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엔키에비츠박물관을 떠난 버스는 2시간반쯤 지나 바르샤바에 입성했다. 예정과 다르게 1일차에 1박했던(비록 2-3시간밖에 못 잤지만) 터라 구면이지만 한밤중과 새벽에 본 바르샤바 외곽과 한낮에 보는 도심이 같을 수는 없다.

숙소에 짐을 맡겨놓고 일행은 인근의 지중해식당으로 향했다. 바르샤바 구경도 식후경. 새로운 가이드의 안내로 바르샤가 구시가지 투어에 나섰다. 기온은 크라쿠프와 비슷해서 영하10도 안팎. 이미 익숙해져 투어에 지장은 없었다.

바르샤바는 알려진 대로 수난의 도시다(자세한 건 오늘 방문할 봉기박물관을 둘러보고 적으려 한다). 특히 2차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독일군이 전력으로 파괴에 나서 전체 도시의 85%가 초토화된 일은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다. 파괴된 자리에 건물들이 다시 들어섰지만 모든 건물에 흉터자국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숙소에서 바르샤바왕궁을 지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구시가지까지는 도보로 20-30분 소요되는 듯싶다(시간을 재지는 않았다. 낮시간에 다시 걷는다면 더 짧을 수 있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또다른 방문지 미츠키에비츠문학관이 있다. 아담 미츠키에비츠는 문학기행 출발을 앞두고도 적었듯이 폴란드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시인이자 민족문학(지금은 국민문학)의 아버지다. 크라쿠프 광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르샤바에도 도시 중심부에 동상이 서 있고 문학관도 세워져 있다. 방문 전에는 미츠키에비츠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전시도 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기획전들이 병행돼서 오해한 것이었다. 현재는 바르샤바의 음유시인이라는 스타니스와프 스타셰프스키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우리에겐 소개된 시인은 아니었다.

1층이 기획전으로 활용되고 2층이 미츠키에비츠 상설전시관으로 보였다. 우리의 관심사였던 <판 타데우시> 초판본(1834년)과 육필원고 전시돼 있어 반가웠다. 시인의 초상화뿐 아니라 당대 인물들의 초상화도 다수 걸려 있었는데 1812년전쟁의 맞상대였던 프랑스와 러시아의 두 황제,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1세의 초상화도 포함돼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프랑스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청년들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참여했다. 나폴레옹이 승리했더라면 폴란드의 역사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물론 유럽의 역사가 달라졌겠다).

미츠키에비츠문학관 방문을 끝으로 이번 문학기행의 공식적인 문학일정은 일단락되었다. 일행은 구시가지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대신하고 예약해둔 프레데릭 콘서트홀로 향했다.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는 도시, 바르샤바를 방문한 만큼 프레데릭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어보기 위해서. 바르샤바의 밤이 피아노 선율과 함께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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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문학기행 8일차였다. 통상의 경우라면 마지막 날이었을 텐데 이번여행은 9박11일 일정이라 오늘 하루가 더 남았다. 정확히는 반나절 정도의 일정이 남은 상태다. 오전 일정만 진행하고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마지막 공식일정이기 때문이다. 오후는 자유시간.

어제아침 일찍 크라쿠프의 숙소를 떠나 1시간반쯤 거리의 오블렝고레크로 향했다. 이 낯선 지명은 헨릭 시엔키에비츠박물관(통상 시엔키에비치로 표기돼 왔는데 폴란드문학 전공자들이 시엔키에비츠로 옮기고 있다. 통일되지 않고 병행될 듯하다)이 거기에 있지 않다면 인연이 없었을 장소다. 문학기행이 시작된 이후에도 여행사의 문의에 회신이 없어서 일정 진행여부가 불확실했는데(방문하고 나서야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담당직원이 영어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엔키에비츠박물관(시엔키에비츠궁전으로도 불린다) 진입로는 버스가 출입하기엔 폭이 좁아서 도보로 이동했는데 라임나무 가로수가 길 양쪽으로 멋들어지게 늘어서 있어서 걷기에 좋았다. 길 끝 언덕에 박물관이 보였는데 눈이 쌓여 있는 설경과 어울려서 근사한 모습이었다. 짐작에 한국인을 포함해 외국인 방문자는 거의 없을 것 같은 박물관에 단체로 입장해서 1, 2층 전시물들을 둘러보았다.

1층만 보면 작가의 서재와 침실 등 여는 작가박물관과 다를 바 없는 전시여서 단출하다는 인상이었는데 새로 꾸민 것 같은 2층은 시엔키에비치의 노벨상 수상 관련 사진과 자료, 작품들, 특히 <쿠오바디스>(여러 차례 영화화된)와 연관된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고 장식용 서가의 <쿠오바디스>를 비밀문으로 한 비밀의 방까지 마련돼 있었다. 방문자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새로운 구성이었다.

시엔키에비츠박물관에서는 주로 역사소설에 주력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톨스토이와 비교 설명했다. 월터 스콧부터 시작되는 근대 역사소설의 역사에서 시엔키에비츠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특징은 국권 상실기 폴란드 작가라는 특수한 사정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쿠오바디스>도 마찬가지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해 퇴행적으로 보이는 그의 역사소설은 민족주의와 결합된 신낭만주의적 문학관의 소산이다.

바르샤바로의 이동 시간 때문에 박물관에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곧게 뻗은 가로수길을 걸어나와 다시 버스에 올랐다. 마지막 목적지 바르샤바를 향하여 다시 출발. 등산으로 치면 문학기행은 이제 8부능선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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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다섯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3명의 소설가와 2명의 시인, 혹은 3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다. <쿠오바디스>의 작가 헨릭 시엔키에비츠는 남자이자 소설가, 그리고 첫 수상자였다(1905년). 그렇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전세계적 베스트센러였던 <쿠오바디스>를 제외하면 단편 ‘등대기지‘ 정도다(폴란드 문학선에 수록).

폴란드의 망명자로 오랜 객지생활을 하던 스카빈스키 노인은 미국령 파나마 항구도시 에스핀월의 외로운 섬 등대지기로 일하게 된다. 적임자로 일하던 그에게 어느날 월급의 절반을 기부하던 ‘폴란드 이민자협회‘에서 뜻밖에도 폴란드 책(미츠키에비츠의 <판 타데우시>)을 보내오고 노인은 시집을 읽으며 격한 감정에 휩싸인다. 너무나 벅찼던 나머지 하룻밤 등대의 불을 켜는 것조차 잊고만다. 노인은 즉시 해고돼 다시금 방랑의 길을 떠난다는 게 단편의 결말이다. 시엔키에비츠 문학의 낭만성과 민족주의를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동시대 작가로 냉철한 사실주의 문학을 대변하는 볼레스와프 프루스와 대비된다).

지금 노인의 외로운 바위섬에서는 무언가 엄숙하고 장엄한 일이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진정 예사롭지 않은 평화와 고요의 순간이었다.
애스핀월의 시계가 오후 다섯시를 알리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도 찬란히 빛나는 창공을 가리지는 못했다. 단지 몇마리의 갈매기만이 푸른하늘에서 유유히 날갯짓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넘실대는 파도가 거대한 정적 속에서 해변을 부드럽게 쓰다듬을 뿐, 바다도 침묵에 잠겨 있었다. 애스핀월의 하얀 집들과 그 뒤로 늘어선 울창한 야자수들이 멀리서 미소짓고 있었다. 갑자기 정적을 뚫고 노인의 떨리는 목소리가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마치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시집을 읽어내려갔다.

리투아니아, 나의 조국이여! 잘 있었느냐?
너를 잃었을 때 비로소 너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니.
오늘 내가 너의 아름다움을 보며 노래하는 것은,
너를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니.

노인은 목이 메어 더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글자가 그의 눈앞에서일렁이기 시작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내렸고, 격정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져서 그의 목소리를 자꾸만 짓눌렀다...... 노인은 잠시그대로 있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평정을 찾으려 애쓰며 다시 시를읽어나갔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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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서 크라쿠프로 돌아오는 길에 해는 저물어서 쉼보르스카가 묻혀 있는 묘지에 들어설 때는 이미 한밤중과 다름 없었다(오후 5시를 갓 넘긴 시각이었음에도. 묘지는 오후 6시까지 개방이었다). 어제 이미 찾아왔던 분들이(˝두 번은 있다˝) 안내를 맡아서 시인의 무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아주 멀리서 온 독자들이 시인과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한겨울의 무덤 속에서도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묘지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20분쯤의 거리. 나는 크라쿠프에서 마지막 미션으로 어제 봐두었던 서점을 다시 찾아갔다.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서점 엠픽(empik)은 1610년에 문을 열었다는 곳으로 역사가 자그만치 400년이 훨씬 넘는다. 크라쿠프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가운데 하나(내부와 외관은 새단장한 모습이어서 역사적 무게감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지역주민 쉼보르스카가 자주 찾았을 서점이다(자주 들렀다는 카페도 근방이었다).

서점 안쪽에 쉼보르스카 코너가 있어서 책과 사진 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한국어판 <끝과 시작>도 보여서 반가웠다. 폴란드문학 외에 당연히 세계문학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고 한국 작가의 책으론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그리고 <흰>의 폴란드어판이 눈에 띄었다. 첫날 바르샤바 공항에서 구입하지 못한 <흰>을 크라쿠프에서의 기념품으로 구입했다(하드카바이고 가격은 2만원가랑. 커피값도 책값도 결코 우리보다 싸지 않았다).

그렇게 크라쿠프의 모든 일정이 무탈하게 마무리되었다. 과거 폴란드의 수도였던(수도는 17세기초 바르샤바로 옮겨진다) 역사도시이고,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며, 요한 바오로 2세가 대주교로 봉직혔던 도시, 그리고 시인 쉼보르스카의 도시. 크라쿠프여, 안녕! 아침을 먹으면 떠날 도시에 미리 인사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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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문학기행 7일차였다. 9박11일의 일정이 어느덧 종반을 향하고 있다. 오늘 날이 밝으면 시엔키에비치문학관을 찾을 예정이고 이후 곧바로 마지막 목적지 바르샤바로 이동하게 된다(점심은 바르샤바에서). 바르샤바에서 마지막 이틀을 보내면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항공편을 맞추느라여느 때의 8박10일보다 하루 늘어났다).

아우슈비츠행을 앞두고 있다고 앞선 페이퍼에서 적었는데 어제는 폴란드 최대 관광지 두곳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 그리고 아우슈비츠(폴란드명은 오시비엥침). 소금광산은 9시 오픈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서 영어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보았다(거의 2시간이 소요됐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광산이겠거니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내부시설도 잘돼 있어서 놀랐다. 지하130미터까지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올때는 6인승 정도 되는 엘리베이터(라기보다는 딱 승강기)를 이용했다.

광산 투어를 마치고 부근 호텔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일행은 아우슈비츠로 향했다. 사실 많은 영화와 자료에서 봤던 곳이라 수용소 정문을 들어설 때는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가는 느낌조차 들었다(최근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그렇다). 유럽 전역의 유대인의 분리와 집결, 이송과 ‘해결‘에 이르는 전과정이 수용소 막사별로 주제를 달리해 전시되고 있었다. 그나마 아우슈비츠는 비르케나우를 포함해 전쟁 막바지에 세워진 수용소들보다는 시설이 나은 편이라고 했지만 인류 최악의 집단범죄의 현장이라는 아우슈비츠의 오명을 떼어낼 수는 없었다.

한 막사에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책들이 책장에 진열돼 있었는데 프리모 레비나 장 아메리, 엘리 위젤, 임레 케르테스, 타데우셔 보로프스키 등 눈에 익은 이름도 있었지만 낯선 이름들도 많았다. 홀로코스트 문학 내지 아우슈비츠 문학에 대해선 몇차례 강의하기도 했지만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전에 베를린에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방문한데 이어서 이번에 테레진과 아우슈비츠 두 곳을 찾았으니 매듭을 지어도 좋겠다(소련의 강제수용소까지 찾아갈 일은 없을 듯하므로).

전시된 사진 가운데 1943년 테레지엔슈타트(테레진)에서 유대인들의 모습에 눈길이 머물렀는데 그해 10월 오틀라 카프카가 돌보던 아이들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이송돼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는다. 프라하의 카프카 무덤에서 이번문학기행은 ‘테레진에서 아우슈비츠로‘라는 오틀라의 동선을 따라가는 여정이라고도 했는데 비로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관광버스는 많이 와 있었지만 실제 수용소 투어는 여유있게 진행되었고 마지막 가스실을 둘러보는 것으로 예정보다 빨리 종료되었다. 원래 공식 일정에는 포함해 있지 않았지만 쉼보르스카의 묘지 방문을 많은 분들이 원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거기부터가 저녁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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