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없는 땅 1 미도리의 책장 9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가끔 누군가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어렵게 주어지기도 하고 때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일을 보면서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살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은 주어져야 하는데 그것조차 목숨걸고 찾아 헤매야 한다면 산다는 게 인간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작품은 내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한 가문 엘리손도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와 남미로 이주해온 일본인의 이야기가 두 축을 이루면서 작품은 카리브해의 끈적끈적한 습한 날씨처럼 끈적거리는 피의 축제를 준비한다. 엘리손도 가의 고갈된 유전 지대에서 일본인이 탐을 내는 희귀 광물이 발견된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 엘리손도 가의 당주는 일본인의 애를 태우다가 장남에게 살해당하고 돌아온 탕아 차남은 형을 죽인 뒤 베로니카와 함께 일본인에게 채굴권을 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곳에 새롭게 터전을 잡은 콜롬비아에서 온 사이비 종교 집단을 몰아내야 한다. 지체없이 알프레도는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한편 3년전 탈취한 2천만달러를 나눠야 하는데 행방을 알고 있는 단바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안 가지 시로는 단바를 탈옥시키기 위해 베네주엘라에서 양아치 4명을 고용하고 단바를 탈옥시킨다. 그 와중에 콜롬비아 게릴라에게 쫓기다 다시 국경 경비대에 잡혔다 탈옥한 뒤 2천만달러가 있는 곳까지 가는데 그곳에는 이미 막달레나 마리아라는 젊은 여자가 이끄는 4백여명의 종교집단이 자리를 잡고 있고 설상가상 그녀는 그들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그들을 환영한다. 어찌된 일인지 단바는 이들의 모습에 이끌려 그들을 도와주기로 하고 돈은 그 뒤에 나누겠다고 한다. 이제 희토류라는 광물 체굴권과 2천만달러라는 거액을 놓고 한 판 피의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 몇 장을 읽자마자 나는 한숨을 내 쉬었다. 안 읽었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고. 이렇게 재미있으면서 진지하고 인간에 대한 느낌을 생생히 전달하며 인간의 습성과 정치, 경제를 아우르며 한 눈에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사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신화처럼 또는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작품이다. 미화되지 않은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베네주엘라의 우기에 내리는 비처럼 마음을 강타하고 다시 쨍쨍한 햇볕에 열 받게 하고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어 찜찜하고 씁쓸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매춘을 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 열아홉에 가장이 되어 뇌물받는 법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경비대원, 물라토, 메스티소, 과히로 등 다양한 인간들, 가난한 인간들, 혁명을 쫓는 일본인, 그저 돈을 쫓는 일본인, 게릴라 대장, 배신자 등 결코 상류층이 될 수도, 부자가 될 수도 없는 인간 군상들과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오늘의 모습을,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년 전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여기에 더해 혁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 덧없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혁명도 생존의 하나일 뿐이란 느낌만 든다.
 
인간의 탐욕과 생존 본능만이 살아 숨쉬는 제3세계의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같이 느껴지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다. 결국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탐욕도 어떻게 보면 생존 본능의 발전된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악의 바닥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왜 힘없는 인간들은 나아질 수 없는 것일까? 인간에게 희망이란 무엇일까? 책을 덮으며 이런 물음을 계속 되내일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전설 없는 땅이 어디 있으랴. 단지 잊혀지고 사라졌을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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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07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이 감탄하시니 정말 재미있는 책인가 봐요.일본에서는 추리 소설이 주류문학에 편입되선지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것 같군요.

물만두 2009-07-07 11:15   좋아요 1 | URL
네. 읽을까 말까 하다 읽었는데 책 펴자마자 반했습니다. 캐릭터 좋고 내용 좋고 작가의 필력 좋고 더 이상 나무랄데 없는 작품입니다.
요즘 추리소설 주류가 아닌 나라는 울나라뿐일겁니다.

... 2009-07-0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두 권이기도 하구, 나온지 좀 됬기도 하고, 리뷰가 거의 안 올라와서 보관함에 밀어넣고 머뭇거리는 중이었어요.
물만두님의 리뷰를 보니 꼭 구매해야하는 책이군요..

물만두 2009-07-07 11:16   좋아요 0 | URL
2권이라도 금방 읽힙니다. 상이란 상을 다 휩쓸었던데 그럴만한 작품이더라구요. 전 이 작가의 다른 작품 읽을 예정입니다.

비로그인 2009-07-0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읽어도 읽어도 또 이렇게 모르던 좋은 책들이 있다니 신기하지요?
오늘같은 날씨는.. 물만두도 좋지만 통통 따끈 고기만두가 그리워지는 날이네요 ㅎ

물만두 2009-07-07 11:59   좋아요 0 | URL
그게 책 읽는 자들의 행복이자 고민 아니겠습니까^^ㅋㅋ
그래서 저희는 만두국을 먹을 예정이랍니다~

비로그인 2009-07-07 13:03   좋아요 0 | URL
행복이자 고민이라.. 딱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물만두님이 만두국을 드신다니 그야 말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니고 뭐랍니까 ㅋㅋ

물만두 2009-07-07 14:30   좋아요 0 | URL
어쩌겠어요?
날은 덥고 저도 살아야지요.
내 뱃속에 있음 그것도 만두 아니겠어요^^ㅋㅋㅋ

다락방 2009-07-0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저도 흥미가 생기는데요! 읽어봐야겠어요.

물만두 2009-07-07 11:59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7-0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지름만두시라니까요 ㅎㅎ

물만두 2009-07-07 14:31   좋아요 0 | URL
혹자는 호객만두라고도 합지요^^ㅋㅋㅋ

chika 2009-07-0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리소설이 주류가 아닌 나라는 울나라뿐이다. ㅋㅋㅋ
- 아파 죽어가는 와중에 웃겨 죽슴다. ㅋ

물만두 2009-07-07 16:06   좋아요 0 | URL
이게 웃을 일이여~~~~~~
뭐, 웃어야지 어쩌겠어^^ㅋㅋㅋ

chika 2009-07-07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신간도서를 착착 읽고 리뷰써주시니 감사할따름입니다. 저는 천천히 살라구요. 지난번에도 책살때 분명 언냐가 리뷰를 썼음직한 책이었는데 없어서 땡스투를 못해 속상했었어요.
우웅~

물만두 2009-07-07 16:06   좋아요 0 | URL
나도 한계가 있다구 ㅜ.ㅜ
슬프네. 땡스투~~~~~

울보 2009-07-08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의 리뷰는 역시 더운데 잘계시지요,,

물만두 2009-07-08 10:14   좋아요 0 | URL
울보님 용쓰고 있답니다.
님도 건강하시고 류도 건강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