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 건너뛴 '이주의 책'을 고른다. 집에서는 아직도 인터넷이 안 돼(일이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될 줄 몰랐다. 광랜이 들어오지 않은 아파트가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피씨방에서 간단히 적는다. 주로 역사와 인류학 분야의 책으로 골랐는데, 타이틀북은 로런트 듀보이스의 <아이티혁명사>(삼천리, 2014). 최근 흑인 노예제와 관련한 책을 손에 들다 보니 관심이 갔다.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이 부제.

 

 

아이티혁명사를 다룬 책으론 자연스레 C. L. R 제임스의 <블랙 자코뱅>(필맥, 2007)을 떠올리게 되는데, 듀보이스의 책은 "큰 틀에서 제임스의 견해를 따르고 있지만, 혁명가 투생 루베르튀르의 전기 형식으로 서술된 <블랙 자코뱅>의 한계를 넘어 아이티 사회와 카리브 해 노예들의 삶을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두번째 책은 '빅토르 세르주 선집'의 첫 권으로 나온 <한 혁명가의 회고록>(오월의봄, 2014). 수잔 와이스만의 <빅토르 세르주 평전>(실천문학사, 2006)이 나온 바 있는데, 이번에 나온 건 그 자신의 자서전이다.

불굴의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 자서전. 히틀러가 지배하는 유럽을 벗어나 멕시코로 건너온 뒤 쓴 자서전이다. 애덤 혹스칠드는 이 자서전을 '걸작'이라 칭하면서 "20세기를 증언하는 몇 안 되는 다른 위대한 정치 저술(아서 퀘슬러의 <한낮의 어둠>과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과 동급에 놓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번째 책은 윌리엄 T. 로의 <중국 최후의 제국>(너머북스, 2014).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로 나온 청제국사. "서구 중심주의를 지양하고 새로운 중국사 서술을 개척한 조너선 스펜스의 계보를 이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청대사 전문가인 저자가 쓴 이 책은 기념비적인 연구서인 <케임브리지 중국사>의 청대사 3권을 포함한 최신의 국제적인 청대사 연구 성과를 종합한 것이다." 캠브리지 중국사의 10, 11권이 청제국사를 다루고 있기에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네번째 책은 시공간을 좀 건너뛰어서 아마존 야노마뫼 족을 다룬 나폴리언 섀그넌의 <고결한 야만인>(생각의힘, 2014).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도 모습을 비추었던 야노마뫼 족은 섀그넌이 현지 조사를 시작한 1964년 당시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야생의 원시 부족이었다. 이 책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원시 부족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나폴리언 섀그넌'은 '나폴레옹 샤뇽'이란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었다(학계에서는 어떻게 표기되는지 모르겠다). '에덴의 마지막 날들'이란 부제의 <야노마모>(파스칼북스, 2003)가 처음 번역됐던 책. <고결한 야만인>은 섀그넌(샤농)의 회고록이다.    

 

 

끝으로 인류학 입문서 한 권. 웨이드 데이비스의 <웨이파인더>(정은문고, 2014). "TED 인기 인류학 강연자이자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속탐험가 웨이드 데이비스와 떠나는 인류문화여행." 웨이드 데이비스는 <나는 좀비를 만났다>(메디치, 2013) 등의 책으로 소개된 저자다. 좀비의 고향 아이티를 다룬 책이니, <아이티혁명사>와 같이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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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혁명사-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 삼천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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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혁명가의 회고록
빅토르 세르주 지음, 정병선 옮김 / 오월의봄 / 2014년 7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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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중국사 청- 중국 최후의 제국
윌리엄 T. 로 지음, 기세찬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7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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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야만인- 아마존 야노마뫼 족과 인류학자들, 두 위험한 부족과 함께한 삶
나폴리언 섀그넌 지음, 강주헌 옮김 / 생각의힘 / 2014년 7월
25,000원 → 25,000원(0%할인) / 마일리지 75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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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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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상주의의 대표 철학자로 주로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의 호적수로 알려진 로버트 노직의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김영사, 2014)가 재출간됐다. 오래 전에 <인생의 끈>(소학사, 1993)이라고 나왔던 책이다. 오래 전, 그러니까 20년도 더 전에 저자의 명망에 기대 바로 구입했지만 인상적이진 않았다(좀 밋밋한 느낌이었다). 다시 읽으면 놓친 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주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외에는 별반 읽을 게 없었던 철학자의 책이라 반갑다. 부제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라는 소크라테스의 궁극적 물음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소크라테스적 탐구’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현대 철학의 걸작! 30세에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정교수가 되었으며 20세기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 로버트 노직. 그가 날카로우면서도 해박한 식견, 유려함이 빛나는 ‘소크라테스적 논변’으로 삶의 본질과 의미를 꿰뚫는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변증으로 26가지 인간 존재의 핵심 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하여 그 실체를 낱낱이 파헤쳤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이라는 건 제목과 연관된다. '성찰하는 삶' 내지는 '성찰적 삶'. 알려진 대로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게 서양철학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래서 '성찰하는 삶'을 원제로 갖고 있는 책이 여럿 되는데, 제임스 밀러의 <성찰하는 삶>(현암사, 2012), 애스트라 테일러의 철학자 인터뷰 <불온한 산책자>(이후, 2012), 그리고 정신분석가 스티븐 그로스의 <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나무의철학, 2013) 등이 그렇다.

 

 

말이 나온 김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책 몇 권. 황광우의 <사랑하라>(생각정원, 2013)는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서이고, 폴 존슨의 <그 사람, 소크라테스>(이론과실천, 2013)은 가장 만만한 분량으로 읽을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입문서. 그리고 베터니 휴즈의 <아테네의 변명>(옥당, 2012)은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관한 자세한 배경 설명을 제공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등의 대화편을 읽을 때 요긴한 참고가 된다...

 

14.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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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시사IN(355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문해교육>(학이시습, 2014)을 골라서 읽고 적었다. 문해교육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아처와 패트릭 코스텔로의 <문해교육의 힘>(학이시습, 2014)도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끈다.

 

 

시사IN(14. 07. 05) 읽고 쓰면서 세상 밖으로

 

<페다고지><희망의 교육학> 등 교육학 고전으로 잘 알려진 파울로 프레이리의 <문해교육>을 읽었다.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인 것도 브라질의 세계적인 교육사상가에게 주목하게 만든 이유이지만 문해교육 프로그램이 프레이리의 대표적 교육개혁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갔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글 읽기와 세계 읽기’가 부제인데, ‘읽기와 쓰기 교육’으로서 문해교육에 대한 강조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글 읽기’와 ‘세계 읽기’를 같이 묶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프레이리 문해교육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글 읽기와 세계 읽기는 어떤 관계인가. “세계 읽기는 항상 글 읽기에 선행한다. 그리고 글 읽기는 계속해서 세계 읽기를 내포한다”는 구절에 압축돼 있다. 세계 읽기가 글 읽기에 선행한다는 말은 학습자가 글을 깨치기 전에 이미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프레이리는 몬테마리오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의 경험을 들려주는데, 그는 보니투(bonito)라는 물고기 이름과 함께 채소, 전통가옥, 고깃배, 어부의 그림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주민들이 “아 여기는 몬테마리오예요. 맞아, 이 그림은 몬테마리오야. 정말 몰랐네”라고 말하며 놀라워했다. 그림(상징)을 통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인식하고 재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뜸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그들이 존재하는 작은 마을을 대상화함으로써 ‘세계의 주인’으로 마주 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기심 어리고 비판적인 주체’가 바로 문해교육 과정의 출발점이라고 프레이리는 말한다. 그래서 그의 문해교육의 첫 단계는 학습자들에게 글자보다 그림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학습자가 글자를 기계적으로 암기하기보다는 자기 경험에 근거해 그 글자 자체를 이해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제시된 상황을 해석하고 읽어내는 과정에서 학습자는 자신의 경험세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다. 그 학습자가 가난한 민중이라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독해가 깊어질수록 민중들은 숙명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난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급진적 교육학을 주창한 <페다고지>의 부제가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되듯이 프레이리의 주안점은 민중의 해방을 위한 교육이다. 그에게 교육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수단이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게끔 하는 사회변혁의 수단이다. 교육은 억압받는 계급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무기이며, 문해교육은 그러한 무기의 하나다. 그런데 세계 읽기가 글 읽기에 앞선다는 전제를 염두에 두면 해방적 문해교육에 앞서야 하는 것은 사회 변혁이다.

 

문해교육의 의의를 절대적으로 것으로 과대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 또한 프레이리 사상의 특징이다. 그는 문해교육을 사회변혁의 유일한 기폭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니카라과 민중이 혁명을 통해 역사를 장악하자 곧바로 문해교육이 실시되었다. 문해과정은 역사를 장악하는 과정보다는 쉽기 때문인데, 니카라과 민중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시 써나갈 수 있었다. 사회변혁이 문해교육에도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니카라과와 대조되는 사례가 미국이다. 1980년대 중반의 통계이지만 당시 미국 민중의 6000만 명 이상이 글을 모르거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기능적 비문해 상태에 있었다. 유엔의 128개국 가운데 미국의 문해율은 49번째였다. 이러한 대규모의 비문해 인구가 방치되고 있는 것이 제1세계의 대표국가 미국의 현실이라면 미국은 프레이리의 문해교육이 제3세계 국가 이상으로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곳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문해율을 자랑하는 만큼 사정이 좀 다르다. 월드컵 축구팀의 성적이 브라질이나 미국에 비해 좋지 않더라도 다소간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14.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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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중앙일보의 '삶의 향기' 칼럼을 옮겨놓는다. 4주에 한번씩 반년간 칼럼을 연재하게 됐는데, '북칼럼니스트'라는 직함에 맞게 주로 책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첫 칼럼은 책 이사에 관한 것이다. 지난 주말에 이사를 하고서 아직 인터넷도 개통되지 않아 이래저래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달리 생각하면 해오던 일이 준 것이니 오히려 편한 생활인지도 모르겠다...

 

 

 

중앙일보(14. 07. 01) 책 이사를 하고서

 

남들보다 책을 좀 많이 읽고 그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거 말고는 남다를 게 없지만, 간혹 그게 도드라질 때가 있다. 이사할 때다. 이삿짐센터 직원들도 가장 힘들어하는 게 책짐이 많은 이사인데, 그건 책이 부피에 비해 무겁기 때문이다. 한 직원의 말로는 수석 이사 다음으로 힘든 게 책 이사다. 돌덩이를 옮기는 것 다음으로 힘든 일이 책짐을 나르는 일이라는 얘기다.

물론 나도 경험이 없지 않아서 대학원 시절 자취방을 옮길 때 친구의 힘을 빌려 100개가 넘는 라면박스를 나른 적이 있다. 라면 대신에 책이 들어간 라면박스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건물의 3층까지 계단으로 박스를 나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힘들었던 이사다. 그 이후로는 노력 동원 수준을 넘어섰기에 주로 용달 아저씨나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사를 위해 미리 업체의 견적을 받을 때도 책 이사 경험이 많은지가 가장 중요한 확인사항이었다. 대학 연구실이나 도서관 이사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가산점이 주어진다.

지난 주말에 바로 그런 이사를 또 했다. 예전 집에 이사한 지 4년 만에 전셋집을 비워주게 되었는데, 더 이상의 책이사가 부담스러워 아예 내 집을 마련했다. 보통 신중할 수밖에 없는 내집 마련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준 것이 책인 셈이다. 형편에 맞게 몇 년 전세를 더 살다가 다시 이사를 하는 것이 결코 대안으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책이 불어난 탓인데, 짐작엔 1만5000권에서 2만 권 사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적정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만권 이상의 책을 소장하고 있을 경우 충분히 장서가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정도면 이미 한 장소에 보관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나 같은 경우도 서너 곳에 책을 분산 보관하고 있는데, 이번에 집으로 옮긴 게 대략 전체의 3분의 1 정도다. 이사하기 전에 책장을 충분히 짜놓아서 아직 빈 공간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게 이사한 보람이다.

하지만 보람은 잠시다. 일단 마구잡이로 꽂혀진 책들을 마땅한 자리를 정해서 제대로 정돈하는 게 이사보다 더 큰 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건 따로 용역을 줄 수도 없는, 순전히 서재 주인의 몫이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도 가끔씩 애는 써보았지만 결국 4년 동안 온전한 책정리는 끝내지 못했었다. 두 가지 핑계를 대곤 했는데, 인생이 미완성이듯이 책장 정리도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이유가 하나였고, 군대식으로 잘 정렬된 책장보다는 중구난방으로 뒤섞인 서가에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실용적’ 이유가 다른 하나였다.

책들의 위치를 다 기억하고 있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는 필요한 책을 제때 찾지 못하는 일이 잦았으니 실용적이란 말은 어폐가 있다. 그래도 마구잡이 배열이 뭔가 시적이라는 느낌을 줄 때도 있다. 눈앞의 책장 한 칸을 보니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와 『구텐베르크 은하계』 『나의 햄릿 강의』 『돈을 다시 생각한다』 『영화장르』 『번역이론』 『트랙스크리틱』 등이 두서 없이 꽂혀 있다. 또 다른 칸에는 『문학의 공간』과 『칼 세이건』 『냉전의 역사』 『그레이트 게임』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니체 극장』이 한 편이 돼 있다. 머지않아 자기 자리를 찾게 할 계획이지만 당분간은 이런 무질서도 즐기고 싶다. 장서가의 즐거움이란 게 사실 대단찮다.

‘삶의 향기’란 칼럼을 청탁받으면서 주로 딱딱한 책 얘기나 하게 될 거라며 완곡하게 사양했지만 첫 지면에 ‘무거운 책’ 얘기만 적게 됐다. 무거운 책들과 함께하는 삶은 향기로운 삶이라기보다는 단내 나는 삶이다. 그럼에도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 말에 인생을 걸었으니 도박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과 일상의 감각을 보존하고 환기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매체로서 책 이상의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라는 질문을 이사할 때마다 받으면서도 “다 읽을 수는 없지요”라고 멋쩍게 답하면서 여전히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이유다.


14.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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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중앙선데이에 실은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을 옮겨놓는다.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와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다루었다. <롤리타>의 독자라면 알겠지만 험버트 험버트의 첫사랑 애너벨 리는 포의 시에서 따온 형상이다. 포의 시 인용은 최근에 나온 미국시 선집 <가지 않은 길>(창비, 2014)에서 가져왔다.

 

 

중앙선데이(14. 06. 29) “마법이든 운명이든 롤리타는 애너벨에서 비롯됐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러시아 태생의 망명작가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이렇게 시작한다. 중년의 사내 험버트와 그가 ‘님펫’이라고 부르는 소녀 롤리타의 사랑 이야기다. 님펫은 아홉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녀 가운데 특별한 매력을 가진 아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자기보다 몇 배 더 나이가 많은 남자들을 매료시키는 마성을 지녔다. 험버트가 그런 마성에 사로잡히는 경험은 주관적인 것이고, 객관적으로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학대로 보인다. 작품이 출간되자 도덕적 논란에 휩싸인 이유다.

하지만 그런 논란은 『롤리타』가 실제가 아닌 가상의 현실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오해된 면도 있다. 소설은 물론 허구의 세계이지만 작가는 보통 그것이 실제 현실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 반면 나보코프는 유사 현실의 세계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그것이 고안된 세계임을 끊임없이 암시한다. 『롤리타』에서 그가 창조한 것도 ‘원더랜드’(이상한 나라)에 빗댄 ‘험버랜드’이며, 환상 속 ‘바닷가 공국’이다.

‘바닷가 공국’은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Annabel Lee)’에 나오는 ‘바닷가 왕국’을 비튼 말인데, 『롤리타』의 처음 제목이 ‘바닷가 왕국’이었다는 점에서 포에 대한 참조는 확실해진다. 아니, 나보코프 자신이 이 점을 숨기지 않는다. 님펫에 대한 험버트의 환상 혹은 이상 성욕을 소재로 삼으면서 험버트에게 포를 모델로 한 문학적 전기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흔 살의 나이로 불운한 생애를 마친 포에게 유일한 행복은 버지니아 클렘과의 결혼생활이었다. 1935년 스물여섯 살 때 포는 사촌이었던 클렘과 결혼하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열세 살이었다. 둘은 열렬히 사랑했지만 클렘은 결핵에 걸려 스물네살에 사망한다. 상심한 포가 아내를 추억하며 쓴 시가 ‘애너벨 리’이며, 포는 이 시를 쓰고 난 얼마 뒤 술에 만취해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세상을 떠난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 / 바닷가 왕국에, / 아마 당신도 알지 모를 소녀 / 애너벨 리가 살았답니다. / 나를 사랑하고 내게 사랑받는 생각만으로 그 소녀 살았답니다.” ‘애너벨 리’의 첫 연이다.

포는 아내와의 사랑을 바닷가 왕국의 이야기로 변형시키는데, 애너벨 리는 천사들의 시샘으로 죽어 차갑게 식고 바닷가 왕국 묘지에 유폐된다. 그럼에도 둘은 한층 더 강렬히 사랑했다. “그래서 높은 하늘나라 천사들도 / 깊은 바다 아래 악마들도 / 내 영혼과 아름다운 애너벨 리 영혼을 / 결코 갈라놓을 수 없답니다.” ‘애너벨 리’는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롤리타』에서 험버트는 포의 러브스토리, 혹은 애너벨 리의 전설을 롤리타 이야기의 모델이자 전사(前史)로 가져온다. “사실 어느 여름날, 내가 첫 번째 여자애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롤리타는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바닷가 공국에서였다.” 1910년생인 험버트가 1923년 열세 살의 여름에 만난 첫사랑, 혹은 그 ‘첫 번째 여자애’의 이름이 ‘애너벨 리(Annabel Leigh)’이다. 험버트와 애너벨 리는 같은 또래였고, 바닷가 휴양지에서 만난 사춘기의 이 소년소녀는 서로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서투르게, 뜨겁게, 고통스럽게, 미친 듯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절망적이라는 말도 덧붙여야겠다”라고 험버트는 회고한다. 그들의 사랑이 절망적이었던 건 아직 육체적 경험이 없는 미숙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입맞춤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런 접촉은 “건강하고 경험 없는 어린 육체들을 오히려 더 격앙시킬 뿐”이었다. 두 사람에겐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애너벨은 넉 달 뒤에 티푸스로 목숨을 잃는다.

소년 험버트와 포의 사랑이 모두 애너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둘의 관계는 나이에서 차이가 난다. 포는 애너벨(아내 크렘)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험버트는 애너벨과 동갑이었다. 바닷가 왕국에서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재연하기에는 자격 미달이라고 해야 할까? 따라서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열정은 어릴 적 애너벨에 대한 열정의 재생이자 반복이면서 동시에 재시도다.

“마법 때문이든 운명 때문이든 간에 롤리타는 애너벨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험버트는 믿는데, 애너벨을 잃은 뒤 24년 만에 님펫으로서의 롤리타가 애너벨의 재현으로 그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 미모사 덤불, 별무리, 전율하던 느낌, 불꽃 같은 열정, 달콤한 이슬, 통증은 내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내 해변의 귀여운 팔다리와 뜨거운 혀는 나를 쫓아다녔고 마침내 24년이 지나 나는 그녀의 마력에서 벗어난다. 오직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에 의해서.”

님펫은 두 남녀 사이의 일정한 나이 차를 전제로 하기에 어린 시절 험버트의 애너벨은 님펫이 아니었다. ‘죽음 너머의 사랑’을 ‘님펫에 대한 사랑’으로 변형시키면서 험버트는 롤리타에 대한 사랑이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의 의미도 갖게 만들었다. 아니, 그런 의미를 숨겨놓은 건 나보코프다. 어릴 적 나보코프가 가장 좋아한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포였으니까.

 

14.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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