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조국
로버트 해리스 지음, 김홍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동시대를 살았거나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은 그 시대와 그 역사가 저지른 잘못을 공평하게 나눠져야 하는가?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이다. 모두가 나누지 않을 거라면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히틀러가 있던 시대, 그 나라만 이상했을까? 그만큼 다른 모든 나라들, 그리고 그 후의 시대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부시의 나라는 이상하지 않은가? 중국이나 일본은? 똘레랑스를 외치는 프랑스는?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은? 우리가 사는 우리나라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가? 오히려 이상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 시대를 겪고 총으로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본받고 싶은 스위스는 어떤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고 속마음은 아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의 책임이다.


처음 이 작품을 잡았을 때 예전에 읽었던 스파이 소설의 불후의 명작인 존 르 까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떠올랐다. 참 많이 닮은 작품이다.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가 닮았다. 그 작품과 비교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치가 등장하고 히틀러가 등장하는 소재의 진부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팩션, 대체역사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만약 2차 대전이 히틀러의 승리로 끝났다면을 전제로 쓰여 졌다.


2차 대전을 승리로 끝내고 20여년이 흐른 어느 날 한 구의 시체의 발견으로 한 남자의 인생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 남자는 어디에나 있는 남자다. 체제가 주는 안정성과 같이 공유해야만 하는 강요가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도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히틀러의 시대에 모두가 ‘하일 히틀러’를 자발적으로 자랑스럽게 외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 남자는 생각한다. 내 조국에 대해서. 내가 믿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감춰진 것들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결국 알게 된다. 결코 알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인 것, 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서. 그는 결국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그 신발을 신었었기 때문이다.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걱정일까? 또 어디에선가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을까에 대한 불안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목숨을 건 거였으리라.


지금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어긋남을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제대로 끼워 맞출 수는 없다. 아니 끼워 맞추고자 애쓰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외면을 하거나, 소극적 행동을 보이거나, 아님 진짜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은 아는 사람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낀 톱니바퀴의 나사 하나일 뿐인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돌아간다는 걸 알지만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잘못된 역사, 잘못된 체제, 잘못된 시대에 늘 우리는 존재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눈감고 귀 막고 지냈다. 대부분의 우리는 몰랐다. 또 대부분의 우리는 외면했다. 잘못됨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 하나를 지목해 잘잘못을 가리거나 돌을 던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랬었더라면’은 지난 뒤에 뱉는 말이고 현재의 모든 선택에는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돌은 스스로를 향해 던져야 한다.


지금 이 작품은 과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런 일들은 일어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린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다. 몰라서가 아니다. 모두가 마르크처럼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크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당신들의 조국이 아니다. 우리들의 조국이다. 모든 사람들의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이 책을 보며 자신의 가슴에 돌이라도 던지는 우스꽝스런 자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역사의 모든 패배자일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승리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역사에서 승리한 자가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 책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냐고 묻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 고통 받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의 일은 나치만의 잘못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지금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의 폭격에 당하고만 있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당신이 등 따시고 배부르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보시길 바란다. 그것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시린 등과 꺼진 뱃가죽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단순히 추리 소설이라는 편견으로 외면한다면 당신은 또 하나의 좋은 작품을 읽을 기회를 잃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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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0-27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추천합니다. :) 가슴에 와 닿네요.

물만두 2006-10-27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읽어보세요. 가슴을 콕콕 찌르더군요.

짱꿀라 2006-10-2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추천합니다. 빨리 사서 봐야 겠네요.

물만두 2006-10-2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영엄마 2006-10-2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잘 안 써지신다더니 잘 마무리 하셨네요! ^^

물만두 2006-10-2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잘 안써진게 아니라 쓰기 힘들었다고나할까요^^;;; 근데 책 읽어야 하는데 마무리를 안하면 책을 또 못 읽겠더라구요.

Koni 2006-10-27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리뷰를 보니 이 책 정말 끌리네요. 묵직한 느낌에 좀 두렵기도 하고 그래요.^^

물만두 2006-10-2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 일단 읽어보세요^^

2006-10-27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0-2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우린 너무 쉽게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음... 이 작품은 기대된다.

10월 말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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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10-2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대되용~~. ^^

물만두 2006-10-2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슬포요^^
 

드디어 울 만순양이 이라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근데 라라피포부터 봤다는 ㅡㅡ;;;

읽으며 이라부가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안나온다니까 나올거 같은데 했다.

나올거 같긴 하지...

어떤 걸이 나오는지 함 보자.

오랜만에 11권이 나왔다.

설마 백귀야행처럼은 아니겠지...

그나저나 언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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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10-25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제오늘 울증에 지르시는 분들이 많군요...저도 포함..ㅜㅜ

2006-10-25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0-25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울증인분들이 많군요 ㅡㅡ;;;
속삭이신님 넵~

2006-10-25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페인중독 2006-10-25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신간이 나왔군요!!! 반가워라 ^^

물만두 2006-10-25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감사합니다^^ 제가 또 폭격을 하겠습니다~
카페인중독님 언제 나왔는데요^^

거친아이 2006-10-2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 저도 읽어야 하는데...책 사면 기분이 좋아져요:)

물만두 2006-10-2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아이님 맞아요^^

모1 2006-10-26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권이 이제 나왔다니...전 연재 접은줄 알았다는...하두 안 나와서.

물만두 2006-10-2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 한 2년만인가 합니다.
 
광골의 꿈 - 전2권 세트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뼈가 등장한다. 시리즈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반복되는 인물들의 등장으로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말 많은 본업이 무엇인지 늘 의심스러운 추첸지, 일명 교고쿠도를 중심으로 소설가이면서 이들에게 늘 당하고만 사는 신경쇠약의 어리버리한 세카구치, 탐정이지만 놀고먹는 그러면서 너무 당당한 묘한 마력의 소유자 에노키즈, 그리고 통칭 기바 나리로 통하는 경찰 기바와 추첸지의 여동생 아츠코까지 이제 이들은 완벽한 팀을 이루었고 각자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뼈도 꿈을 꾼다. 뼈에게도 꿈이 있다. 그건 본질적인 뼈 자신의 꿈일까, 아니면 뼈의 상징성을 중요시하는 이들의 꿈의 투영일까. 뼈에 대한 이야기 하나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거대한 광골의 꿈을 만들어 냈다.

 

처음 몇 장을 보면 ‘아, 이 작품 어떤 작품하고 비슷하네. 결말도 비슷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중반을 넘어서서 ‘어, 이번에는 또 다른 작품과 비슷하잖아.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작가의 힘은 그런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교고쿠토의 입담과 등장인물들의 각자 사연에 내포된 여러 가지 박학다식한 면들을 섞어서 좋은 모양새를 갖춘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 교고쿠도 시리즈의 매력이다. 교고쿠도의 입담에 질리고 장광설로 일괄하는 사이사이 그 끈을 놓지 못하게 독자를 붙잡는 것이, 아니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번에는 어떻게 끝나나 보자 하는 오기가 생기게 만들고 다 읽은 다음에는 역시 다 읽다니 기특해 하며 자신 스스로를 토닥이게 하는 힘. 어쩌면 작가는 독자에게 함께 꿈을 꾸게 최면을 건 건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작가는 과학을 자연으로, 과거를 현재로, 논리를 현상으로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고 알아듣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작품 <우부메의 여름>에서는 양자역학이라는 과학을 하나의 항아리 단지로 비유해서 설명을 했고, 두 번째 작품 <망령의 상자>에서는 전설의 과거를 현실에 접목시켰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프로이드를, 그의 꿈에 대한 해석을 분해하고 있다. 작가는 서양적인 것을 동양적인 것으로 쉽게 바꾸고 이해하기 편안하게 해준다. 프로이드라는 생각만으로 머리가 아파오는데 작품 속의 프로이드에 대한 해석은 너무 쉽고 자연스럽다. 이것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마력이다.

 

주의할 점은 이 작품은 반드시 <망량의 상자>를 보고 난 뒤에 봐야 한다. 시리즈란 모름지기 1편부터 봐야 하는 것이지만 이 작품은 특히 그래야만 한다. 아직까지 주인공들이 <망량의 상자>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어떤 면에서는 그 작품에서 이어지는 장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한 시리즈의 매력이기도 하다. 전편을 기억하게 해서 친근감을 유발하는 것, 독자에게 신선함과 함께 친근함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다가가는 것은 독자를 잡기 위한 두 개의 포석이다.

 

다 읽고 나면 인간이란 얼마나 질기고 모진 삶을 사는 지를 깨닫게 된다. 끊어버릴 수 없는 수많은 욕심과 미련과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지니는 망상과 떨쳐버리지 못하는 꿈. 그 속에 자신을 파묻으며 우리는 지금도 산다. 이 작품 속의 삶과 우리의 삶이 무엇이 다를까. 어차피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르고 모든 인간은 죽어서 똑같은 뼈로 남는 것을... 그리고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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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10-25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 읽으셨군요! ^^ (음.. 망량의 상자를 먼저 보는게 좋다니 그거 부터 마련해야 겠구먼요.)

물만두 2006-10-25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 읽었습니다^^

애쉬 2006-10-2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택배로 받았는데, 직접 보니 표지가 별로네요... <우부메의 여름>이 젤 맘에 들었는데, 점점 갈수록 싼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물만두 2006-10-2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쉬님 그러세요? 전 괜찮았는데요. 사실 표지는 그다지 신경을 안쓰거든요^^;;;

비로그인 2006-10-2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요 며칠 브리핑에 광골만 봐서인지 제가 반가워요.

물만두 2006-10-2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6-10-2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다 읽었는데 이 작가의 기괴함과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여전하더군요. 전작들보다 포스는 다소 떨어지지만 내용은 이해하기 쉬워서 빨리 읽을 수 있었어요.^^

물만두 2006-10-27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살좋은날님 이번 작품은 좀 쉬웠죠^^
 
보쉬의 비밀 1 - 쾌락의 정원
페터 뎀프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보쉬의 작품 쾌락의 정원에 대한 비밀을 밝히려는, 아니 밝혀지지 않기를 원하는 신부가 그 그림에 산을 뿌리고 그것을 복원하는 미술 복원가에게 그림은 맡겨진다. 그때 한 여인이 심리학자라고 소개하며 나타나 그 신부와 이야기를 해보기를 청한다. 그리고 그 신부는 보쉬가 그 쾌락의 정원을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중세와 현재를 넘나들지만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한가지다. 쾌락의 정원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 그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하는 점이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은 세폭화지만 정말 자세히 설명한 것을 보다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림 자체만을 보더라도 정말 그 시대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의아하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로테스크하면서 환상적이다. 아마도 그런 점이 세간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떠면 이 작품 속 이야기처럼 화가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로 그림을 이용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림을 그림 자체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화가가 살았던 시대가 암울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종교재판소가 누구든 이단으로 몰고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할 수 있었던 시대에 지금의 사람들이 봐도 특이한 그림을 당시에 그렸으니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시대든 천재는 존재하는 법이니 보쉬도 천재이거나 상상력이 그 시대보다 앞서서 풍부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단지 그 시대 사람들과는 좀 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그림을 모르는 무지한 독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쾌락의 정원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그림을 구성하는 것들이 어떤 상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쾌락의 정원의 해설집과도 같기 때문이다. 작가 마음대로 해석한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많은 미술사를 연구한 학자들이 해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쉬의 쾌락의 정원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해설집으로서의 가치는 인정한다. 미술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림과 같이 보면 아주 좋을 것이다. 하지만 스릴 넘치는 미스터리나 기존의 추리소설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많은 그림 안의 것들을 세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사실과 그것들 모두가 상징이라는 사실이 어지럽기만 하다. 그림을 그냥 보고 개개인의 느낌에 맞기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이 그림 참 독특하구나, 내 맘에 드는 그림이구나 하는 생각만 간직하면 산다는 게 쉬울 텐데 왜 모든 것을 자신들의 틀 안에 끼우려고 하는 것인지. 보쉬가 그 시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어쩌면 한 가지 가치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은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보쉬가 그냥 무심코 그린 그림인데 후세인들이 이렇게 말이 많은 것이라면 지하에서 나와 “그냥 있는 그대로 봐라!”하고 외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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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3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0-2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읽는데 불편하시군요. 한글파일 신명조체를 그대로 복사해오거든요. 고치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