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한 남자의 기억과 한 여자의 기억의 괴리감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는 사고로 사고 전의 부분 기억을 상실했다. 그때 남자에게 그 기간 동안 사귀던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최면을 통해 약간의 기억을 되찾는다. 남자는 여자를 프랑스로 가는 기차에서 만났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여자는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영국의 한 주점에서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공통된 점은 한 가지 있다. 그건 여자에게 나이얼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 독자들이 남자의 현실의 모습을 읽게 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모습을 회상하고, 다시 여자에게로 넘어가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 만나 접점을 찾는 과정과 결말까지를 어지럽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처음 시작은 미스터리적으로 시작을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새 남녀의 사랑이야기와 삼각관계의 질투의 묘사로 넘어가고 다시 글래머라는 독특한 사람을 등장시켜 마치 환타지 소설을 보는 느낌을 주다가 마지막에 심리적 스릴러로 마무리하고 있다.


끝까지 봤음에도 나이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나이얼이란 존재는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기억은 인간 스스로 조작하고 있고 자신이 좋은 것만 추리거나 좋게 포장하고 있는 거라고, 글래머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사랑 이야기나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글래머는 환타지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격리시키는 환상만으로 보려하는 구름 같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이 설명이 된다.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엽서다. 왜 엽서가 번번이 혼란을 주는 것일까. 그건 우리 기억이 뒤죽박죽이며 정리될 수 없다는 암시는 아닐까. 아무도 한번 걸린 글래머에서 벗어날 수 없고 글래머는 그것이 스스로 사라지려 할 때에만 우리는 벗어날 수 있지만 언제나 구름은 존재하듯이 글래머가 우리 주위를 맴돌고 언제 감쌀지 준비하고 있는 것만은 기억에 상관없이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떠나도 남겨지는 알 수 없는 잔상처럼...


그란데 왜 제목을 매혹이라고 했을까? 그냥 글래머라고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책에도 매력이라고 말했다가 글래머라고 말하고 있다. 그건 받아들이는 쪽에서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뜻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매혹이란 제목은 부적절해 보인다. 혹, 글래머라고 썼을 경우 그 단어가 연상시킬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까? 그렇다하더라도 단순히 매혹은 아닌데 2% 아쉬운 제목이었다.


약간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난 뒤 난 이 작품의 섬뜩함을 비로소 느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주위를 둘러본다. 나도 누군가의 정지된 화면속의 픽션 같은 존재는 아닐지...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온전히 사실만을 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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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0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핑을 보다 '글래머'라는 글자에 저절로 클릭이 되어 왔어요.

물만두 2006-10-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역시 글래머로 제목을 정했음 오해할 것 같군요^^:;;

문학仁 2006-10-0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물만두 2006-10-1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거인님 무슨 반응???
 

     

    

    

     

지르라는 말에도 참다가 어제 우리 삼남매가 의견을 모아 다시 한꺼번에 질렀다.

일단 우라사와 나오키의 이름이 만순이에게 어필했고,

그런데 몬스터는 왜 반대하냐 ㅡㅡ;;

시티헌터를 사자는 뜬금없는 만돌이의 말이 무시된 결과다.

나도 살 책이 많은데 쌓인 책이 있으니 자꾸만 밀린다.

몇 권은 빨리 질러야 하는데...

내일이라도, 아니 저녁때라도 질러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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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0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쩐지 그렇게 찾으니까 없더니 ㅜ.ㅜ

BRINY 2006-10-0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이 나왔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물만두 2006-10-0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니님 읽지도 않았는데요^^:;;

ceylontea 2006-10-08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있으면 다 나올텐데.. 그때 한꺼번에 지르시지 그랬어요.. ^^

이 만화도 기대되요... 아직 1권밖에 안나왔지만... ^^


물만두 2006-10-0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 좀 있으면 다 나온데요? 으... 세트판매를 노릴걸 그랬나요? 뭐 그래도 쿠폰써서 비슷할 겁니다^^ 이 만화는 오오...

paviana 2006-10-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티 헌터라니 만돌님 정말 깨시네요.흐흐 언제적 만화랍니까?

문학仁 2006-10-0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다 모래요ㅡ..ㅡ;???????????????????? X 100

물만두 2006-10-0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2부가 나왔다고 그러더라구요 ㅡㅡ;;; 사실 예전에 샀는데 팔아먹은 걸 아직도 아까워하거든요^^
작은거인님 만화랍니다^^

찹싸알떡 2006-10-09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권까지는 있긴한데 미완이고,
나머지 2권 사기가 너무 귀찮아요.
그래서 아직 방치중.^^;;

물만두 2006-10-09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영이도 읽었구낭^^ 미완이라도 이 작가는 끝은 내지 않나?^^;;;
 
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의 정치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려는 왕과 선비들이 한 부류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거나 기득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왕의 독살도 마다하지 않는 사대부의 명문 세도가가 또 한 부류이고, 마지막 한 부류는 그 어떤 정치에서도 배제된 모든 백성들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이 독살 당했을지 모르는 왕들이 살았다면 어떠했을까를 바탕에 깔고 전개하고 있다. 소현세자가 독살당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개혁 개방을 해서 열강들에 맞서 싸우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일본에 식민 지배를 당하는 일은 없었을까? 효종이 독살 당하지 않고 그의 북벌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땅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을까? 정조가 독살 당하지 않았더라면 백성들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이렇게 생각되더라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하자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었더라면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것보다 이 작품은 정치가 자신만을 생각할 때, 뜻있는 왕이 힘이 없을 때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단적인 예로 사도세자가 죽어갈 때 그것을 지켜본 정조는 가슴 아파했지만 혜경궁 홍씨는 남편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인이 사위를 죽인 사건이니 말이다. 이것은 정치에는 부모자식도, 부부나 형제도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믿을 사람 없는 구중궁궐에서 왕이 얼마나 쉽게 독살당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조선 왕 독살 사건은 단순히 왕을 독살한 사건이 아니다. 이들이 독살한 것은 만백성이었다. 또한 한 시대의 말살이었고 역사를 독살한 사건이었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택한 왕의 독살 사건은 주자의 사상인 성리학을 섬기는 나라, 예를 중시하고 공자를 섬기는 나라에서 신하가 군주를 독살하고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에 의해 허수아비 왕을 세워 나라의 껍데기만 유지한 채 지탱해 왔다는 사실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고 그들의 권력욕이 사상과 얼마나 무관한지를 알게 해준다. 이들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을사오적과 결코 다르지 않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이들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지금 중요하게 읽히는 까닭은 이때의 시대 상황과 지금의 시대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당을 중심으로 당수에 충성을 바치는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들에게 대통령이나 국민은 중요하지 않으며 대통령 또한 당을 떠나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와 같이 우리는 여전히 세계의 정세를 읽지 못하며 세계의 정세를 잘 읽는 이가 누구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독을 직접 타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양반과 유림과 공자의 사상을 앞세워 앞으로 가야 할 때 저지당하고 있다. 또한 저 당이 싫고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생각하지 않고 반대당을 찍고 지지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한 우리는 여전히 독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의 왕들이 독살당한 일이 지금에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역사란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지표이다. 잘못된 것은 반성해서 바로 잡고 본받을 것은 본받아 나아가고 어떤 것보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뻗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르쳐주는 지침서이다. 이 지침서를 읽지 않고 그 가르침에서 하나도 배우지 못하고 무시한 채 오만함으로 정치를 하거나 자신만의 일신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이가 있는 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도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발전과 선진이란 말은 공염불, 국민의 눈을 가리기 위한 또 다른 독살을 담은 그릇일 뿐이다.


그때는 왕만이 독살을 당한 것으로 끝나고 백성이 독살 당한 것은 외면해도 그만이었지만 오늘날 그것은 용납되어서도,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다. 조선 시대에는 열 명의 왕이 독살 당했다. 하지만 그 뒤 개혁과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못해 뒷걸음친 결과 얼마나 많은 백성이 독살보다 더한 일을 겪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왕의 독살 사건으로만 보기 어렵다. 지금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그 시대에 겪었던 것보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말이 무섭게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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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0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참 날카로워요. 잘 보았어요^^

물만두 2006-10-0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이 책 읽으며 울화병이 도졌습니다 ㅡㅡ;;;

마노아 2006-10-0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찬물 여러 잔 마셨지요..ㅡㅡ;;;;;

물만두 2006-10-05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ㅜ.ㅜ

거친아이 2006-10-05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네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물만두 2006-10-05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아이님 별말씀을요^^;;;
 
씬시티 3 - 도살의 축제
프랭크 밀러 지음,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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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시티의 그림이 명암만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프랭크 밀러가 독특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택한 방법일 뿐일까를 이 작품에서 비로소 생각해본다.

씬시티의 올드타운은 어둠뿐인 곳이다. 세상은 극단적인 명과 암의 세계는 아니고 올드타운밖이라고 그곳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올드타운만은 암흑천지라 할 수 있다. 그곳은 함부로 들어올 수도 함부로 나갈 수도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여자들이 법을 정하고 집행한다. 그 어떤 법률도, 경찰도 들어오지 않고 통하지 않는 곳이다. 그들이 살기 위해 만들었다. 포주와 부패한 경찰들과 더한 악당들에 맞서 자신들의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곳은 작은 아마존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조네스의 후예이고 싶은 것이다.

그곳은 또한 범죄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곳에 들어오면 바깥세상의 일들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곳은 어떤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다. 장악하고 싶은 곳, 굴복시키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3편에는 매력적인 것은 별로 없다. 단지 여자들만이 사는 곳은 여자들이 지켜야 한다는 것만이 마음에 들뿐. 그들의 도살의 축제는 1편과 2편에 비해서는 별로다. 드와이트의 등장과 미호의 활약도 뻔해 보인다. 2편에서 드와이트와 미호의 과거를 잠시 엿보았기에 3편은 미호의 과거가 등장하리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피에 굶주린 미호라니...

장점이라면 맨 앞에 서비스로 넣어준 컬러 그림 정도뿐이다. 단점은 미호의 그림이다. 아무리 미호가 동양인이라지만 명암만으로 얼굴 윤곽을 그려내면서 어떻게 그렇게 평면적으로 아무 느낌 없이 마치 이곳에 소속된 인물이 아니라는 듯 그릴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뒤에 등장하는 미호는 좀 더 명암이 확실한데 왜 그랬을까. 옥의 티 정도가 아니라 못 봐줄 정도다.

1편과 2편은 남자들의 순애보를 그렸다. 작가가 3편에서 그리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작가는 올드타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곳의 아마조네스들의 활약을, 배신과 음모 속에서도 다시 부활하는 여전사들의 모습을 말이다. 조금 약하고 별 내용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보고 싶다. 하지만 도살은 있는데 축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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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0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여인이 미호인가봐요.

물만두 2006-10-03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로드무비 2006-10-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은 별 다섯 개를 주시더니만......

물만두 2006-10-0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은 마부가 정말 좋았거든요. 근데 드와이트 나오면서는 좀 그래요 ㅡㅡ;;;
 
유쾌한 천국의 죄수들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이명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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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건 꿈이었다. 비행기의 불시착으로 무인도에 48명의 남녀가 고립되게 된 것도,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 일도, 낙원에서 영원히 원시 공산제로 아무런 범죄 없이, 세금과 지치는 일없이, 스트레스 없이, 공해와 오염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어른들만이 꿀 수 있는 환상이었다.


그건 일탈이었다. 고단하고 힘든 일상에서, 점잖고 체면을 차려야 하는 문명인의 생활에서, 근사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현대에서의 작은 탈출이었다. 하지만 오랜 일탈은 있을 수 없다. 탈출은 죄수들의 몫이다. 이들 현대 문명에 길들여진 죄수들의 운명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


아주 비극적일 수도 있는 상황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어른들의 이야기로 담아내는 가운데 그래도 유럽인들이 쓰는 글 속에서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버리지 못한 우월감이 내포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은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독재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종처럼 부릴 프라이데이가 없고 그들이 일원으로 받아들인 잔을 내세워 현대의 로빈슨 크루소의 후예들은 변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있는 곳이 무인도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아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 자기 나라에서 공터가 있고, 누군가 그 땅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나 그 안에 들어와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땅에도 소속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모르는 원주인이 있을 것이다. 반군들과의 전쟁 중인 인도네시아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은 그곳이 신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유토피아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남아 살겠다고 말한다.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이 작품에서는 그래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돌아가길 거부하는 자들보다 더 이성적으로 보인다. 돌아가려는 자들은 자신들의 자유보다는 그들을 걱정할 가족을 생각한다. 하지만 남으려는 자들은 가족은 이미 자신들을 잊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돌아가고 싶어도, 벗어던지려 애써도 던질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인간은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 애완동물로 어미에게 어린 새끼 원숭이를 빼앗아 길들이고, 고고히 서 있던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술이 취해 일본군이 남긴 포탄을 바다에 마구 쏘아 대는 일을 유희로 삼는 자들이 유토피아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작품 자체는 재미있다. 이런 무인도에 고립된 상황을 심각하게 그린 작품들에 비하면 현실성이 있다. 피임 기구로 낚시도구를 만들고, 비행기 잔해로 소금을 얻을 냄비를 만들고 술과 담배를 만들고 조를 짜서 노동을 하고 구조의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내고 구조선이 오자 다시 탈출을 하고 하는 이런 일련의 일들이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마치 어른들의 동화 같다.


유쾌한 천국의 죄수들은 우리에게 유쾌함을 준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도 생각하게 해준다. 그렇다고 미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그들의 모습이 그때 그곳에서의 모습과 달라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류기를 좋아하는 독자들과 이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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