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와 제자백가의 귀환

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32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생각보다 일찍 온라인에도 기사가 올라와 있다. 서평거리로 다룬 책은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가운데 먼저 읽은 <관중과 공자>(사계절, 2011)이다. 지난주에는 덕분에 두툼한 <관자>(소나무, 2006)까지 구입해놓았다. 제자백가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읽을 책이 수두룩하다는 걸 이번에 새삼 알게 됐다(일단 <국어>와 <회남자> 등을 주문해놓은 상태다)...  

  

매경이코노미(11. 11. 23) 관중 오독(誤讀)에서 탄생한 공자의 철학

전쟁과 혼란의 시기의 대명사 춘추전국시대는 알다시피 제자백가가 출현해 경합을 벌인 백가쟁명 시대였다. 대학에서 장자철학을 전공하고 대중강연과 폭넓은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중철학자’ 강신주의 야심작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는 그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한 제자백가 총정리다. 전체 12권으로 완결될 예정인 이 시리즈에서 서론에 해당하는 1권 ‘철학의 시대: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에 이어 2권 ‘관중과 공자: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은 저자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중국 고대철학사가 보통 공자에서부터 시작하는 데 비해서 그는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관중을 앞세우고 또 공자와 마주보게 했다. 관중은 누구인가. 공자보다 조금 앞선 시대를 살았던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첫 패권국가로 만든 재상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이자 출중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관중의 정치철학은 법가사상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돼 있다.

저자는 그 영향의 범위를 훨씬 더 넓게 잡는다. 이어지는 춘추시대 말기뿐 아니라 전국시대 지식인에게 관중은 가장 모범적인 성공사례였고 그들 또한 제2의 관중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았기 때문이다. 실권자를 만나 자신의 사상을 국정에 적용해보는 것이 난세를 살았던 사상가들 열망이었다면 관중이야말로 이상적인 ‘롤모델’이었다. 그 점에서는 비록 사상은 달리했지만 공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공자 역시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펼치게 해줄 제후를 찾아 천하를 주유한 전력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관중과 공자에 대한 통념을 교정하려고 한다. 첫째는 공자가 관중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자의 철학이 관중의 정치철학에 대한 오독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오독인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관중은 민중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민중이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실질적 토대라고 봤기 때문에 관중의 모든 정책은 민중의 힘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직해내느냐에 모아졌다. 부국강병을 목표로 한 국가 철학자였지만 관중은 자신의 목표가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와 복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 그의 정책은 민중이 삶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목민’이란 그의 발상은 여기서 비롯된다. 목축의 대상을 동물이 아닌 민중으로 설정한 것이 목민이다. 저자에 따르면 “관중의 목민 정책의 핵심은 민중의 자유를 빼앗고 길들이면서도 그들로 하여금 군주를 보호자로 착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목민의 부정적인 측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중의 목민 논리는 결과적으론 대성공이었고 정치적 현실주의와 국가주의의 원류가 됐다.

반면 공자는 민중을 소인이라 폄하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정치의 성공 여부가 귀족의 도덕성에 달려 있다고 봤다. 민중은 열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귀족계층의 도덕적 모범을 따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공자 또한 국가의 안정을 위한 세 가지 요소로 경제적 토대와 군사적 토대, 그리고 민중의 신뢰를 들었지만 그에게 경제적 토대와 군사적 토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공자가 보기에 민중은 먹을 것이 없어도 군주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공자가 말한 민중은 사실 그만의 백일몽 속에만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자기만의 이상에 너무 치우친 것이라는 해석이다.

흔히 공자의 인(仁)을 ‘보편적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너그럽고 관용적인 ‘귀족의 품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저자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공자가 주창한 유학사상은 신분적 위계질서를 긍정한 보수주의 철학에 불과하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공자는 자신이 평생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떠들고 있었던 순진한 사상가였다”는 저자의 결론은 공자와 제자백가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강신주판 ‘제자백가의 귀환’이 갖는 의의다.  

11.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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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닥치고 정치>(푸른숲, 2011) 후반부를 읽다가 지난주에 나온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책보세, 2011) 가 떠올라 소개기사를 찾아 옮겨놓는다. 책은 지난주에 <정복은 계속된다>(이후, 2007)와 같이 구입해놓은 터이다. 미국의 상하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한미 FTA에 대한 '다른 시각'이 우리의 판단에도 도움이 되겠다.    

한겨레(11. 11. 12) 촘스키 “FTA는 미국의 경제지배 전략일 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 시점에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해와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에서 자유무역협정이 사실상 미국의 기업을 위한 미국의 경제 지배 전략에 불과하며 자유무역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자유무역협정은 초국적 기업과 은행 그리고 이들의 뒤를 봐주는 국가가 작성해 체결한 투자자들의 권리 계약에 불과하다고까지 지적한다. 자유무역협정의 본질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국민적 합의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자유무역협정=수출 증대’라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이 쓴 이 책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 같다. 책은 촘스키가 2006년 칠레에서 한 강연을 묶고, 2010년 상황에 맞게 내용을 추가해 펴낸 것이다.

촘스키는 ‘미국의 정체’를 거듭 밝힌다. 미국이 제3세계에 원하는 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미국을 지배하는 민간 독재자(기업)들이 수탈하기 쉽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이 들고나온 것은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협정이란 것이다. 책에서 촘스키는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 등과 체결한 가장 대표적인 자유무역협정인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NAFTA)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1994년 나프타가 체결된 뒤 결과를 보면 멕시코는 빈곤화가 더 심해졌고, 캐나다는 미국과 멀어져 중국과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들이 예상 못한 결과를 받아들게 된 것은 미국의 탐욕 탓이라고 촘스키는 단언한다. 미국을 사실상 기업이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의 의도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흘러가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체제의 결과 미국은 민주주의의 기틀인 선거마저 기업들의 투자행위로 전락했다고 분노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0년 1월 이런 기업들이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대 선거를 치르게 하는 정치적 투자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했다. 그는 이 판결이 난 날을 “미국 민주주의가 암흑으로 빠진 날”이라고 칭한다.

책에서 촘스키는 누누이 미국의 대외정책의 양면성과 야만성을 까발린다. 미국이 중앙정보국(CIA)을 내세워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두려움보다 미국 기업의 투자이익이 보장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분석하고,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칠레처럼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제3세계 국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국부를 민중에게 분배하고 소외계층을 위해 정책을 펴는 것이 결과적으로 미국 기업의 이익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집권한 뒤에도 이런 미국의 노선은 여전하다고 개탄한다. 오바마가 2009년 좌파정부를 뒤집은 온두라스의 군부 쿠데타를 승인한 것, 카리브해를 작전 반경으로 하는 미 제4함대를 50여년 만에 부활시킨 점 등이 그 근거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정책은 2008년 금융위기와 중국의 성장 등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촘스키는 미국의 정책변화를 요구하며 활발하게 움직여온 세계 지식인들의 비판이 그 원동력이 됐다며 이런 움직임의 확대를 기대한다.(권은중 기자) 

1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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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키 2011-11-14 17:24   좋아요 0 | URL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3권 세트가 책장에 보이네요. 이제는 뛰어다니는 딸이 아직 아내 뱃속에 있을 때 아내와 둘이 읽던 책입니다. 둘이 "애 이름을 촘스키라고 할까? 촘스키처럼 깨어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야"했던게 생각납니다.

로쟈 2011-11-15 07:48   좋아요 0 | URL
딸이어서 촘스키가 안된 건가요?^^

노승영 2011-11-15 11:39   좋아요 0 | URL
번역은 오래 전에 끝냈는데 계속 출간이 미뤄지더니
결국 한미 FTA가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절묘한 시점에 책이 나오더군요.
영어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한 글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절감한 책이기도 합니다. ^^
 

오랜만에 '로쟈의 컬렉션'으로 분류될 만한 페이퍼를 적는다. 이건 컬렉터, 곧 도서수집가의 기록이다. 지난 몇달 동안 책을 부쩍 많이 구입하고 있는데, 급기야는 인도철학과 고전쪽에까지 손을 대게 됐다. 계기가 된 건 박효엽의 <불온한 신화읽기>(글항아리, 2011)다. '<바가바드기타>는 인도를 어떻게 신비화하였는가'가 부제. 책의 성격에 대해선 저자가 '책머리에'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바가바드기타>의 해설서이다. 해설서이긴 하되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설을 되짚어보고 또 뒤집어보려 한다. 따라서 이 책은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해설서인 동시에 여러 해설서의 재해설서이기도 하다.(17쪽)   

'재해설서'라고 하니까 그간에 나온 번역본이나 해설서가 궁금했다. 그래서 세 권 정도를 구입했는데, 저자가 말미에 적은 '더 읽어볼 책들'도 참고했다.  

 

"해설 없이 <바가바드기타>를 처음부터 끝까지 곧장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들어야 한다"고 추천한 책은 길희성 역의 <바가바드기타>(현음사, 1988)인데, 이 번역본은 <범한대역 바가바드기타>(서울대출판문화원, 2010)로 다시 나와 있다. 역자는 종교학자로 인도의 종교와 철학에 정통하다. 함석헌 선생이 주석을 붙인 <바가바드기타>(한길사, 1991/2003)도 추천본인데, "함석헌이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된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이현주 목사가 옮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기타>(당대, 2001)다. "마하트마 간디가 <바가바드기타>를 9개월 동안 매일 강독한 것을 기록한 책"으로 인도적인 사유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고. 이 정도면 대충 <불온한 신화읽기>를 따라서 <바가바드기타>를 읽을 만한 준비는 된 게 아닌가 싶다. <바가바드기타>는 어떤 책인가.  

서양 문화를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 하듯, 인도 문화를 이해하려면 힌두교의 바이블인 '바가바드기타'를 읽어야 한다. '거룩한 이의 노래'라는 뜻의 '바가바드기타'는 인도 힌두교의 3대 경전 중 하나로 사촌끼리 왕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전쟁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한 부분이다. 대학에서 인도 철학과 문화를 가르치는 저자는 이 책을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해설서인 동시에 여러 해설서의 재해설서"라고 소개한다. 고전에 대한 신비주의와 낭만주의를 버리고 현실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라는 제언이다.(한국일보)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관심을 두다 보니 인도의 고전 <우파니샤드>에도 눈길이 갔다. 그래서 같은 저자의 <처음 읽는 우파니샤드>(웅진지식하우스, 2007)도 손에 넣게 됐는데, '우파니샤드'라는 것이 '단 한 권의 책'을 지시하는 건 아니라고. 전통적으론 108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200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게 '인도식'인 모양이다. 번역본으로 나와 있는 건 이재숙 역의 <우파니샤드1,2>(한길사, 1996)인데, 2권이 품절된 상태여서 구입은 보류했다.  

 

대신에 해설서로 이명권의 <우파니샤드>(한길사, 2011)를 구했고, 이재숙이 풀어쓴 <우파니샤드>(풀빛, 2005)나 펭귄판 영역본 등을 더 구해볼 계획이다.  

 

 

이런 수집벽의 귀결은 물론 <인도철학사>이겠다. 길희성 교수의 <인도철학사>(민음사, 2001)와 라다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1-4>(한길사) 등이 목표점이다. 이 책들을 꽂아둘 공간과 읽어볼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언젠가 인도에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아직 알 수 없는 것처럼... 

11. 11. 13.  

P.S. 인도 전공자나 가이드가 몇 명 되는데 인도 델리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이광수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인도는 무엇으로 사는가>(웅진지식하우스, 1998)부터 다수의 인도 관련 교양서와 학술서를 펴내고 있다. 최근의 책은 '인도사로 본 한국사회'를 부제로 달고 있는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이후, 2010)이다. 사실은 지난주에 나온 번역서 라나지트 구하의 <역사 없는 사람들>(삼천리, 2011) 덕분에 한번 더 상기하게 됐다. 라나지트 구하는 인도의 역사학자로 서발턴 연구의 권위자이다.  

 

<서발턴과 봉기>(박종철출판사, 2008)가 라나지트 구하의 책이며, 이 책을 옮긴 김택현 교수의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박종철출판사, 2003)이 서발턴 역사학 입문서쯤 되겠다. 서발턴과 관련하여 더 자주 언급되는 탈식민주의 이론가는 가야트리 스피박이지만, 같은 인도출신 이론가 호미 바바를 다룬 <호미 바바의 탈식민적 정체성>(앨피, 2011)도 최근에 출간됐다.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의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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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3 13:15   좋아요 0 | URL
더불어 추가하고 싶은 바가바드 키타 해설서로 <천상의 노래>(비노바 바베, 실천문학사)가 있어요. 이 책은 비노바 바베가 감옥에서 있을 때 죄수들, 간수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것을 모은 거라고 합니다.

로쟈 2011-11-13 13:36   좋아요 0 | URL
네 참고하겠습니다.^^

유부만두 2011-11-13 11:50   좋아요 0 | URL
반가운 페이퍼네요.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읽고있어요.

로쟈 2011-11-13 13:37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인도 출신 작가와 지식인들이 적진 않습니다...

승주나무 2011-11-14 04:34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를 보면 바가바드기타의 철학이 깊게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불가촉천민에게 허락된 유일한 경전..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로쟈 2011-11-15 07:49   좋아요 0 | URL
네 서재엔 오랜만이신네요..^^

goghim 2011-11-14 12:45   좋아요 0 | URL
앗! 인도!! 인도는 자신들의 말처럼 '놀라운'나라이지요. 전에 저는 두달 정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경이로움' 투성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거룡 선생의 책들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즐겨 펴?)지요. 몇년 전에 들었던 '인도철학'강의도 저로서는 아주 유익했고, 대체불가인 이거룡 선생의 '풍모'도 '몹시' '인도 답다'(라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쟈 2011-11-15 07:49   좋아요 0 | URL
인도에도 다녀오셨군요. 미지근한 태도를 갖기 어려운 나라인 것 같아요.^^

허스키 2011-11-14 17:28   좋아요 0 | URL
아버지 댁에 가면 책장에 바가바드기타 영어 판본이 꽂혀있습니다. 항상 꺼내서 뒤적이기만 하고 읽지 않았네요. 이미 지난번에 아버지 책장에서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업어온 통에 이것마저 또 업어오긴 눈치가 보이고...그냥 한 번 더 뒤적거려 봐야겠네요.

로쟈 2011-11-15 07:50   좋아요 0 | URL
아버님이 인문학자이신가 봅니다.^^

허스키 2011-11-15 14:59   좋아요 0 | URL
법학이십니다. 원래 실무를 30여년 하시다가 교수도 하시고, 지금은 정년퇴임 하셔서 두어 강좌만 하시면서 텃밭 일구고 계십니다. 이번에 내려갔더니 요즘 또 논문을 하나 쓰고 계시다고 하더군요. 가끔씩 아버지 책장에서 '이런 책도 읽으시나?'하는 책을 발견하곤 합니다.
 

지난주 시사IN에 실린 장정일의 서평을 옮겨놓는다. 아마도 격주로 서평이 연재되는 듯싶은데, 이번에 다뤄진 책이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이다. 공역자로서 지난 연말과 올 연초를 함께했던 책이고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으니 나로선 인연이 없지 않다(오늘 주문해서 받아보니 지난 7월에 3쇄를 찍었다). 얼마전 도서관 강의에서도 지젝의 폭력론을 다룬 적이 있는데,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책의 주장을 쉽게 풀어써줄 용의가 없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당장은 자신할 수 없지만 능력이 된다면 그렇게 해보고도 싶다. 내주에 나올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자음과모음, 2011)이 그런 능력을 가늠해보는 척도가 돼줄 것도 같다.

시사IN(11. 11. 12) 명박산성을 지젝식으로 읽는다면?  

어떤 사람이 무엇에 정통했는지 아닌지는, 보기(일례·example)를 만들거나 제시하는 능력으로 드러난다. 흔히 자기 혼자서는 알겠는데 남에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가 아직 보기를 만들거나 들 수 있을 만큼 알지 못해서다. 대저 무엇을 안다는 사람이 보기를 실어 나르거나 만드는 일에 능하다는 것은, 역사상 위대한 스승이 모두 비유에 능했다는 것으로 증명된다. 어떤 명제나 논리든, 보기를 만들거나 들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알고 있는 게 아니다. 

마치 자신의 현자 같은 능력을 과시하려는 듯이,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년)의 서문 첫머리를 아예 보기로 시작한다. “물건을 훔쳐낸다는 의심을 받던 일꾼이 한 명 있었다. 매일 저녁, 일꾼이 공장을 나설 때면 그가 밀고 가는 손수레는 샅샅이 검사를 받았다. 경비원들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손수레는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결국 진상이 밝혀졌다. 일꾼이 훔친 것은 다름 아닌 손수레 그 자체였던 것이다.” 

우리는 폭력을 이야기할 때, 범죄와 테러 행위, 사회 폭동, 국제 분쟁 같은, 눈에 보이는 폭력만 문제 삼는다. 하지만 한눈에 보이는 가시적 폭력보다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은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다.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상징적 폭력과, 멀쩡해 보이는 경제체제와 정치체제가 행사하는 구조적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일꾼이 매일 도둑질했던 게 ‘손수레’였던 것처럼, 뻔히 보이면서도 장물로 감지되지 않는 그런 폭력이다.

사악한 범죄자나 억압적인 공권력, 광신적인 대중운동이 저지른 가시적 폭력만 문제 삼는 시선에는 착취당하는 노동자, 아프리카의 기아,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이 폭력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이처럼 가시적 폭력만을 문제 삼는 사람일수록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신념을 내세우기 쉽다. 이를테면 그들은 빈약한 화력으로 무장한 채 경찰과 대치하는 파업 노동자나 재개발 지역 주민만 폭도로 보지, 그 사람들을 극단으로 내몬 구조적 폭력은 외면한다. 지젝은 이런 위선자들을 향해 ‘주관적 폭력과 싸운다고 하면서 구조적 폭력에 가담하는 자들’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구조적 폭력과 다름없다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고용주의 변덕에 직면한 피고용자들의 불안과, 강탈적인 대기업의 공세에 생존권이 위태로운 자영업자의 곤궁한 현실로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지젝은 대의민주주의마저도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으로 간주한다. 그는 대개의 선거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관습과 견해의 영향을 받는다면서, 간혹 다수의 사람이 일시적으로 깨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투표를 하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놀라운 선거 결과가 지극히 예외적인 것이라는 점은 선거가 진리의 수단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자유선거는 체제가 더 부드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지젝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방법이 대의제 말고는 모조리 봉쇄되어 있다는 것을 책임(->폭력)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닫혀 있는 정치 공간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젝은 이 책의 진정한 주제인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그러기 전에 독자는 이 책의 서문에 적혀 있는 ‘취급 주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거기서 지은이는 폭력이라는 메두사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제’하고, ‘폭력으로 생긴 정신적 충격을 무시’할 것을 당부한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우리는 폭력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쁜 것으로 매도하는 탁월한 이데올로기적 조작에 흡수되고 만다. 

‘신적 폭력’과 ‘신화적 폭력’ 
지젝은 폭력을 긍정적으로 사유하기 위해 발터 베냐민의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이란 개념을 빌려온다. 신화적 폭력은 법을 만들거나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 폭력이며, 이런 폭력의 가담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애국’이나 ‘안보’ 따위의 대타자에 전가한다. 반면 신적 폭력은 구조적인 폭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구조적인 폭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하는 폭력으로, 신화적 폭력과 달리 자신의 폭력을 그 어떤 대타자에게도 전가하지 않는다. 예컨대 신적 폭력은 ‘정의’나 ‘민주주의’ 같은 대타자의 무력함과 무능함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거기에 참여한 주체들은 모든 책임과 위험부담을 홀로 떠안아야 한다. 베냐민은 이런 폭력을 ‘인간이 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순수한 폭력’이자 ‘혁명적 폭력’이라고 일컬었으며, 지젝은 거기에 ‘사랑의 역사(役事)’라는 명칭을 달아준다. 

역사에 기록된 많은 폭력은 신적 폭력보다,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의 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폭력이 대부분이었다. 스탈린의 숙청과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대표적인데, 이명박 정권이 휘두르는 ‘법치’니 ‘공안정국’이니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자신의 무능을 가리려는 폭력에 가깝다. 정신분석에서는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위장하기 위한 행동을 ‘행위로의 이행’이라고 하는데, 시민운동가의 ‘행동하라’ ‘참여하라’ 따위 권고가 베냐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을 거세한 것이라면, 그것 역시 행위로의 이행에 지나지 않는다.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의 한국어판 후기를 새로 써 보냈는데, 여기에는 이런 전언이 담겨 있다. ‘한국인이 지금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명박산성을 넘지 않고자, 그 앞에서 비폭력을 외쳐댔기 때문이야!’ 

놀랍게도 지젝의 삐딱한 시선에 발본색원된 보이지 않는 폭력 가운데는, 민주주의 사회의 미덕으로 권장되어 왔던 ‘관용’과 ‘정치적 올바름’도 포함된다. 그가 보기에 알카에다가 벌인 9·11 테러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미군이 벌인 고문 사례는,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과 무관한 야만끼리의 충돌이다. 사태를 그렇게 키운 것은 관용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현대의 이데올로기로, 관용은 ①상대방을 아이로 취급하면서 상대방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는 태도이며 ②어떤 진리든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모두 폭력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정치를 문화적 차이와 생활 방식의 차이로 변질시키는 관용과 자신의 견해는 바꾸지 않으면서 표현에만 신경 쓰는 정치적 올바름은, 미소 띤 얼굴 뒤에 야만을 키워왔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서로를 성인으로 취급하고, 책임을 물리면서, 예의 바른 비판을 하는 것이다.(장정일_소설가) 

11. 11. 12. 

 

P.S. 이번주에 나온 지젝의 신간은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자음과모음, 2011)이다.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인간사랑, 2003)라고 나왔던 책의 재번역판이다. 당초엔 9.11 10주년에 맞춰 9월에 출간하려고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좀 늦어졌다(어쨌든 가을에 맞추긴 했다!). 공역자로 번역 자체에 많은 힘을 보태진 못했지만 번역 출간을 적극 제안하고 번역팀을 직접 구성했기에 새 번역본 출간은 나로서도 의미가 깊다. 직접적인 계기는 물론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를 읽어나갔던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연재였고, 여러 문제점 때문에 새 번역본이 출간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면 또 현실로 이뤄지곤 하는 게 세상이다! 그게 '실재의 사막'이니 그 환영사를 여기에 적어둔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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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topa 2011-11-1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문장에서 '책임'은 '폭력'입니다.
편집부에서 단어를 마음대로 고친 탓에, 지젝의 의도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가 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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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거는 체제가 더 부드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지젝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방법이 대의제 말고는 모조리 봉쇄되어 있다는 것을 책임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닫혀 있는 정치 공간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로쟈 2011-11-12 21:39   좋아요 0 | URL
편집부에선 조사나 어미만 건드리는 줄 알았는데요.^^;
 

내주 월요일엔 방송대TV의 '책을 삼킨TV' 마지막 녹화가 있다(특별히 공개녹화로 진행되기에 관심있는 분들은 방청하실 수 있다). 28회로 마무리되는데, 마지막 책이 프로그램의 사회자이기도 한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푸른숲, 2011)다. 개인적으로 '나꼼수' 관련서들의 열풍에 관해 칼럼도 쓸 계획이라서 <달려라 정봉주>(왕의서재, 2011)도 출간된 김에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 현재까지는 딱 다섯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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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에는 명랑한 아이러니와 풍자가 가득하다. 물론 ‘씨바’와 ‘졸라’와 함께.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성실하게 불법을 자행해왔고 자행하고 있는 걸로 ‘추정’되는 권력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지만, <닥치고 정치>에는 진보정치에 대한 속 깊은 비판과 제안도 포함돼 있다. 그가 진보정치권에 던지는 충고의 핵심은 ‘느낌’과 ‘마음’의 중요성이다. 마음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움직이는 게 대중정치인 만큼 중요한 것은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정서적 직관이라고 말한다. 그걸 일공로만으로도 올해의 책에 값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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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키 2011-11-14 17:29   좋아요 0 | URL
아, 아내의 팬심을 완전 자극중이신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 기반으로 하신 정봉주 의원의 책이 보이는군요.

로쟈 2011-11-15 07:50   좋아요 0 | URL
ㅎㅎ

허스키 2011-11-15 15:01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통화를 하다가 정봉주 의원의 이 책을 언급했더니 '아, 우리 정봉주 의원님. 생각만해도 그냥 웃음이 나고 흐뭇해지네'라고 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