난다. 가혹한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네프스끼 거리'와, 안쓰러운 저항을 보이는 '광인 일기' 앞에서 시민적 이상은 붕괴되고 만다.

인간다운 의지를 요구하는 '외투'와, 원래의 주인이 자신의 미약한 위험을 회복하기 위해 쫓아다니는 '코'의 기이함은 또 어떠한가! 고골의 생생한 풍자 정신과 절묘한 이야기 구성은 역설적이게도 삶의 실제적인 균열을 이루는 불합리성의 승리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가 되고 있다. - 「르 몽드」
 


외투
광인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작품해설
고골의 문학세계 | 조주관
작가 연보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폭력을 비교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정체를 분석한다. 저자가 분석한 메커니즘은 무고한 희생양에 대한 집단의 폭력으로, 신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록은 희생양을 유죄로 해석하지만, 기독교의 성서만이 희생양인 예수를 무죄로 본다. 이와 같은 신화와 성서의 비교를 통해, 새롭게 독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또한 성서와 신화 속의 폭력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사탄적인 인간 욕망 구조의 본질을 탐색한다. <누가복음>의 한 구절인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를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로 변용해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위기들, 현대 사회의 군중 심리와 폭력 구조를 꿰뚫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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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현감 귀신체포기 1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이가서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처음은 조금 황당했다. 나는 읽으면서 부여현감은 언제 나오는 거야를 외쳐댔다. 그리고 현재에서 과거로 시점이 바뀌고 부연현감이 등장해서 기묘한 일들을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항상 그의 오랜 벗 전우치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바로 전우치전의 그 전우치였다. 그리고 난데없이 등장한 미미라는 이름의 파란 눈의 비구니... 끝이 그리 황당하게 끝이 아닌 것처럼 끝났다면 꽤 괜찮다고 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전래 동화를 재해석해서 거기에 장자의 사상을 덧입힌 작가 나름대로 잘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좀 독자를 맥빠지게 하는 면이 너무 많다. 우선 미미라는 부여 현감이 사모하는 여승을 보자. 그녀는 특히 무협지에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다.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게 마련이고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파란 눈의 노란 머리 여자가 무협지에 등장한다. 미미를 보며 난 그런 무협지 생각이 났다.
마지막은 무엇인지... 인생무상이라는 걸 담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액자 소설을 생각했다. 처음이 현재에서 시작됐으니 끝도 현재로 돌아와 끝나리라고. 하지만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는 마치 호리병 속에 갇힌 울부짖는 한 마리 늑대 인간처럼 그리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으... 꼭 한번은 작가의 책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손을 댔는데 괜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속이 무지 상했다. 용두사미격이다. 흡혈귀로 시작을 했으면 그 흡혈귀에 대한 마지막 언급도 있어야지... 아니면 다음에 이어지는 작품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또 생각은 달라진다. 이것이 시리즈라면 좀 더 탄탄한 재미와 구성으로 출판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책이 한번 읽고 버려지는 그런 책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좀 더 정리를 잘하시길... 지괴소설 시리즈를 낼 생각이라면 제발 미미는 다시 등장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부여 현감은 아직도 꿈을 꾸는 중이다. 그가 깨어날 때는 좀 더 맑은 정신이기를, 잼잼 길을 인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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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1-2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덕분에....시간과 돈을 아끼게 될듯. 감사.

물만두 2005-01-26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마다 다를텐데요...

집사 2005-05-22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미미는 어색했어도 전우치는 반가웠는데~ 전우치전은 어린시절 환상으로
인도했던 책이었죠... 전 그래도 이 작가에게 기대를 겁니다...

물만두 2005-05-2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유자소전>(1993) 이후 7년 만의 소설집. 이번 소설집에는 1991년에 발표하여 제9회 '흙의 문예상'을 수상한 「장곡리 고욤나무」를 비롯한 8편의 '나무' 연작 단편들이 실려 있다.

90년대 이후 변화된 농촌의 모습과 농민들의 의식 변화에 글쓰기의 초점을 두었다고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90년대의 농촌 풍경과 그 속에서의 대단할 것도 누추할 것도 없는 사람살이를 날카로운 풍자와 풍성한 해학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집의 제목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김명인의 시 「의자」에서 따온 것.

이문구의 문학세계를 특징짓는 가장 강력한 자원은 충청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문체다. 유려한 토박이말과 생생한 입말이 살아 숨쉬고, 곳곳에서 날카로운 풍자와 풍유가 번뜩이는 그의 문장은 흐르는 물처럼 막힘이 없이 유장하다.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말맛이 느껴지는 독특한 입담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예외 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7편의 제목엔 전부 '나무'가 들어 있다. 그러나 제목에 나오는 나무들은 우리가 흔히 '나무' 하면 떠올리는 소나무나 전나무같이 크고 우뚝한 나무가 아니라 싸리나무, 으름나무, 고욤나무 등 이름조차 낯설고 생김새도 볼품없으며 그다지 쓸모도 없어 보이는 나무 같지도 않은 나무들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이 나무들처럼 '존재도 희미한' 농투성이 갑남을녀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 나무 같지도 않은 나무들의 삶은 작가 이문구에 의해 저마다의 존엄과 줏대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인간 진실의 국면을 풍성하게 열어 보인다.
 
선생의 소설은 어느 소설이나 전체가 막힘 없이 유장하여 읽는 이의 눈도 물살을 따라가는 것처럼 유유히 흘러 마음에 도착한다. 홍시에 입을 대고 붉은 단물을 쏙쏙 빨아 삼키듯 읽어가게 하는 힘은 그 문체 때문인데 스펀지가 물을 먹듯 한참 골몰해 있다가 구비구비에 숨겨진 웃음보 터질 일과 맞닥뜨려 그만 곰부라지게 웃고 나면 허리가 다 아픈 것이다. - 신경숙(소설가)

'나는 나무다'라는 명제에서 떠오르기 쉬운 것은 '거목스러움'이며 뿌리를 대지에 투기이며 풍우에 견디는 믿음직스러움이며 불변성이지만 이문구의 나무는 나무이긴 하되 그런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나무다. 고욤나무거나 싸리나무, 개암나무, 또는 화살나무이거나 소태나무와 같은 것들이다.

잡초와 함께 초동의 낫에 여지없이 잘리는 그런 나무였던 것이다. 이 '나무' 계열의 작품들은 '우리동네' 계열과 '관촌수필' 계열을 동시에 뛰어넘고자 함에 그 글쓰기의 근거가 놓여 있다. -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이문구의 충청도 사투리와 풍요로운 풍유는, 대거리와 어깃장의 수사학은 높은 나무들이 우뚝 솟아 있는 저 엄숙주의의 숲을 이리저리 굼실거리며 돌아다닌다. 이문구가 엄숙주의와 가족 로망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것 역시 그가 소설 언어로 선택한 사투리의 힘일 것이다.

또한 그 사투리가 그를 풍속화의 화가로 만들었고, 농촌을 선택하게 했고, 저 엄숙주의의 숲 바깥에서 나무 아닌 나무들을 발견하게 했다. 천한 세상에 대해 고립을 실천하는 저 고집스런 나무들은 그러게, 미친 모더니티의 타자로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촌스럽고 우직스런 충청도의 힘이라 부르고 있다. - 서영채(문학평론가, 한신대 교수)
 
첫번째 작품 「장평리 찔레나무」는 장평리 부녀회장이자 기본바로세우기운동 장평분회 회장인 김학자 회장과 도시에 나가 사는 김회장의 속물적이고 뻔뻔스런 시동생 이은돈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얼핏 보면 가볍고 우스워 보이는 갈등의 이면에는 IMF 시대의 세태 풍경과 도시 사람들의 건강 식품 공급 장소로 전락해버린 농촌의 모습, 변해버린 농촌 사람들의 인심이 드러나 있다.

「장천리 소태나무」의 주인공은 얼떨결에 ‘사건반장’이란 감투 아닌 감투를 쓰게 된 이송학 씨. 이 단편에는 휴대폰, 러브 호텔, 카섹스, 몰려드는 도시 낚시꾼 등 새로운 문명의 홍수로 몸살을 앓으며 점차 변해가는 농촌의 풍경이 소태나무같이 쓴맛이 느껴지는 유머로 그려져 있다.

중편 「장이리 개암나무」는 국제무역기구(WTO), 국제화 시대 운운하며 남의 묘를 파내 기우제를 지내려는 농민들과 그에 맞서 전통적 미덕을 지키려는 개암나무 주인 전풍식의 이야기이다. 복잡한 사회 현실 속에서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농민들의 씁쓸한 모습과 미래 세대에 거는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장동리 싸리나무」는 시적인 문체와 서정성 넘치는 분위기로, ‘나무’ 연작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풍경을 그려 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하석귀는 낙향해서 저수지 근처의 시골집에 사는 은퇴한 공무원이다. 그의 조용한 내면 성찰이 저수지의 아름다운 물빛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살아남은 줏대 있는 홍쾌식 노인의 평생의 신조가 담겨 있는 「장석리 화살나무」와, 농토를 지키려는 이상만 옹과 농민운동에 종사하는 그의 사위 은산의 얘기를 통해 농토 개발과 농민운동의 문제를 풍자한 「장척리 으름나무」, 불합리한 농지 정책과 자식들의 외면 속에 목매어 자살한 70대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장곡리 고욤나무」 등 편편에서 세태와 인간 진실은 둘이 아닌 하나로 작가의 문체 속에 녹아 있다.
 
영원한 노동자 시인 백무산의 새 시집이 출간됐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그의 치열한 모색은 역사와 사회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살아나는 분노'를 성숙한 영혼과 단정한 시어로 보듬어낸 책.
 
백무산 형이 지리산 골짜기에 들어간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간간이 바람결에 실려오는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그를 망망대해의 지옥선으로 몰아간 젊은 날의 거친 꿈을 떠올리며 숨죽인 채 전율하곤 한다. 억압과 착취가 없는 다른 세상으로의 밀항을 꿈꾸던 그가 지금은 깊은 산중에서 또 어떤 벅찬 꿈을 꾸고 있을까. 이번 시집을 펼쳐들면 끝 모를 그리움에 이끌려 천지사방 흩어진 몸들을 봄빛 바다와 푸른 대지를 통해 다시 마음속으로 거두어들이며 아직도 먼 산을 향해 가는 그의 등허리가 큰 산의 능선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가 우리 곁에 돌아올 날은 언제쯤일까. - 임홍배 (문학평론가)

엄혹한 시절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견결히 노래하고, 비록 소외되어 있을지라도 인간의 노동 속에 지혜의 싹이 움트고 있음을 감동적으로 일깨웠던 시인 백무산. 그에게 노동하는 인간의 몸은 어떤 관념의 외피로도 지워버릴 수 없는 생명의 터전이자 깨달음의 장소다. 노동현장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의 품격과 권위를 가지고, 백무산은 인간의 노동이 자연을 굴복시키고 훼손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삶의 모든 깊이에서 결국 자연과 맺어져 있음을 설파한다. - 윤지관 (문학평론가)
 
제1부
길은 그리움으로 열린다
눈을 기다려
회심곡
그대 없이 겨울이 또 왔네
연민이 아니고서
현 위에 얹힌 듯
말에 갇힐까 봐
산이 그러데
폐쇄회로
초심
봄이 밖에서 오면
국가 밖에서
머리 없는 돌부처
창림사지

제2부
강박
탑을 찾아서
그 아이 집
물아
첨성대
땅을 떠난 나무처럼
비에 젖은 바다
마음 한 그루
잡초 하나

가시연꽃
검열
경주 남산 부처골 바위 감실에는
산내에 사는 내 동무들아

제3부
매화가 지천인데도
보신탕공화국
느티나무
설날 아침에
마음에 심는 나무
사람들은 왜 종을 만들었을까
포항 송도 바다

천도
저 아이들의 춤과 노래
달아 달아
세한도
바람은 한 그루 나무
한바탕 춤이 아니신가

제4부
삶의 거처
그 이름들 위에
내게 너무 가혹한 이유
야생
별 하나 따라오네
12월
삼짇날 아침
눈 오는 경주 남산
바다 전부
달빛 신호등
시계탑 네거리에서
입동
존재는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봄눈
손마저 두고 간 사람아

제5부
욕망의 분배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음모
섣달 그믐
완산동
욕망을 생산하는 공장
라디오
통일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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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1-24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저도 읽을려고 구해다 놓았는데~~!
읽고나서 다시 페이퍼를 자세히 들여다봐야겠군요~

물만두 2005-01-2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40일백 2005-01-2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구의 소설은 난해합니다. 내용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충청도 사투리로 표현한 수단의 난해함이죠. 작품을 이해하는 도구가 일반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그 작품도 자연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됩니다. 충청도 사투리와 그 사투리로 표현되는 보편적인 충청도 정서를 문학적으로 구축한 점은 이문구의 업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독자는 이문구를 한층 더 어려워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제주도 사투리에 버금가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문구는 충청도 사투리를 독보적으로 활용한다는 자부심에 취하여 더더욱 언어를 어렵게 표현한 것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만두 2005-01-24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읽어볼 생각이 없답니다^^ 그냥 이런 책도 있다는 걸 안 것으로 만족합니다^^

별족 2005-01-2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렇게 읽었다는 것 아닙니까. 사라진 '손바닥 안의 책'들. 그니까, '손안의 책'이란 출판사를 '손바닥 안의 책'이라고 오해하여, 만두님께서 이런 저런 책을 잃어버렸다, 이런 뜻인 줄 알았습니다. 바로 전에, '사라진 손바닥'의 리뷰를 보고, 저의 오해를 알아차렸지 뭡니까?-_-;;;

물만두 2005-01-2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요. 가끔 듣는 오핸걸요. 제가 제목에 더 신경쓰겠습니다^^
 

 샀다. 그것도 마일리지가 아닌 돈주고... 적립금때문에... 20% 적립금이 어디 적은가... 거기다 할인권 한장 썼다. 휴... 언제 읽나...

지름신이 너무 자주 내려오시는 거 아닌감...

그래도 또 절판되어 헌책방을 돌아다님 안되지... 게다가 모처럼 출판했으니 사야함은 마땅한 일...

근데 따로 따로 사면 20% 할인인데 묶어 사면 그것보다 덜 할인된다.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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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aGreen 2005-01-2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신이 얄미워요 정말...ㅠㅠ ㅋㅋㅋ
저도 이거 읽어보고 싶은데...읽어본 사람들의 평가가 다들 좋더라구요^^

물만두 2005-01-24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지름신이 들면 참^^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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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의 시는 삶과 죽음 가운데 흐르는 강을 둘러 징검다리를 놓고 슬픔과, 후회, 소멸의 돌멩이들을 하나씩 밟아 건너는 느낌을 준다.

시인이란, 시인의 인생이란 슬픔 가득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도 수많은 사람 중 한명일 뿐일텐데 어찌 그의 인생만이 슬픈 듯 시가 가슴을 베어 드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그의 시를 따뜻하다고 했는지...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따듯함이 아니라 회환 어린 눈물만을 보았다. 그렁그렁 금방 떨어져 뒹굴 것 같은 낱말들이 내 가슴속을 파고드는데 그래서 내 가슴이 젖어 스멀스멀 내 눈가를 적시려 하는데 어찌 그의 시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랴...

며칠 전 <는개>라는 말을 알았다. 안개보다 좀 짙다고 했다. <만년설 아래>라는 시 안에 그 단어가 들어 있었다.

산맥을 넘는 벌떼 같기도 하고 
대륙을 건너는 모래바람 같기도 하고
저녁 마을에 내려앉는 는개 같기도 하다. 

그 말이 시안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의 기쁨을 빼면 마치 시인이 저 멀리서 "나는 슬프다, 나는 슬프다."하고 외치는 것 같아 귀를 막고 싶었다. 당신만 슬프면 되지 왜 나까지 슬프게 하냐고 순간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산다는 건 다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고, 슬프고 슬퍼져서 그 슬픔이 무뎌지고 그 슬픔이 참아지고 더 이상 쥐어짤 눈물이 사라지고 그런 뒤 그래도 슬퍼져 돌아보면 내 껍데기만이 남아 "너만 슬프냐, 나도 슬프다."하고 말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것을 보면서 누가 말하는 지도 모르고 내가 슬퍼 우는지, 네가 슬퍼 우는 지도 모른 체 떠날 날이 다가와도 다가온 줄 모르고 떠나 버려 또 한번 슬픔을 뿌리는 것이라고...

내가 시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느냐 마는 동시대를 산 사람으로 비슷한 느낌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누군들 안 슬펐겠냐고... 그러니 이제는 슬픔도 묻어 두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내뱉는 법을 알려줬으면 삼키는 법도 알려줘야지 하지 않겠나, 시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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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1-22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에 이어 물만두님 시집 리뷰 참 좋으네요....

물만두 2005-01-22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