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물리여행 2:빛-전기와 자기-상대성이론-양자
루이스 엡스타인 외 / 김영사 / 198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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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의 핵심을 이루는 '생각들'에 초점을 맞추어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 가듯 질문을 따라가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물리의 깊은 이론에까지 접근하는 혁신적 교양 물리 입문서!!!

이 책의 핵심이다. 이 말에 걸맞게 이 책은 지루하지 않다. 교과서처럼 문제도 있는데 그 문제가 하나도 부담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풀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교과서가 이렇게 재미있고, 읽기 쉬워도 학생들이 물리를 지겨운 과목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호기심에서라도 한번 읽고 재미를 느끼는 학생을 더욱 몰입을 할 것이다.

책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교과서도 재미있어야 한다. 왜 이 책처럼 교과서를 만들지 못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물리 교과서가 재미없는 학생, 물리가 과연 그렇게까지 재미없는 과목인지 알고 싶은 학생들은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아마 물리에 대한 고정 관념이 달라지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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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2
에릭 시걸 지음, 석은영 외 옮김 / 김영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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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같은 하버드 대학 의대생들의 사랑과 치열한 삶의 이야기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대학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각자의 그 동안의 인생 이야기와 의사가 된 후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많은 등장 인물들이 있지만 주인공 로라와 바니, 그리고 벤의 인생에 관해 주로 다루고 있다. 쿠바에서 망명한 로라와 바니는 소꿉친구 사이고 벤은 흑인으로 태어나 유태인으로 자란 특이한 사람이다.  

의사가 된 하버드생들, 로라는 소아과 의사, 바니는 정신과 의사, 벤은 외과 의사가 된다. 하지만 불행한 벤은 어느 날 음식점에서 녹에 고기 덩어리가 걸린 사람을 치료하려다가 그만 살인자로 오인 받고 경찰들이 휘두른 폭력에 소중한 손을 다친다. 그는 다시는 외과의로서 수술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의료계의 소송을 맡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다시 법대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가끔 불행하다. 흑인이었기에, 유태인이었기에, 흑인 의사였기에, 그리고 그 의사마저 될 수 없었기에.  

바니의 외침과 벤의 폭행당하는 모습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 2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은 한눈에 사태를 파악했다. 칼을 쥔 흑인 하나가 목에서 피를 내뿜고 있는 백인 한 사람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어 그들은 재빠르게 단호한 행동으로 들어갔다.
우선 그 중 세 명이 베넷에게 덤벼들어 두 명은 그의 손을 잡고 나머지 한 명이 그의 얼굴과 몸을 맹렬하게 난타, 바닥에 나가떨에지게 만든 뒤 계속해서 그를 발길로 찼다.
 바니는 볼펜으로 기도를 계속 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친구를 도와주러 갈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상처 입은 황소처럼 울부짖었다.
“그 사람은 의사야, 이 악당들아! 이 남자 목숨을 구하려고 한 것뿐이라고! 그 친구를 내버려둬!”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 로라가 임신한 줄 알고 친구로서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애쓰던 바니와 로라는 결혼을 한다. 로라는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로라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는 희귀한 병에 걸리고 만다. 기적적으로 소생의 기미를 보이며 작품은 끝을 맺는다.

마지막의 휘날레도, 감격적인 기도도 나를 감동시키지는 못했다. 벤은 왜 그렇게도 불행한 것일까. 불행은 그렇게 한꺼번에 오는 거 라지만 그의 불행은 사실 그가 흑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유태인 양부모를 가졌기 때문도 아니고, 사람들의 차별 때문도 아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단 하나 원했던 것, 자신의 꿈과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약간 방향 수정을 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주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지만 가끔 그는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깨닫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불행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살려고 애쓰는 그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살아 있으면 가끔 행복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벤 때문에 너무도 많이 울었던 작품이다. 내게는 <러브스토리>보다 더 안타까운 작품이었다.  

나는 <닥터스>를 생각하면 <스탠 바이 미>라는 영화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죽은 리버 피닉스를 생각한다. 사실 <닥터스>와 <스탠 바이 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마크였나? 그 영화에서 가장 똘똘하던 아이가. 나중에 변호사가 되었는데 우연히 싸움을 말리다가 죽었다는. 그 아이와 하버드에서 그 당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고 드물게 흑인 의사가 된 베넷 랜스먼이 겹쳐지기 때문에 아마도 영화가 떠오르는 것 같다.  

난 주인공인 로라나 바니보다 벤을 더 좋아한다.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유태인 양부모에 의해 자랐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거부만 당했던 사람. 얼마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니 사람이 사는 사회가 배타적인지 절실히 느낀 작품이었다. 그래서 하버드 의대생의 생활이나, 그들의 의식, 가치관은 별 관심이 없었다. 벤이 나오지 않는 장면은 건성으로 읽었다. 아마도 내게는 <닥터스>가 아니라 베넷 랜스먼의 자서전 내지는 일대기로 기억될 것 같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 벤과 아버지의 대사가 얼마나 가슴 아프게 울리는 지 모른다. 1권에 등장하는 대사다.

“아빠 ,정확하게 나는 누구죠?”
어느 날 그는 허셜에게 물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나, 벤.”
“우리 학교 애들이 나보고 유태인이래요, 엄마, 아빠가 유태인이라고요. 하지만 어떤 애는 그건 당치도 않은 얘기래요, 검둥이일 뿐이래요. 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골치가 아파서 내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살고 싶어요.”
허셜은 질문을 곰곰이 생각했지만 명쾌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만 말해 주었다.
“여긴 미국이야,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될 수 있어.”

이 작품은 의사들의 이야기지만 그것보다 로라와 바니가 사랑을 이루는 과정을 담은 러브스토리이고, 한 흑인 의사의 처절한 삶의 이야기다. 감동적이고 슬프고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다. 에릭 시갈의 작품의 모든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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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8-1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더군요. 방대하고 복잡한 갈등.. 마치 시드니 셀던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닥터스', '프라이즈'까지 읽고나니까 '러브 스토리'가 초라해 보일 정도더라구요.

물만두 2005-05-2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겨울나그네 -상
최인호 지음 / 문예출판사 / 198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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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면 <인간시장>의 김홍신, <사람의 아들>의 이문열, 그리고 <겨울 나그네>의 최인호를 들 수 있다. <겨울 나그네>는 80년대를 풍미했던 작품이다. 우리의 첫사랑의 소년 같은 민우가 있고, 남자들의 부성애를 자극하던 다혜가 있고, 흑기사 같기도 하고 기회주의자 같기도 했던 그 시대와 잘 어울렸던 현태가 있었다.

영화로 만들었을 때 85년이었던가 미성년자 신분으로 몰래가서 봤던 작품... 강석우의 그 우수 어린 눈빛에 반하고 말았던... 불행이 사람을 어떻게 비극으로 몰고 가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사랑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십대의 꿈일 뿐이고 세상은 그보다 잔인하고 암울하다는 것을 알려준 작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 것이라는 그래도 낭만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게 한 내가 십대 시절에 읽은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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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비룡소 걸작선
생 텍쥐페리 지음,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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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내가 했던 가장 지적인 놀이는 연습장에 모자를 그려놓고 아이들에게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모자라고 말을 하면 에이, 바보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거만하게 아이들에게 이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야 라고 말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는 나였는데 말이다. 내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냐구...

<어린 왕자>는 내게 그런 의미였다. 중학생이 읽은 그 책은 어쩌면 이해하기 힘든 말장난에 불과 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읽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 즈음에 자신을 뒤돌아보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 셍 떡쥐베리도 이것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19세미나 구독 불가라고 빨간딱지를 붙여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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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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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봤을 때 이 여자들도 남자만 잘 만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그럴듯하게 자기 자신을 포장한 페미니스트에 지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삶을 지탱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기로 버티게 해준다.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산다는 뜻이다.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진다면 그것은 자신을 자신이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나오는 바보 세 친구. 혜완, 영선, 경혜는 단지 자신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것을 남자의 탓을 하고, 아버지 탓을 하고, 가정과 사회를 탓하는 것은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나약함의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제목이 주는 허망함은 그럴듯한 포장지처럼 느껴져서 작가에게 많이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혜완은 셋 중에서 가장 그럴 듯이 똑똑해 보이지만 가장 자신감이 없는 여자다. 애써 맞서지도 못하고 비켜서서 자신 안에 숨기 바쁘다. 경혜는 속물처럼 나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진실하다. 그녀는 적어도 자신을 속이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선의 자살은 유치의 클라이막스였다. 만약 남편이 영선을 공주처럼 떠받들었더라면 그녀는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살을 한다는 것, 자신의 삶의 가치를 남자에게 두고 남자에 의해 상실한다는 것, 이런 발상이야말로 역겨울 정도의 여성모독이다.  

여성이 세상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들 자신이 피해자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아니면 가해자가 될 것 같이 느끼는 이상한 이중성 때문이다. 누구도 모순되고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을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 개척하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라는 유치한 굴레를 방탄조끼처럼 입고 있기를 원하는 한 여성이 부르짖는 평등한 세상은 요원하기만 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던 자신만의 방이라는 의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다. 여자는 자신만의 방조차 갖지 못하고, 그런 작은 공간만을 원하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페미니즘으로 서구사회는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지만 우리가 나아갈 길이 서구적 페미니즘일지 그것도 의문이다. 아직도 이 정도가 페미니즘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아마존을 형성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런 방조차 갖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에 절망했다.

한 3000년쯤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여자는, 혹은 남자는, 이런 기분 나쁜 말없는 세상 말이다.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의 방은 그런 방일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무소의 뿔도 이런 의미겠지. 우리 여성을 벗고 스스로 '나'를 위해 살아봅시다. 

이 작품의 제목은 숫타니파타 중의 말이다. 다음은 숫타니파타 중 일부분이다. 

동반자와 함께 있으면, 몸을 쉬거나 일어서거나 걸어가거나 여행하는데 언제나 참견하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무엇이든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온갖 고난을 견디며, 두려움을 갖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잘 협조하며, 행실이 올바르고 영민한 동반자를 얻게 되면, 모든 재난을 극복하여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걸어가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잘 협조하며 행실이 올바르고 영민한 동반자를 얻지 못하면 마치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고귀한 경전이다. 비록 이 작품에서는 세 여자의 인생을 이 경전에 비유해서 이 말을 사용했지만 이 말이 비단 여성의 독립과 평등에 대한 추구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 경전을 읽어보면 말 한 마디 한 마디, 글귀 한 구절 한 구절 와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인생이란 혼자 가는 길이다. 동반자가 있건 없건 누구나 혼자 나서 혼자 살다 혼자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기대도 부질없고 원망도 부질없다. 우리는 한낱 뜬구름만 잡다 갈 뿐인 것을. 그러니 모두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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