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한국 민주주의는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다. 아직도 많은 ‘적폐‘가 남아있지만, 그리고 적폐청산의 과제가 기대만큼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기준이 되는 건 MB에 대한 법의 심판이다) 다시금 자유한국당이 집권한다든가 하는 ‘적폐복고‘의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동시대 한국인들은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민주주의의 진전이 독서에도 변화를 가져왔는데 개인적인 느낌을 적자면, 이제는 민주주의 관련서를 편안한 마음으로 손에 들게 된다. 분통과 목마름을 동반하지 않고서 이 주제의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진태원의 <을의 민주주의>(그린비)도 그렇고, 로베르트 웅거의 <민주주의를 넘어>(앨피)도 그렇다. ‘서양철학의 논문들‘ 시리즈로 나온 리처드 로티의 <철학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선성>(전기가오리)까지도 예전처럼 숙제를 안겨주는 게 아니라 반가움을 먼저 느끼게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우리의 오늘은 누군가 간절히 꿈꾸던 내일이었다. 오늘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만 더불어 오늘의 성취를 잘 인식해야 한다는 말로도 새길 수 있다. 그게 또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길이 아직 멀다 하더라도 우리의 걸음은 가볍고 호흡은 활기차다. 이제 막 태어나는 시간과 함께 내년에도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다. 갑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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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22-10-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시나여ㅋㅋ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의를 끝으로 올해의 강의가 일단락되었다. 대단한 역주는 아니었더라도 완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다소 무리한 면도 있었지만 많이 읽고 또 배운 한해였다(강사도 강의를 통해 배운다). 몇몇 결과는 내년에 책으로 묶여서 나올 것이다. 무엇을 배운 것인지는 책을 내는 과정에서 다시금 복기하고 정리할 예정이다. 당장은 휴식.

내일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기는 어렵겠다. 편안하게 읽느냐 긴박하게 읽느냐의 차이일 뿐. 무엇을 읽을지는 아직 미정인데(내키는 대로 읽자면 십수 권은 읽어야겠기에), 후보 가운데 하나는 저명한 러시아사학자 쉴라 피츠패트릭의 <러시아 혁명 1917-1938>(사계절)이다. 올해 러시아혁명 관련서가 다수 출간됐으니 한권 더 추가된 게 대단한 뉴스는 아니다. 다만 저자가 다루는 시대 범위가 눈길을 끄는데 1938년 스탈린 공포정치기를 1917년 혁명의 일단락으로 보았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간결하고 통찰력 있으며 독창적인 분석˝이라는 평도 이런 구분설정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비교해보자면 에드워드 카는 1917-1929년까지를 러시아혁명사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올랜도 파이지스는 1891-1991년을 ‘혁명의 러시아‘로 제시했다. 피츠패트릭의 구분은 그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올랜도 파이지스 자신이 피츠패트릭의 책에 대해 추천평을 적고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소비에트 체제에 가장 정통한 학자가 쓴 간결하고 절묘한 해석이다.˝ 간결해서도, 그리고 절묘해서도 일독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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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의 강의 일정도 이제 하루를 남겨놓았다. 숨 가쁜 일정에 치이다 보니(자청한 것이긴 하다) 제때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고 놓치는 수가 많다. 최대한 구입은 해두려고 하는데 언제나 여력이 닿는 건 아니다(재정보다 더 큰 문제는 공간이다. 책을 갖고 있어도 제때 찾을 수 없으니). 그럼에도 마음은 늙지 않아서 욕심이 줄지 않는다. 그런 욕심 탓에 뒤늦게 주문한 책은 윌리엄 해리스의 <분노의 문화사>(인텔렉투스)다.

‘뒤늦게‘라고 적은 건 책이 나온 지 몇주 지났기 때문이다. 제목은 당연히 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클릭해보지 않았던 것. 하지만, 엊그제 보니 ‘숨은 보석‘ 같은 책이다. 모르고 지나쳤다면 분노를 살 뻔한. 부제는 ‘고전고대의 분노 통제 이데올로기‘이고 저자는 컬럼비아대학의 역사학 교수다. 고전고대, 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가 주 전공분야다.

˝분노란 무엇인가에 대한 용어 정의부터 시작해 호메로스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킬레스의 분노, 분노의 옹호자 아리스토텔레스, 분노의 통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로마황제들, 여성과 노예를 상대로 한 분노 등 아르카익 시대와 고전고대를 넘나들며 분노에 대한 담론을 펼쳐나간다. 저자는 고대의 심리치료 방법과 더불어 현대심리학이 고전고대의 담론을 토대로 삼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분노‘는 의당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이야기가있는집)와 비교해서 읽어봄 직하다. 그러고 보니 분노라는 주제를 다룬 ‘올해의 책‘ 두 권이로군.

사실 분노는 올해를 대표할 만한 정서는 아니다(그 점은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그럼에도 책이 나오니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은 불가피하다. 주제서평이라도 써볼 만한데 실현하기는 어렵다. 흠, 어렵다고 적으니 유감이로군. 게다가 원저의 책값도 신경이 거슬리게 한다. 이런 유감도 계속 쌓이면 분노로 치달을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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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인도네시아 작가 에카 쿠르니아완의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오월의봄)를 고른다. 일단 인도네시아 작가의 장편소설이 번역된 사실 자체가 주목거리인데, 세계적인 화제작이라고 하니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2015년에 영어판이 나오자 대번에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살만 루슈디와 비교되었다 한다.

˝<상상의 공동체>로 유명한 베네딕트 앤더슨은 그의 소설을 읽고 “순연하게 아름답고 우아한 언어와 충만한 상상력에서 첫눈 내리는 겨울 하늘을 바라볼 때와 같은 설렘”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르몽드>는 “에카 쿠르니아완이 인도네시아 최초로 노벨상을 받을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는 <가디언> 선정 ‘2015 최고의 소설’, <뉴욕타임스> 선정 ‘2015 주목할 만한 책’,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2015 최고의 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소개를 보니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린 소설이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나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곧장 떠올리게 해주는 작품. 에카 쿠르니아완은 1975년생으로 2000년에 첫 단편집 <화장실 벽의 낙서>로 데뷔하고 이어서 첫 장편소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2002)를 발표했다.

˝두 작품으로 그는 일약 인도네시아 문단의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와 <호랑이 남자>가 영어로 번역되었다. 마침 그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은 인도네시아였고 전 세계 출판 관계자들은 뒤늦게야 두 작품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독창성에 놀라게 된다. 2016년 두 번째 장편 <호랑이 남자>가 인도네시아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다시 한 번 전 세계 출판계를 놀라게 한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호랑이 남자> 두 작품의 판권이 30여 개국 이상에 팔려나갔고 순식간에 에카 쿠르니아완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일단 읽어봐야 알겠지만 상당한 ‘물건‘으로 보인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에카 쿠르니아완일 거라고 하니까 이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호랑이 남자>도 번역되면 좋겠다). 안 그래도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지역의 문학을 모아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는 일찍 강의에서 다루게 될지 모르겠다(대략 2019년 정도로 가늠하고 있다). 일단 에카 쿠르니아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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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학자 마이클 토마셀로는 내게 이주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이다.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이음)이란 책으로 처음 접했지만(‘인간은 왜 협력하는가‘가 원제이자 번역본의 부제)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나온 <생각의 기원>(이데아) 덕분에 관심을 갖게 돼 재작년에 나온 <인간의 의사소통 기원>(영남대출판부)까지 구했다. 알고 보니 <인간 인지의 기원>의 후속작(이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생각의 기원> 등의 책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내가 그렇다). ‘영장류학자가 밝히는 생각의 탄생과 진화‘가 부제. 핵심은 어떻게 사피엔스만이 다른 호모속 영장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해명이다. 이에 대한 토마셀로의 주장이 아주 강력하다는 게 장대익 교수의 극찬이다.

˝유인원 중에서 어떻게 사피엔스만이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이 위대한 질문에 답할 단 한명의 과학자라면 그는 단연코 마이클 토마셀로이어야 한다. 토마셀로만큼 인간과 다른 유인원 종들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깊이 들여다본 지구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집단 지향성’이 그 간극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왜 이토록 독특한 영장류로 진화했는가에 대한 해설서 정도가 아니다. 노벨상급 연구의 요약본이다.˝

저자는 인지발달과 언어습득에 관해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하고 국내에는 <인간의 의사소통 기원> 외에 <언어의 구축>(한국문화사)이 번역돼 있다. 일단은 <생각의 기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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