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책과 생각'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당대중국문학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힌 것으로 추정되는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다섯수레)가 어떤 작품인가를 살펴보았다. 최초 번역본은 1989년 <인간, 아 인간!>이란 제목으로 나왔으나 주목받지 못했고, 1991년 신영복 선생의 번역으로 출간된 책이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프랑스 작가 '위고'가 '유고'로 표기되는 등 몇 가지 교정될 대목이 있다). 쓰인 순서로는 <시인의 죽음>이 앞서지만 중국에서도 그렇고 출간은 <사람아 아, 사람아!>가 먼저 이루어졌는데, 이 작품들의 배경은 두 소설보다 먼저 쓰인 편지를 엮은 <연인아 연인아>를 참고할 수 있다. <시인의 죽음>과 <사람아 아, 사람아!>와 함께 삼부작으로 불리는 <하늘의 발자국 소리>(<허공의 발자국 소리>)는 절판된 상태다... 















한겨레(19. 04. 12) 신영복은 왜 다이허우잉을 번역했을까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시대 중국 작가는 위화로 보이지만 중국 당대 문학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던 1990년대에는 단연 다이허우잉이었다. 1991년 신영복 선생의 번역으로 나온 <사람아 아, 사람아!>(1980)가 작가뿐 아니라 당대 중국 문학의 대표작으로 수용되어서다. 비단 중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이 작품에 대한 열독 현상을 낳은 것은 아니다.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역사의 상처와 그 치유과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가 한국 독자에게도 강한 호소력을 가졌던 것은 남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누구보다도 역자인 신영복 선생이 이 작품을 그렇게 읽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는 <노르웨이의 숲>)도 그런 면에서는 같이 묶일 수 있다. 두 베스트셀러는 공통적으로 중년의 시점에서 젊은 시절의 경험과 상처를 되돌아보고 화해와 치유를 모색한다. 물론 차이도 간과할 수는 없는데 다이허우잉의 소설에는 작가적 체험이 훨씬 많이 반영되어 있고 더불어 정치적 이념에 냉소적인 하루키와는 달리 다이허우잉은 대단히 열정적이다.

중국 안후이 성의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집안의 7남매 가운데 넷째로 출생한 다이허우잉은 집안에서 최초로 학교에 들어간 딸이었고 대학졸업자였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로 재탄생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때문에 학생 시절부터 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다이허우잉의 지지와 충성은 확고했고, 1957년 반우파 투쟁에서도 선두에서 활약했다. 휴머니즘을 주창했던 스승을 공개 비판하면서 “나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더 좋아하는 것은 진리입니다!”라고 발언하여 박수갈채를 받은 경력도 있다.

그렇지만 1966년부터 불어닥친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다이허우잉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우파로 내몰려 비판받는 처지가 된다. 게다가 남편으로부터는 이혼 요구를 받는다. 자신이 열애하던 당과 의지하던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다이허우잉은 시련의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문화대혁명은 종식되고 다이허우잉도 복권되어 대학에 자리 잡는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게 된 그는 과거와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놀란다. 무엇을 겪은 것이고 이 경험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아 아, 사람아!>는 그 정산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다이허우잉의 변화와 깨달음은 11명의 인물이 저마다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형식을 고안하게 한다. 사회주의문학의 전범인 리얼리즘에 대한 도전이자 파격이다. 통상 리얼리즘에 견주어 부르주아계급의 예술기법이라고 비판받았지만 모더니즘 역시 예술적 진실을 추구한다고 다이허우잉은 옹호한다. 이 진실은 시점적 진실이고 저마다의 진실이며 복수의 진실이다. 각 인물이 가진 고유한 생각과 감정이 이러한 장치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를 통해서 다이허우잉은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자 한다. 소위 휴머니즘의 발견이다. 한때 휴머니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름을 얻은 그가 휴머니즘 문학의 기수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변신이 사회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정체성까지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작중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이란 책의 출간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데,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이허우잉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마르크스주의가 바로 휴머니즘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휴머니즘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통상적인 휴머니즘, 곧 부르주아적 휴머니즘에서는 소수의 자유와 개성만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다이허우잉은 상처를 치유하고 역사와 화해한다. 더불어서 사회주의자로 남는다. <사람아 아, 사람아!>는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면서도 굳건한 사회주의자로 남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19. 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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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강남도서관 주관으로 동네책방 서평강좌를 진행한다. 다음달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한 차례씩 6회에 걸쳐서 진행되는 강좌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5월은 강의장소가 변경되어 포스터를 추가한다).


로쟈처럼 서평쓰기

1강 5월 17일_ 부르디외/샤르티에, <사회학자와 역사학자>


2강 6월 21일_ 김용옥, <우린 너무 몰랐다>


3강 7월 19일_ 조너선 실버타운, <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


4강 8월 16일_ 박찬승, <1919: 대한민국의 첫번째 봄>


5강 9월 06일_ 필립 페팃, <왜 다시 자유인가>


6강 10월 18일_ 유성혜, <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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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2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시공사)에 대해서 적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로 그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고 있는데, <파묻힌 거인>은 서너 차례 강의한 듯싶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는 중이다...
















주간경향(19. 04. 15) 노부부의 사랑을 유지시킨 망각의 힘


일본계 영국 작가로 부커상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1982년 첫 장편을 발표한 이래 모두 일곱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파묻힌 거인>(2015)이 현재로선 마지막 작품이다. 한 권의 단편집을 포함해 그의 모든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지만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미 읽은 소설을 다시 읽는 수밖에 없다. <파묻힌 거인>도 그렇게 다시 읽었다. 물론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라서 가능한 일이다.

대표작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등 이시구로의 거의 모든 작품은 기억의 문제를 핵심 주제로 다룬다. 문학작품에서 기억이 결코 새로운 주제는 아니지만 이시구로는 주관적 기억과 진실 사이의 괴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함으로써 기억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좋은 소설은 이미 알고 있는 앎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되묻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례다. 그 점에서 <파묻힌 거인>도 예외가 아니다.

전작들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판타지 형식을 빌림으로써 독자들을 놀라게 한 <파묻힌 거인>은 흥미롭게도 사랑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자 한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부부 간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소설은 미혼 남녀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거나 결혼한 부부가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주로 다루지, 부부 간의 사랑은 잘 다루지 않는다. 근대소설에서 세계의 본질이 시간과 함께 주어진다는 공식을 다시 떠올려봐도 좋겠다. 부부 간의 관계는 지속적인 데 비해서 사랑의 감정은 이 지속을 대개 견디지 못한다. 통상 부부 간의 사랑이 미담의 사례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걸작 소설의 주제로는 등장하지 않는 이유다. 이시구로의 소설은 이러한 통념에 도전한다고 할까.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는 브리튼족과 색슨족이 반목하고 있고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경이 용의 수호자로 나온다. 그렇지만 이러한 판타지적 배경은 액슬과 비어트리스의 사랑을 조명하기 위한 장치다. 두 사람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노부부다. 그런데 이들은 용이 뿜어낸 안개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망실한 상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들이 이들과 떨어져 있고 그 아들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노부부는 아들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이 여정은 동시에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여행이기도 한데, 소설의 말미에서 색슨족의 기사에 의해 용이 퇴치되고 안개가 걷히자 잊고 있었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노부부는 과거의 아픈 기억과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은 망각 덕분에 오랜 시간을 같이해오면서 깊은 신뢰와 사랑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과거를 계속 기억할 수 있었다면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액슬이 비어트리스에게 던지는 질문은 작가 이시구로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도 읽힌다. 공통의 기억이 관계를 유지시킨다는 통념에 맞서 이시구로는 때로는 망각이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비결이 아닌지 묻는다. 상호 간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억은 적대감만을 부추길 수도 있다. 좋은 소설은 모든 문제를 더 복잡하게 생각하도록 이끈다.


19. 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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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나와서 아직도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자정을 넘겨서야 들어갈 듯. 지방 두 곳에서 강의가 있었기 때문인데 궂은 날씨 탓으로 더 길게 느껴진다.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쓰는 건 뇌가 먹통 상태라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게다가 눈도 피로하다).

오전 강의에서 실러의 <돈 카를로스>를 읽은 김에 실러의 희곡 전체에 대한 페이퍼를 쓰면 좋겠다 싶었는데(읽은 것과 읽을 것으로 나누어서) 그럴 만한 기력이 없기에 그냥 <돈 카를로스>의 세 번역본만 골라놓도록 한다. 문학동네판과 문학과지성사판을 갖고 있는데 서로 다른 부분이 있어서 지만지판도 오늘 주문했다. 내친 김에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를 감상하려고 했지만 3시간이 넘는 분량이어서 참아두기로 했다(이탈리아어로 읽어주어서 <돈 카를로>가 된다고).

실러의 희곡 중에서는 청년기 작품으로 <간계와 사랑>과 <돈 카를로스>, 마지막 작품으로 <빌헬름 텔>을 강의에서 읽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데뷔작 <도적떼>(<군도>)를 추가해볼 수 있겠다. 그럼 전체 아홉 편 가운데 절반쯤 다루는 게 된다. 현재로서는 1/3. 여덢 편이 번역돼 있으므로 더 읽을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은 역시 <빌헬름 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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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0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0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마스 만의 후기 대표작 <파우스트 박사>(문학과지성사)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 이로써 현재 읽을 수 있는 한국어판은 3종이 되었다(민음사판과 필맥판이 더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이 읽히는(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많이 읽힐) 판본은 민음사판일 텐데, 내가 강의에서 읽을 때는 아직 나오기 전이어서 필맥판으로 읽었다. 토마스 만의 장편 가운데서는 <마의 산>(1924) 다음으로 강의에서 읽은 듯한데, 첫 장편인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1901)을 세 작품 가운데서는 제일 늦게 읽었다. 나는 만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마의 산>의 번역본이 가장 많이 나왔고, <파우스트 박사>가 그 뒤를 잇게 되었다. 여전히 <부덴크로크가의 사람들>은 한 종의 번역본이 전부다.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보자면, 민음사판으로는 중단편집과 함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과 <파우스트 박사>를 읽을 수 있는데, <마의 산>이 추가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문학동네판으로는 단 한 권의 토마스 만도 읽을 수 없는데(이 '부재'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주요한 특징이다) 사실 방대한 장편의 새 번역자를 찾는 일부터가 어려운 일이어서이지 싶다. 


 














열린책들판으로는 중단편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장편 <마의 산>을 읽을 수 있다(<마의 산>이 3권짜리로 나와 있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리고 을유문화사판으로는 <마의 산>을 읽을 수 있는데, 강의에서 주로 쓰는 교재다. <마의 산>은 기타 범우사판과 세창출판사판(<마법의 산>)으로도 나와 있다. 


강의에서 토마스 만의 작품을 한 편만 다룬다면 단연 <토니오 크뢰거>다. 중편이란 분량과 함께 대표성을 고려해서다. 그리고 한편을 더 읽는다면 나로선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고르겠다. <마의 산>이 세번째이고, 거기에 더 여유를 부린다면 <파우스트 박사>. 그밖에 장편으로는 대작 

<요셉과 그 형제들>(전6권)이 있는데, 분량상 엄두를 내기 어렵다(강의에서 다루기도 어렵다). 















그리고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창비)와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아카넷), <선택된 인간>(홍신문화사) 등이 국내에 번역된 만의 장편들이다(<선택된 인간>은 구 번역본으로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새로 나오지 않았다). 자타공인 20세기 전반기 독일문학의 최대 작가의 소개로서는 아직도 좀 미흡하게 여겨진다. 그나마 이 정도 소개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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